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협 Sunghyeop Seo

위상 공간에서 휘어진 감각적 다양체

Artist

서성협/ 1986년생. 개인전 《MIXED SUBLIME》(공간 형, 2023), 《잡종예찬》(김희수아트센터, 2023),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TINC, 2021), 《위상감각》(얼터사이드, 2020)을 개최했으며, 단체전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고양아람누리 미술관, 2024),《LOLOLO 현대예술제》(문화살롱5120, 2024), 《작은 빛》(김희수아트센터, 2024), 《미술관의 입구: 생태통로》(경기도미술관, 2022),《ECHOLESS》(별관, 2022) 등에 참여했다. 2022년 금천예술공장과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였다. 사운드 아카이브 앨범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2022), 〈병풍시나위: 박다울〉(2022), 〈위상감각 Vol.1〉(2021)을 출판했다. 사진: 배경훈 제공: 금천예술공장

 〈위상학적 대위법: 2022년08월22일 우리나라〉 나무에 먹, 스테인, 우레탄폼, 혼합재료,
스피커, 2ch 사운드 루프 63×45×20cm 2024 제공: 고양아람누리 미술관

위상 공간에서 휘어진 감각적 다양체
안진국 미술비평
“모든 현실적 삶은 만남이다. 그리고 각 만남은 중요하다.”1
-캐런 바라드 『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 중

매체와 형식, 장르를 혼합한 작업을 선보이는 서성협은, 종적으로 중첩하는 방법론으로서 형태의 본질적인 특성을 탐구하는 ‘위상학(topology)’을, 횡적으로 잇는 방법론으로서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음악 작곡 기법인 ‘대위법(counterpoint)’을 활용하여 작업해 왔다. 이 때문에 매체, 음향, 행위가 뒤섞여 시각(미술), 소리(음악), 연주(행위)가 얽힌 위상학적인 작업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서성협은 결과물이 아닌, 이질적인 요소들을 연결하는 ‘사이’를 이야기한다. 즉, 결과보다는 과정을 들여다보길 원한다. 그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이 ‘사이’를 “그리고”라는 단어로 가시화하며, 그것이 지닌 의미를, 작업을 통해 거듭 탐색하고 있다. 이는 캐런 바라드가 말한 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 즉 ‘내부-작용(intra-action)’을 떠오르게 한다.

양자물리학의 중요 개념들을 발전시켜 ‘행위적 실재론’을 제안한 바라드는, 오직 만남과 관계 안에서만 모든 것이 생성되고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세계가 물질과 의미의 ‘얽힘(entanglement)’과 관계성으로 생성된다고 말하는 그는, 존재의 기본 단위를 독립개체가 아닌 ‘관계들 (relations)’이 만드는 ‘현상’이라고 본다. 즉 바라드에게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독립개체들의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나타나는 ‘현상(phenomena)’이다. 그는 이 상호작용을 ‘내부- 용’이라고 말했다. 내부-작용이 상호작용과 다른 점은 상호작용이 이미 존재하는 개별 행위성을 전제로 하는 반면, 내부-작용은 이러한 얽힘을 통해 행위성이 창발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라드는 내부-작용의 역동적인 과정으로 현실이 존재하고 계속 생성된다고 본다.

서성협이 보여주는, 위상학적이고 대위법적인 독특하고 특수한 관계성 또한 하나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드가 말한 내부-작용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2

〈위상감각〉 합판에 먹, 모터, 나무 구슬, 혼합 매체 240×300×300cm 2020
(엔지니어링 디자인: 아르시오) 사진: 김진호

〈병풍시나위〉 합판에 먹, 적동, 황동 파이프, 스피커, 콘트라베이스 현, 모터, 아두이노 (소리: 황민왕, 퍼포먼스: 박다울) 190×180×12cm 2021 제공: ZER01NE

