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차라리

여러모로 뒤숭숭한 요즘이다. 그래도 지구는 여전히 돈다. 어제와 같은 속도로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여기에 발 딛고 사는 99.99%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도 마찬가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심히 지속된다. 미술판도 예외는 아니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크고 작은 전시가 끊임없이 열렸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천십사년 유월, 유독 눈에 띄는 전시 세 개가 있다.

<간송문화(澗松文華)-문화로 나라를 지키다展>
1부:간송 전형필 3.21~6.15, 2부:보화각 7.2~9.28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
<오르세미술관展-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5.30~8.31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아트스펙트럼2014> 5.1~6.29 삼성미술관 Leeum

제목만 보더라도 화려하고 풍성하다. 그야말로 東西古今 미술의 ‘종합선물세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의 미술을 동시에 비교 관람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뭔가 이상하다. 단추 구멍을 잘못 끼운 것처럼 편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로 장소 때문이었다. 각각의 전시성격과 전시장 조합이 어색했다.
우선 한국 전통문화의 명품이라 일컬어지는 간송 컬렉션. 사실 그동안 성북동 보화각의 낙후된 전시환경이나  지나치게 폐쇄적인 미술관 운영에 불만을 갖고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최신 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나와 대중과 거리 좁히기를 시도한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그 파트너가 서울디자인재단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간송이 보유한 콘텐츠와 DDP 하드웨어의 만남은 좋게 말해 전위적이고 반대로는 쌩뚱 맞기 그지 없다. 실제로 동대문 주변과  DDP 현장은 이도저도 아닌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오르세미술관展-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의 시초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서 <오르세미술관展-인상파와 근대미술>이 처음 열렸었다.  당시《 월간미술》도 여기에 호응해 인상주의 특집기사를 냈었다. 그래선지 전시는 대성공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여파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후로 방학시즌만 되면 대형기획사가 언론사와 손잡고 인상주의 언저리 작품을 앞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하는 게 연례행사처럼 됐으니 말이다. 여하튼,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展>은 출품작 수준이나 전시구성 면에서 좋은 전시다. 그런데 전시 장소가 ‘박물관 Museum’이다. ‘미술관 Museum of Art’이 아니다.  이것 또한 이상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단순히 생각하기엔 좀 그렇다는 얘기다. 하기야 지난해에도 같은 장소에서 <미국미술 300년전>이 열린 전례가 있으니, 이걸 가지고 이제 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양이 뒷북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서양미술사 전공자인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나 관장은 서양의 명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당위성과 의미를 이미 여러 차례 피력했다. 이런 전시 개최가 정말로 합당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자상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아트스펙트럼2014>은 리움 큐레이터 5명과 외부 기획자 5명이 선정한 작가 10명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올해 처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도 제정됐다. 수상자에겐 상금 3천만 원과 2016년 플라토에서 개인전 기회가 주어진다. 역시 삼성(미술관)! 통크고 파격적이다. ‘신진, 젊은, 발굴, 지원, 미래, 경쟁’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대부분 작품이 의욕 넘쳐 보였다. 하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리움 블랙박스가 마치 무덤처럼 느껴졌다. 미술관이야말로 미술작품의 종착역이요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젊은 작가의 조로(早老)를 부추겼고, 조금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젊은 작가의 작품을 너무 일찍 박제로 만들어 한꺼번에 생매장해버린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세 전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목격했다.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뭔가 허술하고, 엉성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고도 압축 성장’의 결과가 낳은 전형적인 한국    ‘짬뽕문화’의 민낯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차라리 <간송문화展>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오르세미술관展>은 삼성미술관리움에서 그리고 <아트스펙트럼展>이 DDP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편집장 이준희  dam2@unitel.co.kr

[컬럼] 2014 부산비엔날레 “안녕하지 못합니다”

2013년 11월 1일. 부산시청 앞마당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형태를 벌이는 문화예술인들의 다양한 행동과 텍스트들이 지나가는 시선을 멈추게 한 것이다. 관련부서 그리고 시장 또한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사태의 발단은 무엇보다 부산비엔날레 오광수 운영위원장이 규정에도 없고 합의도 되지 않은 공동감독제를 느닷없이 제안한 데 있다. 감독선정위 투표에서 과반수로 최다 득표 한 후보자(김성연, 한국)를 두고 2위(올리비에 캐플랭, 프랑스)에게 먼저 공동감독을 제안하여 수락(2013.10.10)받았고, 이후 1위에게 공동감독 수락 여부를 질문하여(10.17) 거부하자(11.21) 3위(한국) 득표자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 역시 거부하자 (11.27) 2순위를 단독 감독으로 선정했다. 어처구니없는 처사로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막 가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절차는 규정에 위배되는 것으로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정기 감사(2014.2.4) 후 발표된 감사소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지만 지면 관계상 하나만(짧게) 인용한다.
– 공동감독제를 결정함에 있어 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정관 제30조(임원회의 의결사항) 1.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 4. 총회에서 위임받은 사항]을 위배함.
-운영위원장은 자신과 자신을 운영위원장 후보로 추천한 인사 및 당연직 임원 그리고 전시감독 추천위원 2명을 포함한 9명으로 전시감독선정위원회를 구성함에 있어, 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구성함으로써 [정관 제32조(분과위원회)]를 위배하고, “당연직 이사”를 겸할 수 없도록 한 [정관 제33조 (겸직금지)]를 위배함(2013년 사업추진 및 회계 정기감사를 2014.2.4, 6 양일간 서류 및 실지, 대면감사를 통해 실시한 후 발표된 감사소견서에서 일부발췌).
이와 같이 감독선정 외에도 비엔날레 운영상 수많은 문제가 있음이 감사결과 드러났고 지역 최초로 20여 개의 문화단체가 한목소리를 내며 결집해 ‘부산문화연대’가 탄생되는 계기가 됐다. 문화연대가 주축이 되어 수차례의 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성명 발표 등을 통해 문화민주주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작금의 문화권력에 만신창이가 된 부산비엔날레의 상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1981년 태동한 부산청년비엔날레가 여러 계층과 작가, 그리고 시민사회에 회자될 수 있었던 가치의 원천은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자발적 실천과 조직 운영 태도였다. 현재 부산비엔날레를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문화사대주의적 권력은 절대 용인하거나 방관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부산비엔날레 사태에 대해 타지역에서 SNS를 빌어 “힘내세요” “멀리서 응원 합니다“라는지지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진짜 멀리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래봤자 질 것이라는 냉소적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결코 아님을 인식하고 다음 비엔날레 그리고 그 다음의 역사 앞에 머리를 맞대고 타개책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부산문화연대는 비단 비엔날레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독선적 문화권력으로 병들고 침몰해가는 문화예술계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오만과 독선 앞에 다음과 같은 보이콧 선언을 했다.
부산문화연대는 ‘2014 부산비엔날레’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한다.(http://boycott2014.net 2014.5.1. 천명한  부산문화연대 ‘2014 부산비엔날레’에 대해 ‘보이콧’선언 관련 홈페이지 인용)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감독선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심사를 해야 할 위원이 감독후보를 직접 추천하였고, 규정에도 없는 공동감독제를 제안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였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잘못된 결정을 수정하지 않았으며 지역 문화예술인과의 대화도 거부하였다. 단지 비엔날레 홈페이지에 유감을 표현한 것이 사과의 전부였다.
이에 부당한 절차로 선정된 감독이 진행하는 행사에 대해 문화예술인을 비롯하여 시민들이 참여하는 보이콧운동을 전개한다.
1. 부산비엔날레에서 개최하는 전시 및 행사, 스태프 및 자원봉사, 기부, 후원 등 참여 거부.
2. 오광수 운영위원장 및 전체 운영위원, 관련 책임자의 퇴진.
3. 2014년 부산비엔날레 파행 운영의 문제점과 과제의 공론화와 새로운 비엔날레를 위한 개혁 청사진 제시.
향후 대안적 비엔날레의 활동들을 통해 가난하지만 당당한 예술가의 대열에 동참하시길 바란다.

