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임가영, 등촌야학
강재영 기자
Special Feature
당신의 레퍼런스를 들려주세요
d/p
d/p @dslashp
https://dslashp.org/
현재 가장 활발한 프로그램은 올 초 시작된 ‘d/p 유산 연구실’의 레퍼런스 공유 모임이다.
d/p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기획자 공모를 통해 큐레이터의 독립적인 전시 기획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최근 공공기금 지원 폭이 넓어지고 프리즈 서울 등 대형 행사가 열리면서 도리어 서울의 전시들은 비슷한 포맷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d/p가 이런 풍토에 일조한 건 아닌지 하는 반성과 자책감이 들었다.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큐러토리얼 실천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전시 생태계의 빠르게 돌아가는 속도와 소모적인 행태에도 지쳐있었다. 결국 2024년 ‘전시 없음’을 선언하게 됐다. ‘일시정지’보다는 ‘멈춤’에 가깝다. 여기에는 서울에서 현대미술을 한다는 게 무엇인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대한 공허한 감각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무얼 할 것인가에서 ‘유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공동운영자인 김지연 큐레이터는 ‘동시대 미술에서 우리만의 유산이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고민을 품고 있었다. 서구권에선 다른 민족, 국가, 원주민이 축적해 온 유산까지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미술의 주제로 삼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뿌리나 유산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로 계속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유산에 대한 탐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d/p 유산 연구실’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전시를 중단한 대신, ‘유산’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연구와 레퍼런스 공유 모임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발표 주제는 ‘d/p의 유산’이었다. 우리가 위치한 낙원악기상가가 어떻게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이곳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공간이다. 낙원악기상가의 공간적, 역사적 맥락을 연구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유산’이라는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다.
현재 20여 개 팀이 레퍼런스 공유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자의 유산을 나누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서 유산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유산으로 삼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d/p 유산 연구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모임의 주제나, 프로그램의 방향에 주안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억나는 모임이 있다면? 이곳에서 지식 공유나 배움-탈배움의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가?
참여자들이 자신의 참고 자료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작가들은 자신이 연구한 레퍼런스를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 두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한다. 공모 형식도 중요하다. 이 모임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작가를 많이 만났다. 사실 미술계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전지구적이다 보니, 주제가 획일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연구를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유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이 모두 다르고, 스케일도 다양하다. 민중 미술사학자 최열부터 대학원 갓 졸업한 젊은 연구자까지, 폭넓은 세대와 배경의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어떤 참여자는 한 번도 이곳에 와본 적 없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이 오픈콜을 보고 바로 신청해서 자신의 연구 주제와 읽고 있는 책을 소개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안무가 이양희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며 본 공연들, 영향받은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중 인상 깊은 건 늙은 일본인 안무가의 퍼포먼스 이야기다. 매일 두 번씩 자기 집 뒤뜰에서 목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이를 사람들이 와서 보고, 이후 함께 가락국수를 나눠 먹는다는 것이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형태의 퍼포먼스였다.
이렇게 다양한 스케일과 형식의 이야기가 모이다 보니, 이 모임을 어떻게 기록하고 정리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각자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양 미술사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 속에서 배운 것이 많지만, 동아시아에도 독자적인 방식이 존재한다. 이 모임을 통해 각자의 문화적 경험과 자산을 어떻게 풀어내고 공유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떨어져 있던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는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일부 참여자들은 매우 사적인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기도 한다. 비평가 이한범의 경우, 아버지의 고민이 자신의 비평적 고민과 비슷하다는 사실에서,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유산으로부터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사유를 공유했다. 이처럼, 다른 곳에서는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우리는 매일 성장하는 과정에 있으며, 성장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임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출발했으며, 매우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기획자로서, 전시와 구별되는 이러한 모임 형태의 프로그램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보는가?
