눌변가 Fluent Stutter
2020.5.19~2020.6.20 d/p
글: 문정현 | 미술비평
가라타니 고진의 언술처럼 풍경은 어디에나 있으며 또한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풍경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단순히 외부에 고착된 풍경은 내적인 산물로 변모하며 비로소 발견되기 때문이다. 단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보이는 자연 경치라던가 전망 좋은 호텔의 널찍한 유리면에 반사되는 도시의 야경만이 고유한 풍경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시선에 새로이 고정되는 상은 인식론적 사유로의 전환을 꾀한다. 만약 작품도 이와 같은 풍경을 수납하는 틀로 가정할 경우 작가의 눈에 지각된 선험적 대상은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며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다종하게 교차하는 풍경은 무진형제(정무진, 정효영, 정영돈)의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 한여름의 뙤약볕에 줄넘기를 지속하는 아이를 기후도(氣候圖)의 변동과 유비하는 방식으로 관찰한다. 가장자리 쪽으로 뜯기고 깨진 콘크리트 타일의 사각 프레임 안에 배치된 동일한 면적의 스크린 두 대에서 반복되는 영상은 한국이라는 지리적 좌표를 지시한다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땅바닥을 거칠게 치는 줄넘기 소리에서 친구들과 다투었거나 혹은 숙제를 마치러 귀가하기 싫은 듯 들리는 아이의 마음은 한결 선명하게 다가온다. 혹은 작은 키를 늘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유추케 하는 아이의 기분은 바람소리를 탄 감정이 되어서 이내 건조한 풍경으로 흩뜨려진다. 이처럼 운문의 형식으로 잡히지 않는 말과 풍경은 우리를 흐릿한 메아리의 언저리로 이끌고 간다.
노은주가 그리는 도시의 풍경은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형상으로 다가온다. 쉼 없이 재개발되는 서울의 고층아파트는 이미 적막한 밤 위화감을 주는 낯선 표정의 타자가 아니다. 〈야경〉과 같이 전경을 가로막은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하나의 인격체인 양 독립적인 그림자를 지고 있으며 그 외양은 마치 검은 묵을 뒤집어쓴 교우의 익살스러운 몰골에 가깝다. 눅진 감정의 덩어리처럼 외피의 물감만 굳은 〈Dropping〉은 충혈된 말의 눈자위와 같이 소복하게 얼어붙어 있다. 차디찬 지붕의 처마에 달라붙은 고드름처럼 맺힌 물감의 희뿌연 응어리는 그 겹 내부의 대상보다 한층 직설적이기도 하다. 윤곽선을 타고 흐르는 물감의 녹진 형태는 전하지 못한 말의 결정체(結晶體)이자 영하 20도의 대기에서 응고되지 못하고 떠도는 말로서 하나의 풍경이 되어 어지러이 흩어진다.
한편 시간과 말의 이미지가 기승전결 없이 헝클어진 이윤이의 〈메아리〉는 예능방송에서 곧잘 진행되는 언어와 몸짓으로 특정 제시어를 맞추는 오락처럼 인식되는 데콜라주 같다. 영상의 중첩되는 메아리에서 동화하는 상념을 모두 지운 채로 말과 이미지와 타인을 그저 균질적인 풍경의 단편으로서 한 장 한 장 오려붙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뜸한 사교 모임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별다른 실체가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추하나, 깊숙깊숙히 늙어서 추해도 마구마구 소리 지르며 기어 나갈 것이다…”라고 습기가 찬 창문 위에 손가락으로 서로의 약속을 다짐하듯 그어가는 다발의 문단은 북쪽으로 이동하는 기압골의 수면에 물결을 번지며 스며드는 듯하다. 이와 같이 이윤이가 그리는 이야기는 더없이 허무맹랑하며 유쾌하게 웃고 떠날 말의 집합일 것이다. 물론 본 전시를 구성하는 세 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업이 눌변이라는 주제와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전시는 결국 온전하게 전달될 수 없는 불안정한 언어의 사유를 애써 전달하는지도 모른다. 어눌한 말로 삶의 해학과 통찰을 익살스럽게 건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처럼 더듬거리는 눌변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가(家)’와 ‘가(歌)’의 접미어는 결국 말하지 못하고 달리지 못하며 전달하지 못하는 말을 구성하는 미술의 직능을 다시 한 번 고찰토록 이끈다. 총천연색의 유성을 떠도는 메아리가 은하수 저편으로 물들어갈 때 아득한 너와 나는 다시 만나서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
《눌변가 Fluent Stutter》
2020.5.19~2020.6.20
d/p
< 월간미술 > vol.426 | 2020.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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