서상호·부산문화연대대표

 

[핫피플] 제10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제시카 모건

제10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제시카 모건

비엔날레를 불태우라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 이 확고한 선언은 <제10회 광주비엔날레 >주제다. 지난 5월 1일,   기자는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제시카 모건 <제 10회 광주 비엔날레>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제시카 모건은 유럽 각국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리서치한 광주의 역사적 사건과 맥락을 설명했다. 외신들의 관심은 제시카 모건의 시선으로 본 광주에 모아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전시는  특히 ‘장소성’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장소는 그녀의 큐레이토리얼에 큰 역할을 한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타 도시와 달리 광주는 관광도시가 아니다. 광주의 강한 역사적 맥락은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데 부담이 되기보다는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기획하는 데 확실한 메시지를 갖게 한다.” 1년이 넘는 리서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국인 큐레이터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의 맥락(context)을 숨기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에게는 새롭지만,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맥락, 잘 알려진 작가들을 어떻게 새롭게 보여주고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한국의 맥락을 배제한 채 전적으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모습만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서구인의 시선이 삽입되었음을 시원스레 인정했다.
지난 5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주요 일간지와 전문지 기자를 상대로 열린 간담회에서 제시카 모건을 다시 만났다.  광주의 역사적 맥락만큼이나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도 확고하다. 일종의 선언으로 읽히는 ‘터전을 불태우라’란 주제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제시카는 “이 문구는 시공간에 따라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갖는다. ‘불태우다’는 표현은 한국이 지닌 상실의 역사, 파괴의 시간을 떠올리면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너머에서 우리 이웃들은 무엇인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앞을 향한 움직임이자 미래의 열쇠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성취하여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질문을 제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존의 하우스(비엔날레)를 불태운 이번 비엔날레는 어떤 장소로 읽힐 수 있을까? 그녀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나 유사할 것이다. 미술관의 경우는 기관의 비평이나 미술관 내의 해석에 기반을 둔 일련의 예술에 대한 통념적 흐름(계보)이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아이디어에 함몰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리뉴얼이 필요하다. 예술적인 부분을 포함해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새로운 기운을 이끌어내려 했다”고 밝혔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을 꾸몄던 작가 제레미 델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장 전면 외벽에 화재가 나 벽을 뚫고 나오는 문어의 모습을 거대 실사 출력의 고화질 배너로 설치할 예정이다. 이 모습은 ‘리뉴얼’하는 비엔날레의 이미지를 시작부터 강화한다.
이번 전시에는 대규모 설치 신작을 선보일 얼스 피셔, 스페인 출신 듀요 엘 우티모 그리토 등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을 포함 참여작가의 90%가 광주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작가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총 39개국 106팀의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작가는 전체의 약 20%인 20팀이다. 하우스는 신체, 기관, 체제 등 무한히 적용될 수 있는 메타포다.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는는 9월, 전시 관람자, 비엔날레라는 전시체제, 광주라는 공간 그리고 제시카 모건의 큐레이토리얼이란  하우스의 불씨가 어떻게 변화되어 퍼저나갈지 그 양상이 기대된다.

임승현 기자

제시카 모건은 1968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런던 커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에서 다수의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2014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전면에 전시될 제레미 델러의 대형 패널작품 예상도

2014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전면에 전시될 제레미 델러의 대형 패널작품 예상도

 

 

[핫피플] 미국 조선미술협회장 신동훈

미국 조선미술협회장 신동훈

남과 북을 오가는 畵商

1988년부터 지금까지 100여 차례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서울과 베이징, 워싱턴, 뉴욕 등에서 북한 화가의 그림을 소개해온 이가 있다. 미국 조선미술협회 신동훈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사)남북문화예술원 주최로 5월 1일부터 11일까지 월전미술관 한벽원갤러리에서 월전 장우성(1912~2005)과 북한 미술계의 두 거장 정창모(1931~2010), 선우영(1946~2009)의 그림을 선보인 <남북한 유고작가 미술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 바로 신 회장이다.
신 회장은 어떻게 분단된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을까? 한국에서 자동차 정비 관련 일을 하다가, 1977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현재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쉽게 북한을 방문하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신 회장은 1988년 워싱턴에 처음 화랑을 열었다. 당시 한국화를 미국에 소개하다가 우연히 북한에도 우리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 이후 베이징, 연해주 등 중국을 돌아다니며 북한 그림을 열심히 사 모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가짜 그림으로 밝혀졌다. 수업료를 톡톡히 낸 셈. 그래서 그는 직접 북한을 방문해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북한화가의 진품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평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에 진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북측이 비자를 쉽게 내주지 않았죠. 중국에서 쌓은 인맥을 총동원해 어렵게 첫 방북(訪北)에 성공했습니다. 처음엔 북한 미술인을 전혀 만나지 못했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그는 결국 당시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정창모와 선우영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생전 ‘만수대창작사’에서도 유일하게 개인 작업실을 가질 만큼 각별한 대접을 받는 화가였다.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로 불린 그들의 수많은 작품은 북한에서 국보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20여 년간 계속됐고, 그 사이 두 화가에게 그림을 직접 건네받아 소장하게 된 것이다.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의 그림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국가의 재산이죠. 그럼에도 작품을 건넨 두 화가의 결단과 용기가 지금과 같은 엄청난 드라마를 연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은 “정창모, 선우영 두 화가야 말로 비운의 남북분단시대 미술사의 상징이죠. 그들의 그림이 남북이 하나 되는 길에 미흡하나마 기여하고, 한반도 미술을 뛰어넘어 세상에 널리 소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현재 신 회장은 정창모와 선우영 외에도 김상직(1934~2010), 리석호(1904~1971)의 그림 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북한 화가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이제 사명이 됐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는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우리 민족의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 한국이나 미국의 박물관이나 기관에 기부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 회장은 중국도 북한 그림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데 정작 같은 민족인 한국에서는 북한 그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무엇보다 남북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남북한의 문화적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북쪽이나 남쪽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슬비 기자   

신동훈은 1948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났다. 1977년 미국으로 이민가 1988년부터 북한 미술에 관심을 갖고 미국과 중국, 서울에서 화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1년 워싱턴과 뉴욕지역 한인을 중심으로 미국 조선미술협회를 설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한벽원갤러리 전시광경. 정창모의 (오른쪽)

한벽원갤러리 전시광경. 정창모의 <향산계곡>(오른쪽)

[Sight & Issue] Art Basel in Hong Kong

Art Basel in Hong Kong

미술시장 경쟁력, 어떻게 가능한가?

