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훈 Byunghoon Choi
최병훈: 무르익은 침묵
Artist
최병훈/ 1952년생.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및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 가구디자인 전공 졸업.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및 미술대학 학장, 홍익대 박물관장과 현대미술관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 특선 및 입선, 코리아디자인어워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어워드 대상,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가나아트센터, 조현갤러리, 뉴욕 프리드먼 벤다 등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휴스턴미술관, M+, 비트라디자인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태초의 잔상 016-471〉(부분) 현무암 192×69×47cm 2016
이미지 제공:작가
최병훈: 무르익은 침묵
최장현 전시기획, 미술사
최병훈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세계 중심에 위치한, 예술과 공예라는 모더니즘적 이분법을 거부하는 ‘아트 퍼니처’ 개념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993년 선화랑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 맞춰 평론가 오광수가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섬유나 도자 등 예술과 공예가 교차하는 타 영역과 구분되는 가구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함축하고 있는 바가 서로 다른 두 명사를 병치하여 ‘순수한 조형성’과 ‘기물로서의 용도’를 동시에 갖춘 예술로서의 가구를 상상한 것이다.1
〈태초의 잔상〉(1993~), 〈태초의 소리〉(1993~) 연작 등 최병훈의 초기 작업은 이처럼 상이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된 이중의 목적을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어낼 수 있다.〈태초의 잔상 9421〉(1994)은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얇은 합판을 화강암에 고정시켜 만든 의자로, 20세기 초 추상미술에서 보여진 유기적(biomorphic) 형태로의 전환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도교 철학을 환기한다. 미술사학자 정연심은 이처럼 단순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재료의 물질적 특수성에 개입하는 최병훈의 작업을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그는 비평가 이일의 언어를 빌려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자연직관’적 시각을 ‘무기교’, 또는 ‘무작위성’을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민족성의 표현이라 정의하며, 이를 산업 생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격자(grid) 형태나 표준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바탕으로 한 서구 미니멀리즘과 구분한다. 웬델 캐슬(Wendell Castle)이나 구라마타 시로(倉俣史朗) 등의 작업을 연구하며 다져진 최병훈의 조형 언어는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미니멀’한 형식이 한국이라는 맥락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유의미하다.
하지만 오늘날 최병훈의 작업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히 비서구 미술사의 계보에 대해 일련의 시의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급격한 근대화를 거친 한국에서 ‘전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예술과 공예와 교차하고 공명하며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최병훈의 작품에서 전통이 흡수되고 변주되어 온 과정은 곧 여러 세대에 걸친 한국 작가들의 작품세계에서 동일한 개념이 어떻게 작용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원형으로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트 퍼니처’라는 개념 또한, 최병훈이 수학하던 1970년대 초 대학 교육 과정의 중심이 되었던 전통 목공예에 대한 반항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광수는 전후 한국의 목공예를 ‘전통 목가구의 탁월한 장인정신’과 이른바 ‘현대식’으로 일컬어지는 사조의 간극을 바탕으로 규정하는데, 작가의 모교인 홍익대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예 교육은 전통 양식을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미술사학자 안귀숙이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가 학업을 마친 뒤 1977년에 ‘현대공예창작회’를 창립한 이유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관습을 답습하며 정체되어 있던 국내 목공예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였다.2
〈태초의 잔상 024-621〉 물푸레나무에 블랙 우레탄 마감, 자연석, 알루미늄 182×87×45cm 2024
물론 이처럼 형식적, 개념적 차원에서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는 시도는 세계 모더니즘의 역사에서 그리 드문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최병훈의 작업은 점차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미학을 일구어내기 위해 다시금 전통을 찾아 고유한 미학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해외여행에 많은 제약이 따르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그는 핀란드의 알토대학과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초청 교수로 머물며 유럽과 미국의 디자인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는 서구 미학과 구별되는 ‘우리 것’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귀국 후 작가는 국내의 유적과 사찰을 찾아다니며 한국 고유의 조형 언어를 탐색하며 이를 본인의 작품을 통해 풀어내었다. 아트 퍼니처는 곧 한국적 미의식의 고찰과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자란 그의 개인적 성장 배경이 맞물려 형성된, 전통과의 씨름 속에서 탄생한 장르이다. 이 개념은 전후 한국 사회가 겪은 단절과 혼란의 조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 공예를 무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은 국제적 흐름에 뒤처질 위험을 내포하지만,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무분별한 수용은 지역성과 문화적 특수성을 지우는 균질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훈의 작업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자 한 실천이자, 복합적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다.
