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젠퀴스트: 유니버스》

세화미술관
2024.7.5~9.29
Exhibition

《제임스 로젠퀴스트 : 유니버스》세화미술관 전시 전경 2024
사진 제공 : 세화미술관
사진 : 이현석

〈일식〉(사진 가운데)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알루미늄 시계 바늘, 시계 장치와 변형 캔버스 부착 122 × 198cm 1991

우주시대 팝의 감수성과
회화를 혁신하는 방법

이임수 홍익대 교수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 예술가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회고전이 세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작품들이 나왔다. 예술가 자신 및 미술비평가, 기획자, 가족의 인터뷰가 포함된 다큐멘터리 영상이 전시장 입구에서 상영되고, 전시 말미에는 로젠퀴스트의 예술 여정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사진 아카이브 자료가 제시되어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전시는 로젠퀴스트의 후기 작업의 향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로젠퀴스트는 1960년대부터 미디어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소비주의 사회의 일상과 사회정치적인 현실을 언급하고, 물질문화 속 이미지들에 내재하는 시대의 감수성도 함께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 주를 이루는 후기 작품들은 그의 회화적 방법이 주제를 바꿔가며 변주되는 양상과 물질문화에 대한 관심이 우주와 삶의 본질에 대한 감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1960년대 등장한 팝아트는 일상의 대상들과 미디어의 이미지들을 작품 소재로 끌어들이며 모더니즘 미술이 추구했던 천재 예술가의 창의성, 개별 예술 장르의 순수성, 그리고 미적인 확신으로 경험되는 작품의 질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로젠퀴스트는 회화의 구성 방식을 문화 속에서의 시각적 경험에서 차용하고 있다. 그것은 레오 스타인버그가 플랫베드(flatbed)라 일컫던 문화적인 편집 화면으로서의 회화인데, 그는 다양한 소스로부터 이미지를 빌려와 재배치한다. 이 전시에서 ‘소스 콜라주’ 섹션은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광고, 정치 홍보물, 상품 포장, 발견한 장면과 오브제 등 이질적으로 보이는 자료들이 콜라주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로젠퀴스트는 아방가르드의 오랜 혁신의 방법인 대중문화로부터의 차용이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이 공연 포스터, 인쇄매체, 여가 문화 등으로부터 작품의 재료와 주제를 발견했듯이, 1960년대 팝아트도 대중문화와 소비주의 문화로부터 재료와 주제, 더 나아가서는 독특한 감수성을 차용했다. 로젠퀴스트는 이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정치적인 맥락을 부각할 수 있는 인물, 예컨대 케네디 대통령, 리처드 데일리, 그리고 전투기 F-111 등을 작품에 도입한다. 그리고 그의 화면은 그가 상업미술에 몸담았을 때 제작했던 빌보드 광고판의 화법을 구사한다. 다시 말해, 광고 이미지가 취하는 의미전달 전략인 은유와 환유를 동시에 구사하는 것인데, 제시된 대상 자체가 지시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여러 대상의 병치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뉘앙스를 만든다. 특히 병치의 방식은 형식적인 화면 구성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플로리다로 옮긴 1970년대 후반부터는 자연물(꽃, 잎 등)의 패턴을 화면 분할의 패턴으로 활용하고, 보다 다양한 대상들이 화면에 들어오게 된다.

〈시계 중앙의 공백-시간 기록자〉 캔버스에 유채, 나무에 채색하여
접합 213.4 × 137.2 × 22.9cm 2008 © 2024 James Rosenquist,
Inc. / Licensed by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사진 : Joe Traina. Courtesy of the 
Estate of James Rosenquist

〈수학적 다중우주로 들어가는 입구〉 캔버스에 유채 173 × 135cm
2014 © 2024 James Rosenquist, Inc. / Licensed by Artists Rights
Society (ARS ), NY.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Estate of James Rosenquist

로젠퀴스트가 보여주는 회화의 방법은
예술과 비예술을 비롯한 근현대에
수용되었던 온갖 경계선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전시 작품들에는 잡지와 각종 사진 스크랩에서 온 이미지들이 포함되었다. 달, 별, 은하, 성운과 같은 우주 이미지를 비롯하여 연필, 색약 검사지, 음료수 캔, 요트, 시계 등 다양한 형상들이 등장한다. 개별적인 이미지들이 지시하는 의미는 대체로 분명하다. 다양한 천체 이미지는 물리적 우주와 우주적 삶을, 색약 검사지는 시각 자체, 혹은 색채에 대한 경험을, 시계는 시간 자체와 일상의 순간을, 여러 사물들은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뜻한다. 로젠퀴스트의 회화에는 매우 직접적이고 경험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이러한 사물들의 이미지가 우주적인 배경이나 회화적인 패턴을 배경으로 배열되는데, 그 방식은 견고하게 내러티브를 쌓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한순간의 깨달음이나 단상을 던지는 것이다. 빌보드 광고판의 이미지가 매혹적인 인물과 상품 이미지로 특정한 방식의 삶을 제안하듯이 그렇게.

