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구멍으로 밤으로 들어가 먹히듯 몸이 되었습니다
2018. 5. 16. – 6. 17.
아트 스페이스 풀
이번 전시의 제목은 세 작가와 ‘풀’의 세 큐레이터(김미정, 신지이, 안소현)의 경계도 질서도 없는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들은 신작을 준비하면서, 큐레이터 및 다른 작가들과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심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외국어로 쓰인 글을 공유하기 위해 자동번역기를 이용하다 우연히 나온 오류의 문장이 모두를 사로잡았고, 그것을 전시에 맞게 다듬은 것이 제목이 되었다.
6인의 대화는 플로베르의 소설 『부바르와 페퀴셰』의 그것과 비슷했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진 부바르와 페퀴셰가 온갖 지식을 탐닉하듯, 6인은 웹플랫폼을 통해 시, 소설, 물리, 철학, 언어, 음악, 만화, 음식 등 분류불가능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다만 플로베르는 이 소설에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는 부제를 붙이면서 지식을 맹신하지만 이내 싫증을 내는 인물들을 희화화한 반면, 6인은 좀처럼 싫증을 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고, 애초에 진리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결국 이 대화의 기록은 “인간의 ‘이상함‘ 혹은 ‘비정상성’에 관한 백과사전“이 되었다.
6인은 공통적으로 신체 접촉, 반복되거나 지연되는 시간, 극복할 수 없는 거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마구잡이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강동주 작가는 신지이 큐레이터와 ‘몸’이 공간을 직접 지나간 흔적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신발을 닦아낸 티슈, 캄캄한 밤에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의 궤적을 반복해서 기록하여 전시한다. 이미래 작가는 김미정 큐레이터와 함께 ‘식욕’을 키워드로 한 대화에서 보어 페티쉬(vore fetish, 살아 있는 상태로 먹히거나 다른 생물을 먹는 것에 대해 환상을 품는 페티쉬)에 열광하더니, 내장을 연상하게 하는 조각들을 전시장에 풀어놓는다. 마지막으로 장서영 작가는 안소현 큐레이터와 가까워질 수 없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모니터의 액정과 이온 교환을 할 정도로 가까워진 사람의 이야기를 연예인 ‘팬픽’(팬이 쓴 픽션)과 성가곡의 형식을 빌어 전달한다.
요즘 전시는 작가와 기획자의 창조적 협력보다는 ‘성과의 물질적 가시화를 위한 효율적인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이번 전시는 전시라는 매체를 그것이 나타난 본래의 이유, 즉 사유의 새로운 질서의 발견과 무한한 확장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작가와 큐레이터가 웹문서를 통해 나눈 대화들은 효율적이지도, 반드시 작품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하고 서로의 상상력을 확장하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우연과 오류마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비정상 상태. 이 전시는 바로 그런 비정상적 에너지 과잉을 시각화한 것이다.
안소현(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
⠀⠀⠀⠀⠀⠀⠀⠀⠀⠀⠀⠀⠀⠀⠀⠀⠀⠀⠀⠀⠀⠀⠀⠀⠀⠀⠀⠀
사진제공 | 아트 스페이스 풀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