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홍승혜 – 회상
홍승혜 __ 회상
국제갤러리 7.10~8.17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한 편의 소네트를 썼다. 한 편의 소네트를 쓴 후 “지난번 소네트를 끝내고 나니, 나는 또 시를 쓰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며 다른 한 편을 쓰게 되었고, 이어서 또 한 편을 썼다. 단테가 시를 쓰게 된 애초의 동기가 베아트리체의 아름다움이었다면 그 다음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소재, 적어도 그 일부는, 자신의 시 자체였을 것이다. 홍승혜의 개인전 <회상>이 열리는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발밑에 나지막하게 작은 글자 조각들이 서있다. M.O.R.E. 잠깐 웃음이 터지는데, 일단 ‘미니멀’한 기하학과 상충하는 단어인데다가, 단테 같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채 ‘더, 더’를 조용히 되뇌고 있는 듯해서다.
<회상>은 홍승혜의 과거 개인전들을 모태로 한다. <유기적 기하학> (1997) (2000), <복선을 넘어서>(2004)(2006), <파편>(2008), <온 앤 오프(On & Off)>(2008), <음악의 헌정>(2009), <프레임의 모든 것>(2010) 등의 전시에서 몇 작품씩 뽑아 크기와 재료를 달리하고 그레이스케일로 처리했다. 회고전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회고전 형식을 빌린 신작 전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홍승혜는 그동안 자신의 이전 작업에서 모티프를 따오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써왔다. 미술이 아름다움의 재현이란 사명에 치중하지 않게 된 이후 현대미술가들은 줄곧 다른 작가의 작업들 또는 자신의 작업을 새로운 작업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아왔는데, 홍승혜는 이를 의식적인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상이라는 복고적이고 온건한 간판을 내건 그녀의 좀 더 급진적인 제스처다.
이번 전시의 제목 <회상(reminiscence)>을 보자. ‘reminisce’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 recollect(역시 ‘회상하다’라는 의미) + 어떤 정서이다. 예를 들어 미소와 함께, 또는 향수 어린 마음으로 과거를 돌이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시에서 어떤 정서가 느껴진다면 그건 홍승혜가 그런 정서를 표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음악적’ 방법론으로 인한 어떤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푸가로 대표되는 대위법은 홍승혜의 오랜 관심의 대상이고, 반복과 변주는 그녀의 조형적 방법론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영상작업 <센티멘탈> 연작 중 6편을 추려 흑백으로 변형한 후 설치한 대규모 영상작업 <6성 리체르카레>는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절정에 해당하는 6성 푸가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홍승혜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돌이켜 보고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인간의 기억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능동적인 것이다. 과거의 일을 변형시키고 삭제하고 수정한다. 그리고 프레임을 부여한다. 즉 회상은 형체가 없는 과거라는 무정형의 덩어리에 프레임을 주어 잠시 고정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현재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 위치시킨 후 응시한다. 결국 회상의 목적과 결과는 모두 응시이다. 홍승혜는 <회상>에서 음악적 방법론으로 변용하고 프레임을 준 이전 작업을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작업으로 위치시킨다. 이 중 몇 작업은 기시감과 낯섦을 사이를 오가게 하며 먹먹한 응시를 낳는데 서랍을 연상시키던 평면작업에서 서랍으로 태어난 한 쌍의 <춤추는 서랍>은 움직이던 뭔가가 얼어붙듯 멈추었을 때의 기이한 정적을 자아내며 시선을 붙든다. 붉은색이 사라져버린, 날개를 단 듯한 <온 앤 오프>는 공중에서 연상과는 무관한 일루전을 자아낸다. 아직 관객이 들지 않은 어느 아침, <6성 리체르카레>에서 군무하는 6개의 영상은 그 사이 어딘가 어둠 속으로의 응시를 낳는다. ‘센티멘탈’의 회상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과 위치를 알 수 없는 깊고 오랜, 그러나 낯선 풍경 속으로 전치되는 듯하다. 이 느낌은 ‘센티멘탈’이 아니라 ‘서블라임(sublime)’에 가깝다.
박상미・Thomas Park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