비록 올해는 전시를 멈췄지만, 여전히 d/p는 미술과 예술로 가득 차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며, 미술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도둑 연구 모임〉 같은 경우도 전시 형식이 아니었지만, 그 자체가 예술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시가 아닌 방식으로 예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하는 그 과정에서 큰 만족과 재미를 느꼈다. 전시는 물론 의미 있고,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형식이다. 하지만 전시가 없는 지금, 공유회를 통해 미술 공간의 역할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시대 예술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전시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 즉 전시 후 남는 쓰레기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전시와 관련된죄책감이나 부담 없이, 우리는 현재 이 공간에서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모임을 통해 작가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게 된다거나, 일종의 유대-문화가 형성된다거나, 혹은 이러한 이벤트로 변화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발표를 진행한 작가 대부분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게 되어 큰 만족감을 보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작업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특히 사례비가 없는 모임임에도, 발표자들이 순수한 동기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안무가 황수현은 리허설 안에서 발견되는 레퍼런스를 어떻게 붙잡고 가는지에 대한 발표를 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리허설을 통해 퍼포머의 몸 상태나 감정, 퍼포머들 간의 관계 등을 포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무를 만들고, 다음 작업으로 이어가는, 일종의 내재적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진행됨을 공유하였다. 외부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오기보다는 어제의 이야기에서 오늘의 작업이 나오고, 오늘의 이야기에서 내일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작업 과정의 내밀한 스타일을 관객들과 나누었다.
d/p에서 〈d/p 유산 연구실 : Open References〉가 진행되고 있다 제공 : d/p
모임을 기획/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무언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것도 있나?
지원금 공모에서 떨어졌기에 이 모임을 담백하게 진행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술장 내부에서 제도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프리즈 서울의 ‘을지로 나잇’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우리가 하던 걸 그대로 했는데, 패션 매거진에서 화보를 찍겠다는 연락도 받으면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를 운영하면서 가끔씩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도 있다. 전시를 열어두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에는 극도로 적은 수의 관객이 오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입장료를 받지도 않으니,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나 작가가 ‘너희의 관객은 누구냐’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내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대관료를 받아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미술계 이너서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예술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너서클의 한 부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이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d/p와 같은 공간에서, 예술이 지닌 가능성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후 d/p는 어떤 모습이 될까? 어떤 미래를 그리나?
d/p는 시작할 때부터 자유로운 아이디어로 꾸려온 공간이다. 일단 시작하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느낀다. 처음에는 3년 정도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 벌써 7년째를 맞이했다. 앞으로 10년 후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내년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프리즈 같은 대형 마켓과 연결되면서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 불안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진정한 우리의 미술이 무엇인지, 그다음에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앞으로 2~3년 안에 미술계가 큰 변화를 겪을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화려한 브랜드들이 들어와 미술계를 장악하지만, 그 버블이 꺼지고 나면 우리의 미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크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른 곳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돌리고 싶다. 특히 50대 초중반의, 여전히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미술을 고민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d/p는 그런 작가들의 미술과 예술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미술계가 지나치게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나 외부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예술을 소중하게 다루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매체로서의 워크숍,
