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트래디션의 현재형:
뮷즈(MU:DS)가 만든 박물관 소비 문법
노재민 기자
Sight&Issue

제공: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 MU:DS
위 왼쪽 현재 뮷즈는 상품 개발에 국가 예산을 지원 받고 있지 않아 수익금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오른쪽 신라 미소 소스볼은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얼굴무늬 수막새〉를 활용한 제품으로, 소스를 부으면 얼굴의 무늬가 선명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 왼쪽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피규어 작품으로, BTS의 멤버 RM이 구매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 광복 에디션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를 든 버전이 출시됐다
오른쪽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는 실제 유물인 백제 〈금동대향로〉의 용도를 살린 제품으로, 향을 피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소품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힙-트래디션의 현재형 뮷즈(MU:DS)가 만든 박물관 소비 문법
노재민 기자
찜통더위에도 아침부터 이곳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길게 줄 지은 사람들. 국립중앙박물관 풍경이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전시장보다 먼저 1층 뮤지엄숍으로 바삐 향한다. 그간 박물관에서 볼 수 없던 낯선 현상, ‘오픈런’이다. 이들의 목표는 ‘뮷즈(MU:DS)’.1 백화점이나 스니커즈 매장에서 보던 장면이 공공 문화기관에서 재현되고 있다. 데이터는 이런 열기를 증명한다. 2023년 뮷즈 매출은 150억 원, 2024년에는 213억 원으로 뛰었고, 올해 상반기 매출은 역대 최대 수준인 115억 원을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굿즈 브랜드 ‘뮷즈(MU:DS)’는 박물관이 ‘지금 가장 힙한 장소’라는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뮷즈의 출발은 단순한 기념품을 브랜드로 재정의하기로 한 결정에서 찾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랜 기간 문화유산을 소개해 왔지만, 뮷즈의 등장은 그 소개 방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전까지 박물관 상품이 도록, 엽서, 머그잔 등 소장 위주의 기념품에 머물렀다면, 뮷즈는 파우치, 트레이, 디지털 액세서리 등 쓰임을 기준으로 라인업을 재편했다. 한 손에 감기는 작은 일상 용품에 유물의 미감을 이식하는 전략이 통했다. “필요한 물건인데, 박물관에 와보니 더 잘 만든 버전이 있다”는 발견의 기쁨이 반복되며 팬덤이 형성됐다.
이러한 감각은 개별 상품의 위트를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김홍도의〈평안감사향연도〉 속 인물을 모티프로 음료 온도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취객선비 변색잔’은 조선 풍속화와 21세기 기술이 만나는 협업의 문법을 보여준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고요한 미소와 정적인 포즈의 디테일을 살리되, 분홍색이나 보라색 등 다채로운 색으로 확장해 ‘집 안의 박물관’이라는 감각을 구현했다. 단순 재현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오늘의 생활언어로 번역하는 방식, 즉 해석의 미감이 뮷즈의 핵심 역량이다.
공급 쪽 설계도 영리하다. 내부에는 전담 체계를 갖추고, 외부에는 정기 공모를 통해 창작자 및 제조사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공모 경쟁률은 900대 1을 거쳐 최근 1300대 1까지 치솟았고, 심사를 통과한 수탁 상품만 MU:DS 라벨을 단다. 결과적으로 팬 메이드의 창의와 기관의 품질 기준이 수렴하면서, 매 시즌 신선함과 완성도를 동시에 확보한다. 뮷즈는 국내 생산을 고수 중이다. 제작 업체는 소규모의 소상공인들로, 상품기획팀 총괄을 맡고 있는 김미경 팀장은 “소상공인과 상생하는 취지로 해외 대량 생산을 하지 않다 보니 가격이 높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제공: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 MU:DS
왼쪽 위 작년 매출 15억을 달성한 판매량 1위의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은 온도에 색이 변하는 시온 안료 프린팅 기법을 사용했다. 잔에 차가운 음료가 담기면 선비들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 까치호랑이 뱃지는 최근 흥행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캐릭터 더피와 닮아 덩달아 인기몰이 중이다.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가 모티프다
오른쪽 위 스튜디오 점선면의 양영모 대표는 3d 프린터로 석굴암 조명을 제작하며 인쇄부터 제품 조립까지 30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아래 ‘부뚜막 인센스’는 이천에서 쌀을 도정하고 버려지는 쌀겨를 인센스로 재활용해서 구수한 쌀 냄새가 난다
MZ세대가 특히 뮷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뮷즈의 주 고객층은 20~30대로, 2024년 기준으로 뮷즈 구매자 중 30대가 36.6%, 20대가 17.7%로 전체 절반을 넘는다. MZ세대는 좋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맥락과 가치를 중시한다. 이른바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이들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내 일상에 전통을 녹여낼 수 있는 도구로서 뮷즈를 소비한다. 이들에게 뮷즈는 문화적 태도이자 취향의 일부다. 다시 말해 한국 문화유산을 쓰는 경험에서 오는 윤리적 만족이 있다. 뮷즈는 유산의 원형을 존중하는 해석2을 통해 전통문화를 힙한 감성으로 즐기는 ‘힙 트래디션(hip+tradition)’의 설득력 있는 사례가 되었다.
문화유산은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서 민족 정체성을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이다. 뮷즈는 바로 이 상상력을 실현하는 플랫폼이자, 전통의 재매개 과정을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사례다. 뮷즈는 단순한 굿즈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전통 활용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전통을 소비하는 새로운 감각이 박물관 안팎의 장벽을 낮추고, 박물관은 지식의 저장고를 넘어 일상의 미감 공급자가 되고 있다.
동시에 과제도 뚜렷하다. 과열된 대기 및 품절로 대리 구매와 웃돈 거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정한 접근과 적정 희소성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인기 품목의 예측 생산과 분산 판매, 1인 한정 수량·추첨 등 접근성 장치, 장애 친화·다언어 설명의 확충, 해외 전시·리테일과의 정교한 연계가 요구된다. 다행히 재단은 기획-제작-유통의 내부 표준을 정교화하고, 외부 협업을 제도화하며 체력을 키워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앞 아침의 행렬이 잠깐의 유행을 넘어 지속하는 현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공정한 접근성을 지렛대로 쓰임의 미감을 박물관 밖 일상까지 확장하는 표준을 꾸준히 갱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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