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나라 밖의 우리 문화재, 오해와 이해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다루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게 된다. 문화재를 다루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들에 대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이들 문화재에 대한 총체적인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가 개인 소장품을 포함하여 전부 몇 점이나 되는지, 국가별 소유 숫자는 얼마나 되며, 그 나라들의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회화, 서예, 조각, 도자기, 금속공예, 목칠공예, 기타공예, 석조물, 건조물 등 분야별로 어떻게 분포하는지, 시대적 분포는 어떻게 되며, 격조는 얼마나 높은지, 반출 경위는 어떠한지 등등 하나같이 규명을 요하는 상태이다. 이것들이 어느 정도 파악되어야 반드시 환수해야 할 것과 현지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올바르게 소개하는 데 활용할 것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정확한 실태 파악이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이러한 일은 워낙 방대하고 시간과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어서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는 ‘제대로’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가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장기간에 걸쳐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되었으나 설립된 지 2년밖에 안되어 인적구성, 예산, 시설 등 모든 것이 어설프고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제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조사 연구, 활용 홍보, 경영 지원 등 여러 방면에서 기초를 잡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한 점 한 점 모두 보배롭지만 동시에 우리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밤송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밤송이 안에 맛있고 건강에 좋은 밤이 들어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수많은 가시와 두껍고 견고한 껍질에 싸여있다. 섣불리 밤알을 꺼내려다가는 손바닥이 가시에 찔리거나 자칫 떨어뜨릴 수도 있다. 소중한 밤알을 꺼내려면 먼저 그것을 둘러싼 가시와 껍질을 제거해야 한다. 밤알은 알토란 같은 우리 문화재, 가시와 껍질은 많고도 견고한 저해요인인 셈이다. 문화재 환수나 현지 활용은, 밤송이의 수많은 가시나 단단한 껍질처럼 예민한 저해요인들과 장벽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실현이 가능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면 밤송이는 스스로 입을 벌리고 밤알을 밖으로 토해낸다.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도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생각을 해보지만 마음이 조급한 우리는 그렇게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다.
외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졌으면 좋겠다. 많은 국민은 막연하게 ① 외국에 있는 문화재는 모두 약탈 문화재이고, ② 따라서 모두 환수해야 하며, ③ 환수하되 우리 돈은 한 푼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는 약탈 문화재와 더불어 국가 간의 외교적 선물이나 무역거래, 개인 간의 선물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환수’ 못지않게 현지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올바르게 소개하는 데 쓰는 ‘현지 활용’도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한번 빼앗기거나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대부분 어떠한 형태로든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단돈 10원도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거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이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대대적, 적극적으로 거액을 아낌없이 투자해 자국의 수많은 문화재를 환수하고 있는 것은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우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국의 국위를 세계만방에 드높이 선양하고 자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양시킴으로써 보다 큰 국익을 도모하고 있는 사실만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해외의 우리 문화재 환수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서두른다는 점이다. 성급하게 성과를 거두기 위해 서두르면 그 효과는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반면에 오히려 장래의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경우, 더 많은 문화재가 더욱 깊이깊이 숨어버리게 된다. “문화재 환수는 조용히, 느긋하게, 치밀한 계획하에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고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는 이유이다.
