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제388호

특집

공공미술 패러다임의 변혁, 삶에 스며든 공동체 예술 92
공공(public)과 미술이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용어를 한 자리에 구현하는 일은 오랜 기간 난제였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미술은 관객 없는 미술작품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이름값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관객이 생각하는 미술,내가 제안하는 우리 동네의 모습과 같이 공동체의 삶 속에 유효한 미술로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한 시도들이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공공미술은 시각적으로 강제된 오브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이 중심에 있지 않다. 관객이자 시민,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내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미술은 모두의 관점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미술’이라는 필터를 통해 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의지와 그 방향을 같이한다. 그리고 우리는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나와 비슷할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헬싱키 시민들의 공공예술 활동과 경북 영천의 ‘별별 미술마을’, 제주도 거로마을 사례는 이러한 연쇄 작용이 마을, 도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지난 3월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시민에게 공개된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는 작품이 사람과 자연의 매개가 되어 자연 친화적인 삶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는 올해 〈서울은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 계획 단계부터 공공미술을 고려한 사업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이러한 예술과 삶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는 각자가 채워가는 의미들로 풍성해지는 장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움직일 준비가 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 시시각각 달라지는 장소가 된다. 삶이라는 열린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자.

편집장 브리핑 64

모니터 광장 66

칼럼 68
형식의 차이에서 나오는 포스터의 힘 | 강구룡

기자의 시각 70

핫 피플 76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左顧右眄은 없다, 우리의 길을 갈뿐 | 황석권
정광영 제42대 한국잡지협회 회장 “1차 콘텐츠 종이책은 씨앗과 같다” | 박유리

변호사 캐슬린 킴의 예술법 세상 9 82
황소 앞에 선 두려움 없는 소녀 | 캐슬린 킴

강수미의 공론장 Ⅱ 84
4차 산업혁명과 예술의 디/커플링 | 강수미

핫 아트 스페이스 88

특집_공공미술 패러다임의 변혁,삶에 스며든 공동체 예술 92
판박이 하던 공공미술의 판갈이 | 박삼철
시민이 주최하는 헬싱키의 공공예술 | 서정애
예술이 거주하는 마을 | 최창희
〈한강예술공원〉의 탄생과 미래상 | 은병수

테마기획 116 〈2017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흙의 인간이 성찰하는 삶과 죽음의 연대기 | 홍지수

스페셜 아티스트 132
박경주 욕망의 아바타-하트와 브레지어 | 김영민

전시 초점 138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展〉 고려청자에 분 신선한 미감 | 박정민

화제의 전시 144
〈그림없는 미술관展〉 사유의 풍경을 산책하다 | 이필

월드 리포트 148
2017 휘트니비엔날레 정치미술의 장르화를 예고하는 낮은 자들의 당당함 | 서상숙

크리틱 156
보고ㆍ10ㆍ다, 이주요ㆍ정지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윤동천, 권혁

리뷰 162

프리뷰 164

전시표 168

월드 프리뷰 172

지역 176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17 178
골목과 문장, 새파랗고 새하얀 | 최예선

아트북 180

아트저널 182

독자선물 186

편제 188

표지
아르투로 디 모디카 〈황소상〉 1989 & 크리스틴 비스발 〈두려움 없는 소녀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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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Briefing 64

monitor’s Letters 66

column 68 Kang Guryong

editor’s view 70

hot people 76
park Yonghyun | Hwang Sukkwon
Jeong Kwangyoung | Park Yulee

Kathleen Kim’s art laW societY 9 82 Kathleen E. Kim

KanG sumi’s column Ⅱ 84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De/Coupling of Art | Kang Sumi

hot art space 88

special feature 92 paradigm shift in public art, community art that seeps into lives
Park Samchul, June Seo, Choi Changhee, Eun Byungsoo
theme feature 116 Gyeonggi international ceramic biennale 2017 | Hong Jisoo
special artist 132 park Kyungjoo | Kim Youngmin

exhibition focus 138
〈iron, blooms into flower〉 | Park Jeongmin

exhibition topic 144
〈museum without paintings〉 | Lee Pil

world topic 148
Whitney biennial 2017 | Suh Sangsuk Ganahl

critic 156

review 162

preview 164

exhibition Guide 168

preview of overseas 172

region 176

choi Yesun’s sWeet WorKroom 17 178

art book 180

art Journal 182

readers Gift 186

credit 188

Cover
arturo di modica 〈charging bull〉 1989 & Kristen Visbal 〈fearless Girl〉 2017

