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숙 Chan Sook Choi

무브 투 리-멤버
(Move to Re-member)

ARTIST FOCUS

최찬숙/ 이동, 밀려난 몸 등을 주제로 공감각적 시각언어를 구축해 온 최찬숙은 ‘아티스틱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서사학적 실험을 전시, 퍼포먼스, 공연, 출판 등의 다학제적 방법론을 통해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개인전 《SUPERPOSITION》( 타이베이 디지털아트센터, 2020), 《Re-move》(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7),《Ground-Signal-Code-Notation》(Humboldt Forum, 베를린, 2017) 등을 열었으며, 2021년 독일연방 Kunstfond 재단의 시각예술지원금과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밀려나고 새어나오는〉(스틸) 3채널 영상 설치 21 :9 컬러 사운드 6분 2020
제공 : 작가

무브 투 리-멤버
(Move to Re-member)

조혜옥 |  미술사

“검푸른 밤바다 위를 부러 떠도는 사람”1 최찬숙의 작업을 처음 접한 것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으로 선정된 〈큐빗 투 아담(Qbit to Adam)〉을 통해서다. 작품을 보는 내내 떠오른 의문은 ‘대체 무엇이 이 작가로 하여금 칠레의 사막과 고원을 떠돌아다니며 고된 작업을 감행하게 했을까’였다. 1899년 추키카마타의 구리광산에서 발굴된, 땅속에서 구리와 몸이 서로 스며들어 초록빛을 띠는 미라 ‘코퍼맨(Copper man)’에게도, 광산채굴 과정에서 화학물질로 오염된 땅을 덮어놓아 만들어진 ‘토르테(Torte)’ 지대의 “뒤틀린 살갗 같은” 표면에도2, 그리고 무릎 꿇고 참회하는 사람 모습을 한 땅인 ‘페니텐테스(Penitentes)’에도, 작가는 자신과 같이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땅 또는 존재로서 감정이입하며 다가간다.

2001년 베를린 유학을 떠난 후 지금까지 한국과 독일 등을 오가며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온 최찬숙은 유목민처럼 떠도는 여성 이주자, 이방인으로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거주해왔다. 그런 작가에게 자신을 확인하려는 길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경험의 기억, 그리고 그 경험 속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지만 다른 존재인 타자들과의 접촉면에 가 닿으려는 적극적인 이주로 이어진다. 물리적 이주인 지리적 이동을 통해 작업하지만, 그 이주는 ‘정신적 이주’이기도 하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가 말하듯, 진정한 유목민은 “제자리에서의 여행”을 한다. 이미 길이 닦이고 파여있는 공간, 그 좌표화된 길을 따라 흐름과 이동이 결정되고 구획되어 구속하는 ‘홈 패인 공간 ( striated space)’과 달리, 매끄럽게 열려 그 위에서 결정되지 않은 방향성을 가진 힘들이 어디로든 어떤 모양이든 이동 선을 만들며 뻗어가는 ‘매끄러운 공간( smooth space )’을 보유한 채로, 그 공간을 떠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특히 최찬숙의 예술은 강제적으로 이주당한, ‘밀려난’, 그리하여 그들의 경험과 기억이 재현되지 못하는 이들을 만나서 매끄러운 공간을 넓혀가기 위해 접촉면 위를 미끄러지는 ‘부러 떠도는’ 여행이다.

그 여행은 프로젝트 〈리-무브(Re-move)〉(2017)로 시작된다. 작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주 여성의 삶을 살았던 친할머니의 자취를 따라 2010년에 할머니 사진 한 장을 들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여정 중에 작가는 수많은 다른 이주 여성의 시공간과 접촉한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고향 일본을 떠나야 했던 청목항(Aoki Seunae)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 위치한 선전용 마을인 철원군 양지리의 할머니들이 그들이다. 작가는 전쟁과 분단, 가부장제와 정치적 이데올로기라는 거대서사에 의해 밀려나고 옮겨진 여성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을 기록했다.


1 이여진 「스쳐 지나갈 것들에 대한 긍정-최찬숙, 내가 초대받은 그의 세계를 기록하며」 최찬숙 외 『Re-move』 아트선재센터 2017 p.143
2 최찬숙 『Qbit to Adam』 출간 예정
3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pp. 914~921 A Thousand Plateaus :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Brian Massumi Minneapolis London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7pp.478~482

〈양지리 아카이브〉 아카이브 혼합 설치, 테이블 위에 영상, 아카이브 프린트물, 사진, 샌드 조각 2016
《Re-move》 베를린 그림미술관 전시 전경 2016 사진 : 토벤 훼케

〈FOR GOTT EN〉 72개 중 가변 설치, 아크릴 박스, 물, 투명 필름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각 21 × 30 × 3cm 2010 ~ 현재
《Re-move》 베를린 그림미술관 전시 전경 2016 사진 : 토벤 훼케

