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리뷰 :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이
이야기하는 현대사회 속 외국인
임수영 미술사, 독립기획자
Special Feature
이스라엘관 전경
사진 : 월간미술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한 총 88개의 국가관은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베니스 도심 곳곳에 펼쳐졌다. 새롭게 참여하는 국가관 수가 매 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베냉, 에티오피아, 탄자니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3개국과 동티모르가 처음 전시를 선보였다. 이렇듯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들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자,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현실 정치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동시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지 못한 러시아는 올해 자국관을 볼리비아에 넘기며 국가 간 협력 관계를 돈독히 했고,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이스라엘관은 참여 작가와 큐레이터가 폐쇄를 결정하고 ‘팔레스타인과 휴전 및 인질 석방 합의’를 정부에 요구하며 개막을 맞이했다. 이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대량학살 반대 예술연맹(ANGA)은 자르디니와 베니스 도심에서 ‘대량학살 국가관에 반대한다’는 붉은색 팸플릿을 뿌리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주제를 통해 경계(넘기)와 이방인(되기)에 집중한 비엔날레인 만큼 각 국가관이 주제를 해석한 방식에도 주목하게 된다.
코소보관 전경
사진 : Andrea Avezzù
호주관의 Archie Moore〈kith and kin〉(부분) 2024
사진 : Andrea Rossetti
제공 : 작가, La Biennale di Venezia
역사 속 이방인으로 존재한 이들
올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선주민의 정체성과 경험을 다룬 국가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은 검은 칠판이 된 전시실의 거대한 벽면에 작가인 아치 무어가 흰색 분필로 자신의 가족사이자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호주 선주민의 계보를 직접 써 내려간 작업〈kith and kin〉을 선보였다. 무려 4년 동안 진행한 연구의 결과로, 무어가 손으로 한 글자씩 새긴 가계도는 2,400세대에 걸친 3484명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으며, 가늠하기도 어려운 6만5,0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분필의 특성상 쉽게 지워질 수 있어 임시적이고 연약한 이 가계도에는 군데군데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들이 있는데, 이는 살해되거나 질병으로 사망해 공개 기록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선주민들이 경험한 비극은 작가가 전시장 중앙에 빼곡히 쌓아 놓은 국가기록물 더미에서도 드러난다. 호주 정부의 검시관 조사 보고서를 포함하고 있는 문서 더미 아래에는 물웅덩이가 자리 잡고 있어 관객은 자료를 살펴보지 못하고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기록물 주위를 맴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 문서1들은 정보로 소비되길 거부한 채, 사라진 이들을 위한 일시적 기념비로 존재하는 것이다. 선주민의 역사를 화려하게 소환하고 조명한 미국, 브라질을 포함한 몇몇 국가관과는 대조되는 조용한 무게감으로 아치 무어는 교육의 현장에서 지금까지 배제돼 왔던 호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거대 담론이나 역사적 서사에 의지하는 대신 작가의 일인칭 시점을 통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공동체를 조명한 것은 특별상을 수상한 코소보 파빌리온도 마찬가지다. 메탈 조각 작품을 통해 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지속된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 노동의 젠더화와 주변화에 주목한 도룬티나 카스트라티는 터키 과자공장에서 오랜 세월 근무한 엄마와의 대화로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는 프리즈렌에 있는 과자공장에서 엄마와 함께 일한 동료 여성 노동자 12명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통해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이들 중 대다수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무릎에 삽입된 금속 물체를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하는 노동의 흔적으로 상정한다. 노동자이자 여성, 엄마인 인물과의 내밀한 대화를 기록한 출판물은 특정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시의 연장선에서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침묵하는 존재로 남겨졌던 개개인의 삶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물론, 현재를 짓누르고 있는 식민 역사의 폭력성을 거시적인 진압한 후 본격적으로 이집트를 점령한 1882년을 조명한다. 이 외에도 스페인, 베냉,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관이 서구권의 미술관 소장품이나 박물관 유물 컬렉션에서 부재한 탈식민주의적 내러티브를 회화 또는 조형적 재현을 통해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관점에서 허구의 힘을 빌려 비평한 국가관도 있었다. 와엘 샤키가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참여한 이집트관이 대표적이다. 작가가 감독, 안무, 작곡을 맡아 이집트가 제국의 영향에 맞서 일으킨 우라비 민족주의 혁명(1879~1882)에 관한 뮤지컬 극을 49분 길이의 영화로 연출한 작품 〈Drama 1882〉는 영국이 우라비 민족주의 혁명을 진압한 후 본격적으로 이집트를 점령한 1882년을 조명한다. 이 외에도 스페인, 베냉,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관이 서구권의 미술관 소장품이나 박물관 유물 컬렉션에서 부재한 탈식민주의적 내러티브를 회화 또는 조형적 재현을 통해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1 중앙에 배치된 문서는 인터넷에서 열람 가능하다.
