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마음이 먹먹하고 답답하다. TV를 끄고 괜스레 넓지도 않은 집안을 서성였다. 책꽂이에 꽂힌 책 가운데 불현 듯 눈에 들어 오는 책이 있었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한겨레출판, 2010). 혹여나 오해는 마시라. 제목만 보고 남녀사이 시시콜한 연애사 쯤으로 치부하지 말란 말이다. 이 책은 ‘비겁하게 살지언정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여성 언론인 김선주 선생의 칼럼 100여 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김선주 선생은 20대에 처음
《 조선일보》에 입사한 후《 한겨레》 창간부터 줄곧 거기서 활동하며 논설주간까지 지낸 인물이다. 현역에서 은퇴했음에도 여전히 후배 기자들이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언론계 선배로 손꼽는다. 책에 실린 글은 김 선생이 20여 년 동안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것들이다. 한사코 자신의 글이 부끄럽다고 말하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과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의 문장이 빼곡하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김 선생의 글을 일컬어 “자신의 부끄러움에서 출발해 자기성찰로 이어진”, “김선주라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시대-존재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동시에 자기성찰을 위한 시간을 절대적으로 가져야한다.
이별에 대한 또 하나의 단상. 그러고보니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4년 4월 26일, 작가 박이소 선생이 이 세상과 이별한지 말이다. 당시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건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나는 그해 9월호에 부랴부랴 특집기사를 만들었었다. 나는 거기서 문학평론가 故김현 선생이 시인 기형도의 유고시집에 쓴 문장을 큰따옴표로 인용했었다. 앞서 먹먹한 마음을 김선주 선생의 책으로 갈음한 것처럼, 그 따옴표를 오늘 이자리에 다시 옮겨 적는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지만, 머릿속에 살아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말장난 같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에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완전한 사라짐이 사실은 세계를 지탱한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동안 그(들)의 사라짐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박이소 10주기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Something for Nothing)>이 6월 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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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미술비평
올해 4・3미술제 20주년 기념전 전시감독을 맡았다. 그는 10년 넘게 <4・3미술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4・3항쟁을 호출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는 4・3을 비롯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예술과 행동에 대한 사유를 몸소 실천하는 대표적인 비평가이자 전시기획자다. 최근 ‘샤먼/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비평적 개념을 제안함으로써 한국 미술사의 주체적인 시각에서 4・3항쟁과 같은, 국가폭력과 야만에 대항하는 궁극적 해방에너지를 탐색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김지연 예술감독
‘2014부산아트쇼’의 성공적인 마무리 뒤에는 김지연 예술감독이 있었다. 분명히 여타 아트페어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아트페어 곳곳에 전시를 진행해 관람객을 미술장터와 함께 진중한 전시를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아트쇼 폐막 후 며칠 휴식을 가져봄직도 하지만, 그녀는 ‘지리산프로젝트’, ‘제2회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를 준비하느라 바로 출근했다고. 행사 준비도 좋지만 몸도 잘 챙기시길.
조아라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입사한 후 연속해서 다양한 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기획의 전시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에 다짜고짜 연락을 취했다. 업무량이 많아 야근을 반복한 피곤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대화가 오가며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젊은 큐레이터의 모습을 보았다. 6월에 열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작가들의 그룹전 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