임가영
『미술구술』 (화이트리버, 2023)의 한 페이지
임가영 @gayoungi
이번 특집에서 유일한 작가로서의 인터뷰이다. 워크숍이 작업의 중요한 계기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워크숍, 그중에서도 관객의 관람 경험의 포착과 기록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관심은 관객연구모임 ‘격주로’에 뿌리가 있는 것 같다. 2016년 『What’s the Use?』라는, 아르테 유틸(Arte Útil)과 예술에서의 사용자성(Usership)을 다룬 선집을 같이 읽었다. 작년에는 독립출판물 『미술구술』 (화이트리버, 2023 )을 만들어, 책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워크숍 경험도 탐구했다. 올해부터 워크숍이 작업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리서치 결과를 타인과 공유하고, 나아가 기관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탐색하거나 조직하는 데에 워크숍이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보니 ‘(작업)매체로서의 워크숍’이라는 단어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 같다. 이전에도 워크숍을 만들거나 참여하면서 이것이 내가 다룰 수 있는 형식 중 하나라는 생각을 했고, 올해부터는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2022년 카셀 도큐멘타 15에서 워크숍이 전시와 결합하는 방식을 보며 다시 한번 그 가능성에 주목한 측면도 있다. 당시 프리데리치아눔을 비롯해 여러 곳이 워크숍 장소로 변화되었는데, 워크숍이 진행되지 않을 때도 공간 내의 손글씨나 다이어그램이 그려진 현수막 등 설치 작업이 가진 특성들이 미적으로 보였다. 그 연약한 매체를 좀 더 집중해서 다루고 싶었다. 더불어 워크숍을 전시의 맥락에서 선보일 때, 과정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올해는 특히 기록의 방식을 탐색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트와인(Twain) 게임인 〈퍼마라이프 : 멈출 수 없는 반복의 게임〉도 이러한 워크숍과 퍼포먼스 아카이브 형식의 실험을 위해 새롭게 만든 작업 중 하나다. 워크숍을 휘발되는 사건의 기록이라는 주제와 연결하면서 나의 퍼포먼스 작업과 워크숍 사이의 연결이 더 중요해진 것 같기도 하다. 워크숍을 통한 작업의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워크숍 자체, 그러니까 워크숍 참여 경험뿐 아니라 워크숍을 위한 공간 자체도 미학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는건가.
그렇지 않을까? 워크숍 참여 경험뿐 아니라, 워크숍을 위한 공간 자체도 미학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참여적이거나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작업은 조각이나 회화 같은 안정적인 매체와 달리, 포스트 미디엄의 맥락에서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 그걸 탈매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워크숍이 탈매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로서 그 자체로 깊이와 형식적인 정교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워크숍을 단순히 참여적인 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의미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대신, 워크숍의 상호작용 구조 자체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미술을 전시장에 박제된 작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이를 수용해 언어화하고, 공유하고, 다시 창작하거나 정동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보여왔다.
언어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워크숍에 관한 형식적인 탐구만큼이나 워크숍에서 일어나는 대화적 형식이나 방법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대화는 단순히 언어적인 말로 이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이버네틱스적 소통 방식과도 연결될 수 있다. 반재하 작가의 공연 〈메이크 홈 스위트 홈〉(두산아트센터, 2024)의 관객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고든 파스크(Gordon Pask)의 사이버네틱 시어터 리서치를 기반으로 인간 관객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관객의 미디어 관람 경험 탐색을 시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크숍에서 일어나는 대화는 즉시성, 즉 시간 개념도 중요하다. 일반적 관람 과정의 대화와 다르게, 워크숍은 즉각적인 피드백 과정이 핵심이다. 때로 정동은 이런 즉시적 피드백에 의해 강화되는 것 같다. 이러한 측면은 SNS의 소통 환경에서 일어나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등 부작용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사실 워크숍이라고 하는 형태는, 전시가 아니기에 일반적으로 전시의 작품이나 구성요소로서 주목받지는 않는 것 같다. ‘워크숍’을 전시에서 풀어내는 데에 어떤 감각으로 임하는지 궁금하다.
애초에 워크숍이나 파라큐레토리얼 등 전시장에서의 퍼포먼스는 기존 매체 감각에서 확장되거나 벗어난 감각을 일으키기 위한 시도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시와의 관계를 벗어나서 행해지는 워크숍들이 있고, 최근에는 그것들이 흥미롭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워크숍은 일종의 지식 해적질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워크숍에서는 정규적인 경로로는 접할 수 없는 지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7월에 진행한〈공백문자 : 퀴어게임진 워크숍〉이 이에 가까웠다. 여기서 나는 참여자들이 잘 접하지 못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기반 퀴어게임 커뮤니티의 작업을 소개하고, 이것이 진(zine)이라는 매체와 결합할 때,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지 토론해 보고자 했다.
