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베니스 비엔날레 2017 – 한국관의 코끼리 – 누가 봐도 보이는, 그러나 감히 말 못한 진실

코디최 〈Venetian Rhapsody – The Power of Bluff〉 네온, LED, 철, 캔버스, PVC 1243×1033×111cm 2016~2017 한국관 외관 전경. 마카오,라스베가스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허세를 비판하며,수잔 스트레인지의〈카지노 캐피탈리즘〉을 소환한다.

한국관의 코끼리 – 누가 봐도 보이는, 그러나 감히 말 못한 진실

이대형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앉아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코끼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코끼리가 방안에 들어오게 만든 직간접적 관계자이기 때문에 혹은 코끼리가 두려워 코끼리를 보고도 코끼리가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콘셉트에 대한 글이 아니다(전시 콘셉트 전문은 http://korean-pavilion.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대신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만난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인 배타주의, 계급주의, 그리고 파벌문화라는 비대한 코끼리에 대한 고발이다.
“중국, 홍콩, 대만은 정치적인 입장이 서로 다른지만, 예술을 논할 때만큼은 서로를 격려하고 포용하고 응원한다. 그들은 예술이 경계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다름’을 수용하는 활동으로 생각의 유연함을 끌어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한국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상대를 끌어내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난 6월 11일 저녁 베니스의 한 식당에서 미국의 저명한 미술사가가 한 말이다. 그는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한 국제학술행사 공식석상에서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 모 큐레이터가 이번 한국관을 거론하며 “감독은 상업화랑 출신이고, 전시 콘셉트는 난해하고, 작가 선정을 두고 논란이 많다. 참으로 이번 한국관 전시가 걱정스럽고 여러분께 죄송스럽다”고 한 데 대해 그/그녀의 기행을 가리켜 “마땅히 학술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자국의 동료 큐레이터와 작가들을 비방하기 바쁜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별로 놀랍지 않은 장면이다. 이와 똑같은 흠집내기는 1년 전 광주비엔날레 VIP 만찬장에서도 있었다. 당시 만찬에 참여한 해외미술 관계자 역시 “전시 내용은 보려 하지 않고, 출신성분을 따지는 한국 미술계의 시대착오적인 배타주의와 계급의식”을 비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논하는 데 미술언어가 아닌 정치언어가 동원되어야 하는가? 매번 예술감독과 작가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흑역사’는 있었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역대급 ‘흑역사’의 소설을 쓰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전시 준비 과정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언론사들의 과도한 경쟁을 틈타 의혹과 루머가 사실인 것처럼 전달되었고, 이는 곧바로 악의적인 기사가 되었다. 필자 역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다룬 페이크 뉴스로 고통스러운 2달을 보냈다. 24시간 만에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후원금이 취소되어 설치작품(베네치안 랩소디)의 40%를 덜어내야 했고,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급속도로 퍼져나간 기사는 또 다른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며 예술감독, 작가, 전시 모두에 ‘최순실’, ‘차은택’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 결과 예정되어 있던 비엔날레 특강은 취소되었고, 모 대학과 모 기관의 학술세미나 담당자로부터는 “참석이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낙인’ 효과의 위력은 지난 3월과 4월에 잡혀 있던 해외 미술매체와 글로벌 유력 매체와의 인터뷰까지 취소시켰다. 한국관을 둘러싼 악의적인 소문은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전시 준비기간 내내 “상업화랑 출신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안타깝게도 이는 조선시대 양반, 농민, 상민, 천민 계급을 연상시키는 출신성분 논란으로, 수많은 미술계 청년을 좌절시키는 구시대적 적폐의 하나이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면 미술계를 수직 계급 구조로 해석하는 그 어떠한 시도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수직적인 줄세우기, 편가르기식 문화를 극복하고, 조금 더 포용하는 문화로 바꿀 수는 없을까? 비엔날레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황금 기회를 조금 더 많은 사람과 나눌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지난 10년 이완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데 함께한 류병학, 류지연, 김노암, 유진상, 김희진, 정신영, 구경화, 안대웅, 장-루이 푸아트방(Jean Louis Poitevin), 신현진 등 10명의 큐레이터와 평론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인 지난 30년간 코디최 작가를 연구한 마이크 켈리(Mike Kelly), 데이비드 페이걸(David Pagel), 제러미 길버트-롤프(Jeremy Gilbert-Rolfe), 사울 오스트로(Saul Ostraw), 제리 살츠(Jerry Saltz),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 피터 할리(Peter Halley), 리나 야나(Reena Jana), 사라 다이아몬드(Sara Diamond), 데이비드 리마넬리(David Rimanelli), 강수미, 로렌스 리켈(Laurence Rickels)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의 평론글을 묶어 신문으로 펴낼 수 있다면 코디최, 이완 작가를 연구하려는 전 세계 학생, 큐레이터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완 작가의 10년 역사와 코디최 작가의 30년 역사를 압축 게재한 신문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관의 전시 역사와 Mr. K를 둘러싼 근대사연표를 담아낸 한국관 신문에는 미술사가 존웰치먼(John Welchman)과 큐레이터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의 작가 연구관까지 실었다. 이를 위해 2달 동안 매주 금토일 연속 ‘하루 한 시간 잠자기’에 돌입했고, 별도의 편집팀을 꾸렸다. 그렇게 탄생한 한국관 발행 신문 3종 2만 부를 통해 적어도 35명 이상의 큐레이터와 평론가의 목소리를 전 세계 미술계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김도형 디자이너와 네이버, 삼성물산과 협업해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10인을 소개하는 디자이너 가방을 기획하였다. 그 결과 한국관의 디자인 기획물들이 미국의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 라이브러리(Clark Art Institute Library)로부터 컬렉션 요청을 받는 성과도 거뒀다. 비엔날레가 예술감독과 참여작가만을 위한 전시에서 벗어나 수십여 명의 큐레이터와 평론가, 디자이너, 에디터, 번역가, 건축가 그리고 텀블벅 기금마련에 참여한 개인 후원자까지 함께 프로모션 할 수 있는 생태계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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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 Proper Time > (부분, 벽면 시계 설치작업) 668개의 시계 2017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부정확한 668개의 시계가 역설적으로 668명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 For a Better Tomorrow > (전시장 가운데 조각설치) 플라스틱 60x70x70cm 2016~2017 가짜 대리석, 가짜 브론즈, 표정을 잃어버린 가족상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오늘.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공허한 미래

