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예술서적 시장은 언제나 위기였다
나는 몇 년 전 폴 클레 전시회를 보러 올림픽공원 미술관에 갔을 때의 복잡한 심경을 잊지 못한다. 나름대로 유명한 화가의 단독 전시였음에도 3시간 넘게 관람하는 동안 관람객을 5명도 보지 못했다.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어서 어떤 그림 앞에서는 30분 동안 가만 앉아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전시마저 외면당한다면 소위 몇몇 유명 전시에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6년쯤 예술도서를 팔아오면서, 왜 예술 관련 책들이 팔리지 않는지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미술 교양 도서 붐이 일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적 지식이 일종의 ‘일반 대중 교양’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외국 유명 미술관 소장 작품전 같은 대형 전시회가 꾸준히 히트를 기록했고 덩달아 그런 유명 작품들 및 화가들의 삶에 대한 입문서들이 심심찮게 스테디셀러 대열에 올랐다. 이때 많은 출판사가 예술도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버블을 키워가던 미술품 경매 시장이나 각종 국제 비엔날레 등을 통해 미술은 화제를 낳았고 그러자 책이 팔렸다. 바야흐로 예술도서 시장은 떠오르는 신대륙 같았다.
그러나 도서 구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 즉 1년에 책을 2권 정도 구입할까말까 하는 대한민국 평균 독자들, 또는 일반인이 기대하는 바는 거기까지다. 가까스로 그나마 유명한 전시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딱 거기에 대한 지식까지만 요구했던 것이다. 이 수요는 일종의 이슈 소비이지 예술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슈 소비를 계기로 삼아 미술 애호가로 거듭난 경우도 있겠으나, 예외적인 정도의 수치일 것이다. 방학마다 열리는 유명 전시회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서 뭘 어쩌자는 건지 혼란스럽기까지 한데도 많은 사람은 그냥 여기 와서 저 유명 그림을 본 걸로 만족한다. 미술이니까 와서 눈으로 보면 된 거 아닌가. 물론 아니다. 유명 작품의 실물이라는 아우라를 소비하는 행위는 지극히 대중추수적인 행위다. 관객들은 유명 화가라는 일종의 셀러브리티의 컬렉션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미술이라는 의미계를 벗어나서 이미지 그 자체와 그를 둘러싼 아우라를 소비하는 ‘행위’ 또는 ‘현상’은 사회학적인 현상이나 메타-예술의 소재 또는 주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미술작품의 창작과 비평 사이에서 감상자 자신이 능동적으로 재해석에 임하는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 소비자들이 같으므로, 예술도서 시장 역시 전시회 소비 시장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었다. 단지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야?” 정도의 호기심이 시장 확산의 원동력이었다. 호기심이 충족되면 소비는 거기에서 끝난다. 바로 이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책들, 소수의 셀러브리티 예술가의 삶과 대표작들을 담은 일종의 다이제스트 미술서가 21세기 초 미술도서 시장의 일시적인 확산을 가져왔다. 그러나 초심자용 다이제스트라는 포맷은 가용자원과 그 변형에 한계가 있다. 결국 동어반복을 계속하던 이 장르는 몇 년 가지 않아 급격히 쇠락했고, 전체 예술도서 시장 역시 그와 유사한 시기에 다시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예술도서 시장은 살아남기 위해 시대의 흐름에 편승했다. 힐링이 유행일 때는 치유하기 위한 그림과 음악들을 소개했고, 스펙이 세상 모든 것처럼 보였을 때는 자기계발의 일종으로 예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 흐름들 어디에 예술이 예술로서 소개되었는가? 예술은 소비재의 하나로, 유행 따라 피고 지는 일시적인 아이돌 기능을 했을 뿐이다.
예술 책 출판을 포기하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출간 종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한때의 좋았던 시절을 제외한 평균을 향해 수렴하는 것뿐이다. 한때의 붐은 그저 갑자기 찾아온 호재였을 뿐, 그 특정 변수를 제외하면 예술도서들은 자체 역량으로는 성장해본 적도 없이 전체 도서시장의 위축과 함께 서서히 잦아들고 있을 뿐이다. 예술이 소비재로 이용되는 현실은 고착화된 지 오래다. 만약 지금이 위기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건 언제나 위기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술 책은 왜 팔리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예술이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좋은 책을 만들고 더 나은 글을 쓰자’는 그다음 문제다. 하던 대로 하면 아무리 좋은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애당초 관심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자명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예술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취미 사진가들과 대형 전시회 애호가들과 논술 문화 학습의 시스템에 침투할 것인가? 비단 도서뿐만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소비 시장의 전체적인 기조가 유사함을 상기해볼 때, 예술 소비의 부흥은 정치적 슬로건이나 명약관화한 대의(예술은 좋은 것이다!)보다는 전략전술의 유연함에서 출발할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정의 그 자체는 어떤 성공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최원호·인터넷 서점 알라딘 예술부문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