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페이스 2014] 이화평-우울한 유토피아
세상을 이분법적 사고로 정의 내리면 그릇된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변증법적 정의가 반드시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은 아니다. 연약하지만 강하고 억세지만 여린 생명이 숨 쉬는 곳.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세계. 나와 너를 시원하게 인정한 ‘A+B’의 공간은 어떤 모습을 취할까. 현실과 관념, 기억과 경험 사이 어디쯤에 젊은 작가 이화평이 이야기하는 세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한다.
스토리텔링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는 이화평은 예술가와 연출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스토리는 종이 위에 펼쳐진다. 여느 매체보다 작업과 보존과정에 공을 들여야 하는 종이의 연약함은 작가에게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종이에 담은 이야기는 ‘물’이다. 이 테마는 그가 대학 재학 때부터 줄곧 다룬 주제다. 현대사회에서 물의 흐름과 멈춤은 수도꼭지로 손쉽게 조절된다. 그러나 그는 열악한 환경의 거주지에서 침수 상황을 겪으면서 개인이 조정할 수 없는 자연으로서의 물을 느꼈다. 생활 속에 침투한 물은 피부로 다가왔고 피하고 제거하려 해도 공기 중에 퍼져나가 공간을 잠식했다. 그곳에서 생겨난 벌레와 곰팡이는 액체가 낳은 생명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제주도에 위치한 감귤농장에서 마주한 물(빗물)은 탐스러운 과실을 생산했다. 이러한 기억과 경험의 조화가〈과일농장드로잉 시리즈〉에 온전히 나타나는데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면서 활기찬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작품 속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싱싱한 생명력을 품고 있지 않다. 풍요로움과 어둠이 혼재한다. 이런 표현에는 성인을 위한 잔혹동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
젊은 작가이기 때문일까. 기자가 만난 작가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파인아트의 고립성에서 탈피해 미술 장르의 무한한 파생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타 장르와의 접목을 고민하는 작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읽을 수 있는 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 공간을 자유로이 이동하듯 터치로 자신이 구현한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마치 물이 자연히 흐르듯 작가의 세계도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비단 작가만의 경험일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언어이며 위치는 아닐까.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모두를 부정했다면 그가 현실을 회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택일하는 사고 자체를 부정하고 양자를 조합한 세계를 그려냈다면? 선택을 강요하는 그 자체가 부조리이며 막힌 사고로 여길 수 있다. 어쩌면 작가 이화평이 그린 세상은 ‘빛 좋은 개살구’인지 모르겠다.
임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