드디어 5월 9일 한국관이 오픈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지키는 동시에 국가를 비판할 수 있을까?” CNN의 아마-로즈 맥나이트 아브라함(Amah-Rose McKnight-Abrams) 기자가 한국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들며 던진 질문이다. 한국에서 “난해”하다고 비판받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관점과 전시 콘셉트 “Counterbalance” 그리고 한국에서 인색한 평가를 받아온 코디최의 작품과 순수 국내파 이완의 작품에 대한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FT,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아트뉴스페이퍼, AP뉴스 등의 해외 매체에서 앞 다투어 꼭 봐야 할 전시로 평가했고, 전시장을 방문한 크리스 더컨(Chris Dercon, 전 테이트모던 관장),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 미국관 대표작가), 아담 와인버그(Adam Weinberg, 휘트니미술관 관장), 나이젤 허스트(Nigel Hurst, 사치갤러리 대표) 등 각국의 인사들은 “‘트랜스 내셔널(trans-national)’의 문제와 ‘트랜스 제너레이셔널(trans-generational)’의 문제를 교차시켜 한국?아시아?세계의 문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 매우 명쾌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잘 이해받지 못한 전시 콘셉트가 한국을 벗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에 나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전시 <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은 3가지 지정학적 관점과 3가지 세대의 관점을 결합시킨 뒤, Mr. K를 둘러싼 한국 근대사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위에 코디최와 이완을 위치시켰다. Mr. K라는 고스트를 소환하면서까지 3세대의 관점을 구성한 이유는 가족사진에 있었다. 가족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존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류의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관에서 전시의 3세대 관점을 설명하고 있으면, 나이든 유럽의 관객이 손을 들고 말한다. “우리 역시 트랜스 제너레이셔널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어요.  3대의 관점 차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발생합니다.”
이렇듯 어렵지 않게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온 전시개념이 왜 한국 미술계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못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전시내용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정치적인 프레임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트집잡고 흠집내기에 열중할까? 인맥과 친분 관계를 극복한 작가 선정을 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마추어 마리노 아우리티(Marino Auriti, 세무서 직원)의 《백과사전식 전당》(1955)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타이틀이자 메인 작품으로 섭외한 파격을 기억하는가? 미술계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면 심장, 혈액순환, 뇌, 골격, 허파, 피부, 입, 항문 등 각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을 텐데 자칭 미술계의 “주류”입장에서 바라본 오장육부는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아닌 수직적이고 배타적인 어떤 것처럼 보인다.
자, 지금 당신 눈앞에 비대하게 살찐 코끼리가 보인다. 명백하게 보이는 저 코끼리 앞에서 당신은 코끼리가 있다고 직접 말할 수 있는가?●