아시아 최고 규모라 할 수 있는 ‘아트바젤홍콩’이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아트바젤홍콩은 2008년 시작된 ‘홍콩아트페어’가 전신으로, 지난해 아트바젤이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하면서 바젤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다시 말하면 아트바젤이 글로벌 프랜차이징으로 지역적 확산을 시도한 것이고, 따라서 2002년 미국의 ‘아트바젤마이애미비치’에 이어 홍콩이 아시아 거점으로 선택된 셈이다. 그 파급효과는 예상대로 놀라운 수준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유수 아트페어에 비해 역사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홍콩이라는 지정학적 조건과 함께 바젤 브랜드 효과가 한몫하면서 전 세계적인 이목을 단기간에 받게 된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공개된 사실이지만 이번 페어에서 중국 거부와 컬렉터들의 대규모 작품 구매가 두드러졌고, 또 유럽과 미국 컬렉터들의 고액 작품 구매로 많은 화랑이 ‘목표치를 능가하는 실적’을 달성했다는 말이 넘친다. 실제로 올해 참여한 학고재를 비롯 국제, PKM, 박여숙 등 10여 개의 한국 화랑 대표들도 예외 없이 한국에서의 위축된 분위기에 비해 홍콩에서는 구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흡족해 했다. 게다가 39개 국가에서 참여한 245개 화랑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화랑이라는 사실에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 판매량에서도 약진을 보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번 페어를 보면서 필자는 지극히 새삼스럽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랄까, 그런 지점을 되새기게 되었다. 무엇이 아트바젤의 경쟁력을 제공하는가. 주지하다시피 아트바젤은 시장에서 아직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트 스테이트먼트(Art Statements)>나 대형 설치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 <아트 필름(Art Film)> 및 <아티스트 북스(Artist Books)> 코너 배치 등 작품의 상품적 가치의 의미를 현대미술의 실험과 성장이라는 맥락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신생 화랑을 위한 공간 배분을 비롯하여 미술계의 모든 전문가가 패널로 참가하는 ‘컨버세이션’(Conversations)이나 ‘아트 살롱’과 같은 세미나 프로그램도 그러한 역할에 일익을 다하는 것이다.
홍콩에서도 이러한 구도가 연속되면서 동시에 지역적 맥락이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컨벤션센터 두 개 층을 차지한 공간적 규모와 더불어 입구로 들어서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는 대형 설치작품들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전시된 양혜규의 설치작품에 버금가는 구웬다의 작품 등 다양한 설치작업이 전시된 <조우’(Encounters)>는 작년에 이어 유코 하세가와가 기획하였다. 이외에도 아트 필름, 아티스트 북스, 아트 살롱 등의 프로그램이 주어졌지만, 그 가운데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홍콩 지역에 기반을 둔 다양한 현대미술 기관들의 참여였다. 특히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가 주최한 오픈 플랫폼은 큐레이터와 비평 및 이론가, 시각예술기획자 등이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예술을 주제로 논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홍콩 미술시장의 기반을 만든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아트바젤홍콩의 경쟁력은 곧 미술시장의 구도를 총체적 관계 속에서 본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미술시장은 결코 홀로 커갈 수 없다는 사실, 미술시장 구성 요소들의 상호작용과 교류가 잠재력이라는 사실, 지역적 맥락을 강하게 부여하되 글로벌 맥락을 확산하는 전략, 그래서 미술시장에 내놓은 작품들의 다양성이 확인되고, 그로 인해 충성도 높은 고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외적 요인도 크다. 아트페어 기간을 전후해 전 세계 수집가들과 미술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100여 개의 미술 관련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홍콩 전체가 면세 지역인데다가 중국과 동남아, 한국과 일본 등을 잇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는 입지적 장점이 그것이다. 아트바젤의 글로벌 프랜차이징 전략은 그래서 전체 일정을 조정하기로 한 듯하다. 전해 듣기로 바젤이 6월, 마이애미가 12월인 가운데 홍콩을 지금의 5월에서 3월로 바꾸었다고 한다. 봄, 여름, 겨울로 포진한 것이다.

박신의・경희대 교수

아시아아트아카이브가 주최한 ‘Open Platform’ 토론 장면

아시아아트아카이브가 주최한 ‘Open Platform’ 토론 장면

 

Hot Art Space

영상 표현 위주의 미디어아트의 의미를 숙고하고 그 표현영역 확대를 표방하는 제 8회 2014이마프(EMAP)가 <Music and Video>란 주제로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이화여대 교정에서 열렸다. 늦은 저녁(20시부터 22시30분까지) 야외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노랫소리와 가사 이미지, 팝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시적 감수성 등 11가지 섹션으로 나뉜 다양한 영상작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음악과 비디오아트의 공유지점을 생각해 보는 기획을 선보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포스코 (3)

광고사진작가로 유명한 준초이가 지난 9년간 찍은 해녀사진을 모아 <바다가 된 어멍, 해녀>라는 제목으로 5월 10일부터 7월 3일까지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2005년 광고촬영차 찾은 제주에서 본 해녀의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꼈고 그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꾸준히 해녀의 모습을 촬영해온 그는 이번 전시가 해녀문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심정리 (1)

주변 환경을 통해 유한한 시간과 이성적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심정리의 개인전이 <The Image of Time>이라는 타이틀로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최정아 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의 영상은 본래의 사물과 환경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개발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의 본질을 복원시키고 사람들의 이상을 순수한 자연의 세계로 되돌린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세종 (2)

장터포토클럽이 주최하는 <2014 장터사진전>(5.14~20)이 세종문회화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태주, 한용외, 손기상, 김영재 등 총 14명의 작가가 전국의 장터를 돌면서 촬영한 우리네 장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시장의 풍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장터포토클럽은 사라질지 모르는 재래시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1999년 창설된 모임이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가나 (5)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표 작가 고영훈이 8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5월 2일부터 6월 4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있음에의 경의>를 주제로 하며 도자기시리즈와 책 위에 꽃, 나비 등을 소재로 한 작품 등 약 35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실재의 재현을 넘어 환영과 실재, 존재하지 않음을 혼합하거나 순차적인 이미지로 보여주어 그 사이의 간극을 허무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표 (2)

