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

현대적 삶을 지지하는 오래된 건축 실험

정다영 큐레이터

World Report |  Tokyo

루이 칸 〈피셔 하우스 (Fisher House)〉1967 설치 전경

건축은 시대정신이라는 거시적 관념과 생활 양식이라는 미시적 구조를 담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 훗날 1세대 건축가라고 불리는 대가들이 등장하면서, 건축은 전후 시대 사회학적 맥락을 담는 문화 요소인 동시에 건축가의 미학과 개인의 취향을 내세운 예술로 그 영역을 넓혔다. 관람객은 건축과 디자인의 창의적인 조합을 경험하며 궁극적으로 ‘잘사는 삶’의 조건을 다시금 곱씹게 될 것이다. 전시는 3월 19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최된다.


현대적 삶을 지지하는 오래된 건축 실험
정다영 큐레이터

전시장 입구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 2025
©Kazuo Fukunaga

집에 대한 정의와 기대는 시대마다 변해왔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용도 외에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현대적인 집의 가치는 한 세기 전에 촉발된 건축적 논의들을 토대 삼고 있다. 일본 도쿄의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는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Living Modernity: Experiments in the Exceptional and Everyday 1920s–1970s)》(이하 《리빙 모더니티》)는 국제적 위상의 근현대 건축가들이 설계한 열네 채의 집을 통해 주택과 거주의 현대성을 그리고 있다. 전시는 르 코르뷔지에(1887~1965),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 알바 알토(1898~1992) 등 현대 건축의 국제 규범을 만든 인물들의 주택 작업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덧붙여 리나 보 바르디(1914~1992)와 같은 현대 건축사의 정전을 다소 비켜난 대안적 인물로 호출되는 여성 건축가와 후지이 고지(1888~1938), 기쿠타케 기요노리(1928~2011)와 같은 일본 건축가들의 주택 작업을 포함한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점을 시작과 끝으로 삼은 이 전시는 전쟁 이후 더욱 절실해진 집의 필요성에 혁신적인 개념으로 응답했던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택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균형을 조율해야 하는 건축가에게 가장 도전적인 작업으로, 그 자체에 건축의 정수가 있다고도 여겨진다.

이 전시는 현대성을 담지한 주택은 관념을 넘어 물질적 조건들로 정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시의 초청 큐레이터인 켄 타다시 오시마(Ken Tadashi Oshima) 워싱턴대 건축학부 교수는 그러한 조건으로 일곱 가지 요소를 내세운다. 이 요소들은 곧 전시의 섹션별 주제가 된다. 청결 문화를 창조하는 ‘위생(Hygiene)’, 물성과 제작 방식에 집중하는 ‘재료성(Materiality)’, 실내외 공간을 규정하는 ‘창(Window)’, 가정의 중심 공간인 ‘부엌(Kitchen)’, 편안한 생활 공간을 구성하며 예술적 오브제로 부상한 ‘가구(Furnishings)’, 주거문화를 시각화하고 전파한 ‘미디어(Media)’,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논하는 ‘풍경(Landscape)’이다.

열네 채의 주택은 이 주제들을 공유하며 상호 연결된다.1 한 작품(주택)이 일곱 가지의 주제 중 한 가지 이상을 반영하고 각각의 집들은 일종의 성좌와 같은 관계도를 만들어 낸다. 주제들은 넓은 전시장에서 가벽 등에 의해 공간적으로 명확히 구분되기보다 느슨하게 서로를 점유하며 중첩된다. 기획 과정에서 주택의 현대성을 정의하는 일곱 가지 요소가 먼저였을지, 마스터피스로 꼽은 대가들의 주택이 우선이었을지 알 수는 없으나 각 작품은 전시장에서 주제의 면면을 충실히 대변하도록 설계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전략에 따라 가장 사적인 집이 일상생활 영역으로 확장하여 관객의 공감을 얻게 된다. 기존 주거 모델을 재조합하거나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여 탄생한 열네 채의 주택에 담긴 개념은 주택뿐만 아니라 복잡해진 현대 건축의 다양한 맥락을 반영한다.

