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Double Vision

Lucy Raven 〈Curtains〉 2014, anaglyph video installation, 5.1 sound, dimensions variable, 50 min looped, courtesy of the artist, © Lucy Raven

Lucy Raven 〈Curtains〉 2014, anaglyph video installation, 5.1 sound, dimensions variable, 50 min looped, courtesy of the artist, © Lucy Raven

시각에 있어 3차원의 역사는 단순히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식과 다른 분야 연구 결과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 전시 〈3D: Double Vison전〉(7.15~2019.3.31)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LACMA에서 열리고 있다. 〈The Hyundai Project: Art + Technology〉의 일환인 이 전시는 ‘3차원 시각의 역사와 구현을 보여주는 60여 점의 작업을 위해 작가를 비롯, 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비시각분야 종사자도 참여했는데, 전시 본연의 구성과 교육,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글 : 이안 | 미술비평

전시광경. 〈3D: Double Visio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July 15, 2018–March 31, 2019

전시광경. 〈3D: Double Visio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July 15, 2018–March 31, 2019

The Hyundai Project: Art + Technology 이름으로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3D: 더블 비전〉 제하의 아주 흥미로운 전시가 LACMA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LACMA는 매해 160만 명이 방문하며 뉴욕에서 경력을 쌓은 마이클 고반 관장 선임 이후 컬렉션 및 관객 유입 등의 측면에서 성공한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가 극동아시아 부서의 한국갤러리 재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마주한 LACMA 건물은 이제 그때의 2배에 달하는 공간으로 확장돼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뉴욕 현대미술계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미국 미술의 중심을 차지하는 미술관이다.

확장된 새 전시관과 옛 전시관 사이에는 지하 주차장과 야외광장이 있는데, 이곳에, LA의 관문 톰 브래들리 공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광고사진에 등장한 크리스 버든의 야외설치 작품 〈Urban Light〉가 위치한다. 1920~30년대 캘리포니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가로등이 200여 개 설치돼있고, 이 가로등이 빛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다양한 공연을 보기 위해 방문한 관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또한 LACMA 건물 바로 옆에는 영화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 관심을 모은다. 이는 LACMA의 새로운 프로그램 ‘Art + Film Gala’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 2011년 이후 매해 개최되는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프로그래밍에 영화분야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기획되었다. 올해는 11월 3일, 사진가 캐서린 오피의 영화를 특별 제작하고 아카데미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를 선정해 축하한다.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교포 Eva Chow가 공동회장으로 참여하며 할리우드 배우들, 미술가들, 패션 피플 등 화려한 예술계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UCLA 해머미술관의 격년제 비엔날레인 Made in LA, 새로이 개관한 브로드미술관, 내년 첫선을 보일 Frize Art Fair in LA 등 변화하는 LA는 세계적 미술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3D:더블 비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3D(Three- Dimensional)’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각과 인식의 복잡한 기원을 추적하며 175년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로 라크마 사진부서 큐레이터 브리트 살비젠(Britt Salvesen)이 기획을 담당했다. 시카고대학 박사 출신으로 2009년 부임 후 독일 표현주의 영화, Art and Film 등 사진과 영상 관련 전시를 기획해 온 그녀는 2016년 LA Art Show에서 LA를 대표하는 큐레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175년 역사를 추적했다는 안내문을 보더라도 결코 만만한 전시가 아니며 일단 용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관객에게 요구되는 점에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학생들에게는 교육적인 전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3D를 말할 때 흔히들 안경을 쓰고 봐야 하는 입체영화를 떠올린다.

