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wai‘i Triennale 2025
에 호 마이 E Hō Mai:
새롭기만 할 필요는 없다
World Report

멜레아나 알룰리 마이어
〈우메케 라아우(‘Umeke Lā‘au)〉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에 호 마이 E Hō Mai:
새롭기만 할 필요는 없다
박재용 독립큐레이터
지난 2월 15일 미국 하와이 제도 일대에서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막이 올랐다. 5월 4일까지 78일의 동시대 미술 여정이 하와이의 여러 섬에 걸쳐 펼쳐진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이며, 서울리딩룸을 이끄는 박재용이 개막 기간 하와이를 찾아 방대한 전시를 취재하고, 월간미술 독자에게 그 현장을 생생히 전달한다. 미국령이나 미국이 아닌 하와이, 선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길어올리며 그 복잡다단한 결을 갈라내는 동시대 미술을 보고 또 읽어보자.
신혼여행지, 열대의 낙원, 서핑 성지, 훌라춤, 우쿨렐레, 지금도 활동을 멈추지 않은 화산. 한국인 방문객 수만 매년 10만이 넘는 하와이에 대한 단편적 인상이다. 여기서 동시대 미술은 어떻게 존재하고 성립할 수 있을까? 2014년 ‘프롤로그 전시’ 《불의 고리(Chain of Fire)》로 시작해 2017, 2019 호놀룰루 비엔날레 《지금 | 여기, 어디에도 없는(Middle of Now | Here)》, 《바로 / 지금 / 바로잡다(To Make Wrong / Right / Now)》, 2022,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 《태평양의 세기 – 광대한 태평양을 지속하다(Pacific Century–E Ho’omau no Moananui kea)》, 《깊은 알로하(Aloha Nō)》로 이어지는 흐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하와이 동시대 미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주변화된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카나카(Kanaka, 하와이 선주민) 예술가들이다. 하와이는 미국의 일부이지만, 1893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왕국이 불법적으로 전복된 일, 1898년 강제적 병합,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과정은 하와이 문화가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말살된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겪은 일제강점기처럼, 학교 교육에서는 하와이어 사용이 금지되었고,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통 종교를 ‘이교’로 규정했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와이대에는 이미 1920년대에 미술 관련 학과가 설치되었지만, 카나카 예술과 역사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본토’를 모방해 서유럽 중심의 미술과 역사를 가르쳤다. 단순한 예술적 배제가 아니라, 식민지 권력의 문화적 지배 전략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왜 북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하와이 왕국을 식민화한 걸까? 하와이 왕국은 이미 1840년에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고, 1852년에는 남성 시민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1843년 ‘앵글로-프랑코 선언’으로 하와이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했고, 하와이는 비유럽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당시 열강에 독립을 인정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영토 확장을 꾀하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하와이에서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 사업을 펼치던 외부 사업가들의 이익이 점차 하와이를 잠식했다. 무장한 민병대의 압박 아래 제정된 1887년의 ‘대포선 헌법’은 미국과 유럽인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1893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 폐위는 미국인 사업가와 선교사들이 꾸몄고,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진주만의 군사적 가치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강제 병합됐다.
록키 카이올리오카히히콜로에후 젠슨〈떨어지는 레후아 꽃들(Nā Lehua Helelei)〉
와이키키 미군 박물관 앞 설치 전경 1999, 2025
2025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전시장소 가운데 하나인 호놀룰루 시청 로비에는 멜레아나 알룰리 마이어의 〈우메케 라아우(‘Umeke Lā‘au)〉가 놓였다. 하와이어로 ‘약초 그릇’ 또는 ‘나무 그릇’을 뜻하는 작품의 제목과 같이 지름 6.5m, 높이 2.5m에 이르는 설치물에서는 1897년 미국의 하와이 강제 병합에 반대하는 ‘쿠에(Kū‘ē) 청원’에 서명한 하와이 시민 3만8000명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방문객은 “기도, 명상, 치유와 회복에 관한 대화”를 위해 마련된 이 공간에 존중의 의미를 담은 입장 프로토콜로 신발을 벗고 타인을 따르게 된다. 오프닝 행사에서는 하와이 전통 복장 차림의 관계자들이 ‘에 호 마이(E Hō Mai, 지혜를 내려주소서)’를 비롯한 되살렸다. 작가는 오프닝을 맞아 관객들 앞에서 소감을 밝히던 중 잠시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기도 했다.
