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킴 Jihee Kim
지희킴, 찬연한 생을 전하는 작가
Artist
지희킴/ 동국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골드스미스대 순수미술 석사 졸업 후 이화여대 서양화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서양화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11년부터 텍스트와 이미지의 재조립, 신체의 비정형적 상태, 심리의 상징물로서 가상의 정원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사회에 만연한 고정적 가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스페이스 문(2023), 디스위켄드룸(2022), 수림문화재단(2021) 등이 있으며, 유니클로 코리아, 소마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프로젝트 프로덕트, 오산시립미술관, OCI 미술관, 금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골드스미스대학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타이중 문화재단 Live Forever Foundation, 제주도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박홍순
〈부아부셰의 밤 No.5〉아르슈지에 과슈, 색지, 작가 제작 프레임, 뮤지엄 글라스 51×36cm 2024
©디스위캔드룸, 작가 All rights reserved
지희킴, 찬연한 생을 전하는 작가
이문정 미술비평,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을 가진 존재는 찬란하다. 때때로 생은 처절하고 고되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유의미하다. 폭력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매혹적인 지희킴의 〈정원〉시리즈(2022~) 앞에서 머무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화폭의 전체 혹은 일부를 채우는 신비로운 식물의 형상은 지희킴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주체-존재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킨다. 온몸으로 체험한 세계와 예민하게 자극받은 감각에서 영감을 받은 형상, 선과 색 그리고 행위가 긴밀히 작용하는 생동하는 시공간이 눈앞에 쏟아진다.
지희킴은 몇 년 전부터 식물원, 온실, 정원에서 본 식물들(의 잔상)을 꾸준히 그려왔다. 그곳에서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안정과 치유를 경험한 순간이 시작점이었다. 이후 작가는 식물이 가득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점차 눈에 맺혔던 형상뿐 아니라 그곳에서 발생한 심리적 변화까지 작품에 담겼고, “설레는, 첫눈에 반한, 완전히 매료된, 두근거리는, 비참한, 혼자 있고 싶은, 질투심에 사로잡힌, 증오심으로 불타는, 복수를 꿈꾸는”처럼 내적 상태-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제목으로 선택되었다. 작가에게 식물은 치유(healing)의 수단이자 시각적 분석의 대상인 동시에 세상을 경험하는 주체의 대응물이 되었다. 작가의 안과 밖(의 세계) 그 자체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를 실어 나르는 통로이기도 했다. 한 명, 한 명의 사람, 나아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 하나하나가 제각각이듯 지희킴이 관찰하고 그려낸 식물들의 외관과 그들이 전달하는 감흥은 늘 달랐다. 그런데 보고 그리기를 지속하던 작가는 언젠가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한계와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프랑스 부아부셰(Boisbuchet)에서 인간에 의해 재단되고 꾸며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을 체험한 뒤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심연의 밤’, 손에 든 작은 불빛에 의지해 걷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식물의 형태와 흔들리는 그림자, 풀과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 자연의 냄새, 온몸에 닿았던 공기와 바람, 경외감과 두려움 그리고 매혹됨의 뒤엉킴은 벅찰 정도의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고 열등한지의 문제가 아니었으나 인간에 의해 개념화되고 관리되는 자연과 천연의 자연은 같을 수 없었다. 〈부아부셰의 밤(Boisbuchet Night)〉(2024 )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1
지희킴은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고 문명은 그 증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작가라는 삶 역시 그에 대한 믿음 없이 불가능한 길이다. 그러나 자연은 분명 작가에게 생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는 놀라움과 신비로움의 순간을 체험시켰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이야말로 가능성의 세계이자 한계 없는 창조의 영역일 수 있다. 역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인식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 존재의 탁월함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느쪽이든 작가가 그린 자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상향과 같은 풍경도, 낭만주의 풍경화처럼 인간을 압도하는 광대한 세계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존재 대 존재로 관계 맺는 자연이다. 지희킴은 씨앗에서 시작해 피어난 잎사귀와 꽃들, 그 주변을 오가거나 머무르는 생명체들에 내밀하게 다가간다. 하나하나의 식물과 곤충은 강인하고 신비롭다. 큰 세계와 작은 세계는 서로를 포함한다.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거리는 최소화되고 서로는 서로에게 상호침투한다. 온몸으로 마음을 다해 감각하는 정원 혹은 야생의 숲이다. 실존을 드러내며 생의 가치를 전달하는 대상-존재이자 환경이다.