에로 사리넨, 알렉산더 지라드, 댄 카일리 〈밀러 하우스(Miller House)〉 1957 설치 전경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 2025
©Kazuo Fukunaga

에디토리얼 프로젝트로서의 전시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건축 전시로 기획된 《리빙 모더니티》는 오시마 교수가 『모노클』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공동 저자로도 참여했던 『a+u -건축과 어바니즘』 특별호인 『실제의 비전: 20세기 모던 하우스(Visions of the Real: Modern Houses in the 20th Century)』(2003)의 연장선에 있다. 실제로 이 전시는 책을 공간적으로 펼친 에디토리얼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과 자료, 설치는 한 권의 책에 담길 내용을 공간적으로 펼쳐놓은 것에 가깝다. 이는 전시를 텍스트, 사진과 건물을 축소한 도면, 모형 등 전통적인 매체로 구성한 백과사전으로 보이게 한다. 영상이나 상호 반응하는 멀티미디어 요소가 거의 부재하기에 관객은 순차적으로 대상을 읽고 마치 목차를 따라 책을 보듯 전시를 ‘읽게’ 된다. 설명이 담긴 입체적 구성물로 촘촘하게 짜인 독서에 가까운 경험이다. 물론 이러한 매체 외에도 이 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미완의 주택 작업인〈로우 하우스〉(1931)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대형 설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작업은 1층 주 전시장과 분리된 2층에 놓여 있어 전시의 주요 내용보다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전시는 종합적으로 볼 때 큐레이팅 분야보다 건축 전문 출판의 역사와 편집 역량이 강한 일본 건축문화의 힘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켄 타다시 오시마도 『a+u -건축과 어바니즘』 모회사인 『신건축(Shinkenchiku)』의 에디터를 역임한 바 있으며, 일본 건축문화의 확산에는 전시보다 출판, 큐레이터보다 에디터의 역할이 컸다. 이런 관점에서 전시의 소주제이기도 한 ‘미디어’는《리빙 모더니티》가 지향하는 귀결점으로도 유의미하게 볼 필요가 있다. 1925년 창간되어 올해 10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건축 잡지『신건축』에서 발췌한 도면과 사진, 글이 바로 주요 전시 출품 목록이기도 했다. 따라서 전시장에는 『신건축』이 20세기 초중반 서양 현대건축의 면면을 대등하게 취재한 흔적들과 일본의 주거문화를 국내외로 전파해 나간 기록들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 출구에 무심히 걸려 있던 『신건축』 1호 표지는 이 전시가 담고 있는 주제 의식 이면에 있는 자국의 건축적 역량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로우 하우스(Row House)〉 1931 1:1 실물크기 설치 전경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 2025
©Kazuo Fukunaga

일본의 풍부한 디자인 컬렉션과 미디어로서의 전시
책에 가까운 전시 형식을 고려했지만, 미술관이라는 예술 공간에서 열리는 만큼 전시는 진품이라 칭할 수 있는 실물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일곱 가지 주제 중 ‘가구’는 이와 같은 고려를 통해 채택되었다. 이 섹션에는 도면, 모형, 사진과 같은 건축물의 재현/ 가공 매체뿐만 아니라 출품된 주택에 놓였거나 해당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와 조명과 같은 디자인 제품 및 공예품들이 함께 전시되었다. 이처럼 전시는 주택이라는 건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곁에 두고 애호했던, 나아가 예술품으로 여겼던 생활 사물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미드센추리모던 디자인 제품들이 빈티지로 각광받고 있는 지금, 바우하우스 출신 디자이너나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마스터아키텍트가 설계한 가구들은 이미 대중과 아트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서양에서 제작된 모던 디자인 사물이나 작품들을 미술관과 같은 해외 유관기관에서 빌리기보다 대부분 일본 자국 안에서 구했다는 점이다. 소장처는 일본 내 뮤지엄뿐만 아니라 미사와 홈(Misawa Home)과 같은 대규모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소장한 기업부터 억만장자이자 유명한 현대미술 및 디자인 컬렉터인 마에자와 유사쿠와 같은 인물까지 다양한 기업과 개인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소장처를 살펴보면 일본의 풍성한 디자인 컬렉션 층위를 엿볼 수 있다.

