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뮌 오후 3시의 치즈케이크와 추리극
〈Storage〉 메탈구조물, 아크릴, 영상, 사운드 가변크기 영상 설치 2022 사운드: 김지연 제공: 김종영미술관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 선정 기념전으로 뮌의 〈오후 3시의 치즈케이크와 추리극〉이 미술관 신관 1,2,3전시실에서 개최되었다. 뮌(Mioon)을 결성한 김민선 최문선은 삶과 작업을 공동 운영하는 부부 이기도 하다. 그동안 문화충돌, 군중의 심리와 관계, 도시와 사회의 공공적 시스템에 관심을 두고 시공간을 장악한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현상을 영상과 설치, 키네틱, 인터랙티브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치와 설치방식을 활용해 포착해왔다. 뮌의 작업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반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움직임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작가 특유의 시각적 장치로 사회에 대한 발언을 일삼던 지난 전시와는 달리 스펙터클한 규모나 역동적인 기계장치, 이야기꾼 같은 친절함은 다소 절제되어 있었다. 내용적으로는 밖으로 향해있던 작업의 주제가 작가 자신에게로 옮겨온 것이라 하겠다.
뮌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작품을 선보이며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몇 해 전 종로구 평창동으로 집과 작업실을 옮기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갈 즈음 작품을 보관하던 일산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그동안의 중요한 작품이 전소되었다. 이 사건은 작가로서 쌓아온 결과물, 기록들이 소멸되는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 그동안 여러 갈래의 레이더를 펼쳐 세상의 복잡한 구조적 문제를 탐색하고 보다 밀도 있는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던 작가의 삶을 잠시 멈추게 했다. 뿐만 아니라 오롯이 인간 김민선, 최문선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작품을 하는 동력과 이유를, 작가로서 삶의 방향에 물음을 던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층마다 설치된 작품은 한층 힘을 뺀 상태로 단출했고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는 분명하게 전달됐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건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향이나 생각을 완전히 흔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전시 제목에서도 밝혔듯 ‘오후 3시의 치즈케이크’는 청년시절 두 작가가 오후 3시 즈음이면 자주 치즈케이크를 앞에 두고 작품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당시 창작의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떠올린 일종의 초심에 대한 향수를 상징한다. ‘추리극’은 한줌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 작품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과정, 즉 뮌으로 활동해 온 삶의 단서를 작가의 공간에서 찾고 추적해 보도록 구성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3층 작가의 집, 2층 작업실, 1층 작품창고로, 이 세 공간은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요소로 설정되었다.
미술관 3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단정하게 생긴 책상 위에 남녀 상반신상이 마주보게 놓여있다. 상반신상은 뮌이 발표한 바 있는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높이 3m 이상의 크기로 제작된 〈Lead Me to Your Door〉(2011)는 나무격자로 만든 두 개의 흉상 안에 88개의 영상 모니터를 설치한 작품이었고, 〈Human Stream〉(2005)은 두 개의 흉상을 깃털로 감싸 그 위에 영상을 비추며 군중의 속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책상 위의 흉상〉 연작은 고요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책상은 최문선과 김민선이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30년 넘도록 가지고 다니던 것을 그대로 오브제로 사용했다. 벽에 걸린 두 점의 작품은 기울어진 책상의 수직과 수평을 맞추기 위해 책상의 다리 밑에 책을 괴어둔 사진이다. 책은 매달 미술계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월간지다. 작가라면 누구나 전시를 통해 사람들, 특히 미술계의 전문가들에게 작품세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전시를 지켜보는 전문가와 관람객의 평가는 작가로서 다음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책상을 떠받치고 있는 월간지는 작가로 활동하며 바로 설 수 있도록 지탱하고 있었던 미술계의 상징으로 보인다. 상반신상을 덮고 있는 재료는 물건을 연마하거나 갈아낼 때 사용하는 거친 사포다. 거칠고 뾰족한 사물을 여러 번 갈고 다듬어 생긴 표면의 스크래치는 그 과정에서 발생했을 부대낌의 흔적이다.
2층에서 관람객은 석 점의 사진작품을 만나게 된다. 두 점의 사진 속 타공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공간은 빈 의자와 책상, 그 뒤로 도서관을 연상하게 할 만큼의 수많은 자료와 책이 꽂혀 있다. 한 점의 사진은 마루바닥을 촬영했다. 그리고 노란색 투명 아크릴판이 걸려있다. 작업 도구나 공구가 널려있는 공간이 아니지만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 회의와 스케치를 하는 평창동 작업실 공간을 부분 촬영한 사진이다. 선반 위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는 책은 그동안 참여했던 전시의 결과물로 보인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엔 그동안의 중요한 전시를 선정해 자료로 보여준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 공간은 또다시 뮌이 앞으로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앉아야 할 공간이다. 그리고 빈 테이블에는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가 필요할 것이다.
지하 공간은 붉고 하얀 사각의 빛과 그림자로 가득했다. 작품 〈Storage〉는 반짝이는 사각형 프레임 위에 빛이 매핑되어 공간감이 확장되고 왜곡되는 효과를 일으킨다. 메탈 프레임과 붉은색 아크릴 그림자가 교차로 움직이고 선과 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채워지고 소멸하는 순환의 과정을 보여준다. 벽면엔 그동안 발표되었던 영상 작품과 이미지가 기억 속의 영화 장면처럼 조각조각 이어진다. 흑백으로 시작되는 영상은 색이 입혀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전시장을 점유하는 빛과 그림자, 사운드로 가득한 공간은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또다시 채워나갈 작품을 상징한다.
작가들이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하거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닐 때 작품을 폐기처분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작가로 존재한 시간을 고스라니 사라지게 하는 현실은 참혹하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인한 소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뮌은 이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경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디어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에겐 화재를 겪고 난 후에도 작품의 데이터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데이터는 설치물로 재현되거나 재구성되어 전시될 것이다. 작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작가의 삶, 뮌이 걸어온 길이었다. 작품을 잃고 나서야 질주를 잠시 멈출 수 있었고 새로운 작업의 방향성과 삶의 기준을 재설정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때때로 삶은 복잡한 전략보다 단순한 규칙이 나을 때도 있다. 작가로서의 삶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책상 위의 흉상(남)〉(사진 앞) 책상, 흉상, 사포, 오브제가루 책상 및 폴리곤 흉상: 80×37×90cm
〈책상 위의 흉상(여)〉책상, 흉상, 사포, 오브제가루 책상 및 폴리곤 흉상: 60×40×80cm 2022
강재현 |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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