전통에 대한 최병훈의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그의 작업 전반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뉴욕 프리드먼 벤다(Friedman Benda)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에 출품된 〈태초의 잔상〉 연작의 두 작품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 작품은 조선 시대 ‘장(欌)’의 형태를 차용했지만, 박물관이나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장과는 다른 현대적 조형물이다. 장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기능적 형태, 즉 나무로 이루어진 육면체 구조 외에는 모든 요소가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통 공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빛의 유광 옻칠 대신, 전면을 칠흑 같은 검정으로 마감하고, 곳곳에 천연석 덩어리를 괴거나 끼워 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한국 전통 공예의 특징을 내포하면서도, 한국 전통이라는 문화적 근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자적 형태에 도달한다. 목재와 석재의 조합은 동아시아적 미감과 감수성을 떠올리지만, 이는 한국 전통을 ‘계승’한 결과라기보다는, 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최병훈이 스스로 구성한 한국적 미학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최병훈의 작품은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조형 언어뿐만 아니라, 전통이라는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함의 또한 폭넓게 다루고 있다. 한 예로, 작가는 한옥의 사랑채에 가구가 배치되는 구도에서 서구적 세계관과는 대비되는 도교적 시각,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관점을 포착해 본인의 작업으로 재해석한다.3 그는 사랑채의 가구들을 인간과 더불어 자연을 ‘느끼고’ ‘경험하는’ 준생명적 존재이자 사람과 함께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로 이해한다. 이는 한국화의 풍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시각적으로 완결된, 인간과 사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4 이와 같은 추상, 또는 개념적 ‘승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본인의 작업이 ‘한국적’ 형태로 분류되는 것을 유예시키며, 그 사유의 바탕이 다양한 시각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러한 가능성은 그의 아트 퍼니처에 내재되어 있는 현상학적 차원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형 예술이 ‘보는’ 행위의 대상이라면, 그의 작품은 ‘느끼고’, ‘사용하는’ 대상으로 존재하며, 주변의 인간 주체들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조형물로 기능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작업, 특히 2024년 인도네시아 현무암으로 제작된 연작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연작에서는 일견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조형적 특색을 읽어내기 어려운데, 여러 재료가 결합되어 한국의 전통 건축을 연상시켰던 이전 작업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하지만 현무암 덩어리에 최소한의 절단만을 가해 의자로서의 기능을 부여한 작가의 제스처는 자연에 대한 지극히 한국적인 관점을 반영한다. 인위적으로 지형을 가공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 문화와 달리, 자연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조성하는 한국 전통 정원의 정신이 녹아 있다. 수만 년간의 화산 활동을 바탕으로 탄생한 현무암이라는 재료 또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수억 년의 시간이 축적된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자 했던 선조의 태도를 환기한다. 형식을 넘어 개념적 차원으로서 전통에 접근하며, 최병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최병훈의 작품세계는 전후 한국 미술사에 있어 예술과 공예가 교차해온 수많은 접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층적인 의의를 지닌다. 이승택에서 이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전통 공예의 양식을 작업에서 적극적으로 인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그림자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이 서사는 최병훈이 최근 작업에서 다루는 침묵의 개념과 상응한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침묵의 미덕은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말하기를 유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내면적 전환의 계기이자 미묘하고 암시적인 소통의 방식이다. 작가의 믿음처럼 침묵의 미덕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넘어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간 발화되지 못한 한국 공예의 역사 또한 한국 미술사의 지형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과묵한 선비의 모습과 기록되기를 기다리는 역사 사이에서, 오늘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무르익은 침묵을 마주해 본다.
1 오광수 「최병훈의 아트 퍼니처: 시와 기능의 조화」 1993
2 안귀숙 「겁(劫) – 찰라에 억겁을 말하다」『Choi Byung Hoon: Art Furniture』 한길아트 2008
3 나지은 「최병훈」『아파트멘토』제29호(2022.5) pp. 244-259
4 작가와의 인터뷰 2025.1.14
Chairs & Benches
심지언 편집장
최병훈은 모더니즘 이후 ‘기능성의 한계를 넘는 디자인’을 모색해 온 작가로, 가구 본래의 기능성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 개념을 제시한 선구자이다. 미적 오브젝트와 아트 퍼니처의 경계를 오가는 그는 목공예가, 아트 퍼니처 작가, 또는 조각가로 호명되기도 한다. 나무와 돌 등 자연적 재료를 바탕으로 절제된 조형미를 선보이는 명상적 의자와 벤치 시리즈는 그의 작품활동 초기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조각과 공예, 디자인의 한정적 경계를 넘어 기능성과 심미성을 갖춘 오브젝트의 개념으로 전개돼왔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홍콩 M+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최병훈의 시그니처 의자와 벤치 작품을 통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작품세계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태초의 잔상 9421〉M+ 소장품
합판, 강철, 자연석 107×154×54cm 1994
나무와 돌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가의 시그니처 의자로, 거친 화강암 위에 매끈한 형태의 나무 합판이 L자 형태로 얹혀 있어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디자인의 대비와 조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형태로 기능적인 의자를 넘어 사색과 고요함을 제안하는 작품이다. 목재 곡면 성형틀로 적층합판(laminated plywood)의 형태를 잡은 후 자연석을 괴어 무게 중심과 높이를 유지하는 구조로 이뤄져있다. 물리적인 구조와 정신적인 대상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으며, 거친 자연석의 질감과 부드러운 나무의 유려한 곡선,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과 균형미를 제시한다.