예술 작업은 다양한 감정이나 지식을 생산하고 운반하며, 이를 통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리적인 장소의 측면에서, 워크숍은 작가의 스튜디오나 다른 독립적인 공간에서 열릴 수 있고, 나는 다이애나 밴드의 공간 ‘우루루’와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에서 장소 협력을 받아 워크숍을 진행했었다. 공간을 빌려 워크숍을 여는 것 자체가 커뮤니티, 혹은 커뮤니티 기반의 창작에 관심을 보이고, 그 자기조직적인 실천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워크샵이나, 퍼포먼스에서 지식 공유나 배움-탈배움의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가? 만약 있다면 어떨 때인가?
항상 내가 가르칠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럼에도, 워크숍에서 경험이 발생하고, 의미 있는 배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배움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상호배움’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몰랐던 상대방의 생각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고,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역사나 연대기를 외우는 것과 옆에 있는 사람이 “나는 이게 재밌더라”라며 알려주는 것 중, 나는 후자에 의한 배움에 의존하는 편이다. 워크숍은 그러한 배움을 일으키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을 오래 다녔지만, 대학의 지식 습득 방식이 나에게 꼭 맞았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학교를 나와서 스터디 활동이나 대화에서 얻는 배움이 더 재미있었다. 교육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은 너무 좋은 단어이고,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구술〉 워크숍 장면 제공 : KT&G 상상마당 춘천
워크숍이나 프로그램 등을 기획/진행하면서,어려운 점이나 무언가 달라졌으면 하는 점이 있나?
워크숍 진행자로서 주된 고민 중 하나는 ‘라포’(참여자들 간의 유대감)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다. 워크숍에서 참여자들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면 현장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다들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라포 형성을 워크숍의 본질적인 목표처럼 느끼는 것에 왠지 거부감이 생긴다.
〈퍼마라이프 : 멈출 수 없는 반복의 동작들〉(2024) 워크숍에는 퍼포머와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다룬 자리여서 보통 워크숍과는 다른 맥락에서 진행됐다. 이때는 참여자들 간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활성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상호작용을 지연시키는 것도 워크숍의 운영 기술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대부분의 모임 장소에서는 대화와 공유가 강조되지만, 때로는 모여서 공유하지 않고 나누지 않으며, 동의하지 않는 경험을 탐구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런 방식으로 일시적인 피드백 구조를 통한 유대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다룰 수 있고, 여러 면에서 이것이 근래의 소셜미디어 액티비즘이 처한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느끼고 있기에 시도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동료들에게, 또 미래의 참여자가 될 이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을 전해 달라.
워크숍 참여자는 잠재적인 동료이자 창작자일 수 있다고 본다. 자기 검열이 심한 사회지만, 그럼에도 관객, 혹은 참여자가 아닌 동료로서 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싶다. 최근에는 퀴어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흔히 이성애자 남성으로 상상되는 ‘게이머’의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특히 한국의 아트하우스 게임과 상업적 게임 분야 모두에서 퀴어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온라인에서 만난 퀴어 페미니스트 게이머 친구들과 6~7년여 동안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예술적, 정치적 게임 분석을 공유하고, 특히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게임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공동으로 축적해 나갔다. 이것들은 클러스터 밖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나의 타임라인에서는 갓 출시된 시점으로부터 좀 지난 2020년 무렵부터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게임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의 모습을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드보일드 형사물 주인공의 전형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어떻게 장르 특유의 여성 혐오적 특성을 우회하거나 역으로 패러디하는지, 혹은 그러지 못하는지와 같은 화두에 대해 나 자신도 열정적으로 글을 적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SNS에 올렸던 글과 교류 기록도 대부분 삭제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다. 이런 것을 상호배움의 경험으로, 내 작업 방법론의 안팎에서 다루어 보고 싶다. 게임이든 미술이든, 서로를 몰랐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배움이 발견되는 것, 그 순간을 만들고 목격하고 기록하는 것이 지금의 내게는 중요하다. 결국, 사람, 혹은 사람이 아닌 존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동료로서의 관계를 맺고 함께 우리를 넓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자격 없는 이들을 위한 실험적 미술교육
등촌야학
등촌야학 첫번째 세미나실인 우분투 베이커리에서 모임을 시연하는 김강리(왼쪽)와 김망고
@dcyh_2409
https://sites.google.com/view/dcyh
등촌야학은 지난 9월에 문을 열었다, 등촌야학을 설립하게 된 계기, 설립 취지와 목표는?