조각가 김영원의 지난 40년간 걸어온 예술적 자취를 살펴 볼 수 있는 개인전 <그림자의 그림자>가 5월 9일부터 30일까지 표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사실주의적 구상 인체조각을 통해 현실과 가상, 실재와 부재의 경계를 나타내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선재 (17)

2004년 타계한 박이소의 전시 <박모, 박이소_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Something for Nothing)>이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다. 고인의 설치작업을 중심으로 ‘박모’로 활동했던 미국시절 작업부터 2002년 에르메스미술상 수상 기념전시 작업,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업 등을 선보였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아산 (1)

서울대 건축과 교수인 최두남의 개인전이 4월 18일부터 5월 9일까지 아산정책개발연구원 갤러리에서 열렸다. 작가는 UC버클리대 미술대학과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건축세계를 알 수 있는 조감도와 함께 회화작업을 선보여 건축가이자 작가인 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흑표범 (7)

작가 흑표범과 김태윤(왼쪽)이 운영하는 ‘공간 해방’에서 두 사람의 혼인전 <Wedding Shower>가 열렸다.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는 신랑과 신부를 전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두 작가와 관람객이 서로 안부와 담소를 나누는 소소한 대화의 장이었다. 전시장에는 그들의 조촐한 결혼사진과
함께 부모님의 결혼사진도 함께 전시됐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네오랙 (2)

<네오랙(Neo-Lack)>이란 타이틀로 5월 16일부터 6월 8일까지 스페이스 매스에서 젊은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전시는 국내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작가 지망생들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 이어 6월 13일부터 7월 5일까지는 <경고문:제발 사라지지 말아요, 은마>라는 제목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3 작가의 전시가 이어진다. 두 전시기간 동안 실기 및 이론전공 학생 22명의 현실적인 고민과 열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이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L1000335

김해문화의전당이 올해 처음 주최하는 <한국현대미술 화제의 작가-신학철전>이 5월 13일 개막해 6월 29일까지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작가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에스키스 작품을 한데 모아 최초로 공개한다. 또한 가로 20m가 넘는 대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2008~2012)가 출품되었다.
김해=황석권 수석기자

[section_title][/section_title]

키미 (2)

<형상화된 일상의 낭만적 저항>이란 제목의 그룹전이 5월 9일부터 6월 27일까지 평창동에 위치한 키미아트에서 열린다. 강원제, 겐마 히사타카, 박미경, 염지현, 이채은, 채한리, 최윤희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기억과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반복하는 현대인에게 친숙한 주변 환경에 대한 유연한 시각적 체험을 제시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가방 (2)

가방에 대한 전시 프로젝트 <Bagstage展 by 0914>가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지하1층에 위치한 갤러리 0914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2년간 9개의 테마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그 세 번째 전시가 가방과 과학을 테마로 4월 8일부터 6월 29일까지 계속된다. 백정기의 설치미술과 안민정의 회화작품은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시도로 일상 사물에 예술적 변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토탈 (5)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갈등을 다루는 전시 <오, 마이 콤플렉스: 도시를 바라볼 때 밀려오는 불안에 대하여>가 4월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2012년 독일 뷔어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 슈투트가르트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몇몇 도시에서 크고 작은 버전으로 소개되었던 전시를 토탈미술관에서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회, 정치, 경제적 갈등에 주목하는 13명(팀) 작가의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선보인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에이치 (4)

권치규의 개인전 <회복탄력성>이 5월 9일부터 6월 5일까지 갤러리 아트스페이스H에서 열린다. 물리학 용어인 ‘회복탄력성’은 원래대로 회복하고자 하는 힘을 의미하며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항력,
삶의 본원적 의지를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잠재된 에너지로서 긍정의 힘을 가진 작가의 욕망을 표현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쿤스트 (3)

종이로 만든 전투기 모형이 속이 텅빈 모양으로 쿤스트독 갤러리 공간을 가득 메웠다.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작가 서해근의 개인전 <The skins_F-35>에 대한 묘사다. 작가는 “전시를 본 관객이 그 실체(실체가 아닌 껍데기일 수도 있는 것)들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주변을 바라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서울 (5)

김환기부터 현대미술에까지 이어지는 백자의 미와 가치를 조망하는 전시 <백자예찬: 미술, 백자를 품다>가 4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근현대미술부터 오늘날 현대도예가들의 작품까지 선보인다. 전시에 맞춰 강연회, 음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함께 개최되어 전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다양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안테모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작가 양태모의 개인전 <Idleness>가 5월 16일부터 30일까지 충남 공주에 위치한 임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작가는 닥나무 껍질이나 버려진 산업폐기물 등을 혼합하여 자연적이면서도 인공적인 느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흘러 모습이 변하고 버려진 물건의 조각을 모아 만든 작품은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최성렬 (2)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 최성렬의 개인전이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자연에서 합치되는 음과 양의 조화처럼 작가는 다름과 차이보다는 상생과 화합에 초점을 맞춘 회화를 선보인다. 폭포, 강 등 끊임없이 흐르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회화와 전시장 입구부터 뻗어있는 가시 모양의 설치는 문명의 이기에 반대하는 생태의 역설을 표현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MM_HJ(추가)

서로 다른 요소들을 통합 조율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작가 이정지의 개인전이 경기도 장흥에 위치한 안상철미술관에서 4월 1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작가의 회화에는 원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고한 정신을 상징하기도 하도 시작과 끝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화면의 깊이감과 행위의 표현에서 오는 시각적 세계와 그 초월적 세계에 몰두해 왔다” 말한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조선일보 (1)

5월 21일부터 29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생명의 존엄과 공존을 주제로 한 이인섭의 개인전이 열렸다. 꽃과 물고기 새의 이미지들을 통해 바쁜 일상에서  잊기 쉬운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체들간의 어울림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밝은 색과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회화 30여 점이 전시되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인덱스 (3)

사진과 그림의 접목을 시도한 작가 전흥수의 개인전이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렸다. 그의 작업은 재현을 위한 사진과는 거리를 두고있다. 화려하고 인위적인 색으로 인화된 사진은 마치 판화같다. 회화와 사진을 함께 전공한 작가의 30년간 작업 중 15점을 선별하여 전시했다.

[section_title][/section_title]

민은주 (3)

오랜기간 한지 작업을 해온 작가 민은주가 20년 만의 첫 개인전을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었다. 그녀의 작품은 백골에 다양한 문양이 조각된 한지를 입히고, 옻칠을 입히고 자개나 금박을 더하는 등 전통적인 재료와 문양, 마감재를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더했다.

