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ESSAY 문화가 이어지는 낭만의 성(城), 라 나풀(La Napoule)
예술적인 공간에서 받은 영감
조숙진 작가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젠가 내 집을 짓게 된다면 침대 위에 하늘이 보이는 창을 만들어, 밤이 되면 까만 밤하늘에 수놓인 별을 바라보고, 비가 오면 창에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도 보고 빗소리 들으면서 잠들 수 있는 그런 창을 만들리라 꿈꿨다. 경계를 나누는 담은 없애고, 집 앞마당에 커다란 나무를 심어 어릴 적 타고 놀던 것과 같은 간단한 그네를 달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동네 아이들이 탈 수 있게 말이다. 작은 문고리까지 직접 디자인해 집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살아가는 동안 이 꿈은 가끔씩 되살아나곤 했다. 남프랑스 ‘라 나풀 (La Napoule)’이란 성(chateau)에 자리한 아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약 한 달간 그곳에 머물면서 다시 그 꿈을 떠올렸다.
지중해 바로 옆에 있는 이 성은 14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한 부부-헨리와 마리(Henry and Marie Clews)-가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에 구입하여 약 18년 동안 함께 디자인하고 개조해가며 증축했다. 헨리는 뉴욕의 부유한 은행가(banker)의 아들로 잠시 은행가로 일하다 조각가가 됐고 마리는 이 성의 완성을 위해 디자인과 조경을 틈틈이 공부했다고 한다. 이 성은 원래 헨리의 작업실겸 부부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됐고, 가까운 예술인들의 모임공간으로도 쓰였다. 그러다가 1923년 헨리가 세상을 떠나자 마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1951년 라 나풀 아트 재단(La Napoule Art Foundation)을 만들었고. 이후 대중에 공개됐다.
이 성 중정에 세워진 건물의 중심에는 아치형 문이 있다. 문 위를 장식한 돌에는 ‘ONCE UPON A TIME…’ 이라 새겨져 있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산책하다 보면 당시 그들의 시간과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화려하고 장중하게 조각된 나무 문, 아치형 창문, 돌기둥, 나무책장 등 건물 세부와 가구 장식에는 H, C, M 또는 H, M 의 이니셜이 새겨져, 두 사람이 협력자로서 함께 의논하며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두 사람의 이니셜은 동반자로서 살아온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깊은 사랑을 상징하는 듯하다. 헨리의 작업실에는 그의 작품부터 의자에 걸쳐진 그가 입던 베이지색 작업 재킷까지 그대로 남겨져 있다.
나에겐 발코니가 있는 제일 좋은 침실을 준 대신, 약간 작은 작업실이 주어졌다. 이 아름다운 곳 주변에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소음과 소형 비행기의 소음을 2주간 견디다, 조용한 작업실을 요청했다. 결국 공사현장과 좀 더 떨어진 바다가 바로 보이는 작업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작업실 창문으로 지중해의 맑은 물속을 내려다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니 내 안에 죽어있던 어떤 생명이 살아나듯 에너지가 샘솟았다. 세찬 파도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즐거웠다. 마음이 충만해지고,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곳 정원은 영국식 정원처럼, 이곳저곳에 낭만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있었다. 철학가의 길, 소극장, 작은 규모의 클로이스터도 정원 주변에 세워졌다. 정원처럼 작가들의 작업실도 각기 다른 모습이다. 옛 소극장이 현재는 작가의 작업실과 갤러리로 나뉘어 쓰인다. 어떤 작업실은 등대처럼 둥근 돌탑 꼭대기에 있어 좁은 나선형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어두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면 만나는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탑 꼭대기 둥근 방, 돌 벽에 뚫린 작은 창문들,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파란 바다 때문이다. 어떤 작업실은 사각형 돌탑에 풀밭으로 된 너른 발코니까지 있어 탁 트인 지중해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위치, 크기, 형태, 풍경이 모두 다른 작업실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기 다른 특징이 살도록 꾸민 헨리와 마리의 창의적인 생각이 이룬 재미난 공간들이다.
난 이 낭만적인 성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해변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모래 위로 쓸려온 나무, 플라스틱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올 땐 열린 마음으로 새 작품 구상이나 스케치를 하리라 맘먹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니 점차 작품방향이 명확해져갔다. 많은 사람이 라 나풀은 깨끗해서 아무것도 주을 것이 없다 했지만, 이 아름다운 곳에도 버려진 물건이 있고, 버려진 공간이 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남부 프랑스에서 작품에 빠져 지냈다.
그곳에 머물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성 안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돌탑을 방문했다. 탑 옆에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지하 문이 열려 있어 조금은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난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 속에 돌무덤 2기가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었다. 마리와 헨리가 그곳에 안치돼 있었던 것이다. 돌무덤에는 그들의 개인적 특징과 취향을 반영한 돌조각이 새겨져있었다. 돌조각은 익살스럽기도 했지만, 전체 분위기가 숙연하고 낭만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그들의 죽음과 지고한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돌 벽에 뚫린 작은 창으로 보이는 파란 바다의 움직임은, 공간의 정적과 어둠과 대비돼 더욱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의 염원대로, 무덤은 반쯤 열어놓았고 꼭대기에 그들만의 비밀의 방을 만들어 두었다. 헨리와 마리는 그들의 영혼이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그 비밀의 방에서 영원히 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의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이 내게 아주 가깝게 다가왔다. 그들이 18년이란 긴 세월동안 만들어간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내가 품어온 꿈을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집을 짓겠다는 나의 어릴적 꿈이 단순히 내가 살집이 아니라, 이렇게 앞으로 올 세대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애에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능력과 순수한 열정이 있는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꿈을 이루어도 좋을 거 같다. 많은 작가가 혼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사색하고, 예술적인 공간에서 영감을 받으며 작업한다면, 우리의 감성을 울리는 따뜻한 작품, 닫힌 생각을 열리게 하는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뉴욕 웨스트 빌리지 ‘코넬리아 스트리트 카페’에서 한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부모가 자식들을 예술가가 되라고-시인이든 화가든, 음악가든-부추긴다면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나는 이 말에 깊이 동감한다. 분명 부정적, 폭력적인 에너지는 창의적인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다.●
조 숙 진 Jo Sookjin
196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와 플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를 졸업했다. 서울 뉴욕 파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고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8년 하종현 미술상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