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EOPLE John Berger 1926 – 2017
《Ways of Seeing》 되돌아보며
전영백 | 홍익대 교수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가 향년 90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그는 미술비평가이자 저술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시즘에 기반을 둔 리얼리스트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서 1940년대 후반에 화가로 등단, 전시도 가졌으나 이후 미술비평으로 입문, 본격적인 활동으로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 소설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버거는 1958년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A Painter of Our Time)》를 시작으로, 1972년 실험적 소설 《G》로 부커상(Booker Prize)를 수상했을 정도다. 그가 36세이던 1962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줄곧 퀑시(Quincy)의 농촌공동체에 살면서 1980년대에 주요 저서를 발표했다.1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버거의 책이 바로 〈보는 방식들(Ways of Seeing)〉(1972)이다. 판형이 작고 얇은 책이건만, 국내에선 책 속의 내용보다 책의 제목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가장 쉽게 풀어주는 문구인 셈이다. 말하자면, 미술작품은 본유적인 정해진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관람자(독자)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방식들’이라 하여 복수를 쓴 것도 유념해야 하는 바, 하나의 ‘정전(canon)’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미술작품을 둘러싼 권위와 신화, 그리고 자본주의 상품화를 폭로하고 비판했다.
1970년대 초 당시 시대를 뒤흔든 버거의 시각은 리얼리즘과 마르크시즘이 학술적으로 체계화된 영국이었기에 가능했다. 영국의 미술계는, 같은 영미권이라도 보수적이고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팽배한 미국의 그것과 현격히 다르다.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급진적 이론이 지적체계를 확보했고,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여 그 논의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후자는 다른 유럽과도 차별화되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사 방법론에서 현격한 기여를 한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이 1970년대 영국에서 출현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영국 내 미술이론(미술사와 미술비평)의 분위기에서 버거와 같은 파격적 비평가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버거의 〈보는 방식들〉은 본래 1972년 BBC에 방영된 TV 시리즈였다. 방송 자체로만 볼 때, 그 내용과 스타일 모두에서 파격적이었다. 당시 영국의 미술 프로그램이란, 정장 차림의 신사가 멋진 별장의 벽난로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찍던 게 일반적이었다. 반면, 버거의 방송은 전기상품 창고에서 녹화되었는데, 카메라 앞에 선 그의 모습과 말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눈에도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장발에, 프린트 무늬의 셔츠만 입은 이 좌파 지식인은 카메라 앞에서 거침없고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한마디로 비(非)엘리트적이다.2
〈보는 방식들〉에서 버거가 주장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순수미학과 학문적 권위에 관심을 쏟는 일반적 비평가와 달리, 그는 유럽의 고급 미술(high art) 배후에 작용하는 자본주의와 식민지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는 과거의 명작들이 어떤 방식으로 엘리트 경제체제와 ‘공범’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밝히면서 이를 비판했고, 미술교육에 개입한 가치체계를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또 전통 미술의 여성 이미지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을 강력히 제시했다. 그렇듯 과감한 그의 강의는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과 키치적인 광고나 복제품을 넘나들며 양자 사이의 분리를 폐기했다.3 여기서 그의 페미니스트 입장을 설명하자면, 예컨대 앵그르의 〈거대한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를 포르노 사진과 비교하면서, “양자는 그림을 보는 남성에게 제시된 것이며
그의 성(性)에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그녀의 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4
버거의 파격적 TV 강의에 대한 영국 내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찬반의 격론을 불러왔다. 주간 《Sunday Times》는, “우리가 그림을 보는 방식을 확실히 바꿨고,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을 열어 보였다”고 격찬했다.
그러나 비난 또한 대단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마르크시스트인 그가 미술의 거장(master)을 인정하지 않고 그와 같이 개인적 ‘신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점이다. 당시 제도권 미술사에서는 미술의 대가들을 우상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는 오늘날도 어느 정도 여전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개인의 천재성이 가진 신화를 그토록 비판했건만, 미술가의 개인 신화가 얼마나 고질적인지 알 수 있다. 하물며 1970년대 초는 아직 포스트모더니즘이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시기였다. 버거가 받았을 비난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5
다양한 재능과 창의력, 그리고 실천력과 일관성을 갖춘 지식인 존 버거. 미술 실기와 비평, 그리고 문학과 영화를 넘나든 그를 어떻게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애매모호한 명명일지 모르나, 일종의 ‘시각 사상가(visual thinker)’로서 버거는 미술의 시각언어에 대한 대중적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더불어 말이나 글뿐이 아닌 실천적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불의에 저항한 의식있는 지식인으로 남을 것이다. 미술인에게 이보다 더 큰 명예가 있을까? ●
1) 주로 유럽인 농부가 겪는 실제적 체험을 기반으로 농촌에서 도시로의 경제적, 정치적 이주와 도시의 빈곤을 다룬 책들이다.
2) BBC의 〈보는 방식들〉은 네 부분으로 편성되어 방영되었는데, 예상했듯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 내용과 방식에서 당시 미술사의 소위 ‘정통’을 대표하는 케네스 클락(Kenneth Clark)의 〈문명(Civilisation)〉 시리즈 반대쪽에 위치한다. 버거의 소통 방식은 모니터를 중간에 놓고 한 사람의 시청자에게 직접 말하듯 했고, 그 내용은 클락과 같은 미술사가가 속하는 기존 담론의 권위와 정전을 깨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는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혁명적 의식으로 강조했다.
3) 이러한 버거의 시각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빚지고 있다.
4) 미술작품 속 여성을 보는 클락과 버거의 시각 차이는 이들의 누드에 대한 다른 인식에서 잘 알 수 있다. 버거는 클락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클락은 자신의 책에서 ‘벌거벗었다(being naked)’는 것은 단순히 옷을 몸에 걸치지 않는다는 뜻이라 했다. 그에 따를 때, 누드(nude)는 예술의 한 형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본다. 즉 벌거벗은 것은 그 자신이 되는 것이고, 누드가 되는 것은 타인에 의해 벌거벗겨져 보인다는 것이다. 누드는 누드가 되기 위해서 하나의 대상으로 보여져야 한다.”
5) 이와 더불어, 버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들자면, 그가 다양한 시각을 위해 작품 본래의 시각적 참조를 너머 그 의미를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확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위 존 버거의 50년 지기 장 모르(Jean Mohr)가 1999년 찍은 존 버거 초상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