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HT & ISSUE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멋의 맛_조성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원형전시실 2015.12.1~6.6
메신저-의자에 서린 삶의 메타포
김영호 중앙대 교수
원로 조각가 조성묵 선생이 1월 18일 오전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서둘러 찾은 그의 영정 앞에서 슬픔과 더불어 사모의 감정이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솟아오른다. 중절모와 둥근 안경 그리고 바바리 코트를 즐겨 입던 생전의 선생은 진취적 성향을 지닌 화단 신사였다. 장신의 키에 여유로운 표정과 과묵한 언변 속에도 선생이 내놓는 전위적 작품들은 관객의 의식을 서늘하게 열어 주었다. 시류와 거리를 두면서 시대의 메신저로서 삶을 성찰하는 파수꾼의 태도는 후배들에게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제 영면으로 조각가로서 그의 삶의 마디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들은 미술계의 별자리로 자리 잡아 발광(發光)을 시작할 것이다.
이별의 아쉬움은 그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이 예술가에 대한 기억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분신인 조각작품들이 세상에 남아 그의 일생을 영원으로 지속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거닐었던 공원에서 거리에서 미술관이나 도심의 건축물 안에서 그와의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듯 거장의 죽음은 미술사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선생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살았던 삶의 노정을 새롭게 반추할 것이다. 그리고 거장의 유작들 속에서 작가가 걸어온 인생노정의 멋과 가치들을 발견할 것이다.
시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개인전 <멋의 맛-조성묵 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과천에서 개막해 금년 6월 6일까지 이어질 대규모 회고전이다. 한국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원로작가를 조명하는 ‘현대미술작가시리즈’의 맥락에서 기획된 전시다. 초대전은 선생이 미술계에 주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선물이 되었다. 그는 혼신을 다해 자신이 일군 예술세계를 펼쳐 보였고 연출을 끝으로 작가는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졌다.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도 감사할 일이다. 반년 동안 계속될 그의 회고 유작전이 미술관 사업의 차원에서 거장의 화력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나아가 한국 조각사의 지평을 넓힐 좋은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장 조성묵 선생의 예술 노정은 몇 개의 굵은 마디로 짜여있다. 그중 의자 연작은 대표적인 결실로 기억될 것이다. 의자는 1980년대 이후 작가가 줄곧 다룬 소재이며 작가는 이 연작에 ‘메신저(messenger)’라는 제명을 붙였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일상적 오브제로서 의자는 작가의 손을 거치며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새로운 메타포를 만들어내는 기호가 되었다. 골격만 남은 의자에 인체의 볼륨을 대입시키거나 청동 재질의 물성을 극대화하면서 거장의 의자는 유기적 의미를 지닌 오브제로 작동한다. 그의 의자들은 그것이 놓이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읽힌다. 때로는 그물에 씌워진 모습으로 제시되고 한쪽 등받이가 날개로 변형되기도 하며 파괴된 전시장 벽면 사이에 폭력자처럼 배치되기도 한다. 채색된 채 공중에 매달린 종이의자 다발은 의식의 사냥터에서 포획해 온 희생 제물처럼 보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작가는 국수라는 식품을 재료로 삼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연작을 내놓았다. 청동을 주로 사용하던 의자의 캐스팅 작업은 새로운 매체를 만나면서 독특한 형태의 선묘화를 구축했다. 작가는 연필로 종이에 선을 긋듯이 공간에 국수를 뿌리고 세우고 잘게 부수면서 자신의 조형세계를 독자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기념비적 볼륨은 가변적 설치물로 바뀌었고 물성은 정신의 영역을 끌어안으면서 의자의 메타포가 한층 강화되었다. 30cm 남짓 길이의 국수는 전시장 공간에 수백만의 직선으로 작동하며 의자와 조명등과 침대를 비롯한 온갖 가구들을 조형의 세계로 드러내었다. 직선의 집합이 어느덧 정원의 잡초가 되고 고대의 탑신이 되며 전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환상의 영역으로 보는 이들을 이끌었다.
2001년부터 시도한 <빵의 진화> 연작은 매체가 발화하는 삶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낸 경우다. 합성수지를 주재료로 삼아 빵의 질료감을 표현하고 이 기법을 의자를 비롯한 가구와 조명 기구의 형상에 적용한 것이다. 이때 빵의 진화란 빵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진화를 은유한다. 작가가 만든 의자가 의자가 아니듯 그가 만들어내는 빵은 빵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품은 매체로 눈앞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 열린 의미를 만들어내는 메신저일 뿐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처럼 조성묵의 빵은 그렇게 삶의 다양한 의미를 나르는 기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회고전에서 처음 접하게 된 몇 점의 연필 드로잉은 조성묵 선생의 독자적 조형세계를 일괄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모두가 1962년에 제작된 것들로서 조각적 볼륨과 선묘의 평면성이 종이 위에 서로 어우러지면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체험을 불러일으킨다. 두 명 혹은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화면공간은 조각적 양괴감이 강조되고 있으나 특별히 세밀하게 묘사된 손가락의 표정은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신체의 볼륨을 채우는 반복적 단선은 후에 국수 면발로 표현된 단선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이 몇 점의 연필 드로잉은 평면과 입체를 넘어 일관된 세계를 유지하는 조각가의 인생 노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담뱃불로 구멍 낸 드로잉을 대하면 작가의 유희와 재치에 감응되어 미소가 절로 난다.
국립현대미술관 회고 유작전에 전시된 90여 점의 작품은 말 그대로 작가의 분신이다. 청동 의자에서 라디오 의자 그리고 국수 의자에서 빵 의자에 이르는 의자 연작은 작가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드러낸다. 원형 전시장을 팽팽히 긴장시키는 의자들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관객의 의식을 사로잡는다. 전시공간을 한 바퀴 돌아보면 휠체어를 타고 작품 설치를 주도하고 있는 거장의 안경너머 번쩍이는 눈빛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펼쳐 보이는 작가의 모습을 곁에서 본 어느 후배는 ‘맹수처럼’ 이라 했다. 마지막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그는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제 거장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한국미술사의 큰 얼개로 남아 있을 것이다.●
故 조 성 목 Cho Sungmook
1940년 출생으로 홍익대학 미술학부 조소과를 졸업했다. 미대 재학 중에 1960년 제9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순수 조각그룹인 원형회의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197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아미술제 조각부문 대상, 제8회 김세중조각상, 제4회 샤르자비엔날레 조각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