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윤진섭
“아시아 미술비평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2014 국제미술평론가협회 학술대회 및 총회(2014 AICA International Congress Korea, 아래 사진)’가 10월 8일부터 16일까지 수원 라마다호텔과 SK아트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 47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32개국에서 모인 국제미술평론가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Critiques d’Art, 이하 ‘AICA’) 회원 58명을 비롯, 비회원까지 총 145명이 참여했다. 유네스코(UNESCO) 산하단체인 AICA는 1950년 창설, 현재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62개국 46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비영리 미술비평 단체다.
한국에서는 처음 개최된 이번 대회는 국제적인 비평대회가 전무하다시피한 한국 현실에서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번 AICA 총회와 함께열린 AICA 어워드를 통해 故 이일이 특별공로상을, 이선영이 젊은비평가상을 받았다.
이번 AICA 총회를 계기로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윤진섭 전 호남대 교수를 만났다. 대회 준비부터 본대회 진행과 기조발제, 마무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는 윤 부회장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전날까지 이번 총회에 참여한 AICA 회원 30여 명과 함께 타이베이비엔날레 등을 참관하고 막 귀국한 터였다.
일단 이번 서울 총회를 마무리지은 소감을 물었다. “보통 AICA 회장직에 입후보하면 공약 일순위가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총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나도 회장직에 입후보하면서 그러한 공약을 했던 터라 어찌 보면 서울 총회는 개인적으로도 숙원사업이었던 셈이다. 이는 1986년 故 이일 선생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AICA에 가입한 후 30여 년 만에 이룬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전 세계 면적과 인구에서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시아가 비평에서 변방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늘 아쉬웠다고. 그래서 서울대회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했다. “2004년 타이완에서 총회가 열린 이후 10년 만에 아시아에서 열린 총회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AICA가 아시아로 확장하기 위한 전진기지 구축의 모멘텀으로 삼았다. 현재 AICA 국가지부 중 아시아에 속한 곳은 한국을 비롯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파키스탄 정도다. 중국, 홍콩, 인도도 국가지부가 아닌 회장 관할의 프리섹션으로 분류되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CA는 미국과 유럽 국가지부를 중심으로 회장이 선출되는 등 지역적 편중현상이 심화됐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아시아를 통해 AICA의 지역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AICA 총회에서 회장직에 출마했다. 기폭제가 될 요량으로 말이다. 다행히 이번 서울대회에 대한 평가가 좋다.”
최근 그는 16년간 재직한 학교를 그만두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이다. 오래 재직하며 정든 만큼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을 터. “원래 결정하면 감행하는 스타일이라.(웃음) 그런데 오히려 더 바빠졌다. 비평은 비평대로, AICA 부회장직과 시드니대학교 명예교수직은 또 그대로 충실해야 한다, 또한 작가로서, 기획자로서 전시도 열고 있다. 일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윤진섭을 정의하는 직책은 비평가이다. 현재 우리 비평의 현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미 2005년 아시아비평포럼을 만들어서 그 문제를 제기했다. 포스코빌딩에서 열렸던 <비평의 위기: 미술비평과 전시기획 사이>를 통해서 말이다. 국공립미술관 큐레이터의 힘은 현장에서 커지는 반면, 비평은 그렇지 않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비평이 힘이 있었고 작가가 미술운동에 앞장서서 작가 기획전시가 즐비했다. 현재와 같은 비평의 퇴조는 미술계 상업주의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힘의 균형추가 이동해서 그렇다.”
한편, 작가로서 그는 현재 윤진섭이라는 본명 외에 ‘왕싸가지(四家之王)’, ‘한큐(HanQ)’, ‘빈들 빈들(Vindle Bindle)’ 등 수많은 예명을 만들어 장르별로 바꿔서 활동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 말했다. “추사 김정희는 300여 개가 넘는 자와 호가 있으며 서구 현대미술을 뒤집은 뒤샹은 로즈 셀라비라는 예명을 썼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까닭이다. 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꺾인 인간의 자유를 찾는 행위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저항해야 한다는 강변의 표출이다.”
총회는 끝났고 손님은 돌아갔다. 이제 남은 일을 물었다. “총회 백서를 내야 하고, 비평집을 내야한다. 또 故 이원일 큐레이터의 추모전으로 ‘한중일 미디어아트전’을 공동으로 기획 중이다. AICA의 노쇠함을 극복하기 위해 ‘아시아비평포럼’도 그 논의의 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여기까지가 두 달 남짓 남은 올해 그의 계획이다. 황석권 수석기자
윤진섭은 1955년 충남 성환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석사),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박사)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비평 당선(199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1회, 3회), ‘상파울루비엔날레’ 국제전 커미셔너,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행위예술감상법》(1995), 《미술관에는 문턱이 없다》(1997),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1997),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2000)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호남대 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