 

[SPEACIAL FEATURE] 베니스 비엔날레 2017 –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장나윤 | 미술사

지난 5월 13일,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기대와 관심 속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수상 도시 베니스에서 격년 단위로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명실상부 세계 최대, 최고(最古)의 미술 축제로, 미술가들과 큐레이터들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곤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진두 지휘를 맡은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Musee National d’Art Moderne?Centre Pompidou)의 수석 큐레이터로, 125년의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네 번째 여성 총감독이다. 그러나 마셀이 주목을 받은 것은 단지 그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시 개막에 앞서 발표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 직역하면 ‘만세, 예술 만세’를 뜻한다. ‘예술가와 함께하는, 예술가에 의한, 그리고 예술가를 위한’ 비엔날레를 만들겠다는 마셀 감독의 선언은 자연히 그녀를 지난 2015년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와의 비교선상에 놓이게 했다. 엔위저 감독은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라는 주제 아래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전시를 선보였으며, 이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에 직접 개입하고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반면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거나 단식 투쟁을 하는 것은(실제로 2015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가관 참여 작가는 전시의 일부로 단식 투쟁을 했다)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같은 오쿠이 식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마셀 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혼란한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최근의 국제정세를 이번 비엔날레가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두고 미술계의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마셀 감독의 ‘예술 우선주의’라는 선택은 특히나 눈길을 끌었다. 13일에 예정된 일반 공개에 앞서 VIP와 언론을 대상으로 한 사전 공개가 이루어진 지난 5월 10일, 이처럼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드디어 비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독일관의 선전 그리고 한국관의 약진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국가관 전시와 본전시, 그리고 각종 연계 전시들로 구성된다. 국가관은 총감독이 선정한 그해의 주제에 맞추어 각 국가별로 기획자 및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조직하며, 본전시는 총감독이 직접 기획한다. 전시관들은 본관과 총 29개의 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디니(Giardini) 지역 그리고 일부 국가관 전시 및 대규모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Arsenale) 지역을 중심으로 베니스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배치되어 있다. 베니스는 작은 도시이지만,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수많은 연계 전시 및 기타 갤러리, 미술관 전시들까지 모두 돌아보려면 1주일 체류로도 시간이 빠듯하다. 과연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 다운 규모다. 1995년 故김석철 건축가와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의 협업으로 지어진 한국관은 전통적 문화 강국들의 국가관이 위치한 자르디니 섬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5년 재건축된 호주관을 제외하면 자르디니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국가관으로, 이후 국가관 건립이 금지되어 자르디니에 입성하지 못한 많은 국가의 부러움을 샀다.
유력 미술 매체들은 VIP 오픈 직후 앞다투어 탑 5, 탑 10 국가관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중 미국관, 영국관, 독일관, 프랑스관, 스위스관 등 일부 국가관은 여러 매체에 주요 전시로 소개되어 눈길을 끌었다. 관객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인 미국의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미국관 건물 내부 원형홀의 벽면을 콜라주와 혼합 매체 설치를 활용하여 마치 폐허처럼 연출했다. 흑인이자 동성애자로서 인권 문제에 몰두해온 그가 자신과 같은 소수자에게 등을 돌린 오늘날의 미국을 대표해야만 하는 역설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영국관이 기획한 필리다 바로(Phyllida Barlow)의 개인전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는 지난 몇 년간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등 영국의 주요 미술관들에서 소개되며 뒤늦게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73세의 원로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재료를 쌓거나 뭉쳐서 만든 엉성한 형태의 대형 조각작품들을 설치했는데, 이 작품들은 층고가 높은 영국관 건물을 뚫고 나갈 듯한 불안한 형태로 관객을 압도하고, 그들의 동선을 방해한다. 전시 제목인 〈폴리(Folly)〉(바보스러움, 어리석음 등을 뜻한다)는 자연히 오늘날의 위태로운 영국 정치 상황을 연상하게 하지만, 전시장 어느 곳에서도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덕에 크리스틴 마셀 총감독이 선언한 ‘예술을 위한 예술(Art’s for art’s sake)’이라는 지향점에 부합하는 전시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오프닝 주간 내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끈 것은 단연 독일관이다. 수잔느 페퍼(Susanne Pfeffer)의 큐레이팅으로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파우스트’를 선보인 독일관 앞에는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는 퍼포먼스 공연을 보기 위한 인파가 연일 몰려들었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다섯 시간여 동안 퍼포머들은 건물 전체에 설치된 유리 바닥 아래 좁은 공간을 넘나들며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은 물론 자위 행위를 하는 등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들을 선보였다. 