해외 소재 문화재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그중의 절대 다수가 ‘사장(私藏)’ 또는 ‘사장(死藏)’되어 있어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공공의 박물관이나 기관들에 소장된 문화재들조차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듯 무관심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의 의궤들도 박병선 박사의 노력에 힘입어 세상에 밝혀지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사장 상태에 있었다. 유사한 예가 수없이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사장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 우리 문화재들이 현지에서 빛나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다방면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 박물관들의 학예원들을 초청하여 한국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조시키고, 아울러 보존 상태가 열악한 문화재들에 대하여는 우리의 인력과 기술을 동원하여 보존처리를 해주는 일 등은 그러한 예의 대표적 경우에 해당된다.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리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해외 소재 문화재는 어림잡아 최소한 15만6,000여 점에 달하며 그중 6만7,000여 점이 일본에 있다고 파악되지만 실제로는 곱절이 넘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가 다른 어느 나라에 있는 것들보다 값져서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 우리 정부가 요구한 4,000여 점의 문화재 중에서 1,432점이 환수되었으나 격조가 높지 않은 것이 다수를 차지했다. 우리 정부의 준비 부족과 다급한 경제협력 때문에 문화재 환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기가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의 한국문화재 소유 상황을 폭넓게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에 알려주지 않고 숨긴 데에도 원인이 있었음이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해 밝혀졌다. 보도에 의하면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자국의 박물관, 대학, 동양문고 등이 소유한 한국문화재의 현황과 반입경로 등을 조사하고 문서로 작성까지 했으면서도 우리 정부의 반환 요청을 염려하여 그 문서들을 숨겨왔다는 것이다. ‘일한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제기한 소송에서 오노 게이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의 도쿄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따르면, 1965년 한일회담 관련 문서들 중에는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은 문화재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한국의 반환 요청을 염려하여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에는 일본 정부가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1,916건을 공개하면서도 22건은 밝히지 않았는데 그중에 문화재 관련 문서가 8건이었다. ‘한국 국보 고서적 목록’, ‘한국 국보 미술공예품 목록’, ‘이토 히로부미 수집 고려도자기 목록’ 등이 그중에 포함되었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일본 소재 한국문화재를 폭넓게 조사하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우리 정부에는 비밀에 부쳐온 것이다. 그 개연성은 진작부터 짐작해온 바이나 이번에 일본의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그 진상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이처럼 꼭꼭 숨기고 있고 사장(死藏)상태를 이어가고 있어서 우리 국민은 어떤 소중한 문화재들이 그 나라에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를 통한 현지 활용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일본이 최소한 어떠한 우리 문화재들을 소유하고 있는지라도 밝히면 좋겠으나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일본에 사장되어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밝힐 것인지 지혜를 모으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모든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극도로 경색된 한·일 간의 외교관계가 완화되고 우호적인 관계를 되찾기만을 고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 속에서 우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올해 ‘돌아온 문화재 총서’의 두 번째 사업으로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의 노력에 힘입어 1996년에 일본 야마구치현립대학(당시 야마구치여자대학)으로부터 되돌려받은 ‘데라우치문고(寺內文庫)’를 다루기로 했다. 첫 번째 사업이었던《 왜관수도원으로 돌아온 겸재정선화첩》은 왜관수도원의 선지훈 신부가 오랜 노력 끝에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St. Ottilien)수도원으로부터 영구대여 형식으로 되찾아온 정선의 화첩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 화첩에 대하여 영인본 제작, 환수과정 및 학술적 의의를 밝히는 글들을 모은 단행본 발간, 특별강연회 개최, 고궁박물관과 협력하여 전시회 개최, 유공자 표창 등 다각적인 연구와 소개를 하여 국민의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두 번째 사업 대상인 데라우치문고에 대해서 철저한 학술적 검토를 기반으로 한 단행본 발간, 특별강연회 및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즉 재단은 올해 ‘돌아온 문화재 총서 2’의 사업성과인《 경남대학교 데라우치문고 조선시대 서화》와《 경남대학교 데라우치문고 간찰 속의 조선시대》(11월 발간)를 발간하고, 특별강연회(12월 16일)와 <고국으로 돌아온 데라우치문고> 특별전시회(12.17~2015.2.22)를 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이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돌아온 데라우치문고는 물론 재일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한·일 양국 국민에게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치·외교적으로는 양국의 관계가 경직되어 있더라도 문화재와 문화 분야에서는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들이 햇빛을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비단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만이 아니라 중국, 미국 등 다른 나라들에 사장되어 있는 문화재들에 대해서도 같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할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참으로 멀고 험하다는 느낌이 든다.
안휘준・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