이번 트리엔날레는 총 14개 장소에서 치러지며, 10여 개 문화권 출신의 작가(팀) 49명의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호놀룰루 비엔날레(트리엔날레의 전신)와 하와이 트리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오하우섬만이 아니라 마우이섬, 하와이섬에서도 개최된다. 커뮤니티 칼리지의 전시장, 전통적인 박물관, 식물원, 시청 로비, 대안공간, 공원, 군사 박물관 앞의 작은 교통섬, 사무실 건물 등 다양한 전시장소는 각기 다른 성격과 맥락을 지닌다. 2014년 호놀룰루 비엔날레 재단으로 시작해 2020년 하와이 컨템포러리로 조직을 재정비한 트리엔날레 주최 측 소유의 전시장은 없으며, 매번 하와이의 여러 미술기관 및 전시장과 협력을 맺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대규모 국제 전시를 치를 공간이 부족한 실정을 타개할 방편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각 기관과 지속적으로 대화, 협력하며 하와이 현대미술의 생태계를 함께 가꾸어나가는 과정이 된 모습이다.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
허브 전시장 전시 전경 2025
이 과정에서 전시장과 작품은 새로운 맥락을 얻거나 되짚기도 한다. 2023년 개관해 이번 트리엔날레에서 처음 전시 장소로 쓰인 리워드 커뮤니티 칼리지의 호이케아케아 갤러리는 미 해군의 퇴역 함선이 정박해 있는 진주만의 한쪽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다. 이곳에서 전시 중인 티아레 리보의 〈쿠 쿠 푸울로아의 물(Waters of ku ku Pu‘uloa)〉(2024 )은 20세기 초 진주만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전통 노래, 기도를 암송하며 19세기 말 하와이 시민들에 대한 기억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오염수 누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재 세대의 노력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직설적인 내러티브, 인터뷰나 자막의 사용은 미술 전시 맥락에서 조금 과격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전시장 문밖을 나서면 바로 진주만과 퇴역 전함들이 보이는 곳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하게 된다.
같은 전시장에 놓인 제인 진 카이젠의 〈잔해〉(2024)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24》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은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일본군이 남긴 무기를 제주도 영해에 내다버리는 미군의 모습을 찍은 프로파간다 푸티지와 거친 바다, 물밑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장례, 위로 의식을 보여준다. 〈잔해〉를 통해 떠올리게 되는 사실은 제주의 바다가 거대한 트라우마의 저장소라는 점이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수년에 걸쳐 사실상 미군정의 개입과 묵인하에 자행된 제주 4·3 사건에서는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바다에 버려졌다. 제주의 바다만 그러할까. 태평양을 향해 열린 진주만의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주마나 만나 〈당신의 시간은 흘러가고 내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Your Time Passes and Mine Has No End)〉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깊은 알로하》는 3년에 한 번 개최되는 트리엔날레의 한 회차일 뿐이지만, 하와이 곳곳에서 흩어진 전시장에서는 모오(mo’o, 계승과 연속)를 느끼게 된다. 와이키키에 자리한 미군 박물관 앞 교통섬에 장승처럼 우뚝 솟은 록키 카이올리오카히히콜로에후 젠슨(1944~2023)의 〈떨어지는 레후아 꽃들(Nā Lehua Helelei)〉은 다섯 점의 키이(ki’i, 조각상)로 이뤄진 작품으로, 1999년 같은 장소에 놓였던 작품을 복원을 거쳐 다시 배치했다. 문외한에게는 그저 ‘토착적’ 조각처럼 보이지만, 젠슨의 작품은 재료나 도상, 기법 면에서 전통적 양식에 동시대를 반영하는 요소들을 더한다. 미군의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 앞에 놓인 이 작품은 미군이 하와이에 진주하기 전 선주민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에 희생된 이들을 기린다.
젠슨은 1975년 배우자인 루시아 타랄로 젠슨과 함께 하와이 예술협회 ‘할레 나우아 트리(Hale Nauā III)’를 설립했고, 2023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자신의 작업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을 통해 카나카 예술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번 트리엔날레의 또 다른 전시 장소인 캐피톨 모던(하와이 주립미술관)에서는 그의 조각 작품들과 더불어 그가 카나카 예술의 인정을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었다. 작가는 수십 년 동안 받은 ‘거절 편지’들도 빠짐없이 모아두었다. 평생에 걸친 노력이 이제는 열매를 맺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누적된 절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과 아카이브가 전시된 캐피톨 모던에는 하와이주 문화예술재단도 자리 잡고 있다.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스 클럽〈리무우무(Limuumu)〉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 전시 전경 2025
비엔날레, 트리엔날레는 매번 새로운 큐레이터, 새로운 주제를 선보이며 ‘새로움’을 선보여야 할까? 《깊은 알로하》를 준비한 세 명의 큐레이터는 이전 전시들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연속성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2022년 트리엔날레에서는 세계 각지의 유물과 미술품호놀룰루 미술관에서 〈표해록〉(2017~) 연작의 일부를 선보인 김성환은 올해 트리엔날레에는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2023)로 참여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말까지 진행 중인 작가의 개인전에서 정기적으로 상영 중인 이 작품은 부산에서 태어나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 무용가 배한라의 아카이브와 그녀의 제자로 한국춤을 전승하고 있는 매리 조 프레실리를 다룬다.