CRITIC 보고ㆍ10ㆍ다

3.21~4.16 SeMA 창고
정수경 | 미학

전시가 열린 SeMA 창고는 불광역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은평구 혁신파크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창고’와 ‘혁신’이라… 그 기묘한 조합의 울림이 만들어낸 다소의 상념들을 헤아리다보니 어느덧 창고 앞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창고의 생김새. 한눈에도 수십 년의 세월을 짐작게 하는 붉은 벽돌 단층건물의 흰 방범창살과 연한 청회색 페인트로 덧칠된 커다란 나무문은 산뜻한 산수유색 전시 현수막을 크게 내걸고 활짝 열려 있음에도 발걸음을 잠시 주춤하게 한다. 대안공간의 역사도 20년이 다 되어가고 미술관들마저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마당에 이 무슨 새삼스러운 구태인가 싶겠지만, 대안적 공간들은 여전히 기대 어린 긴장감을 일으키곤 한다. 공간이 도전하기 때문이다. 보존해야 하고 보존하기로 결정된 낡고 오래된, 그리고 애초에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공간을 어떻게 미술 전시 공간으로 살려낼 것인가. 낡은 시약창고 공간이 그렇게 던진 도전에 난지 10기 작가들은 어떻게 응했을까?
궁금증을 안고 들어서는 이를 처음 맞는 것은 회색 가벽에 걸린 임현정과 허수영의 커다란 회화들이다. 무덤덤한 회색은 낡은 창고의 거칠고 붉은 골조를 부분적으로 감싸 안으며 긴장을 살짝 누그러뜨린다. 그러나 이 가벽에는 급변하는 전시공간의 성격과 충돌하는 회화의 시각성에 관한 깊고 오랜 고민이 녹아들어 있을 터. 여기서 회색은 협상의 색상으로 와 닿는다.
그 왼편으로 난 통로를 따라가면 몇 개의 스크린이 하얀 가벽을 따라 설치된 공간이 나타난다. 영상작품들이 맞이하는 이 공간은 너무 환해서 생경할 지경이다. 긴장하지 말라 말이라도 걸 듯, 권용주와 박보나의 작품은 압도하기보다 차분히 다가오는 크기로 설치되었다. 이곳이 낡고 오래된 창고였음은 유난히 환한 빛이 의아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을 때 비로소 각성된다. 당연히 있을 것 같던 슬레이트 지붕 대신 엉성하게 얹힌 목재들 사이로 봄 햇살이 눈부시다. 후면의 문 뒤에 감추어진 ‘ㄷ’자 모양의 좁은 공간에는 권혜원의 영상이 삼 면의 틈새 없이 가득 채웠다. 3채널의 비수평적 배치는 공간의 특정한 생김새를 살려내는 동시에 ‘버려지는 장소들’이라는 영상의 테마와도 공명을 이루며 시각적 울림을 한층 키워낸다. 이에 뒤질세라, 신형섭의 모기 세레나데가 기묘하게 치고 들어온다. 협상에 이은 진입의 면모가 엿보인다.
다시 돌아 나와 중앙에서 오른쪽 후면에 있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면 시약창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선반들이 유난히 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드디어 도전하는 공간이다. 박윤경과 옥정호, 도로시엠윤, 염지혜의 작품이 맞이한다.
좁고 길고 높고 선반으로 가득한, 못조차 박지 못하는 공간. 무엇보다 강한 입체감으로 다가오는 선반들의 공간 속에서 평면작업들은 어떻게 공간에 밀리지 않고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 고민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박윤경이 이 다소 산만하고 복잡한 공간을 반투명한 자기 작품이 창발하는 공간체험유희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끌어들였다면, 도로시엠윤은 선반이 만들어내는 어둠을 물리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Myself 네온시리즈’의 최적화된 배경으로 활용해냈다.
길쭉한 공간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위가 온통 선반으로 둘러싸인 가장 거칠고 산만한 공간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에 맞장이라도 뜨듯, 강렬한 외관의 작품 몇이 거기 자리 잡았다. 임흥순, 배윤환, 성유삼 그리고 이정형의 작품들은 맞춤옷이라도 입은 양 공간과 어우러진다. 성유삼과 배윤환의 검고 어둡고 강렬한 작품들이 창고의 드센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이정형의 작품은 너무 녹아들어, 원래 작품이 지녔던 파열의 힘이 좀 약화되는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홍승희와 신현정의 작품이다. 홍승희의 백색 오브제들은 마치 오래 비울 집의 가구에 흰 천을 씌워 놓은 듯한 모습, 그래서 잊힌 어떤 사물들의 세월을 화석화한 듯한 인상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화이트큐브는 줄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상념을 오래된 창고 공간이 비로소 그녀의 작품에 제대로 가져다준 듯하다. 신현정의 작품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공간에 개입한다. 그 여린 천들이 길게 늘어져 미약하게 흔들리는 모양이 강한 공간과 강한 작품들의 대결 속에서 공간을 진정시키고 달래는 듯하다. 동시에, 잘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곳곳의 빛바랜 자국들은 SeMA 창고의 세월에 대한 은유 같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 아차! 놓쳤던 무엇인가가 새롭게 눈길을 잡아끈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공간에 속한 것인 양 너무도 자연스레 칸칸이 놓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푸른 화분들. 허태원의 〈염리동 블루스〉다. 작가의 고민과 재치가 동시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샌다. 순간, 작가들이 공간과 밀당하며 보냈을 설치의 시간들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신진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의 운명이란 한결같다.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둘레둘레 서성대야 하는 운명. 그러나 때론 그 운명이 아직 길들지 않은 신진작가만의 도전정신에 합당한 공간들을 선물하기도 한다. 주변부인 까닭에 재개발의 논리를 비켜갈 수 있었던, 삶의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SeMA 창고 같은 공간들이 난지 10기와 같이 패기 찬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만났을 때, 작가는 응전 가운데 성장하고 공간은 젊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얻는다. 이런 것도 하나의 혁신, 그것도 꽤나 괜찮은 혁신 아닐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고, 어두움과 밝음이 함께 있고, 공격과 달램이 밀당하는 곳, 그곳은 더 이상 창고도 아니거니와, 전시장에 불과하지도 않다. 그곳은 작품을 매개로 삶의 에너지가 피어나고 확산하는 공간이다.
난지 10기 리뷰전 〈보고ㆍ10ㆍ다〉는 디스플레이에서 아카이빙으로, 아카이빙에서 에디토리얼로 이행하는 전시형태의 진화과정을 한 번에 보여주었다. 그 모든 과정이 아티스트 큐레이팅에 의한 것이며, 심지어 작품 설명글 작성도 작가들이 직접 했다는 점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다변화된 프로그램들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제 난지 10기 작가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지만, 전시장에서 본 그 찬란한 햇빛이 비껴드는 어느 봄날이면 SeMA 창고에서 만났던 그들의 그 에너지가, 그 작품들이 다시 보고ㆍ10ㆍ을 것 같다.

위 성유삼 〈파도〉(왼쪽) 스폰지 폼 200×200×85cm 2016

CRITIC 이주요, 정지현 도운 브레익스, 서울

3.24~5.14 아트선재센터
김해주 | 독립큐레이터

전시는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긴 시간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객들은 그 시간의 총량을 의식하지 않는다. 전시의 경험은 각자가 그곳을 찾아가서 본 만큼의 시간으로 결정된다. 날씨처럼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닌 전시의 시각적 경험은 그 기간 중 언제가 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주요, 정지현 작가가 함께 만든 〈도운 브레익스, 서울〉에서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 전시는 작품의 종착지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생애의 한 기간에 속할 뿐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작품 각자의 맥박이 느껴지는 이유는 먼저 그 형태와 배치된 방식에 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사물들은 안정된 위치를 점하고 있기보다는 터미널에서 대기하고 있는 승객들처럼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퀴가 달린 것은 물론, 목재와 가는 철재 등의 재료로 만든 것들도 그 크기에 관계없이 운동성을 드러낸다. 공간 안에 점점이 흩뿌려진 수많은 사물과 장치, 드로잉은 그 사이사이로 여러 길을 내고 있고,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풍경과 형태를 드러낸다. 그 배열에 따라 관객도 여러 동선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대기 상태의 사물들은 정지해 있어도 움직임을 품는다. 구름처럼 떠 있는 이 움직임의 전조가 작품이 갖고 있는 시간성을 지시한다.
전시가 작품 생애의 한 단면임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지점은 실제 전시 안에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시 기간 내에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 퍼포먼스의 시간에만 작품들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시간에도 작품들을 둘러싼 일들이 일어난다. 두 작가는 전시장 한켠에 커튼을 치고 작업장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동시에 사물과 장치를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완성된 전시의 보완이나 변형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전시를 그 자체로 생성되거나 생활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분류와 분리의 원칙, 매끈하고 깔끔한 외관, 완벽성, 관객들을 안내하는 방식 등 전시라는 매체가 쌓아 온 일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의식하지 않는 형태들이다. 대신 성근 조합, 빗금, 교차선, 튀어나온 각목, 각을 맞추지 않은 요소들, 돌출 같은 배합과 구성의 감각이 드러난다. 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전시를 유지시키는 것은 실을 잣는 것처럼 두 작가의 손끝에서 연속되는 만들기의 습관, 즉 형태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즐거움이다. 사물들은 그 형태를 제시할 뿐 아니라 그 안에 각자의 이야기와 만들기의 연대기를 운반하며 뉴욕의 퀸즈 뮤지엄에서 광주비엔날레를 거쳐, 지금 아트선재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작품이 가진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영속성이 없는 사물, 결국은 부식되거나 부서질 물체임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장이나 보관을 위한 제도나 공간의 부족뿐 아니라 그 사물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노화와 죽음에도 관련돼 있다. 이 전시는 곳곳에 극장과 연극의 요소들을 은유하고 있지만, 여기 놓인 사물들이 특히 배우와 겹치는 것은 그 부분이다. 결국은 둘 다 죽는 신체라는 것. 이곳이 극장이라면 이 무대에 백스테이지라는 개념은 없다. 주로 등장과 퇴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장면의 시작과 끝은 맞붙어 있고, 막은 스스로 공간을 가르며 움직인다.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선도 수시로 바뀌는 유동적인 것이 된다. 한편, 이 전시와 연계해 만들어지는 퍼포먼스는 여러 관계의 연결이기도 하다. 전시를 함께 만든 두 작가의 긴밀한 협업, 결코 각자의 소유를 내세우지 않는 전시 내에서 사물의 존재 방식,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의 작업들을 장치 삼아 결합하는 다른 작가(황수연, 이이내, 이혜인, 은재필, 정유진)의 작업과 맺는 관계, 그리고 이 신기한 사물과 행위로 채워진 공간을 경험하는 관객들과의 관계이다. 이 여러 층위의 관계 맺음이 결합하면서 전시는 동트기 전의 시간, 고정된 의미에 닻을 내리지 않는 모험의 시간을 만든다.