이를 유리 바닥 위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은유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타인에게 노출되기를 자청하는 오늘날 우리의 삶, 그리고 그속에서 경험하는 개인적, 사회적 단위의 갈등이다. 독일관 외부에 설치된 철창과 그 안을 어슬렁거리는 도베르만 두 마리는 전시의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에 일조했다. 세계 유수의 미술 매체들이 개막과 동시에 독일관을 호평하는 기사를 타전했으며, 결국 독일관은 최고의 국가관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관의 약진이다. 이대형 감독의 총괄 아래 코디최, 이완 작가의 2인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의 제목은 <카운터발란스: 돌과 산(Counterbalance: The Stone and the Mountain)>이다. 코디최의 작품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소화제인 형광분홍빛의 펩토비즈몰(Pepto-bismol) 3만 병과 두루마리 화장지를 섞어 만든 설치작품이다. 이민자로서, 그리고 한국의 급격한 세계화 및 서구화를 목격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극단적인 문화 충돌에 대한 ‘소화 불량’ 상태를 인상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외 언론의 찬사를 받은 또 하나의 작품은 이완의 <고유시>로, 이는 작은 방의 벽면을 668개의 시계로 채운 설치작업이다. 이완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에게 한 끼의 아침 식사에 들어가는 비용 및 그들의 노동 시간, 수입 등을 묻고, 소속 국가 GDP(국내총생산) 정보 등을 토대로 수식을 만들어 각각의 시계가 고유의 속도로 작동하도록 제작했다.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668개의 시계는 관객들로 하여금 소위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오늘날 개인에게 강요되는 삶의 속도와 그 이면에 잊힌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서로 다른 세대를 대변하는 코디최와 이완의 작품들을 통해 뻔하지 않은 변주를 선보인 한국관은 현대 한국 사회의 ‘오작동’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통, 자연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
마셀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는 ‘예술 우선주의’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자연으로의 회귀, 전통의 보존, 인간성 회복 등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다. 강력하거나 노골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은 배제되었으며, 토착문화 혹은 수공예적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두루 소개되었다. 알록달록한 색의 거대한 실뭉치들을 설치한 실라 힉스(Sheila Hicks),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위치하는 천 구조물을 벽면에 설치한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Franz Erhard Walther) 등이 좋은 예이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주변을 걸어다니며 촬영한 비디오와 관련 오브제들을 설치한 코키 타나카(Koki Tanaka)의 작품, 강물을 북처럼 두드리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마르코스 아빌라 포레로(Marcos Avila Forero)의 작품처럼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된 것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국 작가로는 미국 사회의 소수 인종, 특히 아시아인의 경험에 집중하여 공식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약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김성환의 영상작업 <러브 비포 본드(Love before Bond)>, 깨진 도자기를 이어 붙여 설치미술을 제작해온 이수경의 신작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용>이 포함되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마셀의 전시가 원시성 및 이국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 갇혀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자르디니 본관에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작품의 일부로 워크숍을 진행한 수십 명의 이민자 및 난민 출신 참여자들의 모습이 식민주의 시대 박람회에 설치된 토착문화 체험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며 날카롭게 비판했다. 비서구권의 토착문화를 인간성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듯한 마셀의 기획 태도가 1989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문제적 전시 <지구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의 잘못된 타자화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폭넓게 포함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들이 서구 문명의 이성 중심적 세계관과 상반되는 비이성, 주술성, 자연성 등의 가치로 환원될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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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zo Quinn 〈 Support 〉 2017 베니스 대운하 ( Grand Canal )에 위치한 호텔 Ca’ Sagredo 벽면에 설치한 작품.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 시대 예술의 역할, 그 열린 결말의 질문에 대하여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를 두고 오가는 엇갈린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세계화에 대한 환상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이며, 국제 질서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 극우 국수주의의 중심으로 재편되는 걱정스러운 양태를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또한 오늘날 필수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사안이다. 국가관들을 중심으로 시의성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이 같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번 비엔날레가 평가되는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셀의 ‘예술 우선주의 비엔날레’가 얼마나 성공적인 시도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열린 결말로 남아있다. 이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가, 나아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가는 질문과도 닿아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이번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던지는 생각할 거리(food for thought)이다.●

