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or’s voice] 최정화 – 총천연색
최정화 – 총천연색
문화역서울284 9.4~10.19
(구)서울역사(문화역서울 284)는 세상사의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섞여 있는 곳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성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대의 풍경과 나란히 교차하고 있고, 서울의 중심이자 관문이면서도 묘하게 변두리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도심 속의 섬 같은 곳이자 온갖 신흥 종교의 퍼포먼스와 지난한 삶의 투쟁의 함성들이 기이하게 얽혀있는 곳이니 말이다. 여기에 일시적인 만남과 헤어짐이 수없이 반복되는, 혹은 유랑과 정주의 삶이 노숙인들과 기이한 비둘기들의 풍경으로 묘하게 은유되어 있어 역설적인 세상사의 풍경들을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속세의 많은 삶이 잡동사니처럼 압축된 이 공간의 속내를 더 깊이 사유하고, 그 색다른 시공간성의 응축된 양상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한바탕 요란한 굿이라도 벌이고 싶은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이 어수선하고 혼란한 시공간성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방식 대신, 이러한 혼종성을 더욱 숙성시키고 극화시킬 수 있는 어떤 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년에 기획한 ‘근대성의 새발견’을 마무리짓고 싶은 마음도 더했다. 구서울역사는 근대성의 공간만이 아니라 비근대성의 근대성, 그리고 동시대성이 뒤섞여 있는 우리의 근대화, 아시아 근대성의 적나라한 공간이며, 그렇게 탈근대화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작가가 최정화이다. 한국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개인으로서의 최정화가 아니라 속(俗)과 성(聖)을 넘나들면서 동시대 문화예술 전반을 종횡무진하고 총섭하는 이른바 멀티플한 최정화, 화려하고 대중적인 시각적 즐거움과 교감은 물론 그 너머의 깨달음마저 전할 수 있는 샤먼이나 스님 같은 존재로서의 최정화로서 말이다.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이번 전시의 의의를 이 속세의 절에서 작가의 이름처럼 한바탕 ‘정화’시킬 수 있기를 감히 꿈꾼 것이다.
그간의 유쾌하고 즐거운 최정화 전시에 더해, 큰 굿판이라도 벌려 이 혼성 공간을 살풀이할 수 있는 장으로 이번 전시의 가닥을 잡아가기로 하고, 이 혼란스러운 잡종의 장소성에 대한 접근을 폐허 개념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폐허처럼 과거의 환영과 동시대의 현혹적 환상이 서로 맞물려 있어 어떤 역설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충만한 곳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근대화의 빠른 속도감에 휩쓸려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치 폐허에서 피는 꽃처럼 전시를 만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전시 전체의 내용적 얼개도 잡화엄식(雜華嚴飾), 곧 삼라만상의 꽃들로 공간들을 개화시키는 것과 같은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꽃이라 해서 가장 고귀하고 화려한 것들만이 아니라 잡화(雜花)라 해서 갖가지 꽃들을 그 경중을 두지 않고 함께 어우르고자 했는데, 이는 그동안 작가 최정화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작업 방식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일상의 비루하고 속된 것마저 의미 있고 소중한 것들로 재생, 재활(이른바 최정화식 생생활활)시켜온 대표적인 작가였으니 말이다. 인공의 색인 총천연색조차 자연의 빛일 수 있음을, 그리고 허접한 꽃들의 웅성거림이겠지만 세상은 이로 인해 빛이 나고 생명으로 거듭날 것이라 믿었기에, 이번 전시에 노숙자를 포함하여 이름 모를 숱한 대중의 손길과 그 즐거운 참여에 인색하지 않으려 했다.
작가의 일관된 작업 방식처럼 참여와 공감을 통해 공공 공간의 의미를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폐허로부터 시작하여 숱한 이들의 꽃들로, 우리 모두의 일상적인 삶을 심미화하고자 한 이번 전시를 통해 구서울역사 일원이 일종의 반(反)공간(contre-espaces), 곧 서로 구별되는 온갖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든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로 거듭나고자 한 것이고, 그렇게 우리의 복잡하기만 한 삶이 침윤되어 주름지고 부식되어 있어 균질하지 않지만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공간으로서 구서울역사를 다시 화(花,華,和,化)하고자 한 전시였다.
민병직・문화역서울284 전시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