 

[특별기획] this is being art-1

 (부분)

<머리가 알지못하는 마음ll> (부분)

Chun Yoonjo 전윤조

전윤조의 작업은 오래 걸리고 반복적이고 무엇보다 손이 많이 간다. 두꺼운 면사는 작업의 중요한 기본 재료이다. 일일이 실로 엮어 수도 없는 인물들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어려서부터 가진 청력장애로 인해, 지독하게 반복적인 훈련으로 습득한 언어는 작품의 구조와 닮아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시각보다는 작가의 몸이 많이 개입되고 그 노동의 반복 구조가 전윤조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끝없이 계속되는 손작업을 통해 미적 치유를 받는 것일까. 그것만이 자신의 언어인양, 작가는 집요하게 매달린다. 언어가 장애인 그에게는 몸을 통한 의사소통이 그만큼 절실한 것이다.
— 전영백

전윤조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고 몽클레어 주립대학교 석사학위를 마쳤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김종영 조각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김종영미술관에서 5번째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허진 유목동물 인간2010-10,162×130,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2010

<유목동물 인간2010-10>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 162×130cm 2010

Hur Jin 허진

역사와 철학, 과학기술, 전통과 현대, 자연과 문명의 관계망이 복잡하게 뒤얽힌 다중복합체로서 현실인식을 토대로, 관계 내 존재라는 유한성을 극복하는 자율적 주체로서 인간, 그리고 다양한 개(성)체들의 조화로운 공존과 상생을 그리고자 했다. 전통과 새로움, 형상과 서사라는 양날 사이에서, 도도하고 단단한 권위의 영역들 사이의 그 첨예한 경계에서, 나는 한결같이 세계를 구성하는 다원적이고 다각적이며 다층적인 힘들, 그들 간 길항적 세력관계의 역동적 에너지에 긍정적 시선을 보내왔다. — 허진

허진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동덕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제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 초대전 우수상, 2001오늘의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목을 공1001  - copy

<空1001> 나무에 유채 117×65cm 2010

Lee Mokul 이목을

이목을은 생의 수행자이다. 누군들 허투루 생을 영위하겠는가마는, 그래도 이목을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그는 극사실회화의 선두주자였다. 우리의 전통적 생활 매재인 소반이나 도마에 수저, 생선, 과일 등을 실체보다 더 실감나게 그렸다. 단순히 잘 그렸다기보다도 대상의 기운이 생동감 있게 와 닿는 그런 작업들이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작업의 큰 전환기를 맞았다. 불행하게도 첫째 이유는 사물을 겨우 분간할 정도로 나빠진 시력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돌파구로 택한 작업이 <스마일 시리즈>이다. 모든 화면은 그 웃음으로 다 채워져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웃음 속에서 다양한 생의 표정들을 본다. — 류석우

이목을은 1962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4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뉴욕, 세네갈, 베이징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허욱 5

< 첨첨(添添) 사이 pierrot1> 캔버스에 아크릴 162×130cm 2013

Heo Wook  허욱

허욱은 듣지 못한다. 나는 이 말을 여기서 하기가 꽤 조심스럽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을 논할 때 작가의 신체적 한계조건을 밝힐 경우, 작품의 관람자(독자)는 우선 그 조건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관심을 반영하여 허욱의 미술을 재단할 수 있기 때문이며, 반대로 이데올로기화된 정치적 올바름으로 ‘쿨하게’ 허욱의 작품이 내포한 특수성을 외면하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왜곡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추상의 선, 원색, 덩어리, 이것들의 변주와 반복과 이합집산. 허욱은 자신의 들을 수 없는 세계 안에서 가촉성과 가청성과 가시성으로 충만한 세계를 구현하며, 말하지 않고 소리 내지 않는 것들(선, 색, 부피)의 촉각적이고 시각적인 현전(現前)을 토대로 그 고요한 ‘있음’을 작품으로 현재화한다. — 강수미

허욱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갤러리 퓨전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8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뉴욕, 싱가포르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으며, 2007 아시아 문화도시 거주 프로그램 광주 의재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다.

 

박경묵 무진풍

<무진풍> 한지에 먹, 채색 40×109cm 2013

Park Kyoungmug 박경묵

삶과 예술을 행함에 있어 어떻게 바라보고 느꼈으며,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는다. 삶과 예술의 진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상대적인 것에 대한 존중을 고려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진리에 대한 사고는 만물이 무한히 변화하고 또 생성하는 원리를 깨닫는 것에서 싹튼다다. 조금 천천히 진행될 순 있어도 정지된 것은 없음을 인식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발자국이 없다 하여 걸음이 없었음이 아닌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것이다’. — 박경묵

박경묵은 198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 회화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2007년 꿈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4회의 개인전과 2014년 갤러리 AG에서 정희석과 2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삼청미술제 우수상, 겸재정선기념관 내일의 작가 한국화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잠실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특별기획] this is being art-2

박대성 천지인 300x240종이에 수묵담체 2011년작

<천지인> 종이에 수묵담체 300×240cm 2011

Park Daesung  박대성

소산 박대성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게다가 자신의 팔 한쪽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예술의 속성은 고행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작가의 고통이 클수록, 또 그 고통을 잘 소화하면 할수록 예술은 싱싱해진다. 소산 예술의 특성은 바로 극한상황을 넘고 피어난 야생화와 같다. 그 꽃은 바람과 천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향기가 은은하면서도 오래간다. … 소산 먹 그림의 특징은 무엇보다 선(線)을 중시한다는 점, 더불어 원(圓) 방(方) 각(角)의 묘체를 자유스럽게 구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원각(圓角)의 원리, 곡선과 직선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우주의 원리는 숨어 있다. — 윤범모 박대성은 194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자연을 스승삼아 그림을 그렸다. 1974년 대만 공작화랑 초대전을 시작으로 서울, 도쿄, 파리, 베이징 등지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19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2006 문신미술상, 2010 금복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장지에 채색 91×73cm 2012

<경종을 울리다> 장지에 채색 91×73cm 2012

Lee Universe 이우주

‘우물 안 개구리’를 소재로 현대사회 속에 개인의 존재가치가 무엇인지 표현한다. 또한, 자연의 다양한 실험적인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이 생각하는 생물은 어떤 의미인지, 같은 환경에 존재하고자 하는 인간에게 생물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 이우주 이우주는 1989년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보문미술대전 우수상, 어등미술대전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캔버스에 아크릴 65×50cm

<생각에 잠겨있는 삐에로> 캔버스에 아크릴 65×50cm

Dennis Han 데니스 한

그는 어디에서건 틈만 나면 스케치를 한다. 생각해보고,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지 못한 아이,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서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의 그림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연습한 숙련의 기미가 보이고 아름다운 색상 속에 불완전한 자유로움이 있어 바라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즐겁게 해준다. — 심현지 데니스 한은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999년부터 파리에 정착한 후 서울 피쉬갤러리, 파리 유네스코갤러리, 뉴욕 유엔본부, 서울 꿈의숲 아트센터,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3 평창 동계 스폐셜 올림픽 개최기념 <아트링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종이 위에 색연필, 마카  25×36cm 2014

