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혜영-사물의 공간
서혜영-사물의 공간
갤러리 조선 2.12~3.5
뒤샹 이후의 현대예술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미술제도의 문맥 속으로 옮겨 놓고 예술의 지위를 부여했다. 평범한 사물(事物)이 예술제도를 거쳐 평범하지 않은 작품의 지위로 격상된다. 한편에서는, 미술관 내에서 박제되는 미술에 대한 반발로 예술을 미술관, 갤러리가 아닌 일상의 공간 속에서 제작, 전시, 감상하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대자연 속에서, 거리에서, 지하철, 공원, 식당 등 여러 ‘일상의 공간’ 속에 예술작품을 적극적으로 침투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일상 사물을 예술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예술을 평범한 공간 속으로 데려오려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과 일상의 공간이 서로 먼 곳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갤러리와 미술관에서의 설치 및 드로잉 작업과 함께 대형 건물의 로비나 사무실, 상업 공간 등에 작품을 설치해온 서혜영의 활동은 일상과 미술제도 사이를 오가는 현대미술의 상황을 잘 드러내준다. 갤러리 조선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사물(私物)의 공간(空間)>에서 작가는 ‘예술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상상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측에는 천장까지 이어진 높은 기둥이 서 있고, 꺾어진 벽면에는 나무와 철제 조립물들이 섞여 있다. 좌측에는 두 개의 작은 조명이 내려와 있고 그 아래 중간에 나무 조형물들이 놓여 있다. 삼각형을 조립해서 만든 오브제는 작가가 이전에 즐겨 사용하던 모티프인 ‘벽돌’ 모양으로 구멍이 나있다. 그 구멍을 통해 빛이 새어나와 전구를 넣으면 조명 기능을 할 수 있는 형태이지만, 조명이 들어가지 않은 경우에는 감상용 오브제로 존재한다. 나무상자들은 여성사미술관에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의 의자와 등받이를 연상시킨다. 작가의 기대대로 누군가의 사적 공간 속에 들어가게 된다면, 몇 개는 의자가 되고, 몇 개는 조명이 되고, 또 몇 개는 특별한 기능 없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록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몇 개의 블록만으로 세계와 온갖 사물들을 만들어내며, 그것을 아끼고 행복해하듯이, 서혜영의 오브제들은 어른을 위한 블록이 될 수 있다. 조명의 유무에 따라 기능을 넣을 수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사물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개인전에서 서혜영의 ‘사물’ 혹은 ‘작품’은 화이트 큐브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듯 잘 배치된 오브제들은 손댈 수 없을 듯 보였다. 즉 사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가진 오브제를 보여주는 완벽한 전시 공간으로 기능하였기 때문에 블록을 만난 아이들과 같은 기분을 느끼기는 다소 어려웠다 하겠다.
하지만 작가의 취지와 기대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거의 똑같이 찍어낸 듯한 디자인의 가구와 조명기구, 미학적 고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먹고, 일하고, 잠을 잔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된 사무가구들을 사용하고, 아파트 평수에 맞게 제시되는 좁은 선택지 속에서 물품들을 선택’당’한다. 주어진 규칙과 ‘정상’의 범위 속에서 살아가도록 권고받듯이 말이다. 서혜영은 자신의 미적, 기능적 선택에 따라 환경을 구축해보자고, 그럴 때 우리의 삶을 둘러싼 사물들은 그저 그런 사물이 아니라, 더 특별한 사물이 되고, 나아가 우리의 삶도 더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거라고 말한다.
이수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