김망고 모임장을 섭외한 건 8월 10일부터로 짧은 기간이지만, 등촌야학엔 내 삶의 경험이 녹아있다. 2014년 대학 입학 후, 버스커버스커 같은 밴드 활동을 하고 싶어 들어간 동아리에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배웠다. 거기서 시작됐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큰 영향을 받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느꼈고, 집회와 추모 행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학 미술 수업을 통해 신민 작가의 작업을 접하며 비전공자인 나도 미술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후 페미니즘 액티비즘이라 할 수 있는 작업으로 나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이후 NGO 활동을 하면서 미술작가로서의 꿈은 접었지만, 실시간으로 숨 쉬는 미술, 즉 추모 현장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로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또한, 억압된 이들과 연결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
결심을 굳히는 데 다큐멘터리〈뒷것, 김민기〉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김민기가 ‘학전’ 구성원들과 수익을 분배함으로써 동료의 자립을 도왔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주변에 고학력자임에도 다양한 이유로 자립하지 못한, 예술 노동자, 당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을 박제해 미술관에 전시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밥줄과 연결된 자립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고서를 대본으로, 교실을 무대로, 프로젝터를 무대장치로, 교사를 배우로 삼아 ‘등촌야학’이라는 극단을 세우게 되었다.
설립 취지는, 제도권 교육의 한계와 좁아진 교양 교육의 문턱을 낮추고 넓히는 것이다. SNS에서는 특정 시기마다 젠더, 노동, 역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는 사람들 간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고,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야학을 설립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장에 의존치 않고, 당사자들이 자립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운영 재원은 내 월급과 적금을 바탕으로 하며, 정규직, 비정규직, 단시간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참여비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 강의 장소는 우분투 베이커리나 양승욱 작가의 도움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자원도 쌓이고 있다.
모임의 진행 방식도 다른 세미나와는 다를 것 같다. 수업을 개설하는 기준과 모임을 진행하는 이들과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김망고 모임은 KTS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을 활용,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관객(학생, 참여자)과 배우(진행자, 선생님)가 서로 배움을 나누며, 유사시 서로 목격자가 되어주기로 약속하는 규칙을 마련했다. 대부분의 수업은 녹화되어 기록되며, 이는 참여자와 진행자 모두를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진행자는 전문 교육인이 아니며, 수업 목적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공부 모임 형식으로 예약해 사용한다.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해 진행하더라도 정원은 9명으로 제한하고, 그 외의 참여자에게는 녹화 강의를 제공한다. 각 모임은 편집이 끝나는 대로 등촌야학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업로드된다. 실시간 질문과 답변을 원한다면 웹 페이지에서 참여 신청을 받으며 매일 업데이트하고 있다.
수업 대상은 제도 바깥에서 결핍의 덫에 걸린 사람들,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 악순환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보장되지 않은 자신의 자리를 야학 내에서라도 요구해 얻어내기를 바란다. 피해자의 언어가 수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사기를 당해 본 사람은 사기 안 당하는 법을, 사이비에 빠져 본 사람은 사이비에 안 빠지는 법을, 중고차, 핸드폰 구매, 월세로 손해를 본 사람은 안전하게 거래하는 법을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작 기술에서부터 이론까지 동시대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렇게 미술 수업이 주를 이루게 된 계기는?
김망고 나는 비전공 작가로서 미술계에서 비빌 언덕을 만들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관점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전시를 자주 보며 주목하게 된 미술인들도 생겼고, 야학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와 일상이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이 많아졌고, 그 결과 미술 관련 수업이 주를 이루게 된 것 같다.