혼종성을 넘어서

서성협은 서로 다른 매체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감각을 뒤섞는 위상학적 접근을 통해 감각적 다양체(manifold)를 만들어왔다. 작가는 조형 작품(미술)과 악기(음악)의 혼합체를 만들고(〈위상감각〉(2020), 〈소리병풍〉 연작(2021), 〈기념비〉 연작(2022) 등), 병풍과 같이 배경으로 기능하는 개체를 중심으로 끌어오거나 (〈소리병풍〉 연작, 〈소리액자〉(2021), 〈유사병풍〉(2023) 등), 밖과 안의 개념을 뒤집고(〈위상경계: 밖과 안〉(2024)),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서사를 혼합하는 작업(〈유사병풍〉, 연작 〈도판〉 (2023) 등) 등을 선보여 왔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초기에 ‘위상감각’을 중심으로 분석되었으며, 점차 ‘혼종성’이 작업을 분석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됐다.

장르와 매체, 객체가 뒤섞여 있는 서성협의 작업에서 혼종성은 현대 문명의 발달에 의한 글로벌 문화의 형성과 그 문화가 양산하는 혼종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보편 서사로서 ‘퓨전’이나 ‘하이브리드’라는 매끈한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현대의 문화 트렌드를 좇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사적 서사를 기초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진정성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혼종성’은 의미 깊은 개념이다.

그런데 우려되는 점은 ‘혼종’이 지닌 문화연구사적 맥락이다. ‘혼종’은 그것이 지닌 역사적 함의 때문에 단순히 A와 B의 혼합이 낳은 새로운 제3의 종으로만 볼 수 없다. 호미 바바는 혼종을 통해 식민 권력의 통일성과 우월성을 해체하고, 피지배자의 양가적 저항 가능성을 조명했다. 그래서 혼종은 한때 급진적 저항의 언어였다. 하지만 이 개념은 그와 대립하는 개념인 순종을 즉시 떠오르게 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암시함으로써, 그 자체로 이미 위계적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문화 이론가는 이 개념에 피지배자의 정체성을 재현 불가능한 존재로 고착시키는 폭력이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스튜어트 홀은 혼종이 제국적 혹은 계급적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위치적’ 관계 속에서 “항상 기억, 환상, 담화 그리고 신화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3 앤 매클린톡은 혼종성이 그것의 비판 대상인 식민주의의 지배 주체였던 서양을 중심으로 세계 역사를 ‘재-중심화’한다고 말했다.4 더불어 순수한 두 종의 결합을 전제로 한, 생물학적 기원을 갖는 혼종성은 문화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 ‘혼혈’, ‘잡종’과 같은 부정적 뉘앙스로 인종 차별주의적 관점을 부추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는 더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문화나 인종적 혼합을 가리키는 ‘융합주의(syncretism)’를 선호한다. 결국 혼종은 인종주의적 사유, 식민주의의 분류체계, 계몽주의의 위계질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점이 서성협 작업의 색채를 퇴색시킬지도 모른다.

《서성협: 위상감각을 위한 퍼포먼스》 TINC 전시 전경 2021
사진: 정근호 〈껍데기의 기념비 #01~03〉나무에 스테인, 라탄, 가죽, 스피커, 3채널 사운드 루프 150×180×160cm 가변 설치 2024
사진: 조준용 제공: 수림문화재단

브뤼노 라투르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려는 이분법적 구도를 ‘근대주의 헌법’이라고 불렀다. 근대인은 사실과 가치, 주체와 대상, 자연과 사회, 야만과 문명, 인간과 비인간 등 이분법적 분리를 성취하였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종적인 위계와 비대칭성(asymmetry)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구분이 우열을 나누고, 그 사이를 단절하여 각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상호 매개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라투르는 근대적 시각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행위자(act)의 위계적 구분을 없애는 ‘대칭성(symmetry)’을 제안한다. 이는 평평한 존재론적 위상 속에서 객체들이 자유롭게 동등하게 얽히고, 결합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따라서 서성협의 작업은 문화연구의 측면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계를 내포하고 있는 혼종성보다는, 행위자인 각 객체의 대칭성을 기반으로 한 ‘얽힘’으로 읽는 게 타당할 듯싶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에서 비대칭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혼종성이 아니라, 대칭성, 즉 수평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조형 작품이자 악기가 되고, 배경이자 중심이 되고, 밖과 안을 뒤집는 경계가 된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이나 서구 문화사대주의가 엿보이지 않는 균형 잡힌 동서양 서사의 혼합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악기 같은 조형 작품’이나 ‘조형 작품 같은 악기’와 같이 비대칭적 위계의 관계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재료에서도 얽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방파제의 테트라포드(tetrapod)를 형상화한 〈껍데기의 기념비 #01-03〉(2024)에서는 나무, 스피커, 라탄, 가죽 등 이질적인 재료들이 조합되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흡기와 배기〉 송풍기, 스탠드, 덕트 호스, 하모니카, 모터 컨트롤러, 전원 타이머 50×60×30cm 2024
사진: 고정균 제공: 술술센터

