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송상희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아트스페이스 풀 2015.11.12~2015.12.13
윤민화 독립큐레이터
송상희가 찾아낸 사람들이 나의 마음에 콱 박혀서는 자꾸 부대낀다. 그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대체 어떤 죽음이냐고 물으니, 살아있는 내 몸에 와서 들러붙는다. 세 개의 화면에서 분열적으로 떠도는 죽음들은, 역으로 나의 생존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죽음을 묻는 나는 그 죽음과 나란히 생존해 있었다. 매장하고 애도하고자 하나, 함부로 곡소리를 내서도 안될 것처럼 너무나도 숨죽인 죽음들이다. 부대낌과 불편함이 전시장에 감돌았다. 역사에서 추방되어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죽음들이 송상희에 의해 2015년의 어느 날 소환된 것이다.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는 많은 양의 이미지 자료가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작품에 쓰인 이미지들의 출처를 정리한 ‘인덱스’가 따로 전시장 한편에 배치되어 있을 정도로, 하나같이 쉬이 넘길 수 없는 묵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인덱스와 영상작품을 교차 확인하면서 관람하더라도, 모든 정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지 않은 한,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온전히 감상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송상희의 전작들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각각의 개별 작품에서 어떤 단서들은 지속적이고 공통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내가 3~4년 전에 공동 기획했던 전시(2013년 두산갤러리 서울과 뉴욕에서 열린 <다시-쓰기 Translate into Mother Tongue>)에서 송상희는 작품 <postcards>와 <정신과 기회>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몇 가지 요소들은 이번 작품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개별 작품이나 개별 전시라는 하나의 나무를 봐서는 송상희의 작업을 이해할 수 없고, 각 작품을 모두 모아서 큰 그림으로서의 숲을 봐야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숲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나무를 이루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먼저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송상희의 작업들을 보건대 그 요소들은 일정한 키워드들로 범주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면을 빌어서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 등장한 이미지 출처들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묶는 작업을 해보고자 한다.
이동 화성 탐사차 Spirit Rover가 찍어 보낸 화성 표면의 사진과 사진에 찍힌 ‘블루베리’라고 불리는 구립체의 모습, 각종 엽서들 (1920년대의 평양시가 담긴 엽서, 일본의 인도네시아 통치 기념 우표, 1944년 엽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2호 25주년 기념 엽서), 17세기 네덜란드의 인도 식민지 지배자 Hendrik Adriaan van Rheede가 집필한 인도 서식 식물 종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 동인도 지역을 여행한 상인이자 역사가인 Jan Huyghen van Linschoten이 집필한 여행기에 관한 자료, 구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 여행기를 출간한 Isabella Lucy Bird의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확산 2015년 주한미군 탄저균 불법반입사건,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의 사진과 콜레라 확산을 헤드라인으로 실은 1912년 프랑스 신문
노예 히메유리 학도대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 부산제일화학 여공들의 모습, 전라북도여성 근로정신대 사진, 일제에 강제로 징용된 10대 소년들,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에 관한 명령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선감원 앞의 숲
투쟁 한국 최초의 고공농성자이자 혁명가였던 강주룡, 독립운동가 남자현 의사,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기념 사진, 용산 4구역 철거현장 참사
전쟁포로 1951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1945년 오키나와 포로수용소, 1950년 중국과 북한의 전쟁포로들,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통제구역,
오키나와 한국인 징용군 묘지
난민 로힝야 난민들, 아프리카 난민선 침몰, 네덜란드공항에서 발견된 트렁크 속에 숨은 난민, 아이티 난민선의 침몰, 시리아 난민 캠프
민간인 학살 1951년 통영거제 국민보도연맹사건, 1950년 노근리 양민 학살, 남영동 대공분실,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 사건, 충남 공주시 상왕동 산 29-19 살구쟁이 숲
멸종 도도새, 파란 영양, 캐롤라이나 앵무새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에 등장한 이미지들의 푸티지를 8개의 카테고리?이동, 확산, 노예, 투쟁, 전쟁포로, 난민, 민간인 학살, 멸종-으로 분류해 보았다. 각각의 키워드들은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이동’과 ‘확산’은 유사한 어휘라고 볼 수 있다. 물리적인 움직임이라면 ‘이동’을, 미생물과 관련된 이동에는 ‘확산’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이동’과 ‘확산’은 기존의 위계를 흔들어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 그것은 주로 전쟁, 정치, 식민화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포로’가 되거나 ‘노예’가 되고, 누군가는 ‘투쟁’하며, 도망쳐 ‘난민’이 되기도 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학살’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어떤 것은 지구 위에서 완전히 사라져 ‘멸종’되기에 이른다. 결국 선후관계처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의 ‘이동’과 ‘확산’이 수많은 ‘죽음’으로 귀결된 것이다. 특히 여기에 호명되는 죽음들은 역사에서 밀려난 잊힌 죽음들이다.
작가는 죽음들을 기억하고 다시 쓰면서 망각이라는 악순환에 갇힌 죽음들에 응답한다.
저 죽음과 이 죽음이 닮아있음을 알고, 가만히 그것들을 꿰매어 엮는 것이다. 나에게 이러한 봉합의 과정은 계보적으로 읽힌다. 누군가가 니체의 계보학을 ‘회색의, 조심스럽고, 끈기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나 또한 송상희가 역사를 들추어 다시 쓰는 죽음들에 대한 계보를 ‘회색이고, 조심스럽고, 끈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위 송상희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4채널 영상, 무빙 스포트라이트 설치, 사운드/컬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