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객체로서의 인공지능, 예술 주체로서의 성립 가능성
I. 예비적 접근: 사변적 실재-객체들의 세계

Art Critique

유원준 영남대 교수, 미술비평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 단채널 영상 25분 2022 제공 : 갤러리현대

에른스트 모,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죽었어.
우리는 자기 자신이면서 모두였고,
이미 여러 번 죽었다고…
우리는 그냥 지독하게 얽혀 있는 거야.

—김아영 『문법과 마법』 2022 p.104

1. 사변적 실재론과 예술의 제(諸) 문제들
최근의 인문학적 고찰들, 특히 21세기에 제기된 사상들이 갖는 공통점은 근대주의적 사유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전까지의 철학적 시도들을 비판하며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바깥’을 상정한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바깥이란 개념은 ‘인간 이후’를 상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의 논의와 조우하게 되는데, 종국에는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으로서의 ‘사물’ 혹은 ‘객체들’에 관한 사변(思辨)의 장소에 도달한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세기 타자를 향한 관심으로부터 야기된 사회적 현상들, 가령 지금까지 주체의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대상들과 관련한 이슈들을 좀 더 근본적인 지점에서 확장하여 우리 앞에 제시한다.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思辨的 實在論)’으로 명명되는 최근의 흐름은 주체의 특권을 무력화시켜버리는 동시에 그러한 입장들의 위치를 우리 주변의 사물들, 즉 객체에게로 옮겨놓는다.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레비 브라이언트(Levy Briant)는 객체를 존재론의 틀 안의 유표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주체는 다양한 객체 중 하나의 객체로 전환되고 이를 통하여 과거의 철학 및 존재론 안에서 차지하는 특권적이고 중심적이며 토대적인 지위가 약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물론 그가 주창하는 객체들의 민주주의가 인간의 배제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의도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공고한 구분들의 재설정이자 탈(脫)인간중심주의에 있다.1

예술의 경우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로부터 예술은 시대를 달리하며 다양한 개념 확장과 전환의 지점을 맞이하였지만 그럼에도 창작자로서 인간 주체를 고정하고 이에 관한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 예술 작품과 이를 구성하는 매체 형식 개념에 주목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예술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창작 주체와 이를 구성하는 다양한 형식과 (기술) 매체들에 관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예술 주체로서 확고한 인간의 위치는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에 불과하던) 기술 매체의 발전에 위협받는다. 이는 철학의 오랜 유비 중 하나인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예속과 지배 관계를 예술에 적용해보게 만드는데, 인간은 해당 대상들을 도구적 역할로만 제한할 수 없으며 타자로서의 위치에 한정시켰던 것에서 벗어나 (예술-기술적) 대상들을 온전한 대화와 소통의 대상으로 상정하며 이러한 긴장 관계를 해소하고자 한다. 최근 등장한 예술의 혼성적 주체성에 관한 질문들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의 협업과 같은 혼성적 주체에 의해 창작된 예술 작품들의 대두는 예술 영역이 더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토가 아님을 시사한다.

2.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인간과 기계 그리고 혼성적 주체들
글 서두의 짧은 문장은 지난 2022년 개최된 김아영 작가의 전시 《문법과 마법》에서 작 중 주인공인 ‘에른스트 모(Ernst Mo)’와 ‘엔 스톰(En Storm)’의 대화이다. 이 캐릭터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한 현실세계의 구멍에서 조우하는 존재들인데 철자 순서만 바꾸어서 설정된 그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의 본질은 결국 혼성적 존재로서의 ‘괴물(Monster)’의 변이체이다.2 작가의 작품에서 이들은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에서 조우하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는 존재들인데 과거의 문학 및 예술 작품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혐오의 대상이 아닌 매우 필연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807년 출판된 헤겔의 『정신현상학』 제4장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과 노예의 문제(Dialektik von Herr und Knecht)’는 일차적으로는 자기의식과 대상의 구분과 확립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인’과 ‘노예’의 입장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역전되고 전환될 계기를 내포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헤겔의 철학적 구도는 최근 기계 및 인공지능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매우 빈번하게 회자된다. 즉 도구(노예)로 사용되던 기계(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날이 갈수록 상승하면서 인간이 자신들의 도구를 예속 상태로 두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의해 통제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경고인 셈인데, 이러한 구도를 변증법적으로 보자면 양자의 갈등은 인간이 자신들과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존재로서의 안티-테제인 기계(인공지능)와의 합일에 도달하며 봉합된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또 다른 변증법을 예견할 수 있겠지만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물리적 차원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현대 사회에서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는 징후이다.

