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상상하며,
관람 여정을 따라가는 실천 가이드

노재민 황수진 기자
Checklist

월간미술은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만들기 위한 실천 가이드를 소개한다. 『문화시설별 접근성 가이드: 총론』(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4)을 바탕으로 접근성을 물리적·감각적, 서비스·콘텐츠, 사회적·문화적 세 가지 층위로 설정하고, 이를 관람객의 방문 여정(사전–관람–사후)에 따라 세분화해 정리했다. 이번 가이드는 단순한 점검 목록이 아닌, 각 기관이 자신의 여건과 환경에 맞춰 실천 가능한 방식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 매뉴얼이다.

‘안전’ 항목은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가이드 및 워크숍』(2020 연극의 해, 2020)을 참고해, 미술관에서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재난 대응 지침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웹 접근성 항목에서는 월간미술 홈페이지의 실제 기사 콘텐츠를 기준으로, iOS 및 안드로이드 환경에서 보이스오버 기능을 활용한 시각적 튜토리얼을 제공한다.

이 가이드는 “지금, 작게,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접근 방안을 제안한다. 진입로의 경사로 하나, 캡션의 한 줄 크기 조정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미술관을 찾는 용기가 될 수 있다.


1.물리적·감각적 접근성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과 전시 정보에 대한 장벽 제거 및 포용성 확대

모두미술공간의 휠체어 대여 서비스
제공: 모두미술공간

사전 단계
방문 전 물리적 정보 제공
— 홈페이지에 미술관 위치, 주차/출입구 정보, 휠체어 대여 가능 여부, 접근 가능한 경로 안내
— 교통편을 고려하여 주차장이나 정류장으로부터 현장까지, 현장에서 건물까지, 건물 내부의 물리적 환경과 예상 시간 등을 담은 지도나 안내보행 등의 서비스 제공
— 웹사이트에 스크린리더 호환, 웹사이트 고대비 모드, 큰 글씨판, 스크린리더 소프트웨어, 화면확대 도구, 음성인식, 키보드 오버레이 등의 보조 기술 활용

관람 단계
공간 구조 및 이동 편의
— 건물 외부에 경사로, 점자블록, 자동문, 명확한 이정표 등 설치
— 실내에 촉각 유도선, 명확한 층별 안내, 촉지도 및 픽토그램 제시
— 장애 유형에 따른 보조 장치 제공
— 색약, 저시력자를 위한 눈부심 방지 조도, 균일한 광원 사용
— 작품 위치 조정: 벽면형 전시물은 어린이, 휠체어이용자 등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높이 0.9~1.5m 범위 내에 설치하고, 확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0.6~1.8m내에서 설치
— 엘리베이터에 점자 버튼, 음성 안내, 적절한 버튼 높이 제공
— 화장실에 장애인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비상벨 등 설치

사후 단계
퇴장 및 귀가 지원
— 각종 안내 사인을 통해 분명한 퇴장 동선 안내 및 혼잡 시 피난 경로 가이드 제공
—대중교통 환승 정보 또는 셔틀 운행 여부 안내

실천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주 출입구에 촉지도식 안내판을 설치해보세요.

▶약시자가 유리면을 인지할 수 있도록 충돌방지용 그래픽 시트(Window Decal)를 부착해보세요.

▶엘리베이터 앞에 촉각 유도선과 층별 고대비 안내문을 설치해보세요.

▶비상시 대피 동선에 방해가 되는 지장물을 제거해보세요.

리움미술관 로비에 비치된 릴루미노와 색각 보정 안경
제공: 리움미술관


2.서비스·콘텐츠 접근성
감상 콘텐츠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 가능성 확보

점자와 함께 큰 글씨 한글을 병기한 안내문 ‘모두를 위한 대구미술관 안내서’
제공: 대구미술관

사전 단계
방문 전 물리적 정보 제공
— 기관 홈페이지 내에 접근성 관련 정보를 별도 카테고리로 분리하여 안내하고, 문의를 위한 온라인·전화·이메일 창구를 함께 제공
—전시 및 출품작 소개 영상에 자막 및 음성 해설 포함한 사전정보 제공
—SNS 및 홍보자료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 text) 제공
—홍보물에 접근성 지원 정보(안내자, 휠체어/유아차 입장 가능여부, 동물 동반 입장 등) 제공
—전시시설 소재 지역의 장애 관련 기관·협회와 홍보 채널 구축
— 비차별 응대를 위한 가이드(응대 매뉴얼) 제작 및 운영

관람 단계
감상 콘텐츠 다양화 및 정보 선택권 확대
—전시실 내 점자 인쇄물, 큰글씨 인쇄물, 수어 해설, 자막 해설, 음성 해설 제공
—쉬운 글, 촉각·후각·청각 자료와 같은 감각 교구 및 진동 해설 장치 비치
—정기 해설 프로그램 및 터치 투어 운영
—감각 과민 관람객을 위한 조용한 감상 시간 또는 별도 예약 관람제 운영

사후 단계
온라인 정보 접근성 확대 및 피드백 수렴원
—전시 연계 해설 영상 및 자료를 온라인으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제공
—관람 후 접근성 체감도에 대한 피드백 설문 수집

실천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홈페이지에 온라인·전화·이메일 문의 창구를 명확히 표기해보세요.