위 4월 21일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현장

CRITIC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3.31~6.24 하이트컬렉션
조은비 | 독립큐레이터

이른바 신진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형태의 전시는 기관마다 상이하지만, 대개 공모제 혹은 추천제로 이뤄진다. 공모제가 지원자 중에 선택된 소수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추천제는 말 그대로 공인된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니, 방식상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실상 “간택된” 자가 누리는 기회의 독점과 선??/??후배라는 위계에 내재된 배타성은 불가피하다. 하이트컬렉션이 지난 4년간 선보인 젊은 작가 연례전은, 이쯤 들 법한 추천제를 둘러싼 관객의 궁금증에 대해 기획자 스스로가 다시금 입장을 밝혀두었다. 그는 이 전시가 구조상의 추천제 너머, “추천인-피추천인의 관계에서 감지되는 작업의 상관관계나 미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 역시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기획을 익숙한 추천 구조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테고, 일종의 메타 기획의 차원으로 바라보면 전시를 둘러싼 더 풍부한 시선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트컬렉션 측은 매해 추천인 작가를 선정하는 기획자의 기준점과 더불어 전시 키워드를 제시한다. 2014년 〈미래가 끝났을 때〉가 매체의 구분 없이 동시대 젊은이들의 “우울한 현재가 미술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파악했다면 2015년 〈두렵지만 황홀한〉은 매체를 회화로 한정했고, 지난해 〈언더 마이 스킨〉에선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가”를 추천인으로 선정해 그들이 추천한 젊은 작가들에게서 역시 유사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추천인(권경환, 권오상, 우순옥, 이주요, 정희승)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참여작가들(강희정, 김세은, 노혜리, 박천욱, 서정빈, 이준용, 장종완, 전명은, 한우리, 황효덕)은 그 어느 해보다 매체에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든다. 추천인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매체에 대한 자기 확장과 변주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기성 작가들의 개별적 특성은, 곧 그들이 추천한 ‘다음’ 세대 작가들의 특징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여기에 기획자는 전시를 포괄하는 키워드를 미래를 둘러싼 몇 가지 태도로 세분해 “또 다른 날(새로운 날), 반복적인 하루(똑같은 날), 자신과 타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여러 가지 기회(또는 외면)” 등으로 상정했다. 미래라는 낱말이 지시하는 가능성, 앞날, 다음 단계와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보단 그를 둘러싼 이면(裏面)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작가들의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자기 인식이다.
가령, 서정빈은 전통 조각의 재료적 속성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고자 건담 프라모델의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작업에 대입해 조각의 내부 구조와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이러한 일종의 자가 응용은 조각 매체에 대한 고민을 담으면서 동시에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 같다. 김세은 역시 추상회화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확대??/??응시하는 방식을 구축하는데,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은 “그리는 대상을 향해 스스로 움직”임으로써 추상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전명은은 찍는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사진 안에 상이한 매체와 감각 등 ‘다른 세계’를 끌어들이고, 이는 곧 사진 매체 자체를 향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황효덕은 작업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변형하거나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물리적, 정서적, 신체적 영향 관계 속에서 작업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비물질적인 상태나 현상, 그에 따르는 불가능한 상상을 물리적인 조건 안에서 구체화하는 일이다. 이준용 역시 드로잉을 선택하게 한 자신의 물적 토대와 이에서 비롯한 특유의 테크닉을 발굴하는데, 이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대한 작가의 불가피한 반응임과 동시에 저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하는 저항, 곧 “상상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지면 관계상 일부 작가의 작업에 한정해 거칠게 살펴봤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 작업에선 개념이나 내용보다 매체 자체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전유와 이종(異種) 혼합 그리고 자신의 감각과 행위에 집중하는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매체 사용과 그 전환은, 추천인 세대의 매체적 관심과는 분명 다르다. 매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 ‘이면’에 참여작가들은 모순된 상황 속에서 절단된 파편들을 접합하면서 연결과 어긋남, 전환과 전복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유희한다. 그렇게 자신이 고안하고 재구성한 장치나 도구들을 작업을 위한 파편이자 요소로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술 안에서 하나의 경향을 이루는, “핵심으로 가지 않고 에둘러가는” 형식적인 태도는, 다소 멜랑콜리한 이 전시 제목을 상기시킨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꽃잎의 홀짝에 기대는” 행위는, 절실한 바람을 담고 있으면서 그 선택을 우연에 맡긴다는 점에서 일견 체념적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자기 불확신은 더 이상 앞날을 내다보며 삶을 기획할 수 없는 시대에 주술과도 같은 연약한 희망에 기대려는 정서적인 생존 전략이 아닐까. 미래(未來)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의 미술하기는 부재하는 내일이 아니라 충실한 현재를 뒤섞으며 펼쳐지고 도약한다.

