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뉴(디지털) 미디어아트 시론

뉴미디어 작가 클레멘트 발라의 <Postcards from Google Earth>(2010-) 프로젝트 이미지 중 하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외곽지역 교량들의 모습인데 한결같이 올록볼록한 것이 요철이 많은 도로처럼 보인다. 실제 교량이 저런 형태로 존재한다면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작가는 2010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디지털 매핑을 통해 2차원으로 구현된 지구 표면을 훑어나갔다.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하는 구글어스의 ‘오류’들을 찾아내어 아카이브해왔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알고리즘의 오류 혹은 프로그램 오작동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언뜻 글리치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구글어스의 알고리즘과 프로그램 실행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구글어스가 위성으로부터 받은 데이터의 양이었다. 특정 지역에 구글어스 알고리즘의 데이터 처리능력을 초과하는 방대한 데이터가 제공되다 보니, GPS 데이터와 위성사진 이미지가 매핑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는 멀쩡한 교량들이 엿가락처럼 휘거나 늘어진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작가의 집요한 추적의 결과들은 하이퍼-리얼한 재현이 붕괴되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보는 이의 지각이 당혹스러운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인 것이다.
최근의 뉴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과정을 역이용함으로써, 관찰과 데이터 수집의 대상을 프로그램 자신으로 역전시켜버린다. 프로그램이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타자화함으로써 관찰 대상으로 인지하고, 프로그램 자신이 목적 수행의 대상으로 역설정되는 것이다. 스털링 크리스핀의 <Data Mask>(2013)는 유전 알고리즘이 안면인식 알고리즘을 충족시킬 때까지 무작위적으로 얼굴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알고리즘에 의해 인공적으로 생성된 얼굴이 기계의 눈에는 얼굴로 인식됐지만, 인간의 눈에는 전혀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고 울퉁불퉁한 얼굴 표면은 오히려 괴기스러운 가면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테크놀로지가 구현되는 프로세스를 실험적으로 다룸으로써 테크놀로지의 모순과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 갑론을박처럼 오가는 ‘장(場)’이 형성되는 것, 이것이 최근 뉴미디어 아트의 특징이다.
뉴미디어 작가들에게 시스템 오류나 에러,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의 불완전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연계된 담론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글리치 미학의 경우 의도적 혹은 우연적으로 발생한 디지털 에러들을 실패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테크놀로지의 내밀한 속성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또한 글리치로 인해 파괴되고 변질된 데이터는 예술가에 의해 사운드, 웹, 이미지, 비디오, 실시간 오디오,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위해 재가공된다. 1997년 IBM의 슈퍼 컴퓨터 ‘딥블루’가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대결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대결 중 딥블루에 발생한 글리치 현상 혹은 프로그램의 버그 때문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WIRED》, 2012년 9월) 테크놀로지 그리고 뉴미디어 아트 사이의 실험적인 매칭과 그 결과들이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누구도 매체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으며 결과도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공보다는 실패, 결과보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 디지털 아트 주위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이유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긴밀하게 연결된 최근의 뉴미디어 아트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어떤 예술매체보다 중요하다. 온라인의 수많은 이미지 파일은 어딘가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어 개인의 블로그나 웹페이지로 링크시켜 사용하곤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링크는 늘 불안하기만 하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디지털 아트를 컬렉션하고 아카이브하고 있지만, 동시에 디지털 아카이브와 보존 프로세스 및 플랫폼 개발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아카이브와 보존 속도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술품 보존 전문가뿐만 아니라, 엔지니어(하드웨어)와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의 협업 없이는 아카이브와 보존 프로세스 개발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히트를 비롯해 최근 활발하게 활동 중인 큐레이터와 디렉터들이 주목하는 현상이 있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젊은 작가들이 테크놀로지 및 뉴미디어 아트와 교감하고 반응하여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꼭 테크놀로지나 뉴미디어 아트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20여 년 동안의 삶에 함축된 디지털 세포들이 인문학, 사회과학, 기초과학, 공학, 의학, 음악 등 장르와 매체를 불문하고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배남우 APAP(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위 클레멘트 발라(Clement Valla) <Postcards from Google Earth>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