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미술시장 분석:
성과와 경향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
Art Market Report
2024년 상반기 국내외 미술시장은 2023년부터의 정체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시작한 하락세속에 마감했다. 다시 우상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정이 필요하다. 이 기간 단기 투자자들이 떠나고 거품이 꺼지면서 다시 상승할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바젤과 UBS가 발행하는 『아트마켓 리포트 2024』에 집계된 2023년 세계 미술시장 거래총액은 650억 달러로 2022년 678억 달러 대비 4% 감소하며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갤러리와 개인 딜러를 포함한 딜러의 판매액은 361억 달러로 전년 대비 3% 감소했으며, 경매사의 퍼블릭 경매 및 온라인 경매 낙찰액은 251억 달러로 전년 대비 7% 감소했고, 개별적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프라이빗 세일즈는 39억 달러로 2% 증가했다.
이처럼 본격적인 둔화가 시작된 2023년 미술시장의 분위기는 2024년 상반기에도 이어지면서 주요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고가 작품이 판매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조정 국면에 들어선 상태다. 아트페어의 증가, 경매사의 퍼블릭 경매 둔화와 프라이빗 세일즈 증가, 갤러리의 방향성 변화 등이 눈에 띈다.
아트오앤오 2024 전경 사진 : 박홍순
아트페어 전성 시대 : 성과보다는 횟수?
박물관에서 방문객의 경험, 특히 피로감을 논하며 1916년 처음 등장한 ‘museum fatigue’에서 파생된 ‘fairtigue(fair fatigue)’는 관객이 아트페어에서 겪는 피로감과 페어의 급증에서 느끼는 피로감의 양 측면을 반영한다. 아트바젤처럼 많게는 300개에 달하는 부스와 외부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다 보면 며칠을 할애해도 모자라다. 운영국은 관객을 위해 VIP 라운지를 비롯, 퍼블릭 라운지까지 공간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아트페어 수가 늘며 참여를 취소하는 갤러리로 인해 생긴 빈 공간을 다른 프로그램이나 라운지로 메꾸기도 한다.『아트마켓 리포트 2024』에 따르면 국제 아트페어의 수는 2019년 408개로 정점에 달한 뒤, 팬데믹으로 2020년 133개, 2021년 259개를 거쳐 2024년 약 360개가 개최될 예정이다. 팬데믹 이후 부스비와 운송료 등이 급등했음에도 아트페어 수가 늘자 관객은 물론 참여 갤러리가 느끼는 피로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시장 침체까지 겹쳐 갤러리들은 ‘작품을 판매하는 가장 비싼 채널’이나 다름없는 아트페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분위기다.
위 2024 화랑미술제 전경 사진 : 박홍순
가운데 2024 아트부산 전경 사진 : 박홍순
아래 아트바젤 홍콩 2024 홍보 사이니지 제공 : 아트바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2023년 미술시장 결산 및 2024년 전망」에 따르면 2022년 71개, 2023년 82개의 아트페어가 국내에서 개최되었다. 2024년에는 화랑미술제를 시작으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아트오앤오, 대구국제아트페어, 아트부산, 화랑미술제 수원 등이 6월까지 개최되었다. 일부 신생 아트페어가 합류했고, 다른 아트페어는 첫 개최를 내년으로 연기했으며, 4~5월 연이어 개최되는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주요 갤러리의 취사선택도 눈에 띄었다. 국내 아트페어에서 젊은 작가들의 가격대가 낮은 작품은 판매 성과를 거뒀지만, 블루칩 작가의 고가 작품은 판매에 고전했다.
3월 아트바젤 홍콩은 팬데믹 이전 규모로 240여 갤러리가 참여해 기대를 모았지만, 출품작 라인업이나 판매 성과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6월 개최된 아트바젤 바젤은 홍콩에서의 실망감을 회복하듯 VIP 오프닝부터 마지막 날까지 주요 작가의 고가 작품이 연이어 판매되었다. 베니스비엔날레와 바젤을 함께 방문하는 컬렉터로 특수를 누렸고, 신생 갤러리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 일부 기준을 완화하고 부스비용을 낮추어 적용해 문턱을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 작가의 대규모 또는 주요 고가 작품과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작품이 주로 판매되었고 신생 갤러리의 젊은 작가 작품 판매는 두드러지지 않은 등 바젤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평이다.
국내외 아트페어에는 관객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판매되는 가격대는 호황기보다 낮아졌다는 평과 고가 작품 구매를 결정하는 데 더 신중해졌다는 평 역시 국내외 딜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상반기에 아트바젤 홍콩과 바젤을 중심으로 프리즈 LA와 뉴욕, 테파프 등이 개최되었다면, 하반기에 프리즈 서울과 런던, 그리고 피악을 대체하며 2년 만에 명칭을 변경한 아트바젤 파리와 마이애미비치 등이 몰려 있기에 하반기 아트페어의 성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레오노라 캐링턴〈Les Distractions de Dagobert〉캔버스에 유채 75.6 × 87cm 1945 제공 : 소더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85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상반기 국내외 경매 주요 이슈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2024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거래액은 약 917억 원으로 지난해 811억 원보다 13% 증가했지만 낙찰률은 49.8%로 최근 5년간 처음 50% 아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917억 원에는 6월 25일 서울옥션에서 219억 원에 낙찰된 오피스텔 분양권이 포함되었기에 실질적인 미술품 낙찰액은 698억 원이며, 전년보다 14% 감소한 수치다.