이런 접촉 방식은 〈FOR GOTT EN〉(2012)과 〈밋찌나 (Myitkyina)〉(2019)에서도 나타난다. 〈FOR GOTT EN〉은 통일 전 동독에 속했던 라이프치히에서 종교와 정치의 억압을 견디며 믿음을 지켜온 60대에서 90대 사이의 여성 6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다. 작가는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듣기 위해 매우 조심스레 다가간다. 타자의 장소와 시간을 깨뜨리지 않고 침입해 그들과 자신이 나누는 이야기를 연결하는 사려 깊은 방식은 최찬숙 작업의 남다른 태도다. 프로젝트 〈밋찌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 부산에서 버마의 밋찌나로 동원된 20명의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다룬다. 작가는 이들이 존재했다는 기록과 사진 자료들은 있으나, 현재까지 단 한 명의 증언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상에는 지명을 딴 ‘밋찌나’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의 여성 세 명이 등장해서 침묵 속에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입장, 한국 내의 가부장적 민족주의 주장, 페미니즘의 시각처럼 서로 다른 가치에 따라 공방하는 견해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위안부 여성들의 삶의 목소리와 시선을 누군가가 진정으로 ‘재현(representation)’할 수 있을까? 최찬숙은 ‘밀려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감히 ‘대변(represent)’하려 하지 않는다. 작가가 고민 끝에 취한 ‘대변하지 않는 재현’ 방식은 그 여성들이 기억하는 빛, 소리, 냄새, 촉감을 통해, 거기 살아있었던 존재인 그들을 듣고 기록하려 온몸으로 다가가서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밋찌나〉 2채널 영상 설치, 4K, 컬러, 사운드 18분 30초 2020
《조각난 기억들의 그물》 대만관두미술관 전시 전경 2022 제공 : 대만관두미술관

최찬숙의 작품에서 땅은 사람과 닮아있고 땅 한 조각은 피부와 중첩된다. 디디에 앙지외(Didier Anzieu)가 말하듯, 피부는 담아주는 싸개, 주머니이자 내부와 외부를 나눠 보호하는 경계면이다. 한편으로 피부는 타인과 의사소통하며 관계 맺는 최초의 장소이자 수단이고 그 관계가 남기는 흔적들이 등록되는 덧쓰인 양피지 같은 표면이다.4 최찬숙은 초기작부터 〈큐빗 투 아담〉에 등장하는 코퍼맨의 무릎까지, 경계면으로서의 몸과 피부들에 맞닿아 거기 적히고 지워지고 또 겹쳐 쓰인 흔적들을 발견하며 관계 맺어왔다.

〈슬하(Under My Parents’ Roof)〉(2020)와 〈큐빗 투 아담〉에서 몸 (더 정확히는 무릎), 피부, 땅이 중첩되는 것은 그러고 보면 의미심장하다. 〈슬하〉에 나오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꿇은 장애인 학생 어머니의 무릎이 맞닿은 땅, 〈큐빗 투 아담〉 영상을 여는 코퍼맨 미라의 흙 또는 돌 조각이 되어 남은 땅, 〈Black Air〉(2019)의 수많은 무덤이 함축하듯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고 말 누구나의 것인 땅, 그런데도 누군가의 소유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땅. 그 땅에 작가는 무릎을 대고 묻는다. “인간의 몸이, 내 형제자매의 신체가 뒤얽힌 땅이라면, 누가 그것을 소유할 귄리를 주었는가?”땅은 “어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고, 모두의 것이 될 수도 없는 약속”6을 표시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존재들은 땅에 속하여 그 땅을 일구고 땅에 몸의 흔적을 섞어 남기며 시간을 지내왔으나, 그 땅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정치 경제적 제도와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밀려나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땅을 ‘점령하지 않고도 갖는’ 기억의 방식에 주목한 작가에게 땅은 소유와 박탈, 지배와 피지배 같은 이분법적 권력의 대상만은 아니다.


4 디디에 앙지외 지음 권정아, 안석 옮김 『피부자아』 인간희극 2008 pp.80~84, 117~120
5 최찬숙 「〈큐빗 투 아담〉 기획서」
6 〈큐빗 투 아담〉 영상 속 음악의 가사 일부

〈큐비트 투 아담〉 4채널 영상 설치, 사운드 36분 2021
《Moved, or What My Bones Know》 갤러리 노드, 쿤스트페어라인 티어가든 베를린 전시 전경 2023
사진 : 미카엘 지히

