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제트리엔날레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
The Prism of Korea Biennale 2024
2024.9.26~10.27
Special Feature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진부시장, 월정사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2013년에 설립된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강원도가 주최하고 강원문화재단과 평창군이 공동 주관한다. 2024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위촉된 고동연은 미학과 실천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며, ‘생태예술은 형태가 아닌 태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미지로서의 생태예술이 아닌 생태예술을 태도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해보자는 권유로서 이번 행사는 기후위기 시대 지구의 환풍구라 불리는 개미굴에 조명을 가한다. 이는 개미굴이 지니는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1960년대 반문화적, 반자본주의적 미국 건축가 집단 ‘앤트팜(Ant Farm)’의 실천과 태도, 공상과학에서도 개미굴이 중요한 소재로 활용된다는 점 등 이번 전시가 향하는 방향성을 입을 수 있는 대주제로서 형태와 내용적 특성을 잇는다.
이번 트리엔날레는 특히 3인의 국제 커미셔너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도 강조한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인 라울 자무디오(Raul Zamudio)와 일본의 독립 큐레이터 고다마 가나자와(Kodama Kanazawa), 호치민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 작가이자 독립기획자인 리처드 스트라이트매터-트랜(Richard Streigtmatter-Tran)은 미주 대륙과 중국, 대만, 베트남 출신의 국제적인 작가를 적극적으로 섭외하고, 고 감독과 함께 강원 작가 공모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렇게 21개국 국내외 작가 51팀의 작품 140여 점이 9월 26일부터 10월 27일까지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과 진부시장, 월정사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사전프로그램 은 전시에서 다룰 여성과 생태예술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논하는 ‘여성 일꾼과 에코페미니즘’ 제하의 국제심포지엄과 ‘조영주의 살핌 운동’, ‘가을 수확 염원하기’, ‘강원 식물’ 등 체험형 연계 프로그램 등이 예정돼 있다.
위계 없이 수평적이고 순환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개미굴의 형태와 약육강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미들의 생태계 특성이 이번 트리엔날레와 만나 어떤 형태로 구현되어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넬지 귀추가 주목된다.
Director
고동연 (Dongyeon Koh)
고동연은 전후 미술사와 영화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젠더와 전쟁 기억, 대중소비문화와 접합된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미술비평가이며, ‘신도작가지원 프로그램’의 국제심사위원(2011~2014) 등 커미셔너를 역임한 바 있다.『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 :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현대미술과 예술대중화 전략들』 (2018)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전후 맥락에서의 한국미술사(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in Context ( 1950-Now ) )』 (2025, 이정실 교수 공저)도 출판될 예정이다.
하도경 기자
주제는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부제는 ‘개미굴, 강원으로부터 배우다’. 어떻게 이번 주제를 어떻게 정하게 됐나?
전시 주제는 이른바 ‘오래된 덕후적인 개인 관심사’에서 나왔다. 이전에도 개미굴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고, 1960년대 건축가 집단이면서 일종의 반문화적 집단인 ‘앤트 팜’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트리엔날레에서 주목한 것은 개미와 개미 공동체의 ‘부지런함’과 ‘협력’이라는 도덕적 특성을 어떻게 생태예술이나 기후위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개미 공동체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순수하고 이타적인 자연이나 생태계의 순리와 대조할 때 인용되고는 했다. 이번 전시는 이미 인간 사회에서 인정받은 기존의 개미굴에 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재사용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개미굴에서 일어나는 창조, 파괴, 혼란, 재생의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 보려는 의도도 지니고 있다.
‘생태미술’이라는 주제는 여타 비엔날레 및 전시에서 활발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인 만큼 어떻게 차별적으로 펼쳐내 보일지 궁금하다.
이전에 개최된 강원트리엔날레는 생태미술을 직간접적으로 다루어 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자연주의 미술에 편중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룬 예술을 생태예술로 분류하는 구도는 배제하고자 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라는 말을 시적으로 생각해 봤다. 아래를 강조하는 태도, 혹은 시야의 확대를 생태예술이 말하는 태도의 변화로 보았다. 강조하자면 자연적인 형태를 배제된 상태에서 생각해 보고자 했다.