동시대 예술에서도 인공지능을 위시한 기계적 주체와 그로부터 제기되는 인간의 혼성적 주체성은 앞선 김아영 작가의 예시처럼 작품의 주요한 주제와 내용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근대 이후 예술은 그간 폄훼되거나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타자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왔다. 가령, 젠더의 불균형에 관한 문제 및 ‘디아스포라’, ‘탈식민주의’와 ‘인류세’와 같은 환경에 관한 주제들이 그것들이다. 물론 이들은 현재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주제들이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점차 주체와 타자를 상회하는 실재의 바깥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최근의 사상은 모든 근대주의적 사유의 토대를 이루는 인간 중심적 이원론을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는 예술이 주제를 다루어오는 내용적 측면에서만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아니다. 현재의 예술은 과거와 비견해볼 때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예술을 창작하는 주체와 협업하는 파트너로서의 비인간 객체, 최근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적 환경을 수용한다. (기술) 매체들은 예술의 형식을 구성하는 동시에 예술 창작의 새로운 주체의 일부이자 인간의 대행자로서 혹은 그것을 넘어서 본격적인 단독 저자로서의 정체성을 향하여 나아간다.

3. 예술 창작에 있어 주체와 객체, 그 형식-관계의 역사
만약 관심의 초점을 예술 작품이라는 대상에, 더 정확히는 그것이 창작되는 과정에서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에 맞추어본다면, 우리는 그간의 예술 작품들이 지닌 형식적 구도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예술의 재료와 형식을 일단의 객체 형식으로 규정하고 주체의 쓰임에 따라 사용되는 그 무엇에서 객체 자체의 힘으로부터 일련의 의미를 생성하였던 작품들로 옮겨보자. 가령 형식주의 미술비평가인 마이클 프리드는 유명한 기사인 「Art and Objecthood」(1967)에서 모더니즘 회화의 위기를 진단한다.4 그의 주장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같은 행위로 제작된 작품들이 회화의 비예술적 조건, 즉 사물성을 부각시킨다는 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다만, 프리드는 폴록과 스텔라 등의 시도는 회화적 관습 내에서 스스로의 사물성을 극복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의 진정한 표적은 결국 토니 스미스와 로버트 모리스 등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작품들이었는데, 프리드에게 이러한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오직 사물성만을 작품의 내용으로 제시하며 미술의 부정으로서의 연극성을 유도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프리드의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당시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객체지향존재론(Object Oriented Onthology)’을 주창한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은 2020년에 출판한 『Art and Objects』를 통해 마이클 프리드를 위시한 예술의 형식주의적 논의가 자신의 존재론과 매우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5 물론 그는 이전의 형식주의자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인간-작품 상호작용을 고려함으로써 형식주의 미술 비평의 가정들을 수정하며 이전의 형식주의가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칸트의 토대들을 허물기도 하는데, 그는 프리드가 반대했던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수용하며 프리드의 의도를 전복시키고 그의 주장들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현재 논의의 의미를 지닌다.

하먼이 기본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예술작품의 자율성이다. 그는 앞서 잭슨 폴록의 시도(액션 페인팅)에 관하여 형식주의를 둘러싼 평론가들의 입장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요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적한다. 특히 「미국의 액션 페인팅 화가들(The American Action Painters)」(1952) 논문을 통해 폴록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해럴드 로젠버그의 비평을 소개하며 그가 지닌 한계로부터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는데, 로젠버그는 당시의 작가들이 캔버스를 그림을 위한 공간이 아닌 행위를 펼쳐야 하는 무대로 인식한다고 주장한 것6에 반하여 하먼은 로젠버그가 예술이 독자적인 객체로 전환되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비판한다. 하먼은 이에 더하여 예술 작품의 객체로서의 속성이 물리적이거나 단단하거나 내구성이 있거나 인간의 상호작용이 없어야 한다는 한계에서 벗어나 있는 객체임을 시사한다.7