Thomas Ruff 〈3D-ma.r.s.08〉, 2013, chromogenic print, 100×72 3/8×2 3/4 in., © 2017 Thomas Ruff/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VG Bild-Kunst, Germany, photo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Thomas Ruff 〈3D-ma.r.s.08〉, 2013, chromogenic print, 100×72 3/8×2 3/4 in., © 2017 Thomas Ruff/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VG Bild-Kunst, Germany, photo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3D의 기원은 우리의 양쪽 눈이 각기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본다는 ‘양안시차(binocular vision)’ 개념에서 출발한다. 3D 개념은 이중성을 지녔다고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3D 자체는 입체를 의미하지만, 2D, 즉 평면 이미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각각 차이가 나는 다른 이미지를 바라본다. 이 두 이미지는 모두 2D, “평면의 이미지”로 우리의 눈은 사물을 볼 때 ’평면‘ 이미지를 보지만, 우리의 뇌가 이 둘을 통합해 하나의 ‘입체적  사물’로 인식한다. 그래서 입체가 완성되는 곳은 우리의 눈이 아니라, 바로 ‘뇌’ 인 것이다. 즉 처음부터 눈이 입체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뇌로 보내지며 신경세포들의 활발한 작용을 거쳐 입체적 3차원의 사물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입체를 인식하는 방식’을 연구한 것은 과학자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카메라에 적용한 것이 사진의 기원이 되며, 3D의 역사는 바로 양안시차에 기초해 등장한 장치인, 1830년대 스테레오스코프의 발명과 함께 시작한다. 1838년과 1839년 스테레오스코프와 사진이 거의 동시기에 발명돼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테레오스코프는 과학 장치로 각각의 눈이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도록 거울과 렌즈를 사용한 입체 안경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안시차에 대한 연구와 기원을 시작으로 전시는 총 5개 섹션으로 나뉜다. 첫 단계에서는 초기 스테레오스코프 발명가들과 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아티스트들을 다루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은 3D가 인기를 끌던 시기인 빅토리안 시대에서 1950년대까지, 교육과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시각문화의 대중시장을 공략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미술과 기술이 협업을 이루며 실험영화,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이 등장한 1960년대와 70년대를 기술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시기를 다루며, 인간의 시각과 인지 능력에 대한 차용, 반영, 인용의 미술개념을 적용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175년의 역사가 담긴 총 6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은 저명한 미술가 및 과학자를 비롯해서 무명의 발명가, 엔지니어, 디자이너, 사진가, 영화감독 등 다양하다. 다양한 입체를 즐기기 위해서는 갤러리에 마련된 뷰-마스터(View-Master), 레드와 블루 컬러 필터로 된, 우리가 흔히 보는 3D 안경 등을 사용해야 한다.

전시광경. 〈3D: Double Visio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July 15, 2018–March 31, 2019, photo © Museum Associates/LACMA

전시광경. 〈3D: Double Visio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July 15, 2018–March 31, 2019, photo © Museum Associates/LACMA

먼저, 3D 기원을 알려주는 갤러리1에 들어서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한 초기의 다양한 스테레오스코프 장치를 만날 수 있다. 19세기 초까지 양안시차에 대한 이해는 있었지만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했다. 1830년대 영국 과학자 찰스 휘트스톤이 거울을 사용해 이 양안시차를 입증하는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 그리스어 stereo, solid)를 최초로 만들게 된다. 이후 1861년 미국인 올리버 웬델 홈즈가 거울보다 편한 렌즈를 장착한 브로스터(Brewster Sterocope)를 만든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는 오브제는 바로 거울과 렌즈가 달린 나무 화장대 모양의 스테레오스코프이다.

갤러리2와 3에서는 1950년대 빅토리안 시대 중산층 대다수 가정에서 이 스테레오스코프를 소유하고 있었던 대중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마치 21세기 우리가 안방에서 TV를 보듯, 풍경, 기념물, 코믹한 광경 등 다양한 오락을 즐겼다고 한다. 다양한 흑백 사진들이 겹쳐져서 입체로 보이는 경험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20세기의 인물, 거리, 풍경을 감상하게 한다. 갤러리4에서는 1960~1970년대 미술과 기술, 특히 실험영화 및 영화산업과 관련된 역사를 보여준다. 3D 시네마는 1910년대 뤼미에르형제가 우연히 두 개의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무비를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1922년 뉴욕과 LA에서 일반 대중에게 처음 상영되었다.

Ken Jacobs 〈The Surging Sea of Humanity〉 2006, single channel video, dimensions variable, duration: 10:40,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 Ken Jacobs

Ken Jacobs 〈The Surging Sea of Humanity〉 2006, single channel video, dimensions variable, duration: 10:40,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 Ken Jacobs

마지막 섹션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스테레오스코프 (1999) 애니메이션영상과 더불어, 3D 기술을 즐겨 사용한 실험영화 감독 켄 제이콥스, 〈The Surging Sea of Humanity〉(2006) 싱글 채널 비디오, 뷰-마스터를 이용해 1969년 달 착륙을 연상시키는 토머스 루프의 〈3D-m.a.r.s 08〉(2013),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본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대중 프로그램을 선보이는데, 할리우드의 유명한 이집트 극장에서 3D SF, 공포영화를 상영하며, 앨프레드 히치콕의 1953년 영화, 〈Dial M For Murder〉를 3D로도 만날 수 있다.

175년 역사를 기록한 전시를 보는 내내, 기 드보르의 1967년 작 <스펙터클의 사회>(한국판)가 떠올랐다. 이 한국판 표지에는 전시장 벽에 설치된 대형 사진과 동일하게, 모든 이가 적청색 3D 안경을 쓰고 무엇엔가 홀린 듯 스크린을 주시하는 사진이 나온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된 1960년대 권력, 계급, 제도 등 스펙터클화한 자본주의 물신화를 비판하며 진정한 인간 삶의 소외를 고찰한 기 드보르. 21세기, 기술이 무한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는 과연 무어라 말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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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미술 > vol.407 | 2018.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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