〈블랙에어〉(스틸) 2채널 영상 설치, 4K, 컬러, 사운드 12분 20초 2019

〈큐빗 투 아담〉을 위해 작가는 코퍼맨이 발굴된 칠레의 광산과 아카타마 사막 한가운데, 해발 5000m 고원에 위치한 국제전파망원경 기지 ‘알마(ALMA: Atacama Large Millimeter Array)’를 찾아 이동했다. 끝 간 데 없이 양극단의 수직으로 뻗어가는 인간의 땅에 대한 정복과 소유를 표상하는 두 곳이다. 작가는 끝없는 사막을 걷고 또 걸으며 “땅을 파는 노동의 강도가 힘줄처럼 새겨진, 낮지만 미끄러워 오르지 못하는 언덕들”에서 자신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남성성과 직면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자신처럼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땅들도 만난다. 채굴 과정에서 화학물질로 오염된 땅을 덮어놓은, 케이크 모양 같다고 해서 ‘토르테(Torte)’라고 불리는 땅은 “뒤틀린 살갗처럼 기이하게” 생긴 “땅으로 덮인 땅의 무덤”이다. 한편,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사람의 모습을 닮은 ‘페니텐테스(Penitentes)’는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자라나는 땅, 작가의 말로는 “돌아갈 방향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7

지상의 거의 모든 땅을 점령한 인간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가상세계로까지 소유권과 지배의 구조를 넓힌다.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을 듯 보이는 가상공간(cyberspace)의 데이터도 ‘누군가의 것’이 되고 만다. 몸은 아바타로, 땅은 가상 부동산으로, 몸이 감각하고 경험했던 기억도 데이터로 변환되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재화로 탄생한다. 최찬숙은 가상세계의 땅에 재화의 소유가 아닌 다른 거주방식을 만드는 실험을 수행했다. 〈큐빗 투 아담 퍼포먼스 (Qbit to Adam Performance)〉(2022)는 참여자 7인의 잊을 수 없는 땅에 관한 기억들에 기반한다. 퍼포먼스는 칠레 구리광산에서 발굴된 후로 끊임없는 소유권 논쟁의 대상이 된 미라 코퍼맨의 몸 조각 일곱 군데 땅에 관한 기억들을 변환된 데이터로 새기고 그 기억의 주인에게 NFT로 증정하는 교환식이다. 또 그들이 나눠준 땅, 몸, 기억의 이야기를 모두 함께 기억하는 기념식이다. 그렇게 이 작업은 소유권 분쟁으로 대상화되고 굳어진 몸이자 땅인 미라와 땅을 실제로 ‘소유’하지 못하지만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만나서 ‘홈 패여 가는’ 가상세계 안에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다른 질서의 가치를 기입하고 기념한다.

최찬숙의 예술은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그리하여 구획하고 나눠 묶어두는 영토에 갇힐 수 없는 존재들과 피부로 맞닿아 이야기를 써간다. 이 의지적 이주자의 예술을 통해 “어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고, 모두의 것이 될 수도 없는 약속”인 땅, 그 땅과 뗄 수 없이 섞인 몸들, 그리고 그렇게 섞이며 땅/몸에 담긴 기억들은 서로 접촉해 강렬하게 진동하고 매끄럽게 이동하는 탈영토의 영토를 끝없이 넓혀갈 것이다. 그것은 나누어진(dismembered) 존재들이 다시 만나는(reassemble), 그렇게 하여 함께 기억하기 위한 끝없는 움직임이다.


7 최찬숙 『Qubit to Adam』 출간 예정

 〈큐빗 투 아담 퍼포먼스〉렉처 퍼포먼스 퍼포머 : 지현준 2022
《올해의 작가상 2021》국립현대미술관 사진 : 홍철기

〈밀려나고 새어나오는〉3채널 영상 설치, 21 :9, 컬러, 사운드 6분 2020
《슈퍼포지션 큐빗 투 아담》 타이페이 디지털 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0
사진 : 이 춘-첸

이 의지적 이주자의 예술을 통해 “어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고, 모두의 것이
될 수도 없는 약속”인 땅, 그 땅과 뗄 수
없이 섞인 몸들, 그리고 그렇게 섞이며
땅/몸에 담긴 기억들은 서로 접촉해
강렬하게 진동하고 매끄럽게 이동하는
탈영토의 영토를 끝없이 넓혀갈 것이다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은 땅과 신체, 이주 문제를 다양한 매체로 다뤄 온 최찬숙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고유한 작품 제작 방법론으로 삼는 ‘아티스틱 리서치’의 결과로 축적된 아카이브 자료들은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거쳐온 고민과 사유의 궤적을 담고 있다. 책임연구자 조혜옥의 연구를 토대로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는 작품들을 프로젝트 단위로 소개하고, 작품을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 연구 및 텍스트를 수록했다. 조숙현이 자료집을 기획했으며 김나현이 편집했고 최소영이 아카이빙을 담당했다. 조혜옥과 이수연이 연구를 맡고 부찬용, 김지훈, 도미야마 이치로, 박소현, 우아름, 아멜리아 그룸, 김정현, 조주리, 헤라 찬 등의 글이 수록됐다. 번역은 콜린 모엣, 서울리딩룸, 조혜수가 맡고 영문 감수는 사라 고다드가, 그래픽 디자인은 신덕호가 진행했다

*본 기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 -2023 작가 조사 -연구 -비평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자료집의 일부를 재가공하여 수록한 것으로, 월간미술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 연구팀의 협력으로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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