4. 비인간 객체 혹은 주체로서의 자기생성기계
앞서 소개한 사변적 실재론의 논의, 특히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을 경유하여 예술 작품을 하나의 객체로서 파악하게 되면 그리고 더 나아가 작품을 창작하는 주체의 입장을 인간 중심적 구도에서 탈구시켜 객체의 시선에서 살펴보면 실로 흥미로운 작가와 작품의 새로운 관계적 구도가 생성된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접근 방식은 예술 객체들의 자율성을 인정할 때 발생하는 새로운 관계성에 있다. 가령 형식주의자들이 회화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던 미니멀리스트의 연극성은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객체들이 지닐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키워드가 된다. 하먼이 언급한 것처럼 예술의 이러한 특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은 예술 작품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며,8 오히려 근대 이후 등장한 다양한 실험적 예술 및 상호작용적 특성을 제시하는 예술의 의미를 보다 다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토양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확장해 적용하면 우리는 예술에 관하여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는데, 최근 기계적 대상들의 ‘자기-생성(auto-poiesis)’적 특성9을 기반으로 비인간 객체를 넘어 예술 창작의 주체 입장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상황에 대한 가능(성)의 영역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을 중심으로 두고 진행되어온 이전까지의 예술 및 예술의 주체, 그것의 관객으로서의 대상을 완전히 해체하여 비인간 객체들에 의해 생성되는 예술의 세계를 상상해보게 만든다. 1970년대 생물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R. Maturana)와 프란치스코 바렐라(Fransisco J. Varela)는 자기생성기계(체계), 즉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에 관하여 설명하며 생물 체계를 정의하려고 시도하였는데,10 우리는 이들의 연구 및 몇몇 포스트휴머니즘 논의로부터 살아있는 기계로서의 자기생성기계를 예견하고 관찰하며 이전까지의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새롭게 탐험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개념적 접근은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비인간 주체로서의 인공지능-기계, 자기 생성적 객체들로 구성되는 일련의 새로운 예술 형태를 예견하게 만든다. 본고는 이러한 흐름에 관한 예비적 접근을 수행하는 단계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후 이어지는 글을 통해 근대로부터 동시대 예술에 이르기까지의 실험적 예술 작품실천들을 분석하며 객체들의 자율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특성에 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본 원고는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기고이다.


1 레비 브라이언트 김효진 역 『객체들의 민주주의』 갈무리 2021 p. 22
2 “에른스트 모와 엔 스톰은 모두 몬스터의 애너그램(anagram ), 즉 철자 바꾸기로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문자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애너그램이라는 이 매력적인 장치는 확률, 가능성의 원리, 말하자면 양상을 달리해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의 다수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 않은가” 이진실 「누수된 세계 : 영원한 시간의 은빛 미로」김아영 『문법과 마법』 2022 p. 61
3 김환석 외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전 지구적 공존을 위한 사유의 대전환』이성과 감성 2020 p. 14
4 1966년 뉴욕에서 미니멀리즘 예술을 본격적으로 알린 《원초적 구조들 primary Structures》 전시 이후 다음 해, 마이클 프리드는 『Artforum』 6월호에「Art and Objecthood )」이라는 글을 게재하며 형식주의 비평가로서의 명성을 갖게 된다. Michael Fried Art and Objecthood : Essays and Reviews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5 그레이엄 하먼 저 김효진 역 『예술과 객체』 도서출판 갈무리 2022 p. 9
6 Harold Rosenberg “The American Action Painters” The Tradition of the New 1959. Originally in Art News 51/8 Dec 1952 pp. 7~8
7 그레이엄 하먼 위의 책 pp. 264~269
8 하먼은 프리드가 비난하는 미니멀리즘의 연극성과 매우 흡사한 것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이러한 사태가 예술 작품의 자율성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 이유로 예술 작품과 감상자로 이루어진 복합적 존재가는 어떤 외부적인 실용적 목적이나 사회정치적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은 자족적인 단위체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레이엄 하먼 위의 책 p. 43
9 자기생성의 개념은 “자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우토(auto )”와 “창조, 생산”을 뜻하는 “포이에시스(poiesis )”를 결합한 것으로 1970년대 생물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치스코 바렐라에 의해 발전되었다. 프란체스카 페란도 저 이지선 역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아카넷 2021 p. 279
10움베르토 마투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갈무리 2007 pp. 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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