‘그리고’의 위상학적 역동성
서성협은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혼종’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그는 “‘혼종’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최근 더욱 주목하게 된 것이  ‘그리고’는 단순한 연결어가 아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그 거리 안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감각, 그리고 의미의 장소”이며, “서로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가장 섬세한 신호”이자, “관계 맺기의 또 다른 단서”다(작가노트). ‘그리고’는 상이한 객체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접합 행위소(actant)로, 작가는 이를 “사이공간”이라고 말한다. 서성협에게 객체들의 관계성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경계) 바깥에 있는 무엇,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것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작가노트) 그에게 대칭성은 ‘조형물과 악기’, ‘동양과 서양’, ‘문명과 야만’처럼 서로 구분된 항들의 평평한 존재론적 얽힘이다. 그는 이러한 항들을 접합하는 ‘과/와/그리고(and)’가 항들의 “바깥에 있는”, 동시에 “바깥과 연결된” 무엇이며, 여기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힘”이 생성된다고 본다(작가노트).

작가는 ‘그리고’에 “사이공간”, “의미의 장소”라는 위칫값을 부여한다. 하지만 “미세한 감각”, “섬세한 신호”, “또 다른 단서”라는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리고’가 접합지점(공간)일 뿐만 아니라, 역량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어감에서도 느껴지듯이, 정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A에서 B로의 움직임(‘A 그리고 B’까지)을 품고 있다. 이를 통해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힘”을 생성한다. 즉 얽힘을 향한 작용(움직임)은 새로운 행위성을 창발한다. 이는 전통적인 인과관계성을 벗어나는 바라드의 내부-작용 개념에 닿아 있다. 바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간, 시간 그리고 물질의 위상학적 역동성은 행위적 문제(agential matter)로, 그 자체로 앎과 존재에 대한 윤리를 요구한다. 즉 내부 작용은 권력의 기하학을 구성하는 데 단순히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지니며, 그 위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열어준다. 주어진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그러한 개입들은, 가능하게 될 것을 재구성한다. 가능성의 공간은 인식하는 자의 사회적 위치를 도식화할 수 있는 고정된 사건 지평을 재현하지 않으며, 균질하고 고정된, 획일적인 선택지들의 컨테이너(container)도 아니다. 오히려, 시공간 다양체의 역동성은, 그러한 재(구성)형상화(re(con)figuring) 안에서 가능해지는 행위적 개입(agential interventions)에 의해 생산된다.”6 바라드가 말하듯이, 위상학적 역동성은 “균질하고 고정된, 획일적인 선택지들의 컨테이너”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작용으로 시공간적 위상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장에서 발생한다. 그 과정에는 “앎과 존재에 대한 윤리”가 요구된다. 내부-작용은 윤리적 문제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서성협의 ‘그리고’는 ‘행위적 개입’이라 할 수 있다. 행위적 개입의 윤리적 문제는 작가의 작업이 지닌 ‘그리고’의 또 다른 층위를 상기시킨다. 바로 ‘혼종성’이 지닌 폭력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위계를 내재한 ‘혼종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윤리적 얽힘으로서의 ‘대칭성’. 작가의 ‘그리고’는 단순히 접합지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공간의 다양체를 재(구성)형상화하는 내부-작용으로서 ‘그리고’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개입으로서 ‘그리고’라고 할 수 있다.