 

[SPECIAL FEATURE] THE GRAND ART TOUR 2017-베니스 비엔날레 2017

2017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를 가다

전 세계 미술계를 흥분시키는 2017년 그랜드투어의 여정이 시작됐다. 유럽의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바젤에서 열린 비엔날레와 도쿠멘타, 조각프로젝트, 아트페어 등 그 상차림도 다양하다.
우선 물의 도시 베니스. 비엔날레의 제왕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가 5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cel)이 총감독을 맡아 ‘Viva Arte Viva’를 주제로 본전시를 꾸몄다. 한국관에는 이대형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코디최와 이완 작가가 참여했다.
‘Learning from Athens’를 주제로 한 카셀도쿠멘타14는 아테네(4.8~7.16)와 카셀(6.10~9.17)에서 각각 열린다.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총감독을 맡았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할 시간”이라는 그의 말이 전시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살펴보기 바란다.
세계 공공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뮌스터조각프로젝트 (Skulptur Projekte Munster)의 다섯 번째 대회는 6월 10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도시 뮌스터 곳곳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를 위해 새롭게 설치된 작품과 기설치된 작품을 비교하며 엄정한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미술의 담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제48회 바젤아트페어〉 (6.13~18)도 열렸다. 35개국 291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페어에는 9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랜 세월을 지낸 공력을 보여주듯 〈아트바젤〉은 그간 행사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생존의 방식을 개척하고 세계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이어왔다.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월간미술》은 아테네, 베니스, 카셀, 뮌스터 현지를 찾아 그곳의 분위기를 담아왔다. 이 지면의 다음 페이지부터는 바로 그 현장이다.
현지취재=이준희 편집장, 황석권 수석기자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Venice Biennale 2017

