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백남준 선생 곁으로 간 부인 구보타 시게코를 생각하며
아직도 구보타 시게코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백남준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혼자서 외롭지 않냐고 묻자 “나는 항상 남준과 같이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나?” 하면서 그와 항상 함께 있다고 단호히 말씀하시던 모습이 뇌리에 선명하다.
1984년, 백남준 선생이 35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당시 서울 가회동에 있는 한국미술관을 방문하셨고, 필자가 부인 구보타 시게코를 김윤순 관장께 소개하며 두 사람이 일본어로 대화 가능할 테니 서로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고 소개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임창렬 당시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에 백남준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추진위원이었던 김윤순 관장은 후보 부지 가운데 평소에 백남준 선생께서 큰 관심을 보이던 DMZ근처 초평도를 지지했으나 여러 여건상 현재의 용인시 자리로 결정됐다. 2006년 1월 29일 백남준 선생은 미술관 건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해 봉은사에서 열린 49재 추모행사 참석자 명단에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없는 것을 보고 김 관장이 급히 미국에 연락해 추모행사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구보타 시게코는 김 관장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수시로 말씀하셨다. 2006년에는 필자 역시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거주하던 때라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한국 방문 후 미국으로 돌아오셨을 때에 찾아뵙고 위로해 드렸다. 백남준 선생 생전에 늘 함께 가셨다는 인근 식당에 가서 백 선생이 즐겨 드시던 음식을 시켜 같이 먹었다. 그는 선생과 함께 했던 흔적을 좇으면서 식당주인과 늘 주고받던 농담을 되 뇌이며 과거를 추억했다. 며칠 후 다시 구보타 시게코 여사로부터 전화연락이 왔다. 4월 26일 구겐하임에서 백남준 선생 추모식을 하니 꼭 오라고 하셨다. 백남준 선생 친구들의 회상 메시지와 오노 요코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면서 구겐하임을 가득 메운 관객은 백남준을 추모했다.
한국미술관은 백남준 선생 추모 1주기 전시(2007.1.29)에 이용우 선생과 방송인 조영남을 모시고 구보타 시게코 여사와 토크 쇼를 진행했다. 2주기(2008.1.29)에는 무속인 김금화를 초대해 진혼굿을 했고, 3주기(2009.1.29)에는 백남준 문화 콘텐츠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처럼 모든 행사에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참석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면담도 하고, 용인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2012년 백남준 탄생 80주년 기념행사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그사이 심해진 지병으로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하였다. 그는 백남준을 사랑하면서 남편의 나라 한국도 사랑했다. 지난 3월 초 뉴욕의 구보타 시게코 여사를 방문해서 내년 백남준 10주기 추모행사에 꼭 오시라고 하니 여사는 수술부위를 내보이며 이제 힘들어 더 이상 한국에 가지 못할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 하셨다.
몇 달 지나 6월 30일자 소인이 찍힌 구보타 시게코 여사의 편지가 김윤순 관장 앞으로 왔다. 한국미술관의 발전을 기원하고 김 관장과 나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김 관장은 반가운 마음에 미국에 전화를 했는데 정작 구보타 시게코의 목소리가 힘이 없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 관장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감지했다. 과거에도 수시로 입원했다가도 몇 주 후 다시 연락되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통화한 경우가 많아 위안을 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7월 30일 오후 뉴욕은 폭우가 쏟아지면서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필자는 백남준 선생의 집이 있는 머서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Greenwich Village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유족과 하객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도예가 박영숙 선생께서 백자 유골함을 유족에게 드릴 선물로 주셨기에 장례위원에게 말씀 드리니 꺼내서 곁에 진열하자고 했다. 일본에서 큰언니 호소 게이코와 여동생 구보타 유코, 조카 호소 레이코 씨가 유족으로 참석했고, 백남준 선생 생전에 구보타 시게코 여사와 함께 선생의 작업을 돕고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이 참석했다. 노먼 발라드와 요한 자우라커가 장례진행을 담당했고 Streaming Museum의 니나 콜로시, EAI의 노라, MoMA의 바바라 런던, 피아니스트 류이치 사카모토 등 유명 인사들이 저녁 6시에서 9시까지 이어진 장례식을 지켜봤다. 백 선생 곁으로 가는 시게코 여사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조문객들은 모두 구보타 시게코 여사의 얼굴을 보며 “이제 백남준 곁으로 가니 행복한가봐요. 그지없이 편안해 보이네요” 하며 그의 명복을 빌었다.
엿새 후 8월 5일 백남준아트센터와 한국미술관에서 구보타 시게코 여사 추모행사를 준비했다. 백남준아트센터에 마련된 빈소에서 각계 인사들의 조문사로 추도식을 갖고 뒤이어 한국미술관에서는 구보타 시게코 여사 관련 사진자료와 영상, 성우 고은정 선생이 직접 지으신 추모시 낭송이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백남준 선생 부부와 인연을 맺고 끈끈한 정을 나누던 무용가 홍신자 선생께서 특별히 추모 퍼포먼스를 헌정했다.
한국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여기 오면 집 같아. 마음도 몸도 편해지네” 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펼쳐 놓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도 분명 의자에 앉아 우리의 추모식을 지켜보고 계셨음에 틀림없다.
안연민 경기도 박물관협회 회장, 한국미술관 공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