위 박천욱 〈주체롭게 자라다 2〉 화분, 인공식물, 의자, 전등, water aperture 170×150×90cm 2017

CRITIC 윤동천 일상_의 Ordinary

4.12~5.14 금호미술관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왠지 윤동천의 전시를 다시 보는 리뷰에는 다른 미술사학자나 비평가가 쓴 문장을 끌어오고 싶은 충동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보리스 그로이스 (Boris Groys)가 쓴 ‘예술의 진리(The Truth of Art)’에 적혀 있는, 예술이 삶을 보다 나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오래된 문구를 꺼내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대신 나는 작가가 전시장에 올려놓은 여러 개의 질문과 샘플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축이 ‘질문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본다. 작가는 30년 넘게 현대미술을 하는 자신의 입장을 ‘질문하는 자’로 일관성있게 끌어온다. 동시에 일상의 사물들을 연장 삼아 미술 작품을 가지치기 한다. 거대한 사이즈와 색면 등 현대미술의 외양을 관습적으로 두르는 것으로서 관습을 파기하는 작품, 신발과 밧줄 같은 일상의 사물을 전시장 좌대 안에 결박시킨 작품들은 한 사람이 하지 않은 것 같은 여러 개의 미술적 자아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와 미술이 단일한 주체임을 넘어서 여러 개의, 최대한 많은, 눈앞에 공존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매개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읽힌다. 각종 미술담론에 부합하는 외양 안에 ‘미술적인 것’을 위반하고자 하는 내면을 가진 윤동천의 작업들은 한 작가의 미술보다 ‘일상’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현대미술에 관한 독특한 학습법을 제안하는 텍스트 북이나 도판 같기도 하다.
작가는 먼저 도대체 삶과 부합하는 미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자기회기적이거나 자기반영적이지 않다. 대신 너무 많은 일상의 사물, 삶, 사회적 사건, 개인의 스마트폰에 깃든 기억들이 건조하게, 마치 시치미떼듯 전시장에 등장한다. 정확히 말해 전시장에 있는 그것들은 세속성이 아닌 범속성으로서의 예술이다. 윤동천의 개인전은 여러 개의 질문과 시간을 거닐며 타인들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선언처럼 “일상은 모두에게 공유되어 특별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는, 1987년에 그가 쓴 문장이 붙어있다. 한편 전시장 종착지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Q. 살면서 가장 감동스러웠을 때는?’이라는 질문에 덜 다듬어진 목소리로 내뱉는 이름 모를 이들의 목소리다. 목소리는 어떤 미술 재료보다 날것 상태로 들어와 있다. 작가는 여러 개의 Q를 자신의 작업을 통해 세계에 던진다. 작가가 타인에게 이렇게 난해한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무엇일까. 재기발랄하고 위트 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작가는 지금 세계를 올려다보고 또 내려다보는 악동일까 천사일까, 일상을 믿는 것일까. 배반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노란 방에 있는 노란 리본과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등의 사물, 그리고 〈위대한 퍼포먼스〉라고 명명된 한국 현대사를 구성한 강력한 정치사회적 증거들은 작가 윤동천이 본 집단 이미지이자 일상에서 집단의 삶을 가시화하는 역사가 되었다.
이 역사 앞에서 감각을 동원하려면 관람자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윤동천의 질문이 몸을 갖게 되는 것은 먼저 30년에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작가가 ‘일상’이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한 것에서 획득되는 시간성이다. 미술로 삶에 대해 질문해온 역사가 작가의 작업 안에서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을 채우는 작업들을 보노라면 연쇄 작용처럼 사물과 사물, 질문과 질문, 연결어미와 어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테면 관람자로서 이런 유의 말장난, 미술하는 일상은 일상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작가가 다루는 일상의 바운더리는 거의 모든 것에 가깝다. 윤동천은 의도적으로 작업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은 채 ‘거의 모든 것’으로 확장하고 수용하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지속성과 확장성을 추구한다. 둘째 작업 과정과 선택의 방식을 그대로 작품 표면에 위치시켜 첫 번째 관객인 작가 자신과 관람객, 미술제도에 내보이는 투명성이 돋보인다. 〈길에서??????-????흘리다 연작〉(2016), 〈길에서-껌자국 연작〉(2016)은 작가의 내적 동기와 규칙에 의해 제작되는 추상회화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제목이 이것은 일상에서 ‘생산’되었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흘린 것이고 껌자국인 것이다. 이일상의 단면을 미술로 내건 것은 작가지만, 만든 것은 삶이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아크릴릭은 〈우리-얽히다/고무줄 드로잉 1〉이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어떻게 봐야 할까? 이 두 단어 사이에 놓인 빗금(/)은 작가에게, 미술로 자신을 기만하거나 사기치지 않으려는, 불가능에 대한 군더더기 없고 매우 담백한 선언인 듯하다.
그의 전시에는 질문만큼이나 답변 또한 존재한다. 한 켠에는 작가가 200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연 개인전에서 관람객에게 제공한 설문지가 놓여있다. 설문보다는 선문답에 가까운 내용이 담긴 이 하얀 종이들은 작가가 흑백사진으로 보여준 자신의 작업실(〈산실??-???문호리 54???-????4〉) 틈 어딘가에 자리하였던 것일 테다. 윤동천의 예술하기는 일상의 사물과 사건을 재료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예술 자체가 일상의 재료가 된다. 재료는 일상을 여백없이 꽉 채운다. 계속 질문하고 답하느라 미술을 뺀 다른 일상이 없을 것만 같다. 예술보다 일상이 보다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전시장 지하 1층에서부터 3층까지를 채우고 있다. 전시장 전관을 둘러보는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개개의 작업들이 전관을 꽉 채우고 있으면서도 ‘꽉 찬 텅빔’을 느끼게 하는 힘의 정체다. 대한민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린 각종 사물들이 유기견처럼 좌대 위에 올라와있는데, 여기에는 서정도 서사도 없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그물과 같다. 거대한, 끝없이 물결치는 파도 위에 몸을 튼 그물처럼 계속 이어져 반복된다. 보기에 편한 것만은 아니다. 촛불집회를 위대한 퍼포먼스로 부르는 데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물이 대상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듯, 윤동천의 질문은 관람객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들을 질문의 범위 안으로 포섭한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심각한 것들이 아닌, 너덜해진 일상의 겉옷을 입은 여러 가지 샘플들이 작가가 꺼내놓은 “일상(Ordinary)” 제제에 포괄되고 윤동천의 헛되지 않은 기대를 품는다. 미술을 잘 사용한 한 예로 꼬마 아이가 그린 그림 몇 점이 액자에 담겨있다. 종이 편지봉투 안에 가가호호 사람 넷이 손잡고 웃는 얼굴들이 그려진 그림.

위  윤동천 〈염치〉 캔버스에 혼합재료 193.9×259.1cm 2017

CRITIC 권혁 Controlled and Uncontrolled

4.7~29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오세원 |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권혁은 사유의 운동 “에너지(기??/???氣)”를 흔적으로 남기는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 그리고 우연과 필연에 응하는 통제와 비통제(controlled and uncontrolled)간 긴장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거대하여 유의미하거나 또는 미세하여 미비하거나 할 것 없이 생명에너지의 움직임 또는 흐름을 비정형의 물로 형상화하고, 자유로운 증식과 무질서의 질서를 재봉노동을 통해 실의 흔적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평면 위의 유동적이며 수용 가능한 물 형상은 퍼짐과 머금음이라는 긴장을, 재봉노동이 생산하는 반복과 차이는 드로잉 작업으로 물화한다. 이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념산수화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폭포 같기도 하며,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파도의 한복판 같기도 하다. 이렇듯 화면 안의 동적인 붓질과 스티치는 보는 이에게 형상에 대한 몰입감과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실의 겹침·재질감 넘치는 페인팅과 함께 휴먼사이즈를 넘는 화면의 규모 속에, 오랫동안 훈련된 작가는 기술적 완숙이라는 외연에 더해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 만드는 환경, 환경에 영향 받는 생명의 상호작용 원리를 탐색하는 내연적 깊이를 담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작가가 사용하는 실은 일반적이지 않은, 얇지만 견고한 특수자수 실인데, 이는 엄청난 반복노동에 의해서 미묘한 차이들을 생산해낸다. 외유내강의 바늘과 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존재감과 함께 봉합 과정에서 남겨지는 자수와 실오라기 같은 잔여물의 의미들은 이분법적 긴장으로 통합할 수 없는 주변의 모습과 다시 통합하려는 지속적인 운동 에너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사물을 분리하는 칼과는 달리 꿰매고 봉합하여 세상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이득이 되는 바늘과 실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품에 젠더적 의미를 더해, 소수자를 대변하는 페미니즘적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이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생대 시리즈나, 한때 성형이라는 폭발적 유행 현상에 대한 부자유함을 고발한 영상에서 작업의 맥락적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상력이 사라진 사회 현실에서 반복의 견고함과 화면의 미세한 흩날림을 통해 영겁의 시간과 봉제노동이 전하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탈소외적 노동이라는 창조적 예술작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간소외를 해체하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권혁의 노동집약적 작업은 차이를 통해 생존하는 동시대 미술환경에서“다시 노동”이라는, 《다시, 그림이다》(마틴 게이퍼드, 디자인하우스, 2012)라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무질서의 질서, 자유로운 구속의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로 사고를 확장하여 살펴본 생명의 본질과 근본에로의 환원은 작가의 오랜 인상주의적 시각실험과 함께 국가·인종·젠더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 실험에 의해서이다. 다양한 사회문화와 개별자 간의 인식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회의는 불변하는 본질 탐구에 나서는 도화선이 된다. 작가는 밀레니엄 초부터 다양한 현상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 작가는 매우 강렬하여 눈이 부신 반짝임에 매료되어 특수 필름지로 유사 햇빛(사람 크기의 둥근 원판)을 만들었다. 휴먼사이즈 원판을 들고 세계 각국의 거리로 나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움직이다 프로젝트〉(2005?~2006)를 진행했다. 또한 우리나라 화려한 전통 문양을 작은 조각보 형식의 작품으로 만들어 온·오프라인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문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나누다 프로젝트〉(2008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결과물 전시)를 기획했다. 문화, 언어, 사고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수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에 집착한 행위들은 최근 본질에 대한 물음과 함께 드로잉과 자수페인팅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본질, 삶, 생명에 대한 ‘구도자’(사루비아다방의 이관훈 “2014년 권혁개인전 서문에서”)적 물음은 미술사적 문맥과 함께 역사성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상징하는 유동적인 물 페인팅과 함께 다양한 숨의 양태를 통해 인간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삼라만상 우주의 원리들을 카오스모스(Chaosmos: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로, 구 천년 역사의 책)와 보이지 않지만 절대성을 가진 진리를 우주 수학의 원전인 천부경에서 속에서 찾아나가고 있다. 작품의 물질화·자본화에 비판적 잣대를 들어대었던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의 맥락과 같이 작가는 풍선과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숨을 물리적으로 잡아두어 다양한 생명의 양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생명-숨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얇지만 견고하고 단단한 꿰맴 노동의 미학 속에서 작업을 대하는 중견작가의 진지하고 원숙한 태도와 함께 끊임없는 존재론적 철학적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 권혁 〈카오스모스 R255〉(왼쪽) 천에 아크릴, 실스티치 145×235cm 2016~2017〈숨〉(오른쪽) 실, 혼합재료 (각)20×15×30cm 2016~2017