전시 기저에 일본 건축 분야 출판의 힘과 자국 디자인 컬렉션의 깊이를 은근하게 담고 있는 《리빙 모더니티》의 숨은 정점은 20세기 서양 건축 대가들과 나란히 놓인 일본 건축가들의 작업 자체다. 그 비중이 출품작의 3분의 1 이하지만 서양 대가들과의 긴밀한 배치를 통해 유의미한 관계를 완성한다. 이들의 작업은 자연스레 《리빙 모더니티》의 성좌를 구성하고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프리츠커상’을 가장 많이 수상하고 국제적인 예술 무대에서 자주 호출받는 건축가들을 배출한 나라가 일본인만큼 《리빙 모더니티》는 현대성을 이끈 주체로서 자기 실천을 유감없이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국내외 대중에게 미술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건축을 공간 경험을 통해 소개하는 매체로, 미디어로서 건축 전시는 이러한 의도를 더욱 증폭한다.

후지이 고지 〈초치쿠쿄(Chochikukyo)〉 1928 설치 전경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 2025 ©Kazuo Fukunaga

비평적 실천
건축가들의 명성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전시는 개막 직후부터 일본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리빙 모더니티》는 현대 건축의 언어가 무르익을 무렵 20세기 건축가들이 주택을 놓고 한 실험이 동시대 일상의 물리적 토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전시는 앞서 밝힌 대로 자국(일본)에서 충족한 촘촘한 해외 건축 및 디자인 컬렉션과 아카이브를 토대로 만든 한 권의 책을 읽는 공간적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험 이후 오늘날까지 그것을 수용하는 주체의 입장이나 맥락에 따라 모더니티가 어떻게 전이되고 변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는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으로만 남겨 놓는다. 이 시가 스스로 규정한 일곱 가지 주제와 선정한 작품을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할지에 대한 논의가 불충분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컨대 전시에서 등장하는 여성 건축가는 리나 보 바르디 한 명으로, 건축의 모더니티는 계속 편향된 상태에서 쓰이고 있다. 또한 주택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여성 집주인의 이름은 관습적으로 해 왔듯이 전시 설명에서 대체로 지워져 있다. 21세기의 1분기가 지난 지금은 20세기의 모더니티 신화를 거듭 재생산하기보다 비평적 관점으로 다시 쓰기를 시도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할 때이다.

기요노리 & 기쿠다케 노리에 〈스카이 하우스(Sky House)〉 1958 설치 전경
《리빙 모더니티: 예외성과 일상의 실험들 1920-1970》 도쿄 국립신미술관 전시 2025 ©Kazuo Fukunaga


1 전시에 출품된 각 작가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르 코르뷔지에 〈르 락〉(1923), 후지이 고지 〈초치쿠쿄〉(1928), 미스 반 데어 로에 〈로우 하우스〉(1931), 피에르 샤로 〈메종 드 베르〉(1932), 쓰치우라 가메키 〈쓰치우라 가메키 하우스〉(1935), 리나 보 바르디 〈카사 데 비드로〉(1951), 히로세 겐지 〈SH 1〉(1953), 알바 알토 〈무탈라 실험 주택〉(1954), 장 프루베 〈장 프루베 낭시 하우스〉(1954), 에로 사리넨, 알렉산더 지라드, 댄 카일리 〈밀러 하우스〉(1957), 기요노리 & 기쿠다케 노리에 〈스카이 하우스〉(1958), 피에르 쾨닉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22〉(1959), 루이 칸 〈피셔 하우스〉(1967), 프랭크 게리 〈프랭크 & 베르타 게리 하우스〉(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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