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風來 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4.11.1~4.13
Exhibition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보는 것, 아는 것, 그도 아닌 것
박민영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팀장

〈꿩〉박제 꿩, 물감 45×120×36cm 1972(2018 재제작)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우리가 보는 세계는 단지 눈앞에 나타난 현상으로만 감지될 뿐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고정된 실체란 없다. 이강소는 오랜 시간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제안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이강소 전시의 제목은 ‘풍래수면시 (風來水面時)’로 바람이 물을 만나는 때, 즉 ‘새로운 세계와 마주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의식의 상태’를 뜻한다. 기획자는 이 전시에서 두 가지에 초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창작자이자 세상을 만나는 주체로서 작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회의(懷疑)’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와 관람객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이 전시에서 우리는 몇 갈래의 길을 만난다. 하나는 작가가 본 세계이고, 둘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이고, 셋은 보았거나 알았던 것도 아닌 모호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불교에서 존재론은 ‘무엇’이 ‘있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한다. 이는 존재를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인식된 것이라 본 것이다. 실상 동양철학은 형이상학적 본질을 논하는 서양철학과 비교해 눈앞의 현실을 보는 시각을 중시한다. 흔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서양식 사고가 세계를 더 잘 파악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대상을 통찰할 때 동양의 사고는 눈앞에 놓인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의 인(因)과 연(緣), 시간과 공간까지도 넘어다본다. 그렇다면 ‘어떻게’로 보는 존재는 무엇을 그 실체로 규정할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단지 눈앞에 나타난 현상으로만 감지될 뿐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고정된 실체란 없다. 이강소는 오랜 시간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제안해 왔다.

매체와 매체 이어 보기
이 전시의 시작은 이강소 ‘페인팅’의 의미를 탐색한다. 이강소가 페인팅이라 부른 상이한 매체의 작품들을 두고 기획자는 페인팅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각각의 매체는 행위예술, 비디오, 오브제, 평면 회화로 제시된다. 먼저 행위예술을 기록한 〈페인팅(이벤트 772)〉(1977)에서는 몸을 닦으며 천으로 옮겨간 페인트를, 〈페인팅 781〉(1978)에서는 비디오 영상을 향해 상(象)을 지우는 페인팅을 제시한다. 또한 〈무제-7564〉(1975)에서는 회화의 지지체인 캔버스의 올을 풀어 자체의 물성을 드러냄으로써 허구의 이미지를 만드는 페인팅을 거부하려 한 듯하다. 그렇다면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회화인 페인팅은 어떻게 ‘이미지 그리기’가 아닌 페인팅이 될 수 있을까?

젊은 날의 이강소 세대에게 회화는 근대미술의 산물로서 타파해야 할 구체제였다. 1960년대 모더니즘 이후 다변화된 국제 미술의 흐름 가운데 1970년대 국내에서도 그들 세대는 소위 전위 또는 실험미술을 주장하면서 모더니즘의 체제인 회화나 조각과의 결별을 주장하였다. 근대미술과의 결별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나타난 서구의 미니멀아트나 개념미술에서 언급되었고, 표상을 부정한 이우환 역시 이를 주장하였다. 국내 작가들은 그러한 변화의 추세를 열렬히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 ‘미술을 원점에서 다시 보기’를 시도하였다. 주지하다시피 100년이 채 되지 않은 한국 미술은 그 토대와 정체성이 빈약하였고, 국제적 흐름을 수용하기 급급하다는 비판을 자주 들었다. 무엇보다 모더니즘 이후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지는 각종의 형식과 조류 가운데 작가들은 ‘예술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물음에 봉착하였다. 이강소의 작업은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이었고, 우리의 사고로 세계를 보려는 실험으로 전개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비디오, 행위예술, 판화, 회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는 양식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매체는 그의 작품에서 새롭게 보기를 제시하는 수단이자 보기를 매개하는 매개체였다. 예를 들어 〈리퀴텍스-76121〉(1976) 등 일련의 판화 시리즈에서 스크린프린트(세리그라프)로 묘사된 페인트 통, 물감 튜브, 재떨이 등은 실제 사물의 외양을 옮겨놓았지만, 작가는 튜브를 빠져나온 물감, 캔버스의 실오라기, 이미지 위에 얹힌 아크릴판 등 실제 사물을 더해 보는 이로 하여금 이미지는 물론 사물의 실상에서도 벗어나게 하였다. 각각의 매체는 보이는 것과 실제 사물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자각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이강소의 페인팅 역시 인식의 차원을 여러 겹으로 구축하였기 때문에 사물 매체와 회화는 일맥상통하게 이어진다.

