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북에 대해
안규철
Special Feature
책은 여전히 예술가들에게 유의미한 매체다. 안규철은 글쓰기를 통해 작업을 구상하며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스스로 책이 되려 한다”고 말한다. 오묘초는 조각의 물질성을 넘어 글을 통해 미래 생명체와 기억의 세계를 탐색한다. 그의 SF소설은 조각이 닿지 못하는 질문에 대한 연장이자, “형태가 말을 멈춘 뒤에도 그 뒤를 따라오는 끈질기고 은밀한 이야기”를 붙들려는 시도다. 유리는 책이 지닌 ‘덩어리감’과 ‘연결성’에 매혹되어,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고, 제책의 방식과 구조를 회화와 결합한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 책이라는 매체를 해석하며, 책이 감각과 사유의 장소이자 동시대 예술의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다음의 글은 그들이 책을 택하게 된 이유와 책 안에서 구축한 고유한 세계에 관한 기록이다.
아티스트 북에 대해
안규철
아티스트 북은 미술가가 책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드는 미술작품의 일종이다. 대체로 일반적인 책과는 다르게 수공업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대량 복제가 아닌 한정판으로 제작되어 작가의 필치와 호흡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회화나 조각을 본업으로 삼는 미술가에게 아티스트 북은 미술 창작의 규범과 관행을 넘어 자신만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매체로 여겨지는 듯하다. 여러 권의 책을 내긴 했지만 나는 이런 의미의 아티스트 북에 해당되는 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책들이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만든 책을 헤아려보니 전시 도록을 빼고도 열 권이 넘는다.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산문집이 네 권, 작업노트나 드로잉을 모은 책이 두 권, 작품집 한 권, 번역서가 네 권이다. 작품집이나 자료집은 미술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 권씩 만드는 것이니 특별할 게 없지만 나머지 책들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들이 미술가로서 나의 이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대학을 나와서 미술잡지 기자로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기자를 그만둔 뒤에도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글 쓰는 미술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확히 하자면 나는 글도 쓰고 미술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글쓰기를 통해서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45년 전에 『월간미술』의 전신인 『계간미술』에 들어가면서 미술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 되었고, 독일 유학 시절에는 해외 미술소식을 전하는 통신원 역할을 하면서 학비를 충당했다. 또한 독일 미술학교를 다니는 동안 작업노트를 쓰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토론이 중심이 되는 학교 수업에서 내 작업을 제대로 설명하고 비판적인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의 전개 과정을 충실히 기록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글들은 작업을 정당화하고 변호하려는 방어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머릿속에서 형체를 갖지 못한 채 부유하는 생각들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남에게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탐색하기 위해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는 우연히 한 문학잡지에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로 미술작업에 관한 글을 써온 내가 작업 이외의 다양한 사물들의 세계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글을 쓴다. 이 시간이 내가 하루 중 가장 예술가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은 정해둔 주제 없이 그날그날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나 단어 하나를 붙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식으로 쓰는 산문이다. 비유하자면 이 글쓰기는 매일 비슷한 구역에서 맴돌지만,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산책과 비슷하다. 글은 때때로 예정된 목적지를 넘어서 훨씬 멀리까지 가기도 하는데,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내려놓고, 생각의 실마리를 따라가면서 쓰고 있다. 괜찮은 글이 나올 때보다는 아무 수확 없이 끝날 때가 더 많고, 쓸 만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낙담하며 연필을 내려놓는 날도 허다하다. 그러나 이 일은 원래 그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쓴다. 그러는 중에도 가끔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고 그중 하나를 매달 한 편씩 잡지사에 보낸다. 이 손바닥만 한 글들이 몇 년 쌓여서 책 한 권 분량이 되면 단행본이 나오고, 천천히 오랫동안 서점에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책이 된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관객들 중에는 내 미술보다 책을 먼저 알았다는 사람들이 있고, 글을 통해서 내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이도 많다.
전시를 준비할 때는 작업노트에 써놓은 글들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 작품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찾는다. 먼저 아이디어 스케치가 있고, 나중에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식이 아니라, 글 속에서 아이디어와 형태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미술작업은 내가 쓴 글 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형태와 공간으로 펼쳐내는 일종의 번역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업노트는 내가 매일 한두 페이지씩 채워가는 일기이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서 저장해두는 창고이며, 내 작업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대개 글이 80%쯤 되고 나머지 20%가 그림이다. 어쩌면 이 작업노트가 내가 만드는 책 중에서 가장 아티스트 북에 가까운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작업노트를 쓰는 일은 끊임없이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내일의 나를 상상하는 과정, 내가 지나온 길을 통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찾는 과정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 미술가로서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작업노트는 내가 하는 미술작업의 중심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책을 만들고 있다. 미술가들은 전시도록을 만들고 자신의 전 작품을 수록한 작품집을 만든다.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글을 모아서 평론집을 낸다. 작품집이 없는 미술가, 도록이 없는 전시, 비평서가 없는 미술비평가를 상상하기 어렵다. 전시도록은 제대로 된 전시라면 당연히 만들어야 하고, 미술계 주요 인사와 기관들과 동료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해야 하는 필수품목이 되었다. 이렇게 미술인주소록을 통해 우편으로 발송되어 오는 도록과 책자와 브로슈어의 수량은 내가 서점에서 구입하는 책의 수량보다 훨씬 많다. 그것들은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한 채 구석에 쌓이다가 나중에는 결국 종이박스에 담겨서 폐지로 버려진다. 아키비스트가 아니고, 특별한 수집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몇 년간 방치했던 카탈로그와 도록들을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내다 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든 도록들도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술가들은 더 많은 책을 만들고, 거기에 덧붙여 아티스트 북을 만든다. ‘아티스트 북’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처음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과연 그런 책이 필요한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에게 주려고, 그림도 조각도 아니고 전시도 아닌 책을 만드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는 책을 만들고, 그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스스로 책이 되려 한다. 책 속에서 영원히 살기 위하여 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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