REVIEW

김선희 개인전
4.12~17 가나아트스페이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다양한 제품 디자인 경력을 쌓은 작가는 스스로를 ‘꿈꾸는 소녀’로 칭하며 작업한다. 긍정적 자아를 희망적으로 표현하는 화면이 관람객의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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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형

손진형 개인전
4.5~10 갤러리 가나

‘Arete horse(기린(麒麟)을 꿈꾸다)’를 전시타이틀로 한 개인전. 다양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주는 작가의 캔버스를 통해 무한의 자유를 꿈꾸는 욕망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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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김강

윤미경 개인전
4.16~22 모자이크갤러리

나무와 돌, 꽃 등이 담긴 풍경을 통해 치유의 힘을 얻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작업을 선보인 전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우리 인생처럼 자연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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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김강

김성은 개인전
4.11~16 봉산문화회관

‘Hello, Little Buddha’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전시명이 암시하듯 불교적 색채 가득한 화면을 보여준다. 해맑은 얼굴의 동자승의 순수함을  색채로 극대화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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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성김강

강규성 개인전
3.27~4.15 비디갤러리

필묵을 통해 자유로운 유희와 만남을 은유하는 작가의 개인전. 이에 작가는 형상성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탐색 끝에 시적 감수성이 충만한 생동감 있는 화면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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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하미

윤희철 개인전
3.17~5.10 오대산 밀브릿지갤러리

펜드로잉을 하는 작가는 현재 《경향신문》에 ‘윤희철의 건축스케치’를 연재하고 있다. 그가 여행하면서 만난 장소가 세밀한 펜에 의해 구현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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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석하미

서홍석 개인전
3.29~4.4 가나인사아트센터

‘불이(不二)’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두꺼운 표면에 다소 거친 질감이 보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한 생동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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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찬서금

나윤찬 개인전
3.29~4.3 갤러리 라메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간을 표현하는 작가는 몇 가지로 제한된 색채를 활용하여 화면을 채운다. 이에 극단적인 평면성이 강조되며 동시에 대상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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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김강

최승윤 개인전
3.9~4.30 로쉬아트홀

‘순간의 단면’으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은 동명의 연작으로 구성됐다. 캔버스 위에 꽃을 피우는 듯한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는 전시 개막일에 라이브페인팅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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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하미

이경희 개인전
3.29~4.11 가나인사아트센터

실과 핀의 규칙적인 반복을 통해 비시각적이고 오로지 촉각으로만 감지되는 바람을 생성해내는 작업을 선보인 작가의 개인전. 이를 통해 바람이 만드는 질서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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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걸

안준걸 개인전
3.22~28 경인미술관

고향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 부제는 ‘사과나무가 보낸 시간’이다. 자신을 키워낸 부모에 대한 존경을 사과나무에 투영해 표현했다.

PRIVIEW

do it 2017, 서울
4.28~7.9 일민미술관

1993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국제적 작가들이 직접 쓴 작업 지시문들을 9개국 언어로 번역해 출간하면서 시작된 전시플랫폼 〈do it〉을 2017년 서울 버전으로 재창안한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모든 참여자 각자에 의해 새롭게 개인화된 ‘do It 지시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즐기고, 대화하고, 행동하고,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로 활성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피에르 위그, 올라퍼 엘리아슨 등 국제적인 예술가 44명의 지시문으로 이루어졌으며 국내 작가 20여 팀과 아마추어 공모단의 협업으로 대중의 참여 시도한다.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는 즉흥적 변주를 통해 도시의 다양한 이슈, 사람, 일상적 삶을 예술 공간으로 이끌며, 예술을 통한 자유로운 대화의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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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석

박고석과 산
4.25~5.23 현대화랑

박고석 탄생 100주년 기념전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집약해 보여준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박고석의 작품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감상의 시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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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종-에르메스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5.20~7.23 아뜰리에 에르메스

“예술보다 더 흥미로운 삶으로서의 예술”을 제안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창작 열정에 동참해온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10년간의 활동을 재조망하고 향후 방향을 가늠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가 참여한다.
박길종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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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이미지_김인숙, 리얼웨딩, 배우들 #2, 2010, 디지털 C 프린트, 110x168cm

가족리포트
4.28~7.9 경기도미술관

가정의 달을 맞아 한국과 중국 작가들의 ‘가족’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 56점을 모았다. 김영글 김인숙 박경근 배종헌 옵티컬 레이스 윤정미 이소영 이은우 조동환+조해준 주세균 지지수 샤오이농+무천 심치인 찬하우춘이 ‘공존’, ‘대화’, ‘무게’, ‘좌표’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 가족의 현주소를 조망한다. 이들은 이번 전시는 드로잉, 회화, 사진, 오브제,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통해 작가이기 이전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바라본 ‘가족 보고서’를 선보인다. 급격한 사회 변화로 구성 형태는 변해가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가족의 근원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바쁜 일상 속에서 잊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과 근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김인숙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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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원

원성원
5.11~6.25 아라리오갤러리

정교한 사진 콜라주 작업을 통해 비현실적 상상을 현실처럼 구현하는 원성원 작가의 개인전. 수백 단계의 레이어를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초현실적 미장센을 창조하는 작가의 신작 사진 7점 및 드로잉 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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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운

정승운
4.22~5.21 갤러리 소소

다양한 상황과 장소의 풍경을 여러 매체로 표현하는 정승운의 개인전 <공제선_무명>. 이번 전시에서는 실에 유화물감을 입히고 공간에 드리운 작품을 통해 재료, 공간, 시간 사이의 긴밀한 관계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회화의 경계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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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43_2061 0001