<베이터벤 타고 임진각까지 숨은그림 찾으세요> 종이 위에 색연필, 마카 25×36cm 2014

Kim Donghyun 김동현

발달장애인으로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동현은 열차, 기차역, 전철 노선 등을 주로 그리지만 그것을 외워서 그리는 것을 넘어 그림 속에 자신이 상상해낸 독특한 이야기를 넣는다. ‘벽 타고 친가집 가는 선수’, ‘만리장성 고속도로’, ‘바둑돌이 깔린 전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책상’, ‘수백 개의 재미있는 이름이 담긴 전철역’ 등 위트 넘치고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그의 작품에 녹아 들어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노트에 그려나갔고, 최근에는 노트의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과감한 구도와 색감으로 공간을 구체화하고 있다. 김동현은 1993년에 태어났다. 2013년 서울시 북부병원에서 첫 개인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행>을 열었다. 그문화갤러리, 경기도미술관, 일본 하나아트센터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비영리 예술단체인 로사이드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김태호  종이에 마카 38.5×52.5cm 2013

김태호 <지동시장> 종이에 마카 38.5×52.5cm 2013

Kim Taeho 김태호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김태호는 새, 물고기, 얼룩말과 같은 동물과 자전거 타는 사람, 주로 한 방향성을 가지고 무리지어 이동하거나 또는 그저 무리지어 한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다. 종이 한가득 여백 없이 펼쳐지는 이 무리의 풍경 속에서는 작가가 그만의 속도로 관찰한 개체들의 특유한 자태와 섬세한 표정 그리고 역시 그만의 속도로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채색한 마카펜의 정렬된 얼룩을 발견할 수 있다. 김태호는 1987년 태어났다. 2014년 에프앤아트스페이스에서 4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며, 대안공간 눈, 경기도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과 <2013 뉴욕 아웃사이더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특별기획] this is being art-3

위 왼쪽 · 장님코끼리만지기 체험

위· 장님코끼리만지기 체험
아래 ·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열린 시각장애작가 김준범, 김영빈의 북촌사진전 <두 사람의 눈> 광경 2014

 

ANOTHER WAY OF SEEING 

우리들의 눈

미술은 시각이 아니라 오감이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우리들의 눈’은 (사)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를 중심으로 미술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들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예술 프로그램이다. ‘우리들의 눈’ 디렉터이자 작가 엄정순은 1996년부터 ‘본다’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시각장애를 또 다른 창의적 가능성으로 바라보며 시각장애인들이 미술을 만나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엄 디렉터는 “시각장애인들과 소통하면서 역으로 미술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고는 “시각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느끼고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시각장애라기보다 시력장애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들의 눈’은 서울맹학교, 한빛맹학교 등에서 매주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특별 워크숍을 통해 살아있는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시도한다. 뮤지엄 투어는 다리 힘 기르기, 흙 작업은 손 힘 키우기, 요리하면서 입맛 키우기 등 일상의 경험을 미술로 풀어보면서 그 과정에서 내면의 힘을 발견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중심 내용이다. 엄 디렉터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장애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며 “장애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와 마주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일어서는 굉장한 힘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18년간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어느새 우리들의 눈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중에 자연스럽게 작가 활동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미술 수업을 통해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어릴 때부터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이 단순히 과목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것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 학생은 현재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엄 디렉터는 ‘우리들의 눈’을 통해 결국 내가 장애인이 아니라 창의적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를 통한 고유한 시각이 발전되면서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 아니라 가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창의적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들의 눈’은 다양한 전문 분야와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협력해 3D 프린터를 활용한 시각장애인 교재를 제작하고, 삼성애버랜드패션과 함께 패션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엄 디렉터는 “‘우리들의 눈’이라는 미술컨텐츠가 동시대에 혁신적인 기술과 만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시각장애와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미술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www.artblind.or.kr

이슬비 기자

[separator][/separator]

에이블아트센터스튜디오 광경

에이블아트센터스튜디오 광경

샘터갤러리에서 열린 에이블아트센터 소속작가의  전시광경

샘터갤러리에서 열린 에이블아트센터 소속작가의 <같이놀자> 전시광경

ABLE ART CENTER

에이블 아트센터

장애 예술, 가능성의 예술

2010년 설립된 에이블아트센터는 장병용 목사가 장애를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예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원천으로 인식하고 장애예술가, 특히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장애인문화예술 공간이다. 전문예술강사가 진행하는 미술, 도예, 음악,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표현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들의 작품이 전시, 공연 등의 통로를 통해 대중에 소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조민서, 박태현, 이찬규, 최봄이 등이 센터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혜정 에이블아트센터 실장은 장애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함께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공교육 안에서 지원이 없다.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아트센터는 아트 교육기관인 동시에 장애 작가와 평생 같이 가는 개념으로 울타리가 되어야한다.”
이 실장은 센터의 슬로건이 “상상력은 장애를 넘어선다”라며, “현재 센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은 20대 초반으로 지금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지만 10년 뒤에는 장애라는 딱지를 떼고 젊은 작가로서 미술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의 작업을 관심 있게 봐주는 젊은 기획자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센터는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장애 예술가 전문 스튜디오인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처럼 작가들이 센터의 운영 주체로서 참여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밝혔다.
www.ableart.or.kr

이슬비 기자

[separator][/separator]

홍석환  종이 위에 연필, 색연 21×29.7cm 2010

홍석환 <드로잉시리즈> 종이 위에 연필, 색연 21×29.7cm 2010

RAW+SIDE  

로사이드

날 것의 예술,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공동체

2008년 설립된 비영리 예술단체 로사이드는 한 작가가 자폐를 가진 소년의 노트에 그려진 낙서가 장애에서 비롯된 증상으로 여겨져 버려지는 것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 단체는 미술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서 협업을 추구해 참여 예술가의 관심에 따라 정체성을 고민하는 열린 구조를 띠고 있다. 단체의 구성원은 크게 ‘운영 스태프’와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공동 창작자’와 ‘후원자’, 그리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자적으로 창작하는 ‘날것의 아티스트’로 이뤄지며 곽규섭, 김동현, 홍석환 등 대부분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이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고재필 로사이드 공동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장애인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 작가 모두가 동등한 구조 아래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로사이드가 진행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서울시 북부병원과 협약을 맺고 작가들이 환자들의 얼굴을 그리는 ‘함께하는 풍경’, 성북문화재단 지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문화를 공유하는 경험을 나누는 ‘어떤 아트투어 프로젝트’ 등이 있다. 최선영 아트 스태프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도 중요하지만 출판, 영상, 퍼포먼스, 아트상품도 등 날것의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방식의  창의적인 활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rawside.kr

이슬비 기자

 

