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름그린&드라그셋: SPACES》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4.9.3~2025.2.23
Exhibition

〈Shadow House〉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4
제공:작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Spaces’
우정아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처음 간 게 아니었지만, 전시실이 이 정도로 큰 줄은 처음 알았다. 140㎡(약 42평 )에 달하는 주택 한 채가 온전히 들어가고도 여유가 넘치는 첫 번째 전시실을 거쳐, 두 번째 전시실의 수영장을 마주하면, 이들을 실내에 구현한 작가들의 비범한 상상력에 탄복하기에 앞서 미술관의 압도적인 공간과 기획 및 재정의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부연 설명 없이 ‘Spaces’를 제목에 붙인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이번 전시는 ‘화이트 큐브’라는 전형적인 전시 공간의 물리적 구조, 위계적 관계, 계층적 질서를 드러내고 교란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평범한 공간들을 낯선 맥락으로 옮겨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가들의 대표작을 총망라한 ‘위키피디아’적 전시다.

백과사전이 아니라, ‘위키피디아’인 이유는 각각의 작품, 즉 집(Shadow House), 수영장(The Amorepacific Pool), 레스토랑(The Cloud), 실험실과 결합된 대형 주방(Untitled : The Kitchen), 스튜디오(Untitled : The Studio) 등이 이미 과거의 다른 장소, 다른 맥락에서 설치 및 전시됐던 작품들의 전사(前史)와 적극적인 상호참조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Shadow House〉에서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덴마크관과 노르딕관에 걸쳐 설치했던〈The Collectors〉와 뒤이어 201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Tomorrow〉가 마치 하이퍼링크처럼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전시라는 공적인 맥락 안에 주택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북유럽 가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완벽한 마감이 소유욕을 자극하는 집안 곳곳의 가구와 소품에서, 그리고 집주인의 취향과 신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나 정작 그 인물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으니, 텅빈 집을 마음대로 배회하는 관객들이 느낄 공허함과 약간의 불길함이 신비주의적 서사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이들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하이퍼링크’를 클릭할지 안 할지는 오롯이 관객의 선택이고, 설사 관객이 모든 ‘하이퍼링크’를 확인하고, 〈Shadow House〉와 상호참조 가능한 이전의 작품들을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Shadow House〉의 의미가 더 뚜렷해지거나 확실한 하나의 서사로 종결되지 않는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전시실 다섯 곳에 걸쳐 마련됐던 〈Tomorrow〉의 가상의 집주인은 은퇴한 건축가 노먼 스완이었고, 관객들에게는 건축가의 노화와 실패, 좌절과 실망의 여정을 담은 일종의 극본이 주어졌다. 극본을 손에 든 관객들은 건축가의 소파에 앉거나 그의 책을 넘겨 보며 이 노먼 스완이라는 인물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해서 상상된 인물이 모두 같을 수는 없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Shadow House〉 안 작은 서재에는 건축 도면이 놓인 책상이 있고, 라디오에서는 대담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Tomorrow〉의 건축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연결된 하나의 배수관을 가진 세면대와 서로를 마주보도록 상하대칭으로 만들어진 이층 침대, 누군가 메모를 남기고 떠난 현관벽의 거울 등은 어떤 커플의 결속과 결별을 희미하게 암시하나, 홀로 남아 거실 창에 입김을 불어 넣어 글자 ‘I’를 쓰는 어린 소년의 정체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The Cloud〉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4

《Spaces》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에 대한 작품, 전시에 대한 전시다. 이들은 대단히 명확한 상호참조의 대상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동시에 미세하게 어긋나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한정할 수 없고, 합의된 의미 또한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이처럼 연결과 단절이라는 역설적 관계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수영장이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2018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시에서 〈The Whitechapel Pool〉을 선보인 적이 있다. 전시장 이름을 제목에 달고 있는, 실내에 조성된 대형 수영장이라는 점에서 〈The Whitechapel Pool〉이 〈The Amorepacific Pool〉의 이전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수영장의 실상과 서사는 사뭇 다르다.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수영장에 얽힌 가상의 흥망성쇄사는 1901년에 공공복지 시설로 문을 연 이래 지역 사회의 여가를 책임지는 활기찬 전성기를 지나, 대처 시대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쇠락 일로를 걷다가, 마침내 음산한 폐허가 되어 부동산 개발 회사에 팔려나가는 결말로 끝난다. 물 빠진 지 오래된 수영장 바닥에 흙먼지가 수북하고 한때 화려했을 청동상은 넘어진 채 나뒹굴고, 더러워진 흰 타일 기둥이 늘어선 앞에 쇠사슬을 쳐 접근을 막았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분위기에 대해 당시 큐레이터였던 로라 스미스는 〈The Whitechapel Pool〉이 수명을 다한 공동체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정부 정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는 ‘화이트 큐브’라는 전형적인
전시 공간의 물리적 구조, 위계적 관계, 계층적
질서를 드러내고 교란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평범한 공간들을 낯선 맥락으로 옮겨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가들의 대표작을
총망라한 ‘위키피디아’적 전시다