모임장 구성을 보면 김강리는 《나의 둘레는 멀고도 가까워서》(온수공간, 2020 )부터 주목해온 연구자이고, 리단은 2019년 듀킴, 장파가 참여한《양각의 기술》(2019 ) 전으로 처음 만났다. 최장원은 2019년 《비전0》(육일봉, 2019 )전에서, 권선형은〈예술청 안전망학교〉(2022 )에서, 박효범은 ‘전시관람 번개모임’이라는 전시 감상 그룹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됐다. 루 킴은 크레이지 멀티플라이(Crazy Multiply )라는 재한 외국인 큐러토리얼 단체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사이이고, 오상은과는《길드는 서로들》(남서울시립미술관, 2024 )에서 우연히 만났다.
김강리 대학생 때, 여성학 동아리에 참여했는데, 그 동아리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했다. 방학 때 주 4일씩 세미나를 열었고, 수업이나 강의실 바깥에서 배운 것들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경험이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땡땡 콜렉티브’라는 활동도 했고, 이번 야학 설립 제안을 받았을 때 ‘자격 없는 이들로 구성된 실험적인 교실’이라는 설명이 내가 했던 ‘자격 없는 언어로 비평을 하자’는 목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를 결심했다. 비평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고, 그동안 혼자 공부한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대학에서 미술비평이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미술 제도 안에서 이미 있는 사람들이 들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개설했고, 제도 내에서 느낀 불만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 실기 전공자들이지만, 이론 전공자나 미술관 에듀케이터, 큐레이터처럼 다양한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미술비평을 배우고 자신의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식 공유나 배움-탈배움의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김망고 탈-배움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교육 기관을 거치기 전, 한 사람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면 그것이 탈-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제도 안에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망, 예를 들어 사회주택이나 청년 마음 건강 지원 같은 제도를 알리고, 번아웃이나 결핍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제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시간을 통해 교환하는 자본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다. 돈을 무덤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처럼, 배운 것을 혼자만 알고 가는 것보다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
미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세상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배움과 교양, 예술은 사람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제한된 자원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김강리 배움과 탈-배움에 대한 질문은 아직 답하기 어려운 단계다. 나는 현재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이곳에서 공유하고 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강의를 개설한 이유를 “교수님이 내 글이 비평이 아니라고 지적해서”라고 말했지만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깥으로 끌어내고, 바깥에서 배운 것을 다시 학교 안으로 끌어오고 싶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제도, 미술계 내외부에서 달라졌으면 하는 것은?
김망고 모임장들이 참여자와의 면담 시간을 수업 전후로 30분씩 두고 있는데, 이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할애하면 모임장의 여가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서로 간의 라포가 지나치게 형성되면 위계가 잘못 작동할 수도 있다.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좋은 뜻으로 모인 사람들끼리도 때때로 누군가를 쫓아내려 하고 그런 시도가 있을 때다. 온라인에서 상대를 쉽게 차단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야학은 그렇지 않다. 등촌야학은 연대책임과 사적 제재에 반대하며,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배움을 나누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의 행동을 이유로 사람을 규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변화 가능성을 막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함께하는 것이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등촌야학이 여성주의, 퀴어 이론, 젠더, 노동운동 등을 다루다 보니 불법 조직으로 신고되는 일도 있었고, 대표로서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다행히도 참여자가 적어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야학의 취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강리 제도가 문제라고 해서 밖으로만 나가는 것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순환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한 나름의 미술 비평을 발표하고, 이를 무크지로 만들어 유통할 계획이다. 이렇게 우리가 바깥에서 한 행동이 다시 안으로, 안에서 한 행동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순환을 만들고자 한다.
10년 후 등촌야학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망고 등촌야학이 지속되면서, 곳곳에 야학이 생겨나면 좋겠다. 장학금도 만들고 싶다. 운영 면에서 단단히 자립하고 운영 기금이 충분히 모이면, 제도권에서 지원받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액티비즘적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 사회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나가고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로서 기능했으면 좋겠다. 이 과정이 발전해 소속된 작가나 연구자의 생애 주기를 지원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까지 형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강리 등촌야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스스로 강의를 하고,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가까운 곳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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