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대학미술교육의 가능성을 말하다

지난 12월 6일 서울 서초동 한원미술관에서 대학미술협의회 주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4시간에 걸쳐 난상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의 주제는 ‘미술대학과 대학미술교육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이었다. 사회자 김노암(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의 진행으로 김태호(서울여대 교수), 임근준(미술평론가), 류장복(작가), 강영민(작가)이 참여해 허심탄회하고 진지한, 그리고 때로는 격론에 가까운 토론을 벌였다. 주제 자체가 별로 새로울 것 없는 해묵은 난제였기에 자칫 잘못하면 미술대학 성토대회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럼에도 현황의 문제점을 다시금 진단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기에 애써 마련한 토론회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참여자들은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에 서로 크고 작은 온도의 편차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난상토론’의 기대감에 걸맞은 토론회가 되었다.
이날 청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주최 측의 홍보와 독려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개인 작업을 주로 하는 미술인의 성향도 한몫했다. 장르의 속성상 공동작업을 하는 연극, 영화, 무용과 달리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대응, 대처하는 것이 미술계가 대물림한 일처리 방식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아주 드물게 전국의 미술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한 사례가 있다. 2007년 7월 6일 고등학교 내신에 음악, 미술, 체육을 제외하겠다는 교육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광화문 집회. 이는 미술대학에 재직하는 전임교원들이 유사 이래 가장 많이 모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2011년 3월 18일 최초의 미술대학이 설립된 지 65년 만에 교육정책 및 교육환경 개선을 기치로 비로소 출범한 <전국 미술・디자인계열 대학장협의회>가 있다. 실상은 취업률을 전제로 한 ‘대학평가 반대’가 당시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었다. 이처럼 시급한 현안에만 마지못해 대응하는 안이한 상황인식과 대처, 그리고 전반적인 무관심이야말로 대학미술교육에서 가장 크고 시급한 선결과제 중 하나이다.
이날 토론에는 교육의 이념, 목표부터 교과과정의 운용, 학생 선발을 위한 입시제도 등 교육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실기공간과 설비, 장학제도, 졸업 후 진로 등 교육환경과 여건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두루 상정되었다. 그중 특히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수험생의 ‘창의성’과 ‘개성’ 파악이라는 미명아래 검증되지 않은 시험을 위한 시험, 본유의 자질보다는 아이디어 파악에 그치는 시험이 무수히 자행되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는 풍조를 나았다는 비판이 대저 주류를 이루었다. 대안으로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세분화된 실기시험을 지양할 것. 기초실기능력에 대한 보다 명확한 개념을 설정할 것. 이에 따라 가급적 단순하고 평이한 방식으로 기본적인 소양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울러 국·영·수 중심의 입시체계에 눌려 고사하다시피한 중등교육과정의 미술교육을 정상화하는 일, 즉 ‘창의성 교육’으로서의 ‘미술 공교육 활성화’야말로 대학미술교육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를 일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임을 몇몇 토론자가 역설했다. 또 이를 위한 가장 실질적인 대책으로 일반 대학의 내신에도 미술교과를 일정부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데, 미술대학 진학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자신과는 무관한 내용을 그리도록 강요받는 게 현행 입시제도의 단적인 폐해이다. 대다수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입시준비를 통해 잘못 형성된 사고와 태도, 습관 등을 교정하느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전근대적인 양태이며, 우리나라의 대학미술교육은 물론 전반적인 시각예술 발전에 가장 크고 오래된 걸림돌이라는 점에 참석자 모두 동의했다.
또 다른 쟁점들도 대두되었는바, 그중 하나가 미술대학 무용론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오히려 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나 외부 강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소규모 교육프로그램과 중견 작가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도제식 교육의 활성화 방안이 거론되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미술대학 자체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교육정책의 막강한 영향력과 그에 대응하는 대학 구성원들의 사전 준비와 결집의 필요성에도 공감대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정책을 입안하는 기관에 미술전문인력이 배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서 대학 관계자들에게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처하고 구체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토론회는 대학미술교육의 문제점들에 대한 명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미술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문제제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학미술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미술 현장에 대한 실질적이고, 생산적이며, 지속가능한 개입과 실천을 위한 ‘미술인 협동조합’을 결성해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시민사회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서 미술교육의 가능성에 대한 추후 논의를 다짐하며 마무리되었다.
윤동천 서울대 교수, 대학미술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