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차라리

여러모로 뒤숭숭한 요즘이다. 그래도 지구는 여전히 돈다. 어제와 같은 속도로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여기에 발 딛고 사는 99.99%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도 마찬가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심히 지속된다. 미술판도 예외는 아니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크고 작은 전시가 끊임없이 열렸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천십사년 유월, 유독 눈에 띄는 전시 세 개가 있다.

<간송문화(澗松文華)-문화로 나라를 지키다展>
1부:간송 전형필 3.21~6.15, 2부:보화각 7.2~9.28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오르세미술관展-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5.30~8.31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아트스펙트럼2014> 5.1~6.29 삼성미술관 Leeum

제목만 보더라도 화려하고 풍성하다. 그야말로 東西古今 미술의 ‘종합선물세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의 미술을 동시에 비교 관람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뭔가 이상하다. 단추 구멍을 잘못 끼운 것처럼 편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로 장소 때문이었다. 각각의 전시성격과 전시장 조합이 어색했다.
우선 한국 전통문화의 명품이라 일컬어지는 간송 컬렉션. 사실 그동안 성북동 보화각의 낙후된 전시환경이나  지나치게 폐쇄적인 미술관 운영에 불만을 갖고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최신 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나와 대중과 거리 좁히기를 시도한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그 파트너가 서울디자인재단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간송이 보유한 콘텐츠와 DDP 하드웨어의 만남은 좋게 말해 전위적이고 반대로는 쌩뚱 맞기 그지 없다. 실제로 동대문 주변과  DDP 현장은 이도저도 아닌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오르세미술관展-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의 시초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서 <오르세미술관展-인상파와 근대미술>이 처음 열렸었다.  당시《 월간미술》도 여기에 호응해 인상주의 특집기사를 냈었다. 그래선지 전시는 대성공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여파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후로 방학시즌만 되면 대형기획사가 언론사와 손잡고 인상주의 언저리 작품을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하는 게 연례행사처럼 됐으니 말이다. 여하튼,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展>은 출품작 수준이나 전시구성 면에서 좋은 전시다. 그런데 전시 장소가 ‘박물관 Museum’이다. ‘미술관 Museum of Art’이 아니다.  이것 또한 이상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단순히 생각하기엔 좀 그렇다는 얘기다. 하기야 지난해에도 같은 장소에서 <미국미술 300년전>이 열린 전례가 있으니, 이걸 가지고 이제 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양이 뒷북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양미술사 전공자인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나 관장은 서양의 명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당위성과 의미를 이미 여러 차례 피력했다. 이런 전시 개최가 정말로 합당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자상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아트스펙트럼2014>은 리움 큐레이터 5명과 외부 기획자 5명이 선정한 작가 10명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올해 처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도 제정됐다. 수상자에겐 상금 3천만 원과 2016년 플라토에서 개인전 기회가 주어진다. 역시 삼성(미술관)! 통크고 파격적이다. ‘신진, 젊은, 발굴, 지원, 미래, 경쟁’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대부분 작품이 의욕 넘쳐 보였다. 하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리움 블랙박스가 마치 무덤처럼 느껴졌다. 미술관이야말로 미술작품의 종착역이요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젊은 작가의 조로(早老)를 부추겼고, 조금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젊은 작가의 작품을 너무 일찍 박제로 만들어 한꺼번에 생매장해버린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세 전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목격했다.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뭔가 허술하고, 엉성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고도 압축 성장’의 결과가 낳은 전형적인 한국    ‘짬뽕문화’의 민낯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차라리 <간송문화展>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오르세미술관展>은 삼성미술관리움에서 그리고 <아트스펙트럼展>이 DDP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