사실 지희킴은 작업 초기부터 생이 약동하는 순간들을 포착해 왔고, 육체와 그 생명력은 중요한 키워드였다.〈북 드로잉〉(2011~) 프로젝트에서 책을 메운 검정 글자를 지우는 형형색색의 조각난 몸들,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파편화된 이미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추상적 형상들은 언어와 문법이 상징하는 엄격한 규범의 세계, 체계화라는 명목하에 일어나는 단순화와 정형화,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권력 구도에 틈새를 만들었다. 문장들 위를 가로지르는 그리기는 한정 짓는 게 불가능한,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작가를 포함한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일련의 작품들은 형언할 수 없고 어떤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원초적으로 다가오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초월적으로 체험될 영역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 세상은 하염없이 복잡하고 다양해서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이 될 수 없고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 어렵다. 절대적 이상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다양성만 강조할 수도 없다. 보편성과 다양성, 통일과 해체가 모두 존재하는 미스터리가 삶이다. 예술에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가 존재한다.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합리적이라 믿어지는 세계가 담아내지 못하는-않는 존재와 상황들에 손을 내미는 〈북 드로잉〉은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에너지와 욕망을 선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작가는 철저한 계획에 의존하지 않고 그리기와 칠하기의 즉흥성을 발휘한다. 냉철한 형상과 즉흥적인 채색은 서로에 침투하지만, 그로 인해 서로는 공고해진다. 지희킴이 그려내는 세상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의미는 힘을 갖지 못한다. 책을 새롭게 채우는 이미지 역시 한정적인 언어로는 제공할 수 없는 가능성을 담는다. 결과적으로 전체가 아닌 부분이어서 상상의 여지를 확장하는, 지희킴이 그린 존재들은 명확한 실루엣을 지닌 유한성의 주체를 벗어난다. 애초에 세상은 그처럼 재단되고 분리될 수 없었다. 이후 약동하는 이미지는 거대한 회화로, 벽화로, 설치로 이어졌다. ‘깊은 잠에 빠지는’ 한밤의 꿈나라에서는 존재들이 이처럼 자유롭게 부유할지도 모르겠다. 결과물 못지않게 행위가 주인공이 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품의 규모가 커지자 자연히 열린 존재의 부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도 커졌고, 재단하고 분절하려는 세상에 대한 저항성은 한층 강조되었다. 그러나 책은 완전히 분해되지 않았고, 그림은 글자를 완벽히 지우지 않았다. 해체된 존재의 부분들과 야생의 자연은 회화의 사각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즉흥적이고 본능적이지만 작가의 손을 거친 이미지들은 유려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즉 지희킴은 자신을 고정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어 멈추지 않고 유동하는 시공간을 만든다. 어느 한쪽으로의 안정은 고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위 〈가여운, 악랄한〉 아르쉬지에 과슈 163x260cm 2024
아래 왼쪽 〈Functions〉 런던에서 기증받은 책에 그린 과슈화 23.5×31.3 cm 2023
오른쪽 〈Positive〉 런던에서 기증받은 책에 그린 과슈화 23.3×32cm 2023
©디스위캔드룸, 작가 All rights reserved
지희킴의 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의 육체는 매 순간 발견하고 발견되는 주체의 일부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본질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그것은 세계와 대립하지만 자신이 세계에 밀접하게 속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계는 몸에 근거한다. 그런데 인간의 몸은 거울이나 초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하나의 형태만 소유하지 않는다. 분해해야 보이는 육체도 있다. 지희킴의 작품에서처럼 흩어진 부분과 단편으로 환원된 몸이다. 색색의 액체가 흐르고, 스펀지나 항아리 같기도 하고, 대롱 같기도 한, 특정한 무엇과 닮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형상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 주체가 가진 몸이다. 육체는 나의 것임에도 내 의식에 온전히 속하거나 지배당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운 ‘기묘하고 비대칭적인 공간’이다. 감각 능력을 갖춘 육체는 충동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내적 신비에 의해 행동하기도 한다. 인간은 가동적 부분의 일부를 시각으로 인지할 뿐이다. 일관성이 있지만 가장 변동하기 쉬운 그것은 ‘무정형’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현재 그 자체’이다.2 그렇게 작가에 의해 해체된 부분들은 끝없이 흐르고 흘러 다른 존재-부분들과 만난다. 정지한 것은 없다. 