《서성협: 잡종예찬》 김희수아트센터 전시 전경 2023
제공: 수림문화재단

〈Duct Organ〉 나무에 스테인, 스파이럴 덕트관, 송풍기 가변 설치 2024
제공: 고양아람누리 미술관

이 ‘그리고’는 ‘위상학’과 ‘대위법’을 기초로 한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질적인 항들 사이의 위상학적 동일성에 주목해 왔다. 그는 각 항의 본질적 특성에서 ‘and’로 묶일 수 있는 동일성을 토대로 대칭성 다양체를 구성했다. 이러한 위상학적 동일성은 장르(미술과 음악), 형식(배경과 중심), 위치(안과 밖), 문화(동양과 서양) 등을 넘나들며 구성되었다. 최근에 작가는 장르, 생성된 소리, 행위를 각각의 선율로 보고 이를 대위법적으로 혼합하는 실험을 했다. 특히 일상용품과 악기, 그리고 악기 연주와 일상 행위 사이의 위상학적 동일성에 주목해 왔다. 그는 파이프 오르간의 풀무를 변기를 뚫을 때 사용하는 도구(일명 뚫어뻥)로 바꾸거나(〈Plumbing Organ〉(2024)), 덕트용 파이프를 활용해 오르간 파이프를 만들었으며(〈Duct Organ〉(2024)), 현악기를 서랍 있는 장식품으로(〈서랍을 열면 소리가 납니다: 활〉(2024)), 타악기를 뚜껑이 있는 장식품으로(〈서랍을 열면 소리가 납니다: 심벌즈〉 (2024) 등) 변형했다. 이러한 접근은 악기 연주와 일상 행위의 위상학적 동일성으로 이어진다. 뚫어뻥을 누르는 행위는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행위가 되고, 서랍을 여는 행위는 현악기의 활을 켜는 행위로, 뚜껑을 여는 행위는 타악기를 치는 행위로 변한다. 서성협은 조형물과 악기 사이, 일상용품과 악기 사이, 연주와 일상 행위 사이에서 항들을 접합함으로써 감각적 다양체를 구성해 낸다.

서성협의 작업은 국소적으로 익숙한 조형(병풍, 서랍, 파이프, 악기 등)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소리, 손의 압력, 시선의 위치, 시간적 흐름, 문화적 의미가 다층적으로 휘어져 있다. 그는 매체, 공간, 행위를, 결합을 통해 단일한 감각 체계로 포착할 수 없는 감각과 의미의 다양체로 구성한다. 이는 혼종성의 위계를 넘어 윤리적 관계성에 관한 미래를 제시한다.

*본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한국미술 비평지원’으로 진행하는 특별 기고이다.


1 Karen Barad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p.353
2 물론 바라드가 말하는 내부-작용을 가져와 서성협의 ‘그리고’에 바로 붙이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광대하다. 바라드의 내부-작용은 일상적인 모든 것에 적용되는 그의 관계적 존재론의 핵심 개념으로, 상이한 층위에서 작동하는 행위소(actant)들을 위상학적 방식으로 중첩한 독특한 관계성을 보여주는 서성협 작업의 ‘그리고’와는 다소 이격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존재에 관한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는 바라드의 이론을 특수하고 독특한 관계와 형상을 보여주는 서성협의 작업에 적용하기에는 그 질감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관계성이 아무리 독특하고 특수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관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존재한다고 보는 바라드의 관계적 존재론에서 이 또한 개체들과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내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3 Stuart Hall “Cultural Identity and Diaspora” Contemporary Postcolonial Theory: A Reader Ed. Padmini Mongia, London: Arnold 1996 p.113
4 Anne McClintock Imperial Leather: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the Colonial Contest New York: Routledge 1995 p.225
5 작가와의 인터뷰 2025.5.2
6 Karen Barad “Re(con)figuring Space, Time, and Matter” Feminist Locations: Global and Local, Theory and Practice Edited by M. DeKoven,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2001 pp.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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