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희 SANGHEE

이야기꾼의 여정

Up-and-Coming Artists

1995년 출생. 성균관대 사회학과 및 한예종 멀티미디어영상과 전문사 졸업. 개인전《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 노스탤지어의 벌레들》(팩션, 2024),《Worlding ··· 》(시청각 랩, 2023) 등 개최, 단체전《빅브라더 블록체인》(백남준아트센터,2024),《달로 가는 정거장》(문화역서울284, 2023) 등 참여. 2023 프리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어워드 뉴애니메이션 부문 특별상 수상. 2023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이머시브 공식 경쟁 부문 초청. 작가 성훈과 아티스트 콜렉티브 ‘교각들’을 결성하여 2024 ACC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 참여 예정.

〈원룸바벨〉(스틸) 인터랙티브 VR, 싱글 플레이 15분 2022~2023
제공 : 작가

이야기꾼의 여정

노재민 | 기자

모든 것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현상에 염증을 느끼던 찰나, 진정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났다.

상희는 VR 작품 〈원룸바벨〉(2022~2023)로 주목을 받았다.〈원룸바벨〉은 플레이어가 해파리를 찾을 때마다 원룸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설정이다. 이를 통해 원룸에 살았던 기억은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임을 상기하며 기억으로 유비되는 바벨을 축적해서 작업의 말미에 바벨 타워를 쌓아 올린다. 작품의 제작 과정과 정교한 설정도 흥미롭지만, 특히 주목할 점은 작가가 VR 기술에 내재하는 ‘정상적인’ 신체 규격에 대한 인식을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그는 사용자의 신체가 지나치게 크거나 작으면 VR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 다양한 관객을 포용하기 위해〈원룸바벨〉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제작했다. 이 버전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이 해파리를 응시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상희는 VR을 다루며 느낀 아쉬움 중 하나로, 작품 속 이야기가 VR 기기를 벗는 순간 사라진다는 점을 꼽았다. 즉, 휘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전 사용자의 데이터가 현재 사용자의 데이터와 섞이는 비동기 온라인 게임을 구상했다.〈Worlding ··· 〉(2023)은 관람객이 플레이를 마치면 서버에 지도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층에서는 관람객이 VR 작품을 플레이한 결과물(지도 이미지 )이 프린터로 인쇄되고, 지하 1층에서는 그 데이터가 모두 섞여 하나의 지형을 형성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비동기 네트워크를 통해 전시장에서 가상의 플레이가 실제로 쌓이고 축적되는 광경을 연출해낸다.

한편, 그는 VR의 아쉬운 점을 무작정 보완하지는 않는다. VR 산업계는 사람들의 감각을 연결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VR을 통해 경험적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심으려 한다(물론 번번이 실패해서 엉성하게 현실을 흉내내는 양상에 머무르고 있지만 말이다). 사용자가 VR을 통해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몸의 감각이랑 완전하게 밀착되어 온전한 촉각적인 경험을 전달받는 형식은 오로지 영화에만 존재한다. 현실의 VR은 불편하고 멀미를 유발하며, VR이 약속한 듯 보이는 환상적인 경험은 실재의 플레이어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상희에게 VR의 불완전함은 숨기고 싶은 요소라기보다는 부각하고 싶은 요소다. 그는 VR이 마치 “촉각적인 감각이 사라진 껍데기 같은 세상” 이라고도 느껴졌다며, 〈Worlding ··· 〉의 세계관 속에서 늙어가는 손을 뚫려있는 틈 사이로 보이는 실재 플레이어의 손과 괴리되도록 병치했다.

작가는 최근 테이블 토크 롤 플레잉 게임(Table Talk Role Playing Game, TRPG)의 방식을 적용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2024)1를 제작했다. 승패가 중요한 일반적인 게임의 양식에서 벗어나 대화에 초점을 맞춘 형식을 채택한 것이다. 상희는 협업자 성훈과 함께 게임 마스터를 맡아 대화형 게임 플레이 퍼포먼스를 주도하는 퍼포머로 등장한다. 이때, 미리 참여를 신청했던 관객은 게임의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며 플레이어로 퍼포먼스에 함께하고, 빈 지도를 채워 나가는 작가로 변모한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맡은 가상의 인물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발화하며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TRPG의 게임 마스터는 플레이어한테 일방적으로 뭔가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경합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러티브를 형성해나간다.


1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담당했다

〈원룸바벨〉 인터랙티브 VR, 싱글 플레이 15분 2022~2023
《Unfold× 2022 : Shaping the Future》
에스팩토리 전시 전경 2022

〈Worlding ··· 〉 인터랙티브 VR, 로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싱글 플레이 20분 2023
《Worlding ··· 》 시청각 랩 1층 전시 전경 2023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합판 구조물에 부착한 롤지, 스티커 가변 설치 2024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 노스탤지어의 벌레들》 팩션 전시 전경 2024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는 이전 플레이어의 데이터가 작업에 강하게 반영된다. 이전 플레이어가 물건을 떨어트리고 가면, 다음 플레이어는 그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전 플레이어의 시트를 확인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꺼낼 수도 있다.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기에, 이전 플레이어들이 남긴 것들이 모두 적용된다. 다시 말해 관객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로 기능하기도 한다.

상희의 작업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게임이지만, 퍼포먼스 아트 및 인터랙티브 아트를 경유하는 지점도 있는 것이다. 더 밀고 나아가자면 사진가의 작업 방식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뭔가를 포착하고 잡아낸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것들을 붙잡는다는 점에서상희의 작업은 사진과도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매체를 계속 달리하는 그에게서 일관되게 보이는 본질은 이야기를 통해 관객과 조우하는 것일테다. 그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알맞은 매체를 사용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그의 작업은 이야기꾼이 그려나가는 여정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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