〈The Whitechapel Pool〉에 얽힌 가상의 역사는 이곳이 보리스 존슨의 런던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16년, 부동산 개발 회사에 매도된 뒤 추후 고급 호텔 스파 전용 수영장으로 탈바꿈할 거라고 마무리됐다. 〈The Amorepacific Pool〉이 호텔 실내 수영장의 위용을 갖춘 게 어쩌면 그 때문일 거라고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여기에 명확하게 결부된 구체적 서사는 없다. 티 없이 깨끗한 옥색 바닥을 드러낸 〈The Amorepacific Pool〉에는 금방 물을 뺀 흔적만 아련히 남았고, 밝은 조명과 다이빙 보드, 흰 타일 바닥과 원래 그 자리에 서 있던 육중한 미술관의 원형 기둥에서는 노스탤지어나 쇠락 다음의 쓸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말의 공허함이 감도는 이유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정갈한 이 공간에서 마땅히 자리를 차지해야 할 사람들의 존재감, 그 육체적인 흔적이 완전히 삭제됐기 때문이다.

텅빈 수영장 가운데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양손을 앞으로 내민 순백의 소년상이 서있다. 이 상은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공간들’이라는 주제 위에, 사실은 눈에 바로 보이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사로잡은 또 하나의 매우 강력한 공간 –가상공간(virtual space )–이 부유하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이토록 넓고도 고급스러운 수영장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어쨌든 관객들의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순백의 소년에게는 머리에 착용한 작은 기계 장치가 출력한 이미지일 수 있다. 〈The Whitechapel Pool〉이 발산했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오히려 사치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오늘날 이 소년에게 친숙한 수영장이란 물리적 환경 안에서 실재의 물, 실재의 사람들과 부대끼는 실재의 공간이 아니라, 모두 각자 고립된 개인의 공간에서 디지털 코드로 생성된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가상 현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Untitled(the kitchen)〉 혼합매체 가변설치 2024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2022년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에서 선보인 전시 《Useless Bodies?》 이래로 ‘육체’가 갈수록 무용하거나 불필요해지는 오늘날의 물리적 조건을 탐구해왔다. 〈The Amorepacific Pool〉은 프라다 재단에서 드러냈던 문제의식의 더 직설적인 확장판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인 아모레퍼시픽의 수영장 안에서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수영장을 체험하는 소년 옆에는 밝고 맑은 하늘을 창문 (아마도 ‘윈도즈’ ) 같은 거대한 ‘화면(The Screen)’으로 내다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는 소년상이 서있다. 왜 이 소년은 ‘하늘’이 아닌 ‘화면’을 바라보는가? 시계 크기에서부터 온몸을 감싸는 거대한 몰입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디바이스에 둘러싸여 살면서 세상을 오직 이렇게 이차원의 평면 이미지로만 수용하고 체험하는 것은 아닌가?

