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 달집태우기(Lee Bae: La Maison de la Lune Brûlée)》피날레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454-16
2025.2.12

황수진 기자

Sight & Issue

서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 《달집태우기》의 일환으로 청도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전통 의례(2024년) 사진: 김상태

불길 속에 새로이 피어나는 순환의 길
2025년 2월 12일, 경상북도 청도 청도천에서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 《달집태우기(La Maison de la Lune Brûlée)》의 피날레가 펼쳐졌다. 2024년부터 1년여에 걸쳐 진행된 대장정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퍼포먼스였다. 지난해 2월 24일 정월대보름에 열린 ‘달집태우기’ 의식이 7개월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를 거친 후 다시 청도로 돌아왔다. 이배의 작품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며, 마침내 하나의 순환을 완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4년 2월 24일, 이배의 고향 청도에서 시작됐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소망을 적은 종이를 달집에 묶어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보낸다. 액운을 태우고 복을 기원하는 전통 의례인 달집태우기가 이번에는 이배의 예술적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청솔가지와 짚단을 엮어 만든 달집은 거센 불길 속에서 타올랐고, 남겨진 숯은 창작의 재료가 되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만 남았지만, 그것은 소멸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2024년 4월부터 11월까지 이배의 개인전 《달집태우기(La Maison de la Lune Brûlée)》가 빌모트 재단에서 개최되었다. 청도에서 태운 달집의 숯은 베니스로 옮겨져 설치작 〈붓질〉(2024)의 도료로 사용되었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조각 작품 〈먹〉(2024)과 대형 평면작〈불로부터〉(2024)는 불과 숯이 만들어낸 순환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이 되었다. 이배는 《달집태우기》를 통해 먹이 숯에서 비롯되고, 숯이 불을 통해 생성되는 연속적 과정을 예술적 서사로 풀어냈다. 또한 불과 재의 물질적 흔적은 영상 작품 〈버닝〉(2024)을 통해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되었다. 청도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의식을 기록한 대형 영상이 전시되었으며, 불의 여정은 베니스에서 새롭게 태어난 조형물을 거쳐 다시 청도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이루었다. 마침내 2월 12일 정월대보름, 출발점이었던 청도에서 마지막 달집태우기 의식이 거행됐다. 이배는 “내 작품의 핵심 화두는 ‘순환’이며, 농경 사회에서 논둑을 태워 새로움을 맞이했듯이, 지난 1년간 베니스에서 전시한 작품의 이미지와 모든 의미를 태우며 또 다른 시작을 여는 순환의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 《달집태우기》의 일환으로 청도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전통 의례(2024년) 사진: 김상태

〈붓질〉 작업 중인 이배 작가
제공: 조현화랑

이번 작업은 달집의 수직적에서 수평적 구조로 확장되면서, 달집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기고 그 의미 또한 확장됐다. 3,000평 규모의 섬 전체가 너비 200m, 폭 35m의 붓질이 담긴 천으로 덮였다. 전통적인 달집태우기에서 농부들이 하늘을 향해 염원을 올려보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달집이 사라지고 붓질의 형상이 수평선 위에 펼쳐지며, 청도와 베니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순환의 고리로 기능했다. 이배는 이에 대해 “베니스와 한국이라는 두 장소를 하나의 여정으로 보고, 이를 하나의 길로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올해가 뱀의 해이기도 해서 작품을 흐름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섬 전체를 덮는 형식으로 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청도는 이배의 작업 세계에서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는 시골에서 성장하며 다양한 문화적 자양분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고향 청도에서 이어져 온 정월대보름의 농경의례는 자연과 인간의 순환성을 담아낸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었다. 그는 이러한 전통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보편성을 획득했다. “우리 정신 안에는 기억과 정서가 남아 있으며, 전통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그의 작업은 지역적인 요소를 뛰어넘어 보편적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작년 베니스 전시에서 작품을 본 관객 중에는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보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전통 의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국적과 문화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작가의 의도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깊이 전달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달집태우기의 의미를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작업 방식과 대규모 협업을 경험하며,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 20m 길이의 대형 영상 작업에 처음 도전했으며, MIT 교수 토드 마코버(Tod Machover)와 협업해 현대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을 실험했다. 또한 대리석 가공 기술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 장인들과 함께 검은 화강석을 다듬어 5m 크기의 ‘먹’을 형상화한 조각을 제작했다. 그는 “예술이 소통의 과정이라면, 이번 작업은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감으로 “청도는 내 작품 세계에서 어머니 같은 곳”이며, “이곳에서 자란 내가 현대미술의 형태로 한국의 전통 의식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재현했다는 점이 매우 뜻깊다”면서, “앞으로도 한국 작가로서 정체성이 분명한 현대미술을 시도하겠다”는 향후 계획을 전했다.

경북 청도군 청도천의 작은 섬에서 진행된 이배의 달집태우기(2025년). 작가가 천에 직접 그린
붓질 작품이 시간이 흐르며 불에 타 사라지고, 결국 재만 남은 모습
제공: 조현화랑

© (주)월간미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