▶전시 캡션에 얇은 글꼴의 사용을 지양하고, 글자 크기를 국문 15pt, 영문 13pt 이상으로 조정해보세요.

▶SNS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 text)를 추가해보세요.

▶전시 리플릿을 PDF 고대비·큰 글씨판으로도 함께 제공해보세요.

▶기존 영상에 자막을 추가해보세요(무료 자동 자막 생성 도구 활용 가능).

▶한두 작품이라도 ‘쉬운 글’ 버전을 제공해보세요.

▶조용한 관람 시간대를 추천하는 문구를 입구, 리플릿, 홈페이지 등에 안내해보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공감각 전시 학습 공간 ‘오감’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작품 앞 QR코드를 통해 수어해설영상을 감상하는 장면
제공: 리움미술관


3.사회적·문화적 접근성
인식 공감 및 의사결정 권한 확대, 관심사와 삶의 경험에 대한 반영도 제고

사전 단계
조직 내부의 인식 전환과 구조 정비
— 내부 인력을 대상으로 접근성 감수성 향상 및 장애 인식 개선 교육·워크숍 실시
—기관 차원의 접근성 관련 중장기 정책 및 실천 과제 수립
—문화시설 운영에 있어 접근성 유관 단체 및 기관과의 협력 체계(파트너십) 구축
—접근성 자문단 또는 운영위원회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조 마련
—접근성 당사자가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에 참여하고 자문할 수 있는 기회 마련

관람 단계
관람객 지원 체계 확보
—자원봉사자 및 보조 인력 배치를 통해 장애 관객 전담 지원 체계 구축
—비상 상황 대응을 위한 PEEP(Personal Emergency Egress Plan) 수립 및 적용

사후 단계
피드백 수렴 및 참여 구조 마련
—관람 종료 후, 기관 내부에서 의견 수렴 및 공감대 도출 구조 마련
—접근성 당사자 관람객과의 피드백 루트 확보 및 실제 운영 반영

실천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 전시장 지킴이(도슨트, 안내데스크 인력 등)에게 접근성 응대 매뉴얼 교육을 해보세요.

▶ 기획 회의나 프로그램 회의 시, 접근성과 관련된 질문을 하나 추가해보세요.

▶ 기관 홈페이지나 SNS에 접근성 관련 제안/피드백 창구를 간단히 마련해보세요.

▶ 유관 기관이나 지역 커뮤니티에 전시 리플릿 또는 초청장을 전달해보세요.


Zoom In
 0set(제로셋) 프로젝트*
“ 정답을 맞히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재

“접근성은 언제나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맨 아래로 밀려납니다.” 신재는 수년간 문화예술기관과 함께 접근성 워크숍을 진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관 접근성 문제는 시설 개선과 예산 확보를 넘어 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했다.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과 실천해야 하는 사람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조직문화, 권한 없는 계약직 중심의 고용구조, 노동자들 간의 분업과 거리감 역시 변화를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그는 “체크리스트는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도착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점자블록, 경사로, 음성해설 같은 요소가 모두 갖춰져 있어도, 그것이 실제로 누구에게 필요한지 고민 없이 설치되었다면 무의미할 수 있다. 신재는 “접근성은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지금까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배제해왔는지를 되돌아보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만, 체크리스트 없이도 많은 것을 개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접근성의 실천은 시스템을 향한 질문이며, 동시에 우리가 놓친 세계를 다시 사유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 0set(제로셋)프로젝트는 신재 연출가가 이끄는 프로젝트 팀으로, 연극, 전시,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예술 공간의 접근성 문제를 제기한다. 장애인 관객의 관점에서 시설과 프로그램의 접근성을 점검하며,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뉴얼을 제작하기도 했다.


세 가지 접근성 유형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세 가지 접근성은 명확하게 경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선후나 우열을 따지기 어려운 관계다. 각 기관은 주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또는 쉽게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1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하는 일은 시급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접근성 실천이 특정 계층만을 위한 배려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접근성은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된 공동의 조건이다. 미술관에서의 접근성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신체적·감각적 차이와 다름을 수용하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통해 이것이 곧 나와 우리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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