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HIN’S DESIGN ESSAY 6
과잉 사회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호칭으로서 ‘씨’는 상대방을 꽤 높여주는 말이었다. 사전에서도 씨를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제는 씨가 별로 대접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씨’ 대신 차라리 ‘님’을 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직위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사장님, 실장님, 대리님, 위원님 하는 식으로 호칭을 붙여야 그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대접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개씨라고 말하면 왠지 그 사람을 하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직위를 모르면 차라리 아무개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호칭은 과잉되었다.
실수를 한 점원이 고객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쩔쩔매며 “네 네 고객님” 한다. 고객은 왕이 아니지만 기업은 고객을 왕으로 모실 것을 직원들에게 강요한다. 그리하여 고객을 높이 받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에게 팔 물건까지 높이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난다. “네 고객님, 이 물건은 1백만 원이세요.” 1백만 원이 아니라 수억 원의 물건이라도 물건이 높임을 받을 순 없다. 오늘날 서비스는 과잉되었다.
영화 <카트>를 보면 계산원이 잘못했다며 벌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손님은 계산원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고 명령한다. 진상 주민들에게 고통 받은 아파트 경비원도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대한항공의 오너 2세 조현아 씨도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잘못을 빌라고 했다 한다. 아니 승무원이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말도 있고. 어찌되었든 잘못을 하면 무릎을 꿇는 것이 기본이 된 거 같다. 오늘날 사죄 방식은 과잉되었다.
얼마 전 수입 자동차 브랜드 행사장엘 갔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핸들과 대시보드를 보니 뭔 작동 버튼이 그렇게 많은지…. 내장 컴퓨터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갖춘 것은 기본이고 메뉴가 엄청 많고 아주 디테일하게 각종 정보들을 보여준다. 구식 자동차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차를 몰다간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자동차뿐인가. 스마트폰, 카메라 같은 기기들은 쓰지 않는 기능들로 가득 차 있다. 각종 물건의 기능 역시 과잉이다.
과잉은 현대 소비사회의 본질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으로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 자동차는 극도로 호사스러운 물건이었다. 자전거조차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자동차는 오죽했을까. 20세기 초반에 헨리 포드가 저렴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자 자동차는 민주화되었고 이제 지위재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GM에서 스타일링을 통해 화려하고 값비싼 자동차들을 내놓음으로써 특별한 자동차 소유로 자신을 뽐내고 구별짓기를 하고자 하는 부자들의 욕망을 충족해주었다. 이때 나온 럭셔리카들은 쓸데없이 과잉된 디자인을 낳게 된다. 화려한 크롬도금, 테일 핀 같은 디테일이 추가되고 형태는 비행기를 흉내 내기까지 한다. 전화기, 오디오, 라디오, TV, 컴퓨터가 모두 그런 진화과정을 거쳤다.
모든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했다는 것 자체로는 더 이상 자랑이 될 수 없을 때 물건은 과잉적 속성을 띠기 시작한다. 어떤 기능을 갖추었느냐,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 마감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물건의 가격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평범한 물건에서 지위재로 격상된다. 그렇지만 기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신 외모를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은 좀 더 쉽게 물건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을 보여주는 수단이 된다. 금으로 만든 시계라고 시간을 더 잘 알려주는 건 아니다. 독일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혁신은 고갈되지 않는다”고 혁신 찬양의 말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혁신은 고갈되는 것 같다. 그럴 때 과잉 디자인은 얼마나 좋은 대안인가. 뭔가를 과잉되게 디자인하는 건 고갈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편도 요금이 1000만 원 넘는 비행기 1등석 손님은 도대체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아야 할까? 서비스가 과잉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 서비스는 마치 루이 14세가 통치하는 베르사유 궁전의 대단히 복잡하고 엄격한 궁전 법도를 흉내 내기에 이른다. 그런 법도 아래에서 인간은 초라한 노예가 되어 절절매게 되는 것이다. ●
위 감정의 시대 프로젝트팀(김숙현 임샛별 조혜정)이 2014년 9월 23일부터 30일까지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에서 열린 <감정의 시대: 서비스노동의 관계미학전>에 선보인 영상작업 <역할극>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