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관람 권유
알아서 스케줄 정리를 해주는 스마트한 손전화기도 없다. 예쁜 손 글씨로 꾹꾹 눌러 쓴 일기장도 없다. 대신 매일 있었던 일을 간단히 메모하는 A4용지 크기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 펼치면 한 달 치 요일과 날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루 24시간이 가로세로 5cm 면적으로 구분 되어있다. 거기에 하루 동안의 일상과 기억을 저장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문장으로 기록하지도 않는다. 사람이름과 고유명사 그리고 숫자와 = → ※ 같은 기호를 사용해 아주 간결하게 끄적이는 수준이다. 필체는 지랄발광체.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암호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내용은 별 것 없다. 만난 사람과 장소, 식당이나 술집이름 그리고 주종(酒種)과 안주 등 주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보낸 흔적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작가이름이나 전시제목 또는 갤러리/미술관 이름 따위 단서가 보태진다. 이처럼 개인적인 음주활동 내역하고 촬영·간담회·인터뷰·출장 등 회사업무와 관련된 음주활동 내역 비율이 대략 반반이다. (그나마 음주가무보다 음주잡담을 즐기는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이런 생활패턴에서 公과 私의 구별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사적인 만남의 시간이고, 또 어디서 어디까지가 공적인 업무의 공간인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에서 기자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특히 (미술전문지) 기자들은 일반 직장인처럼 하루 종일 시원하고 쾌적한 사무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질 못한다. 혹여 그렇더라도 일을 많이 한다거나 잘하는 게 아니다. 주말이나 휴일, 심지어 휴가 중에도 전시를 보거나 작가를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만약에 이런 경우를 일로 여긴다면 그거야말로 고역일 게다. 자기가 좋으니까, 관심이 있으니까, 진심으로 우러나서, 윗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흔쾌히 전시를 보러 다니고 밤늦도록 음주활동에 매진하는 거다.(부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길!)
지난달 나는 이 지면에서 “제발 돈 내고 책을 사서보시라”고 말했다. 이번엔 감히 또 이렇게 권유한다. “제발 전시를 직접 관람하시라!”고. 학교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 가거나, 남들이 보러 간다니까가 덩달아 따라 가는 식이 아니라, 평소에 자발적으로 자주 전시장을 둘러보길 바란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작품을 훑어보고 그 전시를 진짜로 봤다고 착각하거나 오해하지 마시라. 제 발로 전시장을 찾아가 작품 앞에 서서 두 눈으로 직접 봐야 그게 진짜다. 아무리 화질이 좋은 모니터나 인쇄상태가 좋은 도록, 잡지에서 봤더라도 그건 다 가짜다. 실제 미술작품을 본다는 것, 그것은 리얼리티와 오리지널리티 나아가 ‘아우라’를 체험하는 일이다.
이번 특집, 옛 그림에 나타난 이상향이다. 솔직히 이상향은 ‘(옛)그림’ 속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금의 현실이 비루할지라도 이상향은 분명 이 땅 위 어딘가에 있다. 어떻게 사유하고 실천할 것인가?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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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는 한·중·일 3국의 대표 산수화를 한데 모아놓은 유례가 없는 전시다. 본지의 편집 마감날 개막(7월29일)하는 전시라 사전에 취재해야 하는 상황. 전시 직전이라 매우 바쁜 데도 기자의 자료 요청과 취재에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준 이현주 홍보 전문경력관. 20여 년 박물관을 알리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그는 대학원에서 홍보를 전공했을 정도다. “열심히 일한 직원이 맺은 열매인 전시를 세상에 내놓아 반짝거리게 하는 것이 홍보”라고 말하는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돋보인다.
장계현 갤러리 담 대표
소담한 공간을 가꾸는 아담한 주인. 염성순 작가 기사를 준비하며 하루가 멀다하게 드나들어도 한결같이 따뜻한 차를 우려 기자의 바쁜 마음을 평온히 해주었다. 통인가게에서 16년간 근무한 경력은 전시마다 휴관일 없이 혼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녀의 우직한 인내를 대변한다. 회화, 조각, 공예를 주로 전시하는 갤러리 담은 2006년 4월 개관하여 내년이면 어느덧 10주년을 바라본다.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시점. 갤러리 담이 깊게 우린 우롱차처럼 짙은 향이 우러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취재를 위해 여러 미술관, 갤러리를 돌아다니지만 기자를 항상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다. 특히 이번 취재 때는 전화 통화만 나눠 얼굴을 모르던《월간미술》 필자와 직접 인사시켜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2013년 5월호 ‘미술공부’ 특집에 필진으로 참여해 미술 공부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 바 있다. 오 학예사는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미술관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전시 기획으로 <기록문화: 전통에서 현대까지>(2009), <한국전쟁의 초상>(2012), <리:퀘스트-1970년대 이후 일본 현대미술>(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