『아트마켓 리포트 2024』에 따르면 2023년 경매사의 퍼블릭 경매 낙찰액은 251억 달러로 전년 대비 7% 감소했지만 프라이빗 세일즈는 39억 달러로 2%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2024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낙찰 기록과 유찰 및 취소 기록 등이 모두 공개되는 퍼블릭 경매의 특성이 지금처럼 침체된 시기에 위탁자나 구매자에게 부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5월 크리스티 홍콩 프리뷰 전시에 2021년 서울옥션에서 31억 원에 낙찰된 이우환의 〈동풍〉이 전시되었는데, 경매 출품작이 아니고 전시를 위한 비매 작품이라고 밝혔지만, 향후 판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이다. CNBC 역시 부유층 구매자와 판매자가 공개 경매를 떠나 개인 거래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5월 뉴욕과 홍콩 경매에서는 대가들의 19~20세기 근대 작품이 중점적으로 거래되었지만 일부 기록을 제외하고 대부분 낮은 추정가를 약간 넘어섰다. 뉴욕 경매 중 소더비에서는 레오노라 캐링턴의 1945년 작이 추정가 1200만~1800만 달러를 훌쩍 넘긴 2850만 달러에 낙찰되어 이목이 집중되었고, 2261만 달러에 낙찰된 〈정오〉(1969)를 포함해 조안 미첼의 시대별 대표작 4점이 모두 낙찰되어 인기를 각인했으며, 모네의〈건초더미〉는 3480만 달러로 뉴욕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크리스티에서는 호크니의 작품이 2860만 달러에, 고흐의 작품이 322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후 5월 홍콩 경매 중
크리스티에서 이성자의 작품이 105만 달러로 작가 기록을 경신했으며, 필립스에서 바스키아의 작품이 전체 홍콩 경매 최고가인 1266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불황에는 동시대보다 19~20세기 작품의 판매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한편 소더비는 40년 만에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구매자 수수료를 낙찰가 600만 달러 이하는 낙찰가의 20%로, 낙찰가 600만 달러 이상은 10%로 낮췄으며, 판매자 수수료 역시 인하하거나 면제한다. 국내 경매사 수수료와 비슷한 수준으로 변경되면서 한국 컬렉터의 직접 구매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성자〈그림없는 산〉캔버스에 유채 95.8 ×193.5cm 1962 제공 : 크리스티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19만 홍콩달러(14억4000만 원)에 낙찰돼
작가의 최고 판매가를 경신하는 동시에 국내 여성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술시장의 최근 경향
2023년 시장 하락세를 거쳐 정체가 지속되면서 1차 시장에서 감지되거나 눈에 띄는 경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갤러리와 작가의 전속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6년부터 한국에 진출해 지점을 운영하는 외국 갤러리가 15곳에 달하는데, 한국 작가와 전속 계약을 두고 기존 한국 갤러리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외국 갤러리와 한국 갤러리의 공동 전속이나 지역 전속 등 다각도로 계약 관계를 논의해야 마땅하지만 도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외국 진출 기회를 노리는 한국 작가들 역시 기존 계약 관계를 지키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논의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결국 긴 호흡으로 지켜가야 할 사람 사이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음과 달리 최근 공동 전속 관계를 적극 표방하고 나선 메가 갤러리도 있다. ‘공동의 영향(collective impact)’ 이니셔티브는 하우저앤워스가 새로운 작가와 그 작가의 소속 갤러리와 공동 전속 계약을 맺고, 작품을 판매한 주체가 누구든지 두 갤러리가 동등하게 수익을 분배한다. 작가가 50%를, 나머지 50%를 두 갤러리가 동등하게 분배한다는 파격적인 방식이다. 이는 메가 갤러리 입장에서 한 작가를 발굴하고 함께해온 기존 갤러리를 존중하고, 판매 외에도 작가를 둘러싼 다양한 프로젝트와 활동 방향을 공동 논의하는 상생 모델이라는 점에서 귀감이 된다.