[특별기획] this is being art-4

창작 본질은 아름답다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

다르다는 것이 잘못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장애를 가진 예술인의 창작 본질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식상한 얘기지만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양성을 뜻한다. 따라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다양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양성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데 장애의 다름을 틀림으로 보아 편견이 생겼고 그로 인해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이중적이어서 다 언급할 수는 없고 다만 여기에서는 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예술 분야에 존재하는 차별 문제에 국한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장애인의 예술 활동과 예술 활동을 하는 장애인에 대한 정의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장애인예술이라고 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장애인을 장애예술인으로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인데 현재는 장애인예술을 ‘에이블아트’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에이블아트는 일본에서 시작하였는데 장애를 불가능으로 보는 인식에 반해서 가능성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장애인예술을 VSA(very special art) 매우 특별한 예술이라고 칭한다. 우리는 한국의 정서에 맞는 용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장애인예술의 영어 명칭을 ‘Being Art’로 정하고 싶다. 왜냐하면 장애인예술이 존재감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고 장애인예술의 본질이 비장애인의 예술과 다르지 않고 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예술이 주류예술계에서 소외되는 것은 장애인예술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기 때문이다. 장애문화예술인실태조사(2007)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묻는 질문에 매우 낮다 35.3%, 다소 낮다 24.9%, 그저 그렇다 27.5%로 87.7%가 사회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매우 이중적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연구가 있다. 박혜신(2010)에 따르면 같은 공연을 감상하였어도 예술인이 장애인임을 알 때 더 감동을 받고 흥미롭게 본 것으로 나타났지만(73.3%) 예술인이 장애인임을 알 때 예술인의 전문성 평가 항목의 평균은 아주 낮았는데 이것은 장애예술인을 전문예술인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인식 때문에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이 예술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그로 인해 장애예술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 경험에 나타난 구성요소인 ‘예술과 만남’, ‘창작 활동 몰두’, ‘고통스러운 작업’, ‘나는 예술인이다’의 본질은 매우 순수하고 열정적이기에 아름답다. 장애인예술의 아름다움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역사 속의 장애미술인
옛날에는 장애인이 없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시작한 작업이 역사 속의 장애위인들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로 발간된《   한국장애인사》(정창권 외, 2014)에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66명의 장애위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66명을 직업별로 구분해보면 예술가가 38%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조선시대 장애인이 예술적 감각이 더 뛰어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장애 때문에 과거시험을 치르고 벼슬을 하는 제도권 내 진입이 어렵다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예술을 선택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장애예술가 가운데 미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람을 소개하면 시각장애 천재 화가 최북이 있다. 최북(崔北)은 영조·정조 시대 인물로 조선후기 직업 화가였다. 중인(中人) 출신이었으며 체구가 작고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애꾸눈 화가라 불렀다. 최북은 예절이나 관습에 구속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자유스럽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그의 행동은 기행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빼어난 그림 실력을 지닌 최북은 젊은 시절부터 금강산·영동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수준 높은 작품을 남겼다.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까닭에 생동감이 넘쳐 보는이로 하여금 그림 속에 빠져들게 하였다. 최북은 강한 개성을 지닌 작품으로 당대를 사로잡았다.
조선 최고의 묵죽화가 이정(李霆)은 조선중기 왕실 종친으로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이다.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로 명성이 높았으며, 묵죽화뿐 아니라 묵란·묵매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붓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화가에게 손놀림이 자유롭지 못하면 화가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절단된 팔이 이어졌고, 그림 실력도 이전보다 더욱 뛰어났다고 했다.
조선의 명필 조광진(曺匡振)은 조선후기 서예가이다. 평양에 살았으며, 호가 눌인(訥人)인데 말을 더듬는다 하여 얻게 된 호로, 조광진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언어장애인이었던 조광진은 <조눌인법첩(曺訥人法帖)> , <눌인서첩(訥人書帖)>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조광진은 큰 새끼줄로 붓을 어깨 위에 동여매고 큰 걸음으로 걸어다니며 힘 있게, 그리고 섬세하게 글씨를 썼다. 그의 열정은 글자의 신비한 조화를 이루어냈고 사람들은 이에 탄복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사방을 유학하며 서체를 배운 조광진의 열정과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그는 당대 명필가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조선 사람들과 청나라 사람에게까지 실력을 인정받고 아낌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도 장애예술인이 활동을 했는데 근대와 현대에 장애예술인이 없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기라서 장애예술인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아 장애예술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에서 발굴한 장애예술인 가운데 고인이 된 근·현대 장애미술인 중 미술교과서를 만든 화가 구본웅(具本雄)은 190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우연한 사고로 가슴을 다쳐 척추장애를 갖게 되었다. 구본웅은 경신학교와 일본의 단천미술학교, 태평양미술학교, 동경미술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그는 경신학교 졸업 후에 조각작품 <자화상>으로써 선전 특선을 차지했다. 동경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는 국내 화단에 처음으로 포비즘의 화풍을 가지고 왔었다. 일제강점기의 침묵 기간 구본웅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조선미술사》의 집필이었다. 당시 문교부 편수관으로 참가하여 최초의 중등미술교과서를 그의 손으로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출발을 기도했지만 피난살이에 건강을 해쳐 1953년 2월 47세를 일기로 타계하고 말았다.
침묵 속의 횃불, 화가 운보 김기창은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고, 17세에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당화숙(以堂畵塾)에서 김은호(金殷鎬)에게 그림을 배워 6개월 만에 <판상도무(板上跳舞)-널뛰기>(1931)로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후, 연 5회의 입선과 연 4회 특선을 기록했다. 1956년 국전 초대작가·심사위원·수도여자사범대학과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백양회(白陽會)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며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김기창은 산수·인물·화조·영모(翎毛)·풍속 등에 능하며 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 얼굴을 그렸다.
한국의 로트렉 손상기는 1949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많은 대회에서 입상하며 1981년 동덕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손상기는 세 살 때 앓은 구루병으로 척추장애를 갖게 됐다. 그는 가난과 외로움을 그림과 글로 승화시킨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198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공작도시> 시리즈이다. <공작도시>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노인,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소박하지만 강한 필치로 표현한 작품이다. 1988년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건강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최근 들어 그의 예술세계가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현재 장애예술의 방향
우리나라에서 장애에 대한 복지는 1981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장애인미술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동이 수면으로 드러났다. 장애인미술은 두 가지 양상을 보이며 발전하였다. 하나는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이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은 청각장애인 화가들이 1988년에 농미회를 결성하고 한국농미회전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림을 손이 아닌 다른 신체를 사용해서 그리는 구족화가들이 1991년부터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지부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동양의 서예에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한 수묵크로키를 개발하여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한 의수화가 석창우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석창우는 감전사고로 두팔을 절단하고 의수를 끼고 있는데 전시회는 물론 시연 등을 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  중학교 2학년 미술교과서에 그의 작품 <세종대왕>이 수록되어 화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장애인미술은 초창기에는 화가 개인이 개최하는 개인전시회가 많았는데 장애유형별로 또는 작품장르별로 소규모 활동(소울음, 그림사랑, 농미회 등)을 해오다가 1993년 한국장애인미술협회를 구성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후 활성화되어 회원이 1,000여 명에 달하고, 한중일장애인미술교류전을 개최하는 등 장애인미술을 국제화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장애예술인들은 사대부들과 소통하며 최고의 경지에 올랐고, 근현대에 활동한 장애예술인은 오로지 열정과 노력으로 예술 주류계에 진입하여 실력을 인정받아 일반 예술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예술인으로 당당히 활동하였다. 이에 반해 최근 장애예술인들은 언론에 자주 모습을 보여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예술인으로서 그들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인데 예술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격려를 보내는 차원이라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장애예술인은 주류 예술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에 머물러 소외를 당하고 있다.
라이어슨 대학교(Ryerson University)에서 제시한 장애인예술 발전의 3단계를 보면 첫 번째 단계는 장애예술인 자신이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장애예술인의 활동이 주류 예술에 포함되는 것인데 우리는 첫 번째 단계인 장애예술인의 정체성조차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인예술의 욕구만 분출되었다. 1만 명으로 추산되는 장애예술인(방귀희, 2013)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장애인예술의 정책이 필요한데 그 정책방향을 다음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독일에서 활동한 헝가리 출신의 프란츠 리스트와 폴란드 출신의 프레드릭 쇼팽에 관한 일화이다. 리스트 피아노 연주회가 어둠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연주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촛불을 켰는데 놀랍게도 연주를 한 피아니스트는 리스트가 아니라 쇼팽이었다. 당시 리스트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지만 쇼팽은 연주회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무명의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 리스트가 친구인 쇼팽을 위해 자기 연주회에 쇼팽을 초대해서 쇼팽의 연주 실력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리스트는 관객들을 향해 “신사 숙녀 여러분, 깜짝 놀라셨죠. 처음엔 연주를 한 사람이 제가 아니어서 놀라셨을 것이고, 나중에는 저보다 훨씬 감미로운 연주에 놀라셨을 겁니다” 라며 쇼팽을 칭찬하였다. 이 일로 리스트는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고, 무명의 쇼팽은 돌풍을 일으켰다. 쇼팽은 야상곡으로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며 오늘의 우리들은 리스트보다 쇼팽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만약 리스트가 쇼팽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쇼팽의 성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리스트처럼 무명의 예술인을 지원하는 것이 유명예술인이 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가 되었으면 한다.
이에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장애예술인이 예술계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 있도록 예술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기성예술인들이 재능있는 장애예술인들의 멘토로 예술 활동을 지지해주는 예술계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장애예술인에게 창작과 발표의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지원금제도로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출간이나 전시회 그리고 공연의 일정 비율을 장애예술인에게 할당하는 쿼터제도를 마련하여 장애예술인에게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런 지원을 통해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 장애예술인의 자립이 가능해지고 정부 국정 목표의 하나인 문화융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