회화의 과제가 예술적 과제와 삶의 조건을 다루면서 각 시대의 시각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로젠퀴스트가 보여주는 회화는 하나의 개념이나 주제를 그것과 짝지어지는 오브제, 이미지, 일화를 직접적으로 도입하여 표현된다. 20세기 다다의 언어가 불합리한 병치를 통해 의미를 해체하는 데 몰두했다면, 팝아트의 언어는 차용된 일상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삶의 조건에 관해, 인간 존재에 관해, 우주의 실체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앤디 워홀의 스타 이미지에 죽음이라는 주제가 따라다닌 것과 같이, 로젠퀴스트의 회화에는 그가 몰입하는 우주적 신비 같은 것이 가벼워 보이는 이미지 뒤에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로젠퀴스트가 보여주는 회화의 방법은 예술과 비예술을 비롯한 근현대에 수용되었던 온갖 경계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수전 손택은 1960년대 등장한 문화의 새로운 감수성을 산업혁명 이후 틈이 벌어졌던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라는 두 감수성이 융합한 결과로 보았다. 형식과 내용, 경박한 것과 진지한 것,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비롯한 수많은 경계의 구분이 무너진 것은 기계 시대 이후 새로운 고전주의가 된 삶의 연장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의 등장과 함께 한다. 또한 냉담한 태도로 감상적인 것을 거부하고 탐구와 질문에 대한 자의식을 통해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 그와 함께 감각의 분석과 확장으로 형식과 스타일의 즐거움에 열려 있는 것이 새로운 감수성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롭고 개방적인 방식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팝아트가 보여주는 미적 감수성 또한 여기에 부합한다.

로젠퀴스트의 1990년대와 2000년대 회화도 팝아트의 이러한 감수성을 지난하게 추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손택에 따르면, 대담한 다원성을 보이는 이 감수성은 “엄숙함뿐만 아니라 재미, 재치, 향수에도 몰두한다.” 로젠퀴스트가 우주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감각적이고 일상적이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우주의 이미지, 일상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보이지 않는 기체의 밀도를 시각화하는 기압계, 기계적 장치의 기표인 톱니바퀴, 관찰과 탐구의 신체기관인 시각을 대표하는 색약 검사지, 물리적 존재의 반영을 만드는 거울, 지성이 활동한 흔적을 남기는 도구인 연필 등을 병치시켜 거대한 화면을 구성한다. 이 화면은 개념적인 실험이라고 일컫기에는 다소 유치해 보이고, 우주와 인간에 관한 고뇌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유쾌해 보인다. 예컨대, 〈본질적 존재〉(2015)에는 분석적 큐비즘 회화와 같이 불규칙하게 분할된 그리드의 화면 가운데 둥근 거울이 놓여 있다. 삼각형으로 분할된 다채로운 색채의 그리드 위로 별들이 반짝인다. 중앙의 둥근 거울 모서리를 따라 “An Intrinsic Existence”라는 문구가 있고,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림과 함께 보게 된다. “우주 속 존재로서의 나”라는 이미지를 매우 명쾌하고 쉬운 방식으로 보여준다.〈시계 중앙의 공백 : 시간 기록자〉(2008)도 둥근 시계 이미지와 그 중앙에 꽂힌 5자루의 빨간 색연필을 보여주며 작품 제목을 그대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것이 팝의 감수성이다.

또 하나, 로젠퀴스트가 작품에서 좇고 있는 팝의 감수성은 바로 향수(nostalgia)라고 하겠다. 그가 우주의 존재와 인간의 실존에 접근하고 다루는 방식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1950년대 후반 이래 우주시대의 대중적 이미지는 그 이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과 공상과학적 상상력의 실현과 연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우주시대 이미지는 우주의 상업적 활용과 관련된 소비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로젠퀴스트의 우주 이미지는 우주시대 초기의 열망과 대중적 이미지에 근거한다. 그런데, 그 안에 내재하는 감수성은 1960년대 시작된 달 탐사와 우주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관계되며, 그의 우주 그림은 이 순수한 열망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전시 중인 작품 안내문에 삽입된 그의 말,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우리는 자연에 있고, 우주의 신비가 주변에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그리고 싶다.”는 이러한 노스탤지어를 드러낸다.

이번 로젠퀴스트 한국 회고전은 인공지능을 위시한 최첨단 미디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의 융합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1933년 출생하여 1960년대 팝 아티스트로 전성기를 구가한 로젠퀴스트는 회화가 팝아트의 방법론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우주와 인간에 대해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팝아트의 핵심은 그 특유의 감수성에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지들을 여러 소스를 통해 수집하고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여 소위 팝적인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이때 그 작품들이 드러내는 감수성은 무엇인가에 관해서 자문해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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