아라비아의 길
5.9~8.27 국립중앙박물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기원전 4천년 즈음에 제작된 인간 모양의 돌 조각 부터 이슬람의 성지 메카의 카바 신전을 장식했던 거대한 문을 아우르는 466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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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

사타
5.2~28 갤러리 룩스

부주의한 사고로 손실된 사진-이미지에 대한 자책감과 상실감에서 시작된 전시 . 이번 개인전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조각난 기억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어떤 형상을 이루는지 추적하고 돔의 형태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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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전시다시보기AS_설치중

끝난 전시 다시 보기 A/S
4.18~5.7 서교예술실험센터

기록물을 통해 지나간 전시를 다시 한 번 소개한다. 도록, 리플렛, 포스터, 엽서 등을 통해 199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 이루어진 전시를 한자리에 모아 다시 보는 기획전으로 공개 모집에 응한 120여 팀의 작가와 문화예술 공간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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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백

김원백
5.13~27 부산 미광화랑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칼로 오리고 가위로 잘라 캔버스틀 위에 쌓아올려 고정시켜서 작업을 진행하는 김원백의 개인전. 오리고 겹쳐진 선과 면이 파생시키는 새로운 선과 면을 통해 자유로움 속에 유현한 질서가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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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정정엽
5.2~31 트렁크갤러리

‘붉은 콩’으로 1990년대부터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던 정정엽이 이제는 광장의 촛불로, 민중으로, 함성으로, 분명한 의사를 토해내는 대중의 함성 그 흐름을 물결로 재현한다. 잔잔하고 소소하던 느낌의 군집이 거대한 위엄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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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평-자하

하늘본풀이
4.14~6.4 자하미술관

하늘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김미란 양희아 최수연 성능경 현지예 주재환 김월식 양아치 최윤 김태준 달라이바트르 강영민 김지평 최중낙 이소영이 모여 “하늘” 관념을 하나의 본풀이로 풀어낸다. 김지평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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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

시간 속의 강
5.10~29 사진·미술대안공간 SPACE22

6·25전쟁 이후 서울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광경을 독보적 시각으로 담아낸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가 남긴 작품 중 한강을 중심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은 흑백사진 58점을 공개하며 동명의 사진집 출판기념회를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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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희

홍경희
5.10~22 최정아갤러리

‘선’을 통한 힘의 집약과 그 사이로 공기, 시선, 바람들이 흐르며 통과하는 공간을 형성하는 작품 ‘_____’ 시리즈를 선보인다. 작가는 하나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유려하고 날렵한 선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더욱 유연해진 조형미를 담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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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헤윰_Pole_Vault_장대높이뛰기_2017_캔버스에_아~

배헤윰
5.17~6.16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정지된 화면에 ‘운동 이미지’를 구현하는 배헤윰의 개인전. 작가는 물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사유 행위, 언어 활동, 시간의 흐름을 포함한 움직임을 담아내며 회화의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통해 다른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수용하고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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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김상진

우연히도 다시, 밤
4.19~6.28 청주 우민아트센터

2017주제기획 <우연히도 다시, 밤>은 울리포 그룹의 실험 사례에서 착안한 전시로, 6명의 작가 김상진 안경수 안정주 이은우 장보윤 정재호의 작업을 통해 불확실성의 시대적 ‘제약’을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김상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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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갤러리

마음이 시키는 일 3
5.17~6.3 이유진갤러리

스위스의 디자이너 겸 컬렉터인 루돌프 뤼에그와 협업하여 진행되는 전시. 국경과 언어, 장르를 넘어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가구와 회화, 조각, 드로잉을 통해 미니멀한 감각을 전달하는 예술작품들이 어우러진 시적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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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빈

전소빈
5.19~25 혜화아트센터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단아와 단순’, ‘비움과 절제’의 미를 화면에 담아내는 전소빈의 개인전. 빼어난 색채감각으로 현대인의 생활공간에 잘 어울리는 품위 있는 휴식공간을 마주하는 느낌의 민화를 통해 함축적이고 은근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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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놈

아트놈
5.18~6.15 갤러리 조은

만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풍으로 익숙한 아트놈의 개인전. 전통민화와 현대적인 캐릭터가 어우러진 화면을 통해 경쾌하고 친숙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발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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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_투명한숲_확대_컷

장준석
5.15~6.10 대구 갤러리 분도

‘꽃’이라는 글자를 입체로 바꾸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장준석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숲’이라는 글자를 전면에 내세워 문자가 가지는 저마다의 도형적인 특성과 아름다움을 풀어내며 미의 체계를 자신과 사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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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호

윤양호
5.10~16 가나인사아트센터

예술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하나로 생각하는 윤양호의 개인전. 작가는 지극히 단순한 선과 색으로 명료한 형상을 그려내며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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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이기영
5.3~6.4 갤러리 밈

먹으로 그린 대상을 지우고 비워내는 행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과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이기영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 묵직한 붓터치들이 만나고, 스미고, 서로 얽힌 이미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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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성

최무성
5.9~15 한가람갤러리

아름다운 결을 지닌 나무를 캔버스 삼아 뜨겁게 달군 인두로 지져 형상을 나타내는 작업을 진행하는 최무성의 개인전. 작가 스스로 이번 전시를 “kitch and camp” 로 정의하며 세월의 흔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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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숙

김봉숙
5.17~23 토포하우스

자연의 모습을 직시하고 생동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빠른 필선과 고조된 색으로 표현하는 김봉숙의 개인전. 화면을 통해 계절의 감각 또는 자연의 감흥을 풍부하게 실어내며 숲, 나무를 미의 수원지(水源池)로 탈바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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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룡

박기룡
5.17~23 토포하우스

반입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박기룡의 개인전. 작가는 깎고, 바르고, 그리는 복잡한 작업 과정을 반복하면서 “花, 人, 景” 을 주제로 많은 사람이 세상에 아름다운 곳과 꽃들만 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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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이종혁
5.20~30 광명 꿈의 정원

작업의 초점은 자연의 하모니다. 즉 자연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는 이종혁의 개인전. 작가는 노래하고 춤추는 자연물을 화면 가득 담아 관람자를 행복한 꿈의 정원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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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경

장진경
5.2~30 대전 갤러리C

작가는 지도를 분해하였다가 다시 이어 붙이고, 문자를 해체하였다가 재조립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도와 문자는 고유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묘한 생경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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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

권오신
5.9~20 갤러리 파비욘드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화려한 상상을 꿈꾸지만 그것이 녹록치않은 현실에서 배회한다. 이 같은 상황을 슈베르트 교향곡 제5번 B장조 D.458곡에서 받은 영감으로 표현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모험의 여행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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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경

금경
5.1~31 창원 대산미술관

비대상적이고 비형상적인 화면에 오로지 색과 붓이 지나간 움직임만 드러내는 금경의 개인전. 작가는 〈지랄발광(發光)〉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통해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이끄는대로 화면을 구성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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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신철
4.28~5.23 부산 갤러리 조이

작가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랑의 감정들을 한 화면에 표현한다. 그림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며 사랑, 이별, 고독, 슬픔, 용서, 상념, 행복, 연민, 추억 같은 내면의 감성을 담은 사랑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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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

김세한
5.15~29 N갤러리

도심 야경의 네온사인과 고층빌딩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불빛을 캔버스에 담는 김세한의 개인전. 에서 인공불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인간에 내재된 어둠의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한 시각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REGIONAL NEWS