최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The Cloud〉에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 여성상이 등장한다. 관객들이 실제 보는 여인은 극도로 사실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이는 조각이다. 그녀의 핸드폰 안에서 실패한 연애담을 늘어놓는 인물은 비록 영상으로 존재하나 실제 인물이다. 가상과 실상, 존재와 비존재, 허구와 실제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The Cloud〉는 ‘상호 참조’의 관계 안에서 원전과 인용물의 차이, 원본과 복제의 위계,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의심하게 한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 아마도 2005년 미국 텍사스주 말파의 국도변에 덩그러니 세워둔〈Prada Marfa〉 매장일 것이다. 인구 2000명이 채 안 되는, 사막 한가운데 작은 마을 말파에서 ‘진짜’ 프라다 구두와 가방을 진열한 프라다 매장은 소비중심사회, 럭셔리 브랜딩, 젠트리피케이션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간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뷰티 브랜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압도적 규모가 보여주는 ‘공간들’ 가운데서 명료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읽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은 15초가 지루해 참을 수 없는 남녀노소가 손에 쥔 작은 화면을 통해 숏폼 콘텐츠를 끝없이 소비하는 시대다. 마치 피드를 넘기듯 누군가의 내밀한 주택에서 말끔한 수영장을 거쳐 고급 레스토랑과 실험실 수준의 대형 주방, 미술가의 스튜디오로 연결되는 파편적 서사를 관통할 때 미술이란 실재와 가상을 교란하는 다중의 모호한 존재가 된다. 그 안에서 과연 긴 호흡의 판단과 미술관 밖 ‘사회’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The Amorepacific Pool〉 라이트, 스테인리스 스틸, 타일, 페인트 가변설치 2024

인터뷰
엘름그린&드라그셋 (Elmgreen&Dragset)
노재민 기자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듀오는 30년의 예술적 동행을 통해 공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관람객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재구성하는지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은 주택, 공공 수영장, 레스토랑, 주방, 작가 스튜디오 등 다섯 개의 대형 설치 작품을 통해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물리적 경험을 제공한다. 월간미술은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을 인터뷰했다.

왼쪽 엘름그린, 오른쪽 드라그셋 사진 :Andrea Rosetti 제공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듀오를 결성한 지 30년이 지났다. 그간의 협업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작업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술 활동을 시작한 초기부터 함께 해왔기 때문에, 듀오로서 예술 작업을 하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서로의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즉, 대화가 협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타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실현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100%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 그래서 창작 과정에서 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사고방식을 잘 알기에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과정이 비교적 수월하다. 물론, 거의 모든 예술가는 어느 정도 다른 사람과 협업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공식적인 형식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친구, 스튜디오 팀, 갤러리스트, 제작자, 큐레이터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한국은 그간 어떻게 변모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변화가 전시에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지난 10년간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위상을 얻는 과정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음악, 영화, 미술, 패션 등 거의 모든 문화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문화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전시에서 서울을 언급한 부분들은 모두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Spaces》를 통해 보면, 다양한 기술 장치들과 상호작용하는 구상 조각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그들이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The Cloud〉라는 레스토랑 설치 작품에서는 혼자 페이스타임을 하며 앉아 있는 여성 조각이 있다. 그녀는 레스토랑에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친구(홍민키 작가가 연기)와 온라인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온라인에서는 다른 세계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인 존재 방식이 사람들의 공간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변화가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혹은 ‘우리가 집을 꾸밀 때나 식당을 선택할 때 우선순위가 달라질지’, 이것이 우리가 《Spaces》에서 탐구하는 질문들이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의미를 갖는다.

‘공간(space)’이 작업의 주요한 요소이며, 미술관의 공간이 “캔버스이자 재료”라고 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작품을 선보이기에 어떤 공간이었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지하에 위치해 있어 다른 미술 기관과 비교했을 때 주변 환경과 덜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덕분에 우리는 일정한 예술적 자유를 느꼈고, 이를 활용해 현대 도시 생활과 연관된 더 광범위한 주제를 고려하는,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공간들을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전시장을 받치고 있는, 건축적 특징 중 하나인 커다란 기둥들이 공공 실내 수영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둥들과 유사해 보여, 이 기둥들에 영감을 받아 〈The Amorepacific Pool〉을 제작했다.

