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 리(Zhou Li), 첫 한국 개인전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피어나다》
화이트 큐브 서울 6.26~8.9
심지언 편집장

〈The World in A Flower: A Flower Lying Low〉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247cm 2024~2025
©작가. 제공: 화이트 큐브
중국 작가 저우 리의 한국 첫 개인전이 오는 6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개최된다. 저우 리는 동양적 정신세계와 자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감정, 인간관계, 삶의 순간들에 대한 명상적 성찰을 추상 회화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환영적이고 반복적인 선과 색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열려 있고 변화무쌍한 회화 공간을 펼쳐 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동시대의 서구 회화, 마크 로스코나 사이 톰블리의 작품들과 긴밀한 대화를 이루는 동시에, 7세기 화가 전자건과 4세기 서예가 왕희지 등 중국 고대 서화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개인전에는 작가의 회화 신작 14점이 소개된다.
저우 리
1969생. 중국 후난성 출신으로 광저우미대에서 유화를 전공하고 8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현재 선전에서 거주하며 중국 주요 예술기관에서 교육자 및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티베트 라싸의 제범강아트센터(2024), 프랑스 샤토라코스테(2022), 런던 화이트 큐브 버몬지(201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상하이 징안조각공원(2018)과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위성전시 《From East to West》(2015) 등의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서 최근작을 선보이는데, 신작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꽃’을 주제로 하고, 제목은 대부분 〈One Flower, One World〉이고 일부는 〈Mandala〉로 붙였다. 만다라는 우주를 상징하는 도상이자 형태적으로도 꽃과 닮아있다. 꽃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존재지만, 꽃을 통해 생명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사유적이고 명상적인 과정이다. 그 경험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 이전 작업 역시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Metamorphosis〉와〈Life as A Cycle〉은 생의 소멸과 재탄생을, 〈White Shadow〉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작업이며, 〈Peach Blossom Spring〉,〈Water and Dream〉은 자연과의 만남과 발견을 담은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이러한 두 흐름, 즉 ‘생명’과 ‘자연’이라는 주제를 하나로 잇는 지점에 있다. 꽃은 곧 만다라이며, 만다라는 자아이자 세계이다.
작품에서 점과 선은 동양 서예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화면의 역동적 축으로 작동한다. 서예를 “매일의 수행”과 같이 해왔는데, 서예와 동양적 정신세계가 현대적 추상화와 어떻게 만나고, 또 차별화되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서예는 매일의 습관이자 정신적 수련이다. 매일 달리기를 하면 폐활량이 좋아지듯, 매일 서예를 하면 선과 필획이 몸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고, 그 감각이 내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러한 감응의 과정이 작업의 근간이 된다. 또한 동아시아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의 문화나 국가를 대표하는 표현에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특정한 문화적 맥락 안에 놓인 ‘하나의 개인’일 뿐이다. 나는 문화적 배경과의 관계를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자연과 생명은 개체를 통해 드러난다. 한 송이 꽃에서 자연을 볼 수 있지만, 어떤 꽃도 자연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나의 서예 연습은 마치 꽃과 나무를 기르듯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이다. 문화적 정체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자연의 창조물이라는 본질에 닿게 된다. 꽃이 어디에 있어도 꽃이듯, 인간 역시 그러한 존재이다. 나의 회화는 이러한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며, 그 구체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는 오늘날 현대미술이 지닌 철학적 방향과 맞닿아 있다. 즉, 과거의 거대한 문화 서사가 점차 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개인의 서사로 이행되고 있다. 이는 단지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얻어지는 감각이며, 내 작업은 바로 그 감각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Murals No.2〉 캔버스에 혼합재료 오각형 각 변 25cm 2023~2025
©작가. 제공: 화이트 큐브
본인의 작업을 “창문 가운데 서 있기”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설명 부탁한다.
사람은 자신을 직접 볼 수 없어 거울을 보거나, 혹은 자신이 지각하는 세계의 현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스스로를 마주해야 한다. 이는 중국 사상가들의 철학이나 서양의 현상학에서도 공통으로 논의되는 주제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현상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창문 가운데에 서 있다”는 비유는 이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나와 세계 사이에 하나의 창이 있고, 나는 그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작품 전반에 사용된 분홍색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본인에게 분홍색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색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궁금하다.
내가 사용하는 분홍색은 특정한 색조와 질감을 구현하기에 매우 정교한 혼합 과정을 거친다. 이 색은 내가 임신했을 때 느꼈던 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명 탄생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생명과 생명력은 본질적으로 강한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분홍색이 단순한 상징이나 표상을 넘어, 삶에 대한 직관과 감각을 전달하길 바란다. 동시에 그 안에 따뜻함과 감정이 깃들어 있기를 바란다.
둔황 석굴 벽화와 로마 폼페이 프레스코의 색채를 분석하여 독자적인 팔레트를 만드는데, 이러한 고대 벽화의 질료적, 미학적 조화가 본인의 현대 회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특별히 광물성 안료를 사용하는 배경도 궁금하다.
고대 벽화들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생기는 얼룩지고 벗겨진 질감으로 더욱 매혹적인 시각성을 갖게 된다. 이는 결코 인위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이다. 나의 작업에서는 이처럼 색채 간의 조화와 절제, 그리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과정을 중요한 참조로 삼고 있다. 그것은 단지 색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광물 안료의 질감, 붓질의 흐름, 그리고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으로부터 비롯된다. 고대 벽화의 아름다움은 단지 벽화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과 공기의 세례를 받은 뒤 변화한 그것은 자연미의 확장이자,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의 작품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움이 구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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