부산
당신의 감각
〈정복수의 부산시절〉 4.20~5.10 부산 미광화랑

부산의 근현대 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꾸려온 미광화랑에서 정복수의 회화 48점이 전시된다. 1970년대의 자화상, 풍경, 여인, 에스키스 등 초기작업을 위주로 근작도 소량 출품되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 작가는 17세였다. 이쯤 되면 왠지 요즘에는 쉬이 언급하지 않는 ‘천재적인 작가’ 운운하며 예술가를 신화화하는 문장을 이어갈 것 같지 않은가? 아니다. 그러나 정복수의 회화는 분명 탁월하다. 20대 초반의 감성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일궈왔다는 게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자화상부터 타자들의 형상까지 정복수의 인간 그림에 대한 천착은 그 자체로 철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그림에서 우울과 그로테스크는 부차적인 감성으로 남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드러난다. 부산의 형상미술과의 연계성,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명확한 개별성 등 그를 조명해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려야 살 수 있었던 사람’ 작가 정복수의 감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수지 독립큐레이터, 《비아트》 에디터

위 정복수 〈남자와 눈〉 캔버스에 유채 41.3×32.3cm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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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
물방울이 모여 강이 되기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3.8~6.11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는 개관전에 이은 첫 번째 기획전시가 한창이다. 김혜순의 시에서 차용한 전시 타이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은 태초 이래로 인간의 삶과 깊게 관계해 온 ‘물’에서 비롯됐다. 제1전시실에서는 김창열의 작품으로 구성된 상설전이,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에서는 작가 10명의 작품 19점으로 구성된 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기획전시실로 가는 복도에서 가장 먼저 부지현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검정거울, 제주 현무암의 색을 보여주는 수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먹물의 위로 투영된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균형&불균형〉은 기획전의 시작을 알린다. 2전시실에서는 5개의 LDE TV를 통해 흐르는 이이남의 〈박연폭포〉, 빌 비올라의 〈세 여자(Three women)〉, 제주 해안가의 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문창배의 〈시간-이미지〉, 오브제들이 물에 잠겨 있는 듯한 공간을 연출한 한경우의 〈그린 하우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3전시실에 들어서면 눈과 비를 맞는 부처의 모습을 담은 백남준의 〈TV 부처〉와 이강소의 〈청명〉 시리즈, 사진과 비디오를 결합해 창문 유리에 비치는 바다를 보여주는 임창민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 ‘물’은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를 넘어 사유와 통찰의 대상이 됐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의 예술세계와 인문적 요소의 접점에 있는 ‘물’을 키워드로 삼아 도내·외는 물론 외국 작가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물방울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셈이다.
이승미 미술사

위 이강민 〈into a time frame morning in Jeju〉 피그먼트 프린트,LED모니터 108×72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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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타지 메이커스 : 패션과 예술〉 2.28~5.28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은 2017년 첫 전시로 순수미술과 패션분야를 접목한 〈판타지 메이커스_패션과 예술〉을 선보였다. ‘판타지 메이커스’는 ‘환상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데, 패션과 예술은 환상(판타지)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기획됐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을 꿈과 무의식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로 이끈다. 대표적으로 미술관 1층 어미홀에 설치된 프랑스 출신 피에르 파브르의 대형 설치작품이 감탄을 자아낸다. 이 작품 외에 흑연과 유화물감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에나 스완시,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사진 연작을 선보이는 김주연, 옷을 소재로 인간과 자본주의의 사회적 문제를 시사한 배준성, 서양사회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배찬효, 환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을 구현하는 이선규, 참여미술 방식의 설치물을 제작한 김정혜, 나비 실루엣을 작업에 접목한 서휘진, 전통 복식형태를 재해석하는 이수현, 인체의 모습을 옷이라는 매개체로 다양하게 해석한 정재선, 가죽의 특성을 살린 작업을 하는 한현재 등 총 13명의 작가를 초청해 패션분야에서 작품으로 불리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의상과 순수예술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예술의 대중성에 다가가고자 한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과 예술, 두 영역이 추구하는 순수한 창조성 그리고 인간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요소들을 발견한다면 인간 내면의 상상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경계가 모호해진 융·복합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패션과 예술뿐만이 아니라, 두 분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협업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매체와 기법으로 활용하는 융복합 시대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정미 대구예술발전소 주임

위 피에르 파브르 〈색울림〉 혼합재료 1800×4000×140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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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DSC

광주
희망이 발산하는 어떤 지점
〈어떤, 지점〉 3.28~4.9 발산마을 뽕뽕브릿지

노후 주택이 밀집한 도심 언덕의 변두리 마을을 가리켜 달동네라고 부른다. 생활고에 쫓겨 척박한 산동네에 삶의 터전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에겐 저마다 삶의 애환이 있다. 반백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는 원주민들이 떠나고 동력을 잃어가는 마을. 하지만 광주의 달동네 발산마을에 젊은 예술가들이 정착하는 최근의 현상은 흥미롭다. 값비싼 작업실 월세 폭탄을 피해 온 작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쇠락해가는 마을을 생동하는 젊음의 열기로 메워나가고 있다. 발산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은 공유공간 뽕뽕브릿지(space ppong)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다. 방치된 폐가 창고를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꾸민 이 공간을 거점으로 국내 · 외 작가들은 마을에 일정기간 체류하며 보고 느낀 바를 작품에 담고, 그 결과물을 전시로 남긴다. 이번 전시에는 마을에 4개월째 거주하며 작업 중인 두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일본 국적의 시아바시 료타는 무등산, 월출산의 이미지를 포개 거대한 운석덩어리로 치환했고, 이세현은 어떤 동일한 장소(spot)를 수차례 찍은 기록을 캔버스에 옮겨 중첩되는 시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장소와 시간의 의미를 포착한 두 작가의 작품을 생각하며 마을을 산책하니, 오랜 세월을 교차해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된 원주민과 젊은 작가들의 어색한 동거가 마냥 신기하고 반갑다.
이부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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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주
신작에 주목하라!
〈플랫폼(PLATFORM)-2017〉

지난 3월 ‘Canvas 뛰쳐나오기’라는 주제의 참신한 전시로 주목 받은 갤러리 숨에서 이번에는 기획초대전 〈플랫폼(PLATFORM)-2017〉을 개최하고 있다. 4월부터 7월까지 1명당 2주씩 총 14주 동안 작가 7명의 신작을 공개하는 전시로, 신작에 주목하는 이번 시리즈는 2013년부터 시작하여 5년째를 맞았다.

