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랩 부산
부산시립미술관, 도모헌, 영화의 전당,
그랜드 조선 외 부산 일대
정소영 기자
Sight & Issue

《디지털 서브컬처》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 전시 전경 2025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국제포럼과 전시, 국내 최초 미디어아트페어가 한자리에서 펼쳐진 ‘루프 랩 부산’이 개막했다. 루프 바르셀로나와의 협력으로 개최된 루프 랩 부산은 비디오 아트 플랫폼으로 매년 개최되는 루프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포럼, 전시, 아트페어와 지역의 주요 문화기관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내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BMA 미래미술관 포럼 4.22~23
무빙 온 아시아 4.15~6.29
국내외 주요 미술 관계자들이 모여 진행된 ‘BMA 미래미술관 포럼’은 4차 산업혁명, 환경 오염, 신냉전 등 인류가 맞이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술관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모색했다. 포럼에는 엘비라 디앙가니 오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장, 브렌단 맥게트릭 두바이 미래미술관 큐레이터, 필립 지글러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센터 큐레이터, 마나부 야하기 모리미술관 큐레이터 등 전 세계 12개국 17개 미술관의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아시아 11개국 문화기획자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진행한 ‘무빙 온 아시아’는 ‘집단 기억과 아시아의 공동체적 서사’, ‘무빙 이미지의 유동성과 가변성’, ‘장소의 수행성과 몸의 정치성’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에 내포된 문화적 맥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했다. 동일한 제목의 전시 《무빙 온 아시아》는 아시아 무빙이미지 아트의 현재와 미래를 연구하고 제안하는 프로젝트로, 새로운 담론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도모헌과 영화의 전당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중국의 양푸둥, 일본의 메이로 고이즈미와 같은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격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태국의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와 같은 신진 작가의 영상 작품도 소개됐다.
루프 랩 부산 페어에 참여한 두아르테 세퀘이라 소속 작가 조나단 울리엘 살다냐의 영상 작품
루프 랩 부산 페어 4.24~26
미술시장과 미술관의 활동을 구별하는 국내의 분위기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미술시장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 교육과 신진 컬렉터를 양성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 디지털 미디어 아트페어가 루프 랩 부산 기간에 개최됐다. 미디어아트는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장르 중 하나지만 기술 변화에 따른 보존 방식의 한계와 작품소장 문제로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기 어려운 장르다. 그럼에도 이번 아트페어에는 루프 바르 셀로나 페어에 참여했던 해외 갤러리를 포함해 국내 비영리 독립 공간인 아마도예술공간과 조현화랑, 갤러리2뿐만 아니라, 페로탕, 에스더 쉬퍼와 같은 글로벌 갤러리의 국내 지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미디어아트 페어인 만큼, 작품의 소장 방식과 가격 책정, 에디션 구성 방식에도 큰 관심이 쏠렸다. 작가 에디션(AP)을 제외하고 일반 에디션은 3~5점이 평균이었으며, 일부는 에디션 1점만 제작해 복제 가능한 미디어아트의 특성을 거부하고 유일성을 강조했다.
작품 형식 또한 흥미로웠다. 가장 범용적인 MP4와 애플사의 MOV 포맷이 주를 이뤘으나, 일부 작품은 고화질의 AVI 포맷을 고수했다. 일부 갤러리는 구매자에 맞춘 파일 변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미디어아트 유통 방식의 실험도 함께 이뤄졌다.
《디지털 서브컬처》 4.15~6.29
리모델링 공사 중인 부산시립미술관은 실내 공간이 아닌 야외조각공원에서 기획전 《디지털 서브컬처》를 선보였다. 28개국 45명의 디지털 창작자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현실과 가상, 창작자와 소비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실험적으로 허물며, LED 스크린을 통해 야외에서 작품이 상영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됐다.
‘디지털 추상’, ‘다다의 빛’, ‘미러링 네이처’, ‘미러링 휴먼’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기술 표현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미적 감각 변화를 포착하며, 영상 기반의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현대미술 작가를 수평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기존 미술관 전시 문법을 과감히 전복했다. 하지만 미술관이 ‘디지털 크리에이터’를 예술가와 동일 선상에 두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 됐다. 팔로워 수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SNS 기반 창작자들을 공공미술관 전시에 포함시키는 것의 적절성 문제와 예술의 평가 절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동시대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 양상을 제도권 미술관이 수용하고자 한 사례로서 이번 전시는 ‘예술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생태계 실험의 장
디지털 시대의 창작 환경과 수평적 네트워크, 그리고 예술의 공공적 실천 가능성을 가시화하며 펼쳐진 제1회 루프 랩 부산은, 짧은 준비 기간에 비해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와 흥미로운 실험으로 동시대 미디어아트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부산시립미술관의 리모델링을 계기로 논의된 미래 미술관의 역할,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 있는 미디어아트를 둘러싼 연구자, 작가, 미술시장의 노력은 예술이 디지털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제안하는 예술적 실험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예술의 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이 실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 도시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장기적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루프 랩 부산과 연계해 부산 전역의 공공·사립 미술관, 대안 공간, 갤러리 등 26개 문화 공간에서 열리는 주목할 만한 전시들을 소개한다.
황수진 기자
부산문화재단(F1963 석천홀) 《토니 아워슬러》 4.18~5.18
토니 아워슬러의 〈Lock 2, 4, 6〉(2010)은 그가 1990년대부터 전개해 온 오브제와 조각을 활용한 프로젝션 작업의 대표작이다. 불분명한 이미지 간 관계를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이 작업은 심리학 실험을 참조해 확증 편향, 감각의 왜곡, 미디어 몰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
오케이앤피(OKNP) 《세상은 생각보다 허술하게 돌아간다》 4.22~5.2
부산에서 활동해 온 이광기의 개인전. 2008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작 〈인식_버릇없는 쇳덩이들〉(2008), 전광판 설치 〈쓰레기는 되지 말자〉(2019), 감시카메라를 활용한 신작 등을 통해 기술 중심 미디어아트의 흐름 속에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 온 작가의 궤적을 되짚었다.
국제갤러리 부산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4.25~7.20
정연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블루스’와 ‘발효’라는 은유로 풀어낸다. 블루스의 구조와 고려인 후손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다섯 음악가의 협주하는 영상, 바틱 천, 발효균 사진 등에서 작가 특유의 익살과 진지함이 교차한다. 불가항력적인 삶을 수용하는 태도와 감각이 시청각적 리듬으로 전시장에 펼쳐진다.
해운대플랫폼 《Aldo Tambellini: We Are The Primitives of A New Era》 4.23~6.20
알도 탐벨리니는 1960년대부터 슬라이드, 필름, 브라운관 비디오 등 아날로그 매체를 실험하며 뉴미디어아트의 조형적 기반을 다졌다. 이번 전시는 루마그램(Lumagram), 초기 비디오, VR 작업 등을 통해 그의 매체 실험과 미디어아트 형성기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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