제57회 2017 베니스 비엔날레 2017.5.13~11.26
총감독 크리스틴느 마셀(Christine Macel)

그랜드투어의 첫 방문지는 베니스다. 57회를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는 ‘Viva Arte Viva’를 주제로 했다.
총감독의 말대로 ‘휴머니즘에서 영감 받았다’라거나 혹은 유미주의(唯美主義)의 향을 풍기는 워딩이라서 그랬을까?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현실에 대한 고발의 날은 무디고 비판의 목소리는 다소 누그러져 보인다.
그래서 어느 외신은 이렇게 전했다. “베니스는 도쿠멘타와 아트페어 사이의 달콤한 지점을 찾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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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JA-KWADE 〈Pars pro Toto〉2017 경험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는 우주나 사물의 근원에 대해 묻는 작업이다. 태양계 행성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손으로 만지면 사운드가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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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관 〈Il mondo magico(The magical world)〉 나폴리 출신 인류학자 Ernesto de Martino의 책에서 전시명을 따온 이탈리아관 전시광경. 입구에서 보게 되는 부패한 듯한 인체 형상은 전시장 끝에 가면 왜곡되어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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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o Neto 〈Um Sagrado Lugar(A Sacred Place)〉?2017 관객은 신발을 벗고 이 텐트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종교적 힘이 필요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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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gos Sapountzis 〈Sculptures Cannot Eat〉?2017 토기에 식품재료와 무늬천을 감싼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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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Love before Bond〉 2017 이수경과 더불어 한국작가로 초대됐다. 서구 사회에서 기록조차 되지 않는 약자, 즉 아시아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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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Erhard Walther?〈Die Erinnerung untersockelt(Drei Zitate)(Wallformation Series)〉 면과 나무 365×600×40cm 1983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행위와 조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부터 행위미술과 보디아트까지 전반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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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Medalla 〈A Stitch in Time〉?1968/2017 필리핀 출신 작가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조우한 옛 연인이 과거 자신이 선물한 손수건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시적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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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la Hicks〈Escalade Beyond Chromatic ands〉600×1600×400cm 2016~17 2014년 파리 팔레드도쿄에 설치되었던 작품. 옷과 실, 천 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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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na Korina 〈environment Good Intentions〉2017 알루미늄으로 외벽을 꾸민 전시실을 마련해 키치성 가득한 왁자지껄한 방을 만들었다. 동물 문양이 프린트된 벽 위로 네온빛을 발하는 전쟁훈장을 연상하게끔 하는 설치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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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ia Fontes 〈The Horse Problem〉 2017 작가는 조각의 조화로움이 전시된 제도화된 공간의 기초에 도전한다. 그것은 서유럽을 지배하던 이데올로기로 인식된 것이다

미국 (1)

미국관 (천장에 둥그런 설치) Mark Bradford 〈Tomorrow Is Another Day〉 2017 개인의 삶이 어떻게 위대한 역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캐나다

캐나다관 Geoffrey Farmer 〈A way out of the mirror〉 2017 건립 60년이 된 캐나다관은 2018년 건축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재정비한다.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설치작업으로 바로 앞에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분수도 설치됐다

프랑스
프랑스관 Xavier Veilhan 〈Studio Venezia〉 2017 “거대한 사운드 조각”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관은 비엔날레 173일 기간 내내 음악가를 초대, 공연한다(본지 2017년 3월호 참조)

헝가리
헝가리관 GYULA VARNAI 〈Piece on Earth!〉 전 유럽의 정치적 불안 상황을 헝가리의 현재 모습과 이전 사회주의자를 평행선상에 놓고 보여준다

호주
오스트리아관 Erwin Wurm〈stand quiet and look out over the mediterranean sea〉 240×274×874(높이)cm 2016~2017 관람객은 작품 내부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올라 자르디니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는 ‘1분 조각(one minute sculpture)’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르디니의 국가관들
Participating Countries’ Pavillions in Giardini

070-119 특집_그랜드투어(엡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