〈태초의 잔상 07-244〉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소장품
호두나무 합판, 화강암 90×174×55cm 2006
명상용 의자이자 오브젝트. 일명 다리 없는 의자로 나무를 사람의 인체 형태에 맞게 구부린 후 검정 도장으로 마감한 작품이다. 계단처럼 구부러진 나무판 위에 얹혀 있는 돌덩이 하나, 단 두 개의 덩어리로 구성되어 극도로 단순한 디자인으로 보이나, 인간의 신체와 디자인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극적으로 구현되었다. 돌의 무게로 계단형 의자의 물리적인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의자에 앉은 사람의 시선이 돌로 향하게 하여 의자에 앉아 내면을 성찰하고 사유하기를 권하며 ‘명상’이라는 가치를 담아냈다. 관조적 대상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그것이 사색과 명상의 길로 접어들게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이 의자는 예술성과 실용성의 이분법을 넘어섰다는 평을 받으며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첫 한국인 작가 작품으로 소장되었다.
〈태초의 잔상 9637〉
단풍나무, 자연석 41×90×46cm 1996
‘태초의 잔상’ 시리즈는 자연의 원시성을 품은 재료를 통해 존재의 근원, 시간의 흐름,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체의 장식적 요소 없이 절제된 표현과 돌과 나무라는 재료 자체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작가의 조형미가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오랜 시간 자연의 풍파를 견딘 돌의 거친 표면의 흔적과 인공적으로 다듬은 나무의 부드러운 곡선이 대조와 조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나무는 다듬어서 매끈하다면 자연석은 원초적인 거친 맛을 내며, 부드러운 나무의 속성에서 오는 감성과 거친 자연의 원시적인 느낌이 대비를 이룬다. 관람객이 앉거나 기대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벤치’ 또는 ‘휴식 공간’의 기능과 함께 절대적 균형을 이룬 조형물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아트 퍼니처’의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예술과 일상, 실용과 순수의 경계를 넘나든다. 동일한 시리즈의 2015년 작이 파리장식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태초의 잔상 013-01〉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백대리석
(화장대) 179×71×50cm (스툴) 48×50×50cm 2013
최병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 재료의 질감, 형태의 대비를 통한 조화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으로, 거칠고 투박한 자연석과 매끄럽고 세련된 슈퍼 미러와 화이트 마블의 조합은 시각적인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미감을 선사하며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기능적 가구를 넘어선 조형적 오브제로, 가구의 실용적인 기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적인 가치가 부여된 ‘아트 퍼니처’의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201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최한 기획전 《Vanities: Art of the Dressing Table》에 전시된 후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등록되었다.
〈태초의 잔상 014-409〉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현무암 59×347×53cm 2014
2014년부터 인도네시아 현무암을 사용하며 새로운 재료와 조형을 선보인 시리즈의 초기작. 길이 3m에 무게 3톤 이상의 육중한 덩어리감의 이 벤치는 마치 선비가 일필휘지의 붓으로 그려낸 선과 같이 단순하고 속도감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바잘트(현무암)는 화산 폭발 이후 마그마가 수억 년간에 걸쳐 굳어지고 그 위에 또 억겁의 시간이 지나며 흙이 쌓여 표면은 거친 황토색이지만 내부는 검은색의 용암석으로, 연마하면 광택 나는 표면을 연출할 수 있다. 작가는 재료의 거친 표피와 내부의 대조적인 질감과 색조를 동시에 드러내며 일필휘지의 ‘선’의 조형을 선보이고 있다. 제한된 재료를 사용하여 불필요한 장식을 지워내고 자연 재료의 물질성과 색감, 표면효과를 고도로 농밀화하여 표현했다.
〈태초의 잔상 2020〉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
현무암, 물푸레나무
(테이블) 150×900×250cm (수납장) (각)150×140×48cm 2019
서울공예박물관의 안내 데스크로 제작된 작품으로 테이블의 한쪽 면을 낮추어 어린이나 휠체어 이용객의 시선에 맞추어 설계되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박물관의 포용성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후면 3조의 수납장은 조선조 가구 미학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길이 4m가 넘는 테이블은 거친 표면과 반질반질 광택 나는 검정의 질감, 인공적 터치가 최소화된 듯한 형태로 자연과 인공의 조형적 대비와 조화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표현과 장식이 절제된 극히 단순한 구조와 자연의 재료 고유의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육중한 무게감과 물질감으로 아우라를 발산한다. 이러한 절제되고 간결한 조형미는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미감으로 이는 자연미, 동양미, 절제미, 절대미 등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초의 잔상 2023〉카타르 국립박물관 소장품
현무암 85×510×83cm 외 9점 2024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일명 ‘사막의 장미’라 불리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광장에 영구 설치된 작품. 인도네시아산 현무암으로 만든 벤치와 테이블로 구성된 10점의 작품으로, 5톤짜리 현무암을 일부는 갈고 일부는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여 박물관 건축물의 표면 마감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 놓여 있는 것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억겁의 시간을 품은 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서사를 재료로 삼았다.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무거움과 가벼움, 과거와 현재라는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작품은 작가의 대비와 균형의 조형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최초의 한국 작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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