전시를 꾸리면서 마주한 고민과 한계는 무엇이었나?
생태미술과 국제전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의문이 있었다. 국제 전시가 아우르는 작가 폭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데 자원을 최대한 아낀다고 한들 전시가 끝나면 쓰레기가 나오게 돼 있다. 개미굴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어떻게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또한 로컬리즘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강원 출신 작가라고 할지라도 영서, 영동 출신인지에 따라 문화가 다르다. 멀리서 봤을 때 다 같은 농민이라고 여겨질지라도 그들의 미시사는 다들 다른 것처럼 말이다.
주제와 전시를 연결하는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개미굴은 지하에 존재하며 인간 세계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터널은 지상의 뜨거운 공기를 지하로 배출하는 중요한 통로 구실을 하고, 폐기물 분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터널은 인간 사회와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개미 군체의 생성과 멸종의 역동적인 과정은 자연을 단지 아름답고 고정된 대상으로만 숭배하지 않도록 한다. 전시는 이를 반영해 삶의 순환을 모방하고, 설치와 철거 과정을 통해 생명이나 물질의 삶과 죽음을 재연하고자 한다. 사물과 물질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는지에 중점을 두면서 말이다.
전시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전시는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눠지며, 자연의 형태나 주제를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작업보다는 생태적 접근 방식을 강조하는 작품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인간/자연,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보다는 물질적 형태나 내러티브 안에서 요소 간의 복잡한 관계를 강조하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에 따라, 관점의 변화, 과정 중심의 예술, 신유물론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전시 구성을 제시하고자 하며, 인간, 자연, 환경 간의 공존과 갈등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고 다시 상상할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번 트리엔날레 탐구 주제로서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도 궁금하다.
젠더 이론의 관점에서 여성의 주체를 신체로만 축소하거나,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주체성과 대조되는 대상으로 축소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연에서 여성의 신체나 주체를 통해 물질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물질과 자연이 통제나 활용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시대에서 인간과 물질, 일상생활, 그리고 자연 간의 변화된 관계를 제안하고 실천하는 시대로 전환하면서, 여성적 특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여성이 자연이나 물질을 다루는 방식, 돌봄, 리더십 등이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여성들은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연대를 형성했다. 조영주, 임윤경, 김옥순, 포루하르(Forouhar)는 주제적 측면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와 돌봄에 초점을 맞춘다. 신경진은 ‘그레이 하이브(Gray Hive)’라는 벌집을 모델로 한 육각형 방 안에서 홀로 생활하는 노인의 식사와 일상을 담은 영상을 선보인다. 이는 노인이 홀로 생활하면서 돌봄의 주체가 되는 모습을 벌집의 여왕벌 대신, 육각형 방에서 돌봄을 받는 주체로 패러디한 것이다.
생태미술을 의제로 내걸고 있는 만큼 폐기물이나 쓰레기 문제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현대미술은 물리적 작품의 물질성보다 개념과 관객의 경험을 강조해왔다. 마찬가지로, 생태적 태도 역시 과도한 물질주의를 경계해 왔다. 이번 전시 역시 환경을 고려해 물리적 잉여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의하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보편적인 논의를 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신유물론’은 철학, 최근의 광학, 생리학에서 예시되는 바와 같이, 인간을 개인으로 또는 인간의 몸을 다른 물질과 구분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인간과 환경 간의 장벽을 제거한다. 전시는 생태적 균형에 민감해진 현대사회에서 사물과 물질주의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예를 들어, 타티아나 볼스카 (Tatiana Wolska)의 〈저항으로서의 여가〉는 가구 회사가 기부한 폐목재를 무작위로 엮어 만든 구조물이다. 작가는 폐목재로 만든 동굴에서 책을 읽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도록 관객을 초대하며, 이를 통해 재료와 사물은 새로운 위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 신유물론은 물질주의적 틀을 넘어 물질의 역할과 가치를 다면적으로 정의한다. 물질주의는 생태 문제를 제기할 때 종종 적으로 간주되지만, 새로운 맥락에서 사물이나 재료는 전혀 다른 의미와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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