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Taeseok Ju

마음으로 보는 풍경으로

ARTIST 

주태석/ 1954년 출생, 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회화과 교수, 대학미술협의회 회장( 2011 ), 홍익대 현대미술관 관장( 2017 )을 역임했다. 서울, 부산, 대구, 도쿄, 베이징, 상하이, 나고야, 기타큐슈, 파리 등에서 54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800여 회의 국제전 및 단체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한원미술관, OCI미술관, 영은미술관, 청와대, 국회의사당, 대법원, 한국은행 등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 : 박홍순

 〈Nature · Image〉캔버스에 아크릴릭 90.9×72.7cm 2023
제공 : 작가

마음으로 보는 풍경으로

심지언 | 편집장

주태석은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1970년대 후반 미니멀리즘과 추상 계열에 경도된 화단에서 형상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극사실주의 회화를 묵묵히 전개했다. 치밀한 묘사 기반의 ‘기찻길’ 시리즈로 활동을 시작한 주태석은 1990년대부터 ‘자연 · 이미지(Nature-Image )’ 시리즈를 중심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명상적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남양주 Space H에서 그간의 작품 활동을 아우르는 회고전 《Nature :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특별한》을 개최한 작가를 만나 50여 년간의 화업을 돌아보았다.

홍익대 재학시절 대학미전에서 극사실적 작품 〈기찻길〉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미술계는 단색화를 중심으로 추상회화와 모더니즘 계열이 주도했고, 홍대 교수진도 비구상 계열이었는데 구상미술에 대한 반응 및 학교 분위기는 어땠는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교수들이 형상을 무척 꺼리는 분위기였다. 대상을 묘사하는 것을 1차원적인 접근으로 평가해 이런 작업으로 밥 먹고 살겠냐며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교수를 피해 다녔는데, 어느 날 박서보 교수가 해외에서 하이퍼 리얼리즘을 접한 후 4학년 학생들에게 양주병을 세필로 그려보라셨다. 그러면서 나를 비롯해 고영훈, 이석주, 김강용, 지석철 등의 사실적인 작업을 봐줬다. 그렇지 않았으면 형상 작업을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묘사를 자꾸 못하게 하니 이것이 현대적이지 않은가, 현대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1977년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작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작업실 옆에 있는 기찻길을 클로즈업해서 정밀하게 묘사한 작업이었는데, 수상 이후 학교에서도 작업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1970년대 말부터 ‘사실과 현실’ 그룹과 같이 극사실 회화를 추구한 일련의 작가들이 있었다. 당시 작가들은 왜 사실적 묘사에 몰두하게 되었는가?
당시 모노크롬이나 모더니즘이 많은 작가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개인적으로는 붓으로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극사실 경향의 회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1978년 ‘사실과 현실’이란 그룹을 만들면서 동료들과 “왜 본다는 일이 다른 일로부터 구속받아야 하는가? 왜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며 본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표현하면 안 되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치열하게 나누었다. 이후 이일 교수가 한 전시 평문에서 ‘현실에의 새로운 접근’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활동을 정리해 주셨다. 1990년에 이르러 ‘기찻길’ 연작을 마무리 짓고 나무 등 자연풍경으로 주제가 옮겨가는 변화를 보였다. 한 10년 동안 기찻길을 그리고 나니 묘사 중심의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과 함께 한계에 봉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실을 나와 공원에서 맥주를 한잔하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가로등에 비친 나무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 저걸 한번 그려보자면서 ‘자연 · 이미지’ 시리즈가 시작됐다. 숲이나 도심의 가로수는 주변의 평범한 대상이지만 이런 평범한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해 보기로 했다. 작품에서 소재나 주제가 중요한 요소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관찰하고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하기 위해 대상을 절단하거나 압축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색채의 대비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기찻길〉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 112cm 1979

〈Nature · Image〉캔버스에 아크릴릭 60.6 × 72.7cm 2015

〈Nature · Image〉캔버스에 아크릴릭 30 × 75cm 2022

‘자연 · 이미지’ 시리즈에서 기존의 극사실적 표현과는 거리를 두며,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충실하게 묘사한 전면의 나무와 평면적이고 생략적으로 표현된 배경의 숲은 한 화면에서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이중적 화면 구성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살아있는 자연을 포착해서 화면으로 옮기는 것은 그림을 그릴수록 더욱 부자연스러워지는 아이러니의 과정이었다. 묘사할수록 모습은 똑같은데 더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자연의 한 단면의 묘사가 아닌 자연의 느낌을 포괄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려는 내 노력은 결국 아주 부자연스러운 요식행위를 강조하는 셈이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빛과 그림자를 그림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림자라는 허상을 통해서 실상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추구하며 배경과 전면을 이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재가 소나무든 벚꽃나무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본 나무가 내 머리에 들어와서 재해석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자연 · 이미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시리즈는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자연이라 할 수 있다.

1990년 이후 색면의 화면분할과 주관적 색채의 사용 등으로 극사실로부터 이탈했다는 해석도 있다.
일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색면의 화면분할은 빛과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바닥의 그림자와 벽의 그림자 강조를 통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시작했다. 또 땅의 표현이나 벽면 묘사를 생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면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색채의 대비를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과 사실주의적 재현에서의 환영이 한 화면에 공존하게 되었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아주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게 된셈이다.

전시에 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소장 작품이 많지 않다 했는데, 제작 과정은 어떤가?
그림을 그리면서 수정과 변경의 과정을 반복한다. 시작할 때 결과를 생각해두지만, 그 과정에서 지우고 그리기가 계속된다. 나무의 위치를 바꾸고, 그렸다가 지우기도 하고, 또 색깔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 그림을 4년 넘게 그린다. 잠시 시간을 두고 작품을 다시 보면 고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한 점으로 발표되는 화면 속에는 수십 점이 겹쳐져 있는 것과 같다. 그렇게 수차례 수정 과정을 거치다 보니 조수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혼자서 계속 살피고, 고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방식이다.

홍익대 퇴임 후 전업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최근 작업과 관련한 고민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비워내기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평생을 묘사하며 채우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여백에 눈길이 자꾸 간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유화 물감으로 그리는 동양화처럼 여백, 비움을 그림 속에 만들어내려고 한다. 전체를 다 그리고도 빈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하거나, 아예 그리지 않는 방법 등 여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100점 프로젝트를 구상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김태호 선생이 생전에 작가는 본인의 좋은 작품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도 한때는 인기 작가로 작품을 많이 거래해서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 올해 70세가 됐는데, 앞으로 10년 동안 1년에 10점씩, 스스로가 만족하는 그림을 모아 보고자 한다. 그러면 80대가 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100점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 작품 양을 늘리고 스스로 작품을 보관하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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