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래가 끝났을 때
미래가 끝났을 때
하이트컬렉션 2.7~5.10
영문학자 시엔 느가이(Sienne Ngai)는 현대문학과 다른 예술분야에서 관객들이 하찮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지니는 계기를 이론화했다. 느가이에 따르면 귀엽고 수동적이며 하찮은 것들은 일차적으로는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극도의 쓸모없음과 마주치게 될 때 관객들은 보다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즉 수동적이고 단순하며 귀여운 것들이 반대로 비평적, 저항적, 공격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신진작가전, <미래가 끝났을 때>는 이른바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에 속하는 젊은 작가들의 자기 풍자와 자기 연민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느가이가 주장하는 수동적이고 일상적이며 하찮은 것들이 현대미술에서 보여주는 가능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성 작가들이자 선생님들이 직접 젊은 작가들을 뽑고 추천해서 전시를 꾸린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 전시회를 연상시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성세대의 사회적 관심사나 미술계 상황과 대비되는 젊은 세대의 고민이 더욱 부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작업이 흔히 말하는 88만원 세대, 혹은 삼포세대라고 불리는, 고도의 산업화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약자로서 젊은이들의 상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강정석의 <야간행>에서 작가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로 친구들과의 추억여행을 다룬다. 언뜻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그들이 언급하는 학업, 아르바이트, 군대, 연애의 경험 중에서 딱히 성공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에 달린 카메라가 어둠 속의 눈길을 매우 산만하게 편파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들이 헤쳐 나가는 인생의 길 또한 예측불허다. 아울러 얼마 전 편의점에 취직한 작가의 친구를 모델로 한 작업에서 친구의 얼굴이 변하는 모습이 타자의 시선과 사회의 규율을 내재화하는 과정에 해당한다는 가설은 웃프기 그지없다. 코믹하기도 하지만 친구의 보수화 과정을 물리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무엇인가 저항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궁극적으로 부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작업들은 대부분 정리된 방식이 아니라 여기 저기 섬처럼 흩어져 있다. 바닥의 먼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인을 남긴 작업, 다이소에서 파는 스티커를 관객들이 직접 전시장 곳곳에 붙이도록 유도한 작업, 전시가 끝난 후에 통상적으로 남게 되는 벽면의 흔적을 그대로 재현한 작업들은 과연 하찮은 상태와 하찮은 것들이 어떻게 관객을 자극하고 젊은 작가들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전시장 입구 바닥에 먼지로 만들어진 로와정의 사인과 외국 생활 중에 모아놓은 두루마리 심지로 만들어진 설치작업은 먼지처럼 가볍고 가변적인 작가의 존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사용한 화장실 두루마리의 심지를 모아서 만든 작업은 가변적인 작가 자신의 존재감을 매일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고 사수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또한 서보경은 <여름휴가>에서 사강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프랑스의 여름휴가 장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자연 광경 속에 놓여 있는 작가는 어색하게 쏟아지는 물과 바람에 맞선다. 갑자기 닥치는 폭우와 광풍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고 견뎌내는 작가의 모습에서 로와정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기 풍자와 자기 연민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정승일의 덜 스펙터클해 보이는 유리로 만들어진 입방체, 삼각형의 뿔, 최윤의 다이소 스티커를 이용한 작업과 아마추어식 풍경화 <국민 매니페스토>, 이양정아의 월세 300에 보증금 20으로 구할 수 있는 집 리서치 프로젝트 등은 자신들이 처한 물리적, 미학적, 경제적 환경들을 솔직하게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양정아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의 집을 서울에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아예 300만 원으로 살수 있는 바닥의 면적을 사진작업으로 전시한다. 즉 자기 풍자적인 미학 이 저항이나 자기보존 본능과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지닌 비평적인 쟁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될지를 걱정해 보아야 한다. 결국 자기 풍자를 통해서 비평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는 극도의 지적인 사고에서 유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평의 대상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각종 비평적 오류로부터 벗어나려는) 동시에 그 때문에 더 자기 과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자신들을 풍자함으로써 자기보존 본능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저항 방법일 수도 있지만 가장 비효율적인 현실변화의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드러낸 솔직한 현실의 문제들은 너무 그럴싸한 화랑에서 열린 전시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절절하게 다가왔다. 삼포세대 중에서도 삼포세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후세대 작가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과연 무엇이며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고동연・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