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전화위복의 기회로

지난해 10월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불미스런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무려 8개월 이상 관장 공석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래도록 진행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당연히 (누가 됐던지) 절차에 따라 후임 관장이 부임하면 상처를 봉합하고 미술관을 조속히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했을 테니. 하지만 관장 임용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계의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체부는 6개월 걸린다던 공모기간에서 두 달이나 더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9일이 돼서야, “그 동안 진행되어 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채용절차와 관련하여,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재공모 등 후속조치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3조 제5항)」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선발시험위원회가 추천한 채용 후보자 중에서 적격자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채용 후보자 중에서 채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한편, 문체부는 현재 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기획운영단장을 중심으로 미술계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라는 짤막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며칠 후엔 문체부장관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밝힘으로써 미술계를 다시 한 번 혼돈에 빠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보낸다. 사실 우리는 서너 달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관련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내용과 포맷은 이런 식이 아니었다. 신임 관장 인터뷰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우리 편집부는 ‘침몰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인양하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가제(假題)로 정하고 앙케트를 실시했다. 결국 ‘표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언수위를 낮추기는 했지만, 그 만큼 이번 사안을 아주 심각한 상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나온 김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침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문지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도 여러 통 받았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애꿎게 《월간미술》이 동네북 신세가 된 것 같았다. “멀쩡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왜 침몰했다고 단정하느냐” 또는 “관장이 없어도 오히려 미술관이 예전보다 더 잘 돌아 가더라”는 반론부터 “설문 내용이 편파적이고, 뭔가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설문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돼느냐”,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쾌해서 답변을 거부한다”는 불평불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런 상황자체가 쪽팔리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반면 아예 무관심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답변 회신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미술인의 관점이 극명하게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우리는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나 뾰족한 묘수를 내놓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뻔하고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이런 문제는 누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적어도 《월간미술》 독자라면, 어느 때보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앞날을 예의주시 해야 할 것이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