위.최북 <메추라기> 비단에 채색 24×18.3cm 고려대박물관 소장

[separator][/separator]

interview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 김충현

“장애인미술에 관한 관심이 절실하다”

그동안 협회에서 집중한 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한국장애인미술협회는 1995년 창립해 올해 햇수로 20년을 맞았다. 화가 방두영이 초대회장을 맡아 혼자서 11년이나 꾸렸고, 저는 1996년에 협회에 참여했다. 회장을 맡은 지는 8년째다.
장애미술인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7년째 운영하고 있다. 5년 전부터 문광부  지원으로 2년 동안 교재를 개발했고, 3년 전부터 장애인 미술강사 파견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협회 회원이면서 미술강사 자격이 있는 경우 공모를 하면 장애를 가졌지만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올해에는 20명을 파견한다. 최근 2년간 중증장애미술인을 위한 전동이젤을 보급해왔다. 창작발표 기회를 위해 다양한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미술가의 희망 축제>, <대한민국 장애인미술대전>과 함께 5년 전부터 <한중일 장애미술교류전>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6월 25일부터 31일까지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월에 .
장애미술인에게 복지와 예술의 비중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거에 비하면 장애인 복지 수준이 향상된 편이다. 이제 장애인 스스로도 찾아 나서야 한다. 장애인의 경우 예술 지원과 복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복지 없는 예술이 어딨냐. 그러기 위해서는 운영 주체도 일원화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관련 부서가 노동부, 안행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부 각각에 흩어져 있는데 장애인청을 만들어 한곳에서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단체 위주로 지원금을 줘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하는데, 일본은 장애인에게 개인 연금을 주고 스스로 돈 내고 당당하게 배우라고 한다. 우리는 어렵게 행사를 벌여도 작가들이 작품을 내고 나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전시에 못 오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졌는데 재단 정관상 예술가로 인정받는 자격요건이 까다롭다. 장애인 관련 사업은 하나도 없다.
장애인미술 관련 행사가 많은데 일반 미술계와 장애인 미술계의 간극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 작가들도 먹고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교하기 힘들다. 전체 문화예술예산 중에 비장애인 예산 대비 장애인 예산 비중은 1%도 안된다. 편견도 심하다. 회원 중에는 국전에서 입상해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있지만 그나마도 못 낀다. 그 속에서도 완전 아웃사이더라 어울리기가 힘들다. 그런 면이 제일 안타깝다. 그래도 장애인미술 분야가 문학, 연극, 무용 등 타 분야에 비해서 굉장히 활성화된 편이다.
장애미술인에게 장애라는 딱지를 떼고 작품만 보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이란 이야기를 하셨다. 작가가 장애인임을 밝히고 이 그림은 장애인 작가가 그렸다고 왜 하겠나. 그냥 예술로 순수하게 편견 없이 봐주면 그렇게 밝힐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내가 협회 회장이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미술인들이 상상력과 초월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시야나 시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협회를 운영하면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장애인 문화예술 단체들이 활동하는 데 보장돼 있는 것이 없다. 우선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정부에서 한 사업당 인건비 100만 원을 지원하지만 1년 내내 주는 것이 아니라 9~10개월에 한 번 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전문 인력이 1년 넘게 근무하기가 힘들다.
앞으로의 계획은? 매년 20여 개의 제안서를 낸다. 그중에서 3분의 1이 선정돼 진행하는 식이다. 해마다 제로에서 시작한다. 장애인 교육사업은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트페어는 국가에서 따로 지원하는게 없어 계속 갈 것이다. 올해는 처음이라서 발판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내년에는 한층 활성화시키고 싶다. 2015년 구 예총건물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그곳에 장애인문화예술센터가 개관한다. 스튜디오, 전시장, 발표 공간, 사무실, 자료실 등으로 구성된다. 내년에 사무실이 그곳에 입주할 예정이다.

이슬비 기자

서울시립 경희궁미술관에서 열린  광경

서울시립 경희궁미술관에서 열린 <2013년 한중일 장애미술 교류전>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