생물학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변화의 과정 중에 놓일 뿐이다. 동물의 머리는 인체와 합쳐지고 얼굴 아래의 목은 식물로 연결된다. 눈은 내장과 손으로 이어지고 잘린 다리는 앞을 향한다. 분리된 얼굴은 하늘을 바라본다. 지희킴은 〈정원〉 시리즈에서도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식물을 결합하거나 사생을 목적으로 한 드로잉을 재해석해 변종처럼 그려냈다. 있는 그대로의 재현을 벗어난 혼종적인 존재 역시 세계의 다양성을 시각화한 것이자 의미의 확장을 꾀한 것이다. 인간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가의 흔적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끝없이 의미를 생성해 고정될 수 없는 창작물의 상징으로 보이기도 한다. 의외성이 가져오는 완결된 놀람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기대도 예측하지 못하는’ ‘무한한 놀람’을 추구하는 게 예술이다. 또한 작품은 완성된 이후에도 달라지며 지속되기에 열린 형상들처럼 수많은 변화와 해석이 가능하다.3
한편 지희킴의 서명과도 같은, 짙고 촘촘하게 칠해진, 선명하면서도 불투명한, 깊기도 하고 평평하기도 한 색채는 회화의 표면이자 생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살갗-피부의 예민한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윤곽선 내부를 채우는 조형 요소인 그 자체로 약동하는 색은 회화적 실존을 뛰어넘어 생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불꽃놀이가 한창인 축제 같기도 하다. 강렬하고 원초적이지만 미묘하고 세련된 색들은 세계 속 존재들의 빛나는 순간을 붙잡는다.
이와 같이, 일련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은 지희킴이 육체로 살아가는 인간의 감각과 본능을 생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삶과 예술에서 피어나길 원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중요하다. 지희킴 역시 행위에 앞서 충분히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끝없이 질문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러나 그만큼 본능적-원초적 생명력도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신체적 감각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은 정신적 작용과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피와 살’은 나와 너를 뒤덮는다.
이에 작가는 지금 여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만끽하며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의 발동을 느낀다. 거기에는 기쁨과 환희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은 그저 순탄하기만 할 수 없고 어렵기만 할 수도 없다. 주체는 슬픔과 고통, 괴로움, 공포를 받아들여야 한다. ‘뛸 듯이 기쁜’ 하루하루에는 ‘눈물을 참는’ ‘고독한’ 순간도 포함된다. 희망만큼 절망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 모두, 밝음과 어두움이 함께해야 충만할 수 있다. 작가에게 고통은 생성과 성장, 창조의 조건이다. 이러한 태도는 운명론으로의 함몰이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희킴의 작품에는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자 상실인 영원과 종말, 생성과 파괴까지 등장한다. 생명의 힘이 흘러넘치는데도 슬픔이 엄습한다. 꽃은 아름답고 슬프다. 생의 주기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의 육신은 사라진다. ‘환희에 찬’ 생은 그 시작부터 처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떠나고 남겨지는 순간에도 삶은 여전히 빛날 것이다. 인간이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인 죽음도 생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없다. 서로 상응하는 시의 구절 같은 〈시간을 망각하는〉(2023)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2023)에 그려내는 것처럼 초월을 꿈꾸는 만큼 유한성과 한계에 가까워지기에 유희적인 붓질은 고통까지 담아낸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그것조차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고통, 실망, 우울은 나-인간을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성숙시키고 빛나게 하는 감정이란 사실4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당분간 지희킴은 〈정원〉 시리즈에 빠져 있을 것 같다. 작품 속 나뭇가지처럼 사색과 감흥은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듯 생각이, 이미지가, 그리고 생의 에너지가 만개할 것이다.
1 지희킴 이문정의 인터뷰 2025. 4. 10
2 폴 발레리 지음 정락길 엮음「신체에 대한 소박한 고찰」『인간과 조개껍질: 폴 발레리비평선-예술론』 이모션북스 2021 pp. 160~166
3 폴 발레리 지음 백선희 옮김『폴 발레리의 문장들』 마음산책 2023 pp. 149~151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선형 옮김 『삶의 사계: 헤르만 헤세 아포리즘』 세창미디어 2024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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