독일관의 Yael Bartana〈Life In The Generation Ship〉as part of Light To The Nations〉
3D Rendering for Dome Projection 2022~2024
사진 : Andrea Rossetti
제공 : 작가, LAS Art Foundation, La Biennale di Venezia
국가관 경계 탐색하기
자르디니 공원에 위치한 국가관 중 일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전시의 장소적, 시간적, 구조적 경계를 탐색해 보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되었던 독일관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공식 전시장 외에 베니스 동쪽에 위치한 무인도인 세토사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튀르키예 출신의 예술감독 카글라 일크는 국가관 건물에서는 퍼포먼스와 설치, 영상을 통해 연출을 극대화한 방식으로, 또 푸른 하늘과 찬란한 햇빛이 감도는 섬에서는 경계 지을 수 없는 사운드 작업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해 마치 1, 2부의 극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열악한 석면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튀르키예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에르산 몬드타그의〈Monument to an, Unknown Person〉에서부터 유대인 작가 야엘 바르타나가 상상한 인공문명의 모습을 그린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독일관은 ‘외국인’을 다양한 존재로 호명하며, 이를 통해 대립항의 경계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전시 장소를 양분하는 과감함을 통해 묻는 듯하다.
예술가, 기획자, 건축가 등이 모인 콜렉티브가 이끈 이번 벨기에관은 전시장을 일종의 ‘통로’이자 ‘경유지’로 간주해 국가관이 가진 시간적 한계를 실험했다. 이들은 벨기에를 비롯해 프랑스, 스페인의 지역 커뮤니티에서 전해 내려온 민속 우화 속 거인들을 재현해 장기적 행렬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2024년 3월 9일 알프스의 레시아 고개를 넘어 베니스에 도착했으며, 거인들은 전시가 끝난 이후 2025년 샤를루아와 덩케르크까지 북상하는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 페티코트 정부(Petticoat Government)라는 주제 아래, 인간과 비인간, 풍경과 건축, 국가 간의 경계를 횡단하는 움직임을 시각화한 콜렉티브는 완성된 작품을 기획해 선보이는 전통적인 전시 구조에서 벗어나 긴 여정의 일부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국가관을 활용한 것이다.
한편, 2022년 에스토니아에 자국관을 내주었던 네덜란드는 이번에는 작가 렌조 마르텐스와 오랫동안 협업해 온 콩고민주공화국의 콩고농장노동자예술단(CATPC)에 전시를 맡겼다. 이들은 콩고의 고갈된 플랜테이션 땅을 개간하고 신성한 숲을 복원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비엔날레 전시관과 함께 콩고의 루상가에 있는 CATPC가 설립한 예술 공간인 화이트 큐브에서도 전시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동시성으로 콜렉티브는 적지 않은 수의 서구 미술기관이 농장에서 얻은 수익으로 건립되고 재정이 충당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 비슷하게 덴마크 파빌리온은 처음으로 그린란드 예술가 이누에크 스토치를 초대해 덴마크와 그린란드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한 식민지배 역사를 조명하고자 했다.
벨기에관 전경
사진 : Matteo de Mayda
네덜란드관 전경
사진 : Matteo de Mayda
생태계와 비인간적 존재들
상당수의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전제를 환경, 특히 비인간적 존재들에게서 찾은 듯하다. 예컨대 필리핀관은 마크 살바투스 작가의 고향인 루반 민족의 역사와 생태 환경을 세 봉우리의 숲이 우거진 바나호 산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산의 신비로운 생명력이 소리, 빛, 돌 조각의 미장센을 통해 물질화되고, 이 생명력이 활기를 불어넣은 주변 지역사회의 문화와 믿음 체계를 시적으로 다루는 필리핀관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감독과 참여 작가로 이미 합을 맞춘 바 있는 이숙경 큐레이터와 유코 모리가 현지에서 공수한 과일과 채소로 작업한〈부패〉연작은 전시 시간 과일이 점차 부패하면서 전등 빛이나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구현되었고, 완전히 부패한 과일과 채소는 다른 생명을 위한 비료로 돌아가는 순환의 과정을 겪게 된다. 김해주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로버트 자오런휘가 참여한 싱가포르관도 마찬가지로 수년 동안 작가가 도심 개발 등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삼림이 파괴된 땅에서 새롭게 형성된 생태계를 관찰하며 수집해 온 자료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설치 및 영상 작품을 통해 도시와 자연 세계가 서로를 형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소개되는 작가나 아시아 관련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아시아 포럼에서는 ‘생태 우주론과 기후/사회/인종 정의’를 주제로 한 패널 토크를 통해 관련 작업을 펼친 여러 아시아 국가관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국가관이 철저하게 전시 중심의 행사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한다면, 작품과 전시를 통해 제시된 다양한 질문과 쟁점을 보다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리핀관 전경
사진 : Andrea Avezz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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