그간 건물 내부를 디자인해왔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외관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으로 주택의 외관을 디자인할 때 어떤 점을 고려했는가?
전시를 위해 인테리어를 개발할 때는 보통 장소의 기존 특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우리가 독립된 건물을 지어본 적은 있지만예를 들어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 세운 〈Prada Marfa〉 같은 외딴 럭셔리 부티크가 있다단독 주택의 외관을 디자인한 적은 없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압도적인 규모 덕분에 집 전체를 지을 수 있었고, 우리는 외관이 내부를 반영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던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가벼운 콘크리트 패널 클래딩 같은 현대적 재료를 사용했다. 마치 “품격(a touch of class )”을 나타내는 세련된 건축물이 있는 쇼케이스 하우스와 비슷하다. 우리는 이러한 미학의 공식적 언어를 비틀어,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선망하는 주택 이미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전 세계 여러 기관에서 작품을 전시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부각하고자 했던 점은 무엇인가?
《Spaces》에서는 가족 주택, 공공 수영장, 레스토랑, 주방, 작가 스튜디오 등 다섯 개의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기로 했다. 마치 다섯 개의 개별적인 개인전을 한 번에 선보이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도, 각 공간을 연결하는 미묘한 주제와 서사적 흐름이 존재한다. 전시는 우리와 진화하는 기술의 관계를 성찰하는 한편, 남성성이나 성장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한다. 전시를 돌아보는 경험은 인터넷을 스크롤하며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과정과 비슷할 수 있지만, 《Spaces》에서는 그 ‘이미지’를 자신의 신체를 통해 이동하며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20년 넘게 몰입형 환경을 만들어왔는데,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특히 더 적합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실재의 촉각적인 경험을 갈망하니까. 《Spaces》가 방문객들에게 이차원적인 디지털 상호작용의 비현실적 성격과는 대조되는 감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존에 전시했던 작품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다시 선보일 때, 무엇을 고려했는가?
우리에게는 기존 작품을 새로운 구성과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둘러싼 여러 층위의 이해가 가능해지기 마련이다. 미술관 입구에서 관람객들은 〈What’s Left?〉라는 작품을 보게 되는데, 한 손으로 팽팽한 줄을 잡고 매달려 있는 남성의 조각이다. 이 작품은 2022년 프라다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Useless Bodies?》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당시에는 오래된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환경에 설치되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의 상의에 적힌 질문, “What’s Left?”가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프레임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로 들어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 이 조각은 바로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이렇게 새로운 각도나 새로운 맥락에서 사물을 보는 경험은 우리가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고, 더 깨어 있도록 하며, 다른 관점에 열려 있게 만들어준다. VR 헤드셋을 쓴 소년의 조각은 이전에도 전시된 적이 있지만,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수영장 안에 배치했다. 마치 수영장과 그 안의 다른 구상 조각들이 그가 VR 고글을 통해 보는 가상세계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레스토랑 주방의 과학자 조각은 지난해 퐁피두 메츠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Bonne Chance》에서 소개되었다. 우리는 미식 요리가 점점 더 과학적으로 변모해가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녀가 가상의 레스토랑 〈The Cloud〉의 주방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래에 음식이 모두 실험실 기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두려움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한 조각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마치 셰프가 자신을 복제한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구성한 공간은 기능적 사용이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 수영장에는 물이 없고, 집 안의 침대는 뒤집혀 있으며, 배관은 얽혀있다. 옷걸이에는 옷이 없고, 레스토랑에는 음식이 없다. 사용되지 않거나 손대지 않은 공간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달라.
전시의 일부 세부 사항은 뒤집힌 이층 침대나 얽히고설킨 배관처럼 초현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수영장은 물이 빠져 있고, 레스토랑은 거의 비어 있으며, 주방도 사용된 흔적이 없다. 우리는 익숙한 물건이나 상황을 약간 비틀어 놓음으로써 관람객들이 보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거나 자신이 평소에 갖고 있던 연상을 재고할 수 있는 성찰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설치물을 “부정(denials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마치 어떤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능을 하지 않아 실제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의 물질성 또한 전통적인 논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이해를 촉발할 수 있다. 표면, 질감, 곡선, 미세한 차이가 작품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꾸밈없는 미학을 적용함으로써 사물이나 상황의 특정 “진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며, 새로운 층위의 의미가 발견되거나 추가될 수 있다. 거의 비어 있는 레스토랑이나 물이 빠진 수영장 같은 설치물은 관람객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이러한 황량한 환경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더 외로워지고 있다.

영감의 원천으로 푸코, 잉마르 베리만, 영화 〈기생충〉 등을 언급했다. 월간미술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다른 영감의 원천이 있는가?
너무 많아서 구체적으로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미니멀리즘은 우리가 작업을 발전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미니멀리즘을 우아하게 전복시킨 점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개인적 이슈와 정치적 이슈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단순화된 시각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방식은 우리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큰 영감을 주었다. 또, 사뮈엘 베케트의 인간 삶에 대한 신랄한 관점과 그가 부조리를 활용하는 방식은 여러 방면으로 영감을 주었다. 부조리한 유머는 종종 실존적 문제를 다루고 사회적 관념을 전복하는 데 완벽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부조리함을 통해 리얼리즘보다 삶의 특정 측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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