둘째, 신생 및 소형 갤러리는 물론이고 메가 갤러리까지도 1975년 이후 출생한 울트라 컨템포러리 작가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 계약하는 경향성이 눈에 띈다. 그 이유는 미술시장 침체에 따라 판매되는 작품의 가격대가 낮아지고,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 컬렉터가 늘어나며 동년배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 외에도 갤러리의 장기적인 안목과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포함해 작품을 거래하는 채널과 주체가 다양해지고 작가와의 직거래도 늘어나면서 갤러리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작가의 활동이 한 사람의 일생을 함께하는 장기 레이스이기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갤러리는 오히려 힘을 얻게 된다.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투자하고 함께 성장하는 갤러리의 진정한 역할을 고찰하는 경향은 한국 갤러리에도 기회가 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맺는 관계가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인식한 갤러리들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특히 두드러진다. 갤러리의 프로그램에 ‘다양성’이 필수 조건으로 부각되면서 연령과 성별 역시 다각화된 것이다. 작가가 다루는 주제와 매체부터 국적과 성별, 세대 등의 정체성이 다양성을 띠어야 갤러리의 경쟁력과 안목이 인정받을 수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동시대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에, 정체성의 하위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작가를 고루 갖춘다.
팬데믹과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작가와 기획자를 껴안는 움직임이 커졌고,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가 이방인과 다양성인 만큼 아웃사이더와 원주민, 성소수자 등이 다수 초대되었으며, 이전 행사 역시 여성 및 넌바이너리(비이분법적) 작가가 대거 포함되면서 작가의 정체성 범주가 세분화되었다. 이는 주요 국가 정치 기조와 함께 주요 전시의 주제는 한동안 미술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양한 주제의 전시에 소속 작가를 포진하고 다양한 컬렉터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갤러리는 여러 층위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여성 작가에 대한 관심도 결국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 ‘여성’ 작가라는 표현에도 다양성의 카테고리가 두 개 내재된다. 여기에 ‘세대’까지 추가되어 이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미래, 전현선, 이진주, 정희민, 양유연, 오묘초 등은 모두 올해 해외 시장에 소개된다. 국내외 갤러리와 전속을 맺고, 외국 갤러리에서 개인전이나 기획전, 또는 아트페어의 솔로 부스에 참여한다. 기존에 국내 전속 갤러리가 있던 경우도, 처음부터 외국 갤러리와 계약을 맺은 경우도 있다.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는 첫 회에 우한나가, 2회인 올해에는 최고은이 수상했다. 한국 외에도 다음 세대 여성 작가에 대한 미술시장의 관심은 뜨겁다.
장 미쉘 바스키아 〈Native Carrying Some Guns, Bibles, Amorites on Safari〉
캔버스에 아크릴릭 213.4 ×152.4cm 1982
필립스 상반기 홍콩 근현대 이브닝 및 데이 경매에서 한화 약 173억원에 낙찰되었다
최고은 〈White Home Wall〉 스탠딩 에어컨디셔너 180 × 1100 × 8cm 2018
《Point Counter Point》 아트선재센터 전시 전경 2018 제공 : 아트선재센터, 프리즈 서울
프리즈 서울 제2회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 최고은은 폐기된 산업 재료를 재탄생시킨 설치 작품
〈White Home Wall : Welcome〉과 〈Gloria〉, 두 점의 선정작을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 경제와 미술시장 전망 2020년 팬데믹으로 급락했던 미술시장은 봉쇄조치와 이동제한 같은 물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온라인을 활용했고, 그 제한이 해소되면서 금세 회복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술시장 역시 급랭기에 접어들며 가장 눈에 띄었던 변화는 직전 호황기에 젊은 작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판매하던 갤러리들이 가장 먼저 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점이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갤러리들은 젊은 작가 영입에 열을 올리는 등 다른 양상을 띤다. 2023년부터 겪고 있는 미술시장의 침체는 건강한 조정 기간이라고 판단된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 경제가 겉보기에 홀로 호황을 누리는 듯했지만,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둔화되었다. 이에 9월 금리인하 전망이 매우 우세해졌는데, 금리를 인하하면 대출이 늘고 투자가 활발해져 미술품 거래 역시 증가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총격 사건 이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확실해지면서 대선 전 금리인하로 경기가 부양되면 현 정권에 유리하므로 금리인하를 정권 교체 후 시행해 증시 상승 등 경기 부양의 공을 세운다는 셈법 아래 연준에 금리인하 연기를 압박하고 있다.
미 대선 결과와 달러 강세, 크고 작은 전쟁과 관세로 인한 무역전쟁 등으로 2025년 이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술시장은 세계 경제와 정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악재를 극복하면서 회복탄력성을 보여왔다. 미술품은 팬데믹을 전후해 구매 채널이 확장되고 가격정보가 공개되면서 문턱이 낮아졌고, 전시를 감상하고 작품을 구매하는 향유층의 저변이 확대되었지만, 다른 시장과 비교해 미술시장의 파이는 작고 미술품 구매자의 수 역시 한정적으로, 미술품은 여전히 사치재에 가깝다. 다만 한국 작가와 관계를 공고히 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시기임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아트페어와 갤러리의 활약에만 기대지 말고 현명하게 협업하며 내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김영원 x Project YYIN 〈Becoming -dancer〉
사진 : 박지인 제공 : 프리즈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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