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한국자수박물관 관장 허동화
보자기는 내 삶과 예술의 바탕
한 장의 천으로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보자기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 터키에만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조각보는 한국 고유의 것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한복은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각천이 나오기 마련인데 한국의 옛 여성들은 버려진 천 조각을 모아 보자기를 만들었다. 한국의 전통 보자기는 국내에서는 일상용품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국외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조형성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의 공로가 크다. 한국자수박물관은 1978년부터 40여 년간 미국,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55회에 달하는 전시를 열어 한국의 전통 자수와 보자기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최근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한국자수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규방문화의 극치, 보자기>(7.7~31)는1683년 10월에 만들어진 <궁중화문자수보>를 비롯해 대표적인 소장품 80여 점을 선보였다. 올해 초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지난해 터키 국립회화건축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도 출품돼 큰 호응을 받은 작품들이다. 허 관장은 “우리는 우리 것이 귀한 줄 잘 모르고 계속 남의 것, 서구적인 것에 치중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 현대를 잇는 끈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과 함께 허동화 관장의 개인전(한국자수박물관 7.7~31)도 열렸다. 허 관장은 컬렉터이면서 1999년 하남 국제엑스포 초대작가로 개인전을 가진 이후 오브제, 콜라주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는 옷도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버려진 옷감을 활용해 작업한 콜라주 작품과 버려진 기물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허 관장은 오랫동안 조각보를 분석하다보니 원, 네모, 세모 세 가지 문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보자기는 하늘, 땅,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이자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내 작업도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를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그의 작업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의 꽃이며, 축복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보자기가 버려진 조각천을 활용한 것처럼 낡고 하찮은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허 관장의 작품에는 환경친화적이며,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한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가 진하게 배어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작가 개인의 색채보다 몇 백 년에 걸쳐 내려온 한국의 색에 뿌리를 두고 그 가치를 재창출하는데 의의가 있다. 허 관장은 몇 십년 혹은 100여 년이 된 옷감을 수집해 이를 자르고 오려 붙여 비구상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오랜 세월을 머금어 특유의 색감을 드러내는 작품의 색채는 더 오묘하다. 허 관장은 “내 작품은 나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자연과 선조, 나의 합작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수(米壽)전을 열기도 한 그는 앞으로도 수집과 연구는 계속하겠지만 작업 활동에 보다 집중할 계획이다.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은 기존 작가와 다르게 특별한 제약이 없고, 자유롭다”고 말하는 허 관장은 “기존 작가들이 하지 않은 표현방법을 시도해 한국의 전통적인 미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슬비 기자
사전(絲田) 허동화는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와 동국대 법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Linda Vista Paptist대, 명지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지사장, 재향군인회본회 이사, 한국사립박물관장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전자수연구소와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훈장 보관장, 제57회 서울시문화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한국미술 저작상, 제15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이렇게 소담한 베갯모전>) 장려상 등을 수훈 및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