올해에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김수진, 박지예, 최수미, 정하람, 이홍규, 김성수, 탁영환 등 7명의 작가가 아껴온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첫 테이프는 4월 3일부터 4월 15일까지 ‘견고한 집’이란 주제의 전시를 구성한 김수진이 끊었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흔들리는 집, 흔들리는 마음, 흔들리는 관계로는 신뢰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 바통을 이어받은 작가는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옆집 여인 2’란 주제로 작품세계를 펼치는 박지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웃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여러 감정과 삶이 미묘하게 드러나도록 인물에 집중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여성이며 곧 나를 포함한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이며 때론 직장의 동료이다. 몽환적인 신비감과 아름다운 몸을 반추상적으로 드러낸 형상은 에로틱한 제스처와 감정을 동시에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최수미의 〈숨 숲 삶〉(5.8~20), 정하람의 〈Personactor〉(5.22~6.3), 이홍규의 〈내 마음의 풍경〉(6.5~17), 김성수의 〈탑승자들〉(6.19~7.1), 탁영환의 〈미디어파사드로 공간읽기〉(7.3~15)로 이어져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양승수 소리문화의전당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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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2)

대전
이응노의 뜰에서 만난 동아시아의 현대적 콜라주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 기호와 오브제〉 4.11~6.18 이응노미술관

‘기호와 오브제’는 오늘날 서구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주요한 키워드이다.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어떻게 현대회화의 기호와 오브제를 동아시아적 정체성으로 녹여냈는지에 주목한 전시가 최근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응노의 〈콜라주〉(1962)를 기점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지의 작가 5명이 발전시킨 또 다른 모더니즘(Alter Modernism)이 무엇인지를 조명하고자 한 전시이다. 량취안의 작품 〈차의 바다 2008-1〉는 먹을 대신해 찻물과 잉크가 종이 위에서 조우하는 우연성의 미학을 발견케 한다. 대만 작가 양스즈의 〈우뚝 솟은 산석〉은 먹과 잉크, 마와 한지를 사용한 콜라주로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이 어떤 이유도 없이 흘러내리고 자기들끼리 대화하며 춤추는 그림이다. 마쓰오 에이타로의 〈Two holes〉는 패널에 태운 종이와 안료를 콜라주한 작업을 선보이는데 종이를 찢는 행위 자체가 내면의 기호이자 평면을 넘어서는 물성의 오브제로 작동한다. 양광자의 작품 역시 종이에 먹과 포스터물감을 사용함으로써 수성과 유성의 만남과 분리의 속성을 회화적 드로잉으로 승화시킨 표현주의적 작업이다. 〈제1회 고암미술상〉 수상자인 오윤석의 〈감춰진 기억-천국의 글 01〉은 캔버스에 종이를 오리고 접어내어 형을 지우면서 탈형의 형을 탄생시키는 이미지를 오묘하게 연출한다. ‘동양적인’ 것의 정체성을 담론화하고자 하는 이 ‘기호와 오브제’의 주제는 바로 지금 이응노의 뜰에서 컨템퍼러리한 공간을 열어보이고 있다.
유현주 미술평론

최예선의 달콤한 작업실 17

골목과 문장, 새파랗고 새하얀

내가 나누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책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 깨달았다.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은 물론이고 읽어야할 책도 대화 목록에 들어간다. 쓰고 있는 책과 써야 할 책에 대한 것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책이 일이자 취미이자 삶인 인간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 책 이야기가 없는 대화는 도무지 이어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읽기에 몰두하는가, 무엇이 나를 쓰게 만드는가? ‘가장 재밌고 즐거운 일이니까’ 라고 대충 대답하기엔 이 질문은 포함하는 맥락이 깊다. 읽고 쓰는 나를 규명하기 위해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것일까? 그런 재귀적인 대답이 석연찮지만 삶이란 어떤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무한 루프처럼 보이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유효한 대답이리라. 그러나, 책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든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와 세계, 나와 타인, 나와 당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과도 분명 관련이 있다. 나를 규명하는 일만큼 시간이 들고 귀찮고 한편, 근사하고 복잡한 일이 또 있을까. ‘나’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책’에 이른다. 책의 언어는 새파란 바닷물처럼 심연을 건드리고 새하얀 포말처럼 바깥을 만지게 한다. 나는 잠시 질문을 가다듬으며 해답을 유예한다.

감정에 깊은 흔적을 내는 문장을 읽고나면, 오늘의 독서는 끝난다. 그 문장 하나로 가슴이 벅차올라 더 읽어가기가 어렵다. 그럴 땐 작업실을 나와 남산을 향해 걷는다. 남산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에 자리한 해방촌은 복잡한 골목으로 치자면 서울에서 가장 손꼽힐 곳이 아닐까? 산등성이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골목길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이어질지 가보지 않고는 가늠하기 어렵다. 사방으로 뻗은 골목길은 어디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모르는 미스터리 소설의 문장처럼 보인다. 때로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아무리 노력해봐야 이 무의미의 세계에서 우리가 건질 건 하나도 없어!’라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문장을 본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래도 난해한 문장처럼 복잡한 골목은 더 많은 모험을 하라고 나를 부추긴다. 사람 사는 집은 길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건축가 남편의 믿음을 되새긴다. 그건 책 속의 문장이 사람을 외면할 리가 없다는 나의 믿음과 유사할 것이다. 낯선 골목에서 새하얀 포말이 인다. 이 골목과 나는 최초의 문장처럼 만난다.

최예선 (2)골목 가장 높은 지점에 남산순환도로인 소월길이 나온다. ‘소월’이라는 아름다운 시인의 이름이 붙은 길에 서서 ‘해방촌’이라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이름의 동네를 바라본다. 남산 아래 동네 해방촌은 일제가 물러가고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서울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곳이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산 언저리에 터를 잡았고, 그 흔적 그대로 길이 만들어지고 집이 앉혀졌다. 구불구불해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불명확한 골목을 따라 빈틈없이 집들이 들어찼다. 이 수많은 집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수십 년어치의 인생이 포개진 이불장과 옷장이 그 중심에 놓여있을 방들, 늦은 시간이 되어야 엷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조그마한 창문들. 잎사귀가 말라버린 화초가 문가와 담 아래에서 기이한 풍요로움을 알리고, 취향을 훤히 드러내는 빨랫감들이 가장 풍경 좋은 옥상에서 바람에 나부낀다. 배내옷과 보행기, 돋보기와 나무의자가 골목을 따라 돌고 도는 동네. 물건들처럼 사람들도 돌고 돈다. 용산 미군부대와 해방촌은 태생적으로 이민자들의 동네다. 골목엔 새파란 바람이 분다. 도시의 심연에선 바다처럼 짠내가 난다.

나의 산책은 길어지기 일쑤다. 해방촌 길을 따라 내려가 경리단, 이태원까지 걷기도 한다. 걷다보면 걷는 일조차 문장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되뇌인 문장과 새로 지은 문장이 만나는 곳에 새하얀 운무가 낀다. 두 세계의 대화가 목표도 없이 발설되었다가 골목에 버려진다.

산책의 마지막은 결국 서점이다. 문학 중심 서점을 표방하는 ‘고요서사’는 소설과 에세이와 잡지들이 자신만의 문장을 토해내는 곳이다. 산책하다 들른 것처럼 쓰윽 들어서긴 하지만, 실제론 그 반대다. 나는 고요서사에 오기 위해 일부러 먼 곳으로 휘돌며 걷는다. 고요서사에 들어서면 ‘제발 이 책에 대해 좀 들려줘요!’라고 말하는 듯한 갈급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책방 주인을 바라본다. 책 이야기를 귀찮아하지 않는 건 책방 주인의 미덕이다. 이야기는 어째서 우리의 호흡을 이토록 가쁘게 만들까! 작은 책방 안에 새파란 공기가 생겨나 나를 감싼다.

나는 다시 골목길로 향한다. 매번 다른 길을 걸어보지만 미지의 골목길은 여전하다. 천 갈래 만 갈래쯤 되는 것일까? 좁게 휘어진 계단을 걷다가 어떤 삶을 바라보고 누군가 흘린 문장을 주워 품 속에 담는다. 길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알아채지 못할 곳에서 스쳤다가 만나며 이어진다. 우리가 세상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되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