그것은 전시의 메인 이미지인 사슴 도상의 회화작품 〈무제-91193〉(1991)에 이르면 잘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앞서 작가는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사슴 뼈 설치작품 〈무제-75032〉(1975, 2018 재제작)를 출품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사슴 뼈를 순서대로 구성, 나열하고, 분필로 사슴의 윤곽을 그려 관람객들로 하여금 사슴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제 사슴의 뼈는 분절된 채 놓여있고, 작가가 그린 사슴 윤곽은 임의적인 선으로 듬성듬성 이어져 있다. 회화의 사슴 역시 충분히 사슴이 연상되지만, 이미지를 형성하는 윤곽은 모호하다. 작가는 선을 여러 번 그리기도 하고, 지웠다 다시 그리기도 하여 가까이서 본 형상은 사슴의 불확실성을 더 일깨운다. 이때 작가는 우리가 본 것,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의심하게 한다. 따라서 그의 ‘페인팅’은 작가의 무의식에서 나온 자율적인 선이라거나 작가의 몸짓과 일체화된 획(劃)이라기보다는 작가가 드러내기와 감추기 사이 어딘가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전경 2024

변화와 이동, 관람자의 지각과 마음으로
그럼에도 이강소는 관람자에게 그들의 마음이 머무는 대로 작품을 보아주길 권한다. 오브제와 회화, 또는 제목으로도 제시되는 오리든 사슴이든 섬이든 작가는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고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는 우리가 보는 세계를 확신하지 말 것을 주장하면서도 감상자의 눈으로 본 그대로의 이해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른 시공간을 살았고 각자의 경험으로 다르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이강소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의 선술집 이벤트 〈소멸〉(1973)은 그가 주장한 ‘프로세스 아트’의 의미처럼 그 시간과 공간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라져 버렸다.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갈대 설치작품 〈여백〉(1971, 제2회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전)이나 대나무 설치작품에서부터 그는 관람자의 시선이 눈앞의 사물에 고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관람자는 작품 속 시공간이 아니라 그의 지각이 머무는 강가나 숲속 혹은 마음이 가는 어느 곳이든 자신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회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캔버스에 어떠한 형상을 남기고 이를 ‘섬에서’, ‘강에서’로 명명하며 관람자를 끌어당기지만, 그들에게 거기에 머물지 않기를 제안한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제시를 통해 보는 이에게 언어와 형상의 그물에 걸리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것들의 양태에 머물지 않을 때, 작품은 관람객의 눈과 마음을 통해 다르고 풍부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강소는 종종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이라든지 동양의 미적 체험 방식인 ‘풍류’를 언급하였다. 언뜻 뜬구름 같은 말로 들리지만, 그의 생각은 명료하다. 세계는 운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동이고, 우리의 시각은 대상에 전이하여 한계 없이 확장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를 노출하며 그리는 자와 그려진 것, 보는 자와 보이는 것 간의 입장과 위치를 바꾸어 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모든 실체 없는 것들을 작품에 실어보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견 그의 작품 도상 중 부유하는 빈 배는 규정되지 않은 채 무엇이든 실어 나를 수 있는 매개체를 상징하는 걸로 보인다. 빈 배는 작가에 의해 고정되지 않은 채 관람객에 의해,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 의해 새롭게 정의되며 흘러가고 있었다.

한국적 전위미술을 연 이강소의 의의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쉽게 분류되지 않았던 이강소 작품의 의미와 그의 중요성을 일깨운 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그에 덧붙여 필자는 한국 전위미술의 개척자로서 그의 의의를 평가하고 싶다. 이강소는 1970년 서울대 『미대학보』에 「과감한 예술가들」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글은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의 기사「임파서블 아트(Impossible Art)」(1969)를 비롯해 여러 해외 잡지에서 접한, 전통 매체나 미술관을 벗어난 확장된 사고의 미술 조류를 소개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보다도 그는 미술을 삶과 현실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해외 작가들의 과감한 시도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이들을 ‘과감한 예술가’라고 불렀다. “예술가들의 ‘과감하고도 불가능한 계획’들을 굳이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계획들은 그들 가슴에 품은 착상만으로서도 충분하다. … 어느 누구에 있어서나 자기를 완전화시킬 수 없으며, 인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정인 것이다. 부단하고도 실험적인 사고와 행위 가운데서 우리는 매력과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20세기 초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일한 의미였다. 우리는 더 나은 문명과 발전된 미래를 약속하는 서구의 도구와 방법을 받아들여 서구식 교육을 받고 과학적인 논리로 세계를 정의하며 살았다. 그러나 1970년경에 이르러 이강소를 비롯한 작가들은 잊고 있었던 전통 사고의 가치를 깨달았고, 우리의 관점으로 세계 그대로를 열어 보일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하고 불가능한 계획’일지라도 이를 시도하려 하였고, 1974년과 1979년 사이 《대구현대미술제》는 그러한 사명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이러한 장을 주도했던 이강소는 한국 미술이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작가 개인의 성과뿐 아니라 대구에서 미술제를 토대로 실험한 박현기, 최병소, 황현욱, 이향미, 이명미, 김영진 등 작가의 출현을 촉진하였다는 점에서 이강소는 한국적 전위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개척자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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