하와이어 내레이션에 불완전한 한국어와 영어 자막이 덧붙여진 김성환의 작품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이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의 한국학 연구소에 보관 중인 배한라(함한라) 아카이브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나, 열람은 요원했다고 한다. 문서고에 갇힌 아카이브 대신, 작가는 배한라 춤의 전수자인 프레실리를 찾아가 직접 무용을 배웠다. 작품은 김성환과 또 다른 트리엔날레 참여 작가 산시아 미알라 시바 내시가 (현재 다음 세대의 전수자가 없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무용을 익히고 수행하는 모습과 대상들을 분류하는 아카이브 서류의 언어를 채집한 이미지가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대를 걸쳐 춤사위가 전승되고 시각 예술가가 이를 직접 익히고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오역과 오염을 동반한다. 이런 불완전함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는 틈이 된다.
그런데, 하와이어로 쓰인 《깊은 알로하》를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알로하 노’가 된다. 영어에서 ‘노’는 부정과 거부의 표현이지만, 하와이어로는 깊은 긍정과 강렬함을 의미한다.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의 세 큐레이터(최빛나, 와산 알-쿠다이리, 노엘 카하누)는 전시 주제인 ‘깊은 알로하’가 관광상품화된 ‘알로하 정신’을 넘어, 사랑과 진실, 회복력, 근본적 상호연결성에 기반한 알로하 개념을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따라서 ‘깊은 알로하’는 전시 주제를 넘어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방법론이자 태도가 된다. 전시의 많은 작품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하와이 현지 예술가, 시민, 학생, 심지어 지난 트리엔날레 참가자들과의 협업과 협력을 통해 실현되었다. 단순한 노동과 자본 교환 관계가 아니라, 깊은 알로하의 실천이었다.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과 카나카 오이위(Kānaka ‘Ōiwi, 하와이 토착민) 교육가 이카이카 비숍의 협업은 이번 전시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주었다. 비숍은 하와이 해안에서 걷어낸 침입종 해조류를 좀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활용할 방법을 바랐고,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스 클럽은 해조류를 조각 조형물의 재료로 만드는 법을 알았다. 우뭇가사리를 끓인 뒤 식혀 만든 ‘우무’와 오하우 해변의 침입종 고릴라 ‘오고’는 그렇게 〈리무우무(Limuumu)〉(2025)로 거듭났다. 해조류 수집과 가공은 작가(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작품 제작 과정은 자연스레 하와이의 커뮤니티에 가닿았다. 이들의 작업은 김성환의 작품처럼 다음 번 트리엔날레에서 좀 더 진전된 형태로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칼 F.K. 파오〈케 카나와이 마말라호에(Ke Kānāwai Māmalahoe)〉
포트 스트리트 몰 앞 도로에 타일 벽화 2025
전시를 둘러싼 이런 구성과 진행 과정이 어딘지 모르게 ‘미국답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하와이가 ‘미국같지 않은 미국’이거나 ‘미국 아닌 미국’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리적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와이는 19세기 말까지 독립 국가였고, 미국의 50번째 주가 된 지금도 여전히 고유의 언어와 문화가 이어지는 곳이다. 그러니 하와이 트리엔날레는 탈식민적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고, ‘본토’에서였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지 모르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역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서유럽이나 북미 지역과 같은 ‘대륙’ 혹은 ‘중심’이 아니라 그 너머로, 바다 건너 아시아로까지 이어지는 대양인 태평양 향해 시선을 돌리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미술, 예술의 범위와 정의에 대한 재고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느끼는 독자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대개 서구 중심의 미술사와 제도를 가늠자 삼아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에서 스스로를 주변화한다. 관객 수나 ‘국제적’ 주목, 국제 미술계에서 명망 있는 큐레이터 섭외 여부 등으로 전시의 성패를 파악하고, 서구의 대도시나 미술 행사가 ‘세계 무대’라고 믿는다. 자원과 지원이 부족하다고 여길 땐 서로 손을 잡기보다 각자 갈 길을 찾는 걸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계승과 연속보다, 새로움을 더 중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와이 트리엔날레는 이런 모습이 식민주